율리아님 말씀

20112011. 7. 22. 제 3회 마리아의 구원방주 성인 피정 율리아 자매님 말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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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흘리시고 온몸을 다 짜내어 향유를 흘려 주시는 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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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C1097.gif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반갑습니다. 저녁 식사 때 비가 많이 왔다고 하는데 식사 잘 하셨어요? 

여러분들 여기서는 절대로 배고프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면 영혼 육신을 치유 시키실 수 있는 기적수가 있으니 우리가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그죠? 여러분 모두 최고의 신약인 기적수를 2박 3일 간의 피정 중에 마음껏 드십시오. 

전에 기적수 처음 팠을 때 빅토리아 자매라고 있었는데 그 자매님이 중학교 때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셔가지고 그 충격으로 속병이 생겨서 음식을 잘 못 먹을 뿐만이 아니라 계속 토했었는데 기적수를 스텐 대접으로 스물네 대접을 마셨는데도 배부른지도 모르고 화장실도 안 가고 모든 병이 다 치유 되었어요. 

또 서울에서 오신 형제님도 기적수를 연속 열두 잔을 잡수시고는 “큰일 났다. 내가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소변이 마려우면 큰일이다.” 했는데 서울까지 가도록 소변 한 번을 안 봤다면서 “그냥 물은 먹으면 막 다 나오는데 이것이 기적이다. 그래서 기적수구나.” 그랬대요. 

그러고는 ‘그래도 집에 가면 많이 나오겠지?’ 그랬는데 집에 가서도 안 나와 ‘아~ 기적수가 정말 내 몸 안에 다 침투되어서 내 모든 것을 다 정돈 시켜서 다 치유해주시겠구나. 아멘!’ 그랬는데 정말 눈부터 다 치유를 받았어요.여러분들도 모두 치유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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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번 피정을 앞두고 제가 아무리 아파도 진통제라도 맞고 2박 3일 간 여러분들과 함께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 아침서부터 일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곳이 없어요. 숨쉬기도 힘들고, 멍이 여기저기 다 나고 사방이 결리면서 살까지 다 아파 정말 진통제를 맞아야 했어요.

그런데도 지금 걸어 나오는데 발뒤꿈치가 너무 아파 절로 억억 소리가 나면서 걸음을 못 걷겠는 거예요. 근데 20일 전쯤 제가 소화를 전혀 못시키니까 정 신부님께서 발을 누르면 더 낫다고 눌러주시다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그곳을 누르면 덩치 큰 알비노 형제 같은 장정들도 너무 아파 큰 소리를 지를 것인데 눈도 깜빡 안 한다면서 “어, 진짜 엄살 아니시네?” 그래서 ‘아, 신부님께서도 이렇게 모르시는구나.’하고 깜짝 놀랐어요. 정말 제 곁에서 24시간 같이 지내지 않으면 거의 저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이 고통 저 고통 모두 다 여러분들이 치유 받으실 수 있도록 봉헌했으니 모두 치유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여러분들은 특별히 불림 받은 작은 영혼들입니다. 이제까지 26년 동안 주님과 성모님께서 나주에서 발현하시고 현존하시면서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여기 오셔서 치유 받으신 분들 정말 헤아릴 수도 없고 불치병 환자들이 치유 된 것만 해도 정말 엄청 많습니다. 

그렇게 은총을 받았으면 감사해야 되는데 감사하기는커녕 나주 성모님이 이렇게 박해를 받게 되니까 나중에는 자기들도 합세해서 주님과 성모님의 마음을 무척 아프게 하는 그 모습을 보고 저도 가슴이 너무너무 정말 찢어질 듯이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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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는 고통때문이 아니라 고통을 받을 때만 구명대에 매달리듯이 나주에서 그렇게 예수님과 성모님께 매달리고 했던 사람들이 구하던 은총을 받고 나서 뒤돌아 서버리는 그런 모습을 보고 저는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이렇게 슬플 때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얼마나 슬프실까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렇게 곁눈질도 하지 않고 나주에서 발현하신 주님과 성모님을 사랑하고 또 주님과 성모님을 따라 가기 위해서 많은 핍박과 박해를 받으시면서도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캉스를 즐기고 시원한 바닷가나 피서를 즐기는데도 여러분들은 이렇게 성모님 집에서 의자도 없이 불편하게 앉아 피정을 하시면서도 기뻐하시니 이 기쁨을 속인들이 어찌 알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공부가 하고 싶었습니다. 광주에 서석 초등학교라고 있습니다. 서석초등학교가 옛날엔 광주에서 가장 크고 좋은 학교였는데 한학자이신 저희 아버지께서 거기 교사를 하시다 중학교로 영전하시기로 되어있었는데 그 쪽으로 가고 싶었던 사람이 아버지께서 반란군 머리를 잘라주었다고 모함을 했어요. 

우리 아버지께서는 그 당시 제자들뿐만 아니라 머리가 덥수룩하고 지저분한 사람만 보시면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으시고 그냥 다 머리를 잘라주셨대요. 그러니까 그 중에 반란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남들 뭐 해주고 싶은 마음은 제가 아버지를 좀 닮았나 봐요. 

그런데 그때는 6.25 전쟁 중이라 그런 모함을 받으면 빨리 원상회복이 잘 안 되니까 돈만 가지고 우리 외갓집으로 피난을 나오신 거예요. 그런데 옛날에는 이발소도 없고 그러니까 피난 나오신 아버지께서 머리 깎는 바리깡 기계를 항상 호주머니에다 넣고 다니시다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머리 다 잘라주셨대요. 저도 지나가는 행려자들 쫓아다니면서 다 해줬는데 우리 아버지께서는 저보다 더 하지 않으셨나싶어요.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 이발을 해주다 보니까 이발 기구가 닳아서 이발 기구 하나 사가지고 오신다고 영산포에 가셨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고 우리 할아버지는 우리 아버지 찾으러 다니시다가 경찰하고 같이 있었다고 반란군들한테 총살을 당하셨어요. 

우리 가족이 6. 25 때 비극을 겪지 않았더라면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서지 않았을 거예요. 아마도 잘 배우고 똑똑해서 교만이 하느님의 엉덩이를 찔렀을 지도 몰라요. 제 이야기는 뭐냐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만족하자는 이야기에요. 

지금은 주님께서 많이 거둬가셨지만 저는 하느님을 알기 전부터 한번만 보면 못하는 것 없이 다 했고 하느님을 몰랐을 때도 어떤 사람 표정만 봐도 그 사람이 말하기 전에 거의 알아차리고 다 했습니다. 혹시 누가 물이 필요한 것 같으면 ‘아, 저 사람이 물을 먹고 싶구나.’하고 물을 갖다 주니까 어려서부터 한 번도 “너 왜 그래?” “너 뭐하는 거야?”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저는 6.25 때 어머니하고 단 둘이 남아가지고 어머니께서 함께 죽자고 산에 높은 데도 데려가시고 물속에다가 저 먼저 빠트려서 죽는 거 보고 어머니도 죽으시려고 하셨어요. 제가 죽은 다음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야 제가 고아가 안 되잖아요. 그런데 그때 제가 왜 그렇게 살고 싶었던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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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아유, 내가 그때 죽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왜냐면 저는 제 생일 때 한 번도 “어머니, 날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날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느님 저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보질 못했거든요. 왜냐면 제 생이 너무나 고달팠고 살아있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주님과 성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신지 잘 알고 있고, 올바로 살려고 노력하시는 여러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성모님 일을 접지 못하고 있는 것 중의 가장 큰 이유죠. 근데 아까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제가 하려고만 한다면 못할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주님, 성모님 일 하지 않고 미용실만 했다면 빌딩이 몇 개가 세워져있을 것입니다. 

농사 일 중에도 쟁기질만 안했지 맡겨줬다면 그것도 했을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소 끌고 가면서 흙을 고르는 쓰레질도 했거든요. 그래서 저더러 상일꾼이라고 그랬어요. 광주에서 직장생활하면서 한 번씩 집에 가면 장정들이 하는 일을 다 했어요. 그리고 옛날에 품앗이 할 때 남자 하루 하면 여자는 이틀을 했는데 저는 남자하고 똑같이 쳐줬어요. 

어렸을 때도 남자들보다 모내기도 더 잘 심어서 제가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주님과 성모님께서 예비하시고 지혜를 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잘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떤 일을 해도 그랬어요. 그전에 미용을 배울 때도 고대하는 법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이렇게 말면 반질반질 하겠다.’ 생각하고 그렇게 하면 정말 예쁘게 잘 되니까 모두 놀라더라고요. 

예전에 미용 배울 때는 뭘 하나 가르치면 그것을 잘 할 때까지 심사를 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저는 한 번에 전부 심사에 합격이 됐어요. 저는 그렇게 살아왔는데 초등학교 졸업하고 우리 작은 외숙이 자기 아들은 중학교 보내고 저는 공장을 보냈어요. 

저는 공부가 너무너무 하고 싶었습니다. 집안 오빠가 서울로 불러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 올라갔는데 어느 집을 소개해 줬어요. 그 집에는 하숙을 하는 대학생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국회의원이셨던 집주인은 제가 너무 너무 아깝다면서 대학까지 책임지고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중학교를 다음 해나 돼야 갈 수 있으니까 한 대학생한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가르쳐주겠다고 해서 너무 좋았어요.

그동안에 너무 영어가 배우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노트랑 다 샀는데 대학생이 오백 환을 주면서 꽃을 사오라고 해서 꽃을 사고 260원이 남아 그 돈을 줬더니 가지라고 그래요. 제가 안 갖겠다고 그랬더니 딱 뽀뽀를 하는 거예요. 또 제가 손녀처럼 예뻐서 그랬겠지만 국회의원도 저한테 뽀뽀를 해서 바로 어머니한테 내려가자고 그래서 고향으로 내려왔어요.

그런데 우리 동네는 중학교 나온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을 정도로 교육열이 낮았어요. 그래서 제가 학교 못간 애들을 모아 서당에서 중학교 과정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면사무소가 주관해서 선생님과 학생들을 모아 초등학교에서 배우다가 거기서 선생님들하고 돈을 조금씩 내 가지고 두 칸짜리 고등공민학교를 만들었어요. 

거기서 특히 영어 시간은 윤홍선의 시간이라고 그럴 정도로 모든 것을 저 혼자 손들어서 읽고, 해석하고 전부를 거의 다 했어요. 그때 말본 선생님께서 한 번씩 뜻을 물어보시면 배우지 않았는데도 제가 손을 들어 답하면 다 맞는 거예요. 세속에서 보면 정말 영특한 것인데 주님께서 다 해주신 거죠. 

그런데 고등공민학교를 졸업하고 제가 원했던 미용학원을 가서 19살에 수료하고 바로 미용실에 취직을 했는데 머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 주인이 애기를 보라고 그래요 그래서 애기를 업고 머리를 배우려고 가면 안 가르쳐줘요. 옛날에는 미용사 말고 시다(조수)를 많이 썼는데 제게는 시다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집안 일만 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19살 때 애기 업고 밥하고 빨래하고, 미용실 바닥에 머리 자른 것 쓸고 했는데 그 집 주인아저씨가 “윤양은 절대로 미용실에서 썩을 사람이 아니다.”고 하셔요. 아마 하나하나 다 지켜봤던가 봐요. 그러면서 저를 광주검찰청 부장 검사의 비서로 추천하신 거예요. 

그 자리는 대학을 나온 자기 처조카가 가기로 되어있던 자리인데 거기를 제치고 저를 추천했는데 그 검사님이 배우지도 못한 저를 원하셨던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됐으면 제가 이 자리에 서있겠습니까? 아마 하고 싶은 공부도 마음껏 하고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교만이 하느님 엉덩이를 찔렀을 겁니다. 

그런데 그분이 갑자기 서울 대검찰청으로 발령이 나니까 저더러 같이 가자고 그랬어요. 그래서 어머니와 외갓집 식구한테 다 말씀을 드렸더니 깜짝 놀라시며 “어미 혼자 놔두고 어딜 가냐?”고 그래서 그 길을 또 포기했어요. 주인아저씨의 호의는 고마웠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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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생 어디 취직해서 월급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것은 남자들이 저를 조금만 좋아하는 그 눈길만 봐도 그 집에서 나오고 나오고 그래서 돈을 한 푼도 못 번거에요. 

저는 우리 어머니가 원하신다면 째보고 곰보고 그 사람한테 시집가리라 했는데 제가 돈을 못 버니까 어머니께서 집에 들어와 살림이나 배우라고 해서 집에 왔는데 제가 사사로 미용을 하니까 돈이 벌리더라고요. 

남자들이 나타나 저를 좋아하면 한 달도 못돼 그 자리를 미련도 없이 바로바로 뜨다보니까 한 푼도 못 벌었는데 오히려 집에 와서 혼자 다니면서 사사로 하니까 돈이 벌리게 된 거지요. 그래서 그때 번 돈으로 논도 조금 사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4-H 활동을 하면서 율리오씨를 만나게 됐는데 사람들이 저더러 거만하다고 했거든요. 사실 제 마음은 따뜻한데 남자들한테는 항상 거만하게 보였던 거 같아요. 왜냐면 말도 못 붙이게 했어요. 그런데 제가 4-H 활동을 하다가 그만 두니까 율리오씨가 보라색 T셔츠를 입고 저를 찾아온 거예요. 

그때까지는 율리오씨가 멋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보라색티를 입고 나를 찾아 왔는데 ‘아, 멋있다.’고 생각했으나 “윤양, 다시 한 번 4-H 활동을 해보지.” “흥. 딴 데 가서 알아보세요.”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대로 가버렸어요. 그러다가 저기 안 보이는데 가서 어떤가 살짝 봤더니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는 거예요. 

저와 율리오씨 사이에는 에피소드가 아주 많아요. 저를 좋아해가지고 완전히 스토커가 된 사람들이 엄청 많았는데 옛날에 상사병 든다고 해도 저는 잘 몰랐어요. 왜냐면 ‘내가 눈길 한 번도 안줬는데 그 사람하고 무슨 상관이야’ 하고는 나 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중에 저를 좋아했던 약사가 있었는데 정말 너무너무 잘 생겼고, 가정도 서울에서 잘 살았었어요. 

지금도 약사라고 하면 괜찮지만 그때는 약사들이 별로 없어가지고 시골 약국은 병원이나 다름없었어요. 근데 그 약사는 너무 잘나서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그 사람만 보면 뿅가가지고, 몇 여자가 결혼하고 싶어 키를 네 개씩이나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남자는 저를 좋아한 거예요. 제가 받아들이지 않자 “너의 흡혈귀가 되겠다.”고까지 했어요. 왜냐면 어떤 여자든 한 번 보기만 하면 다 자기를 좋아하는데 그걸 다 뿌리치고 집에서 결혼 승낙까지 받아 왔는데도 제가 싫다고 하니까 반 실성한 사람처럼 된 거죠. 

그 사람은 제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자기 부모님한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지만 마음씨가 너무 착해서 결혼하겠습니다.”하고 결혼 승낙을 받았다는 거예요. 저는 “사람이란 아무리 못 배우고 미천하다 할지라도 인격이 있는데 그 인격을 모독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하고는 끝내 거절하니까 그 사람이 마지막에 폐인이 되어버렸어요. 

처음에는 그 사람이 그렇게 된 게 제 탓이라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제가 죽음에까지 이르렀다가 살아났지만 그때도 저는 몰랐어요. 제가 너무 착하니까 하느님께서 저를 죽음에서 살려 주셨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할 때 저도 부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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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불편하더라도 상대방이 화평하기만을 바라며 착하게 살기는 살았지. 그래서 주님께서 죽음에서 살려 주셨나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남자가 폐인이 되어 갈 정도였을 때 저도 그 사람이 퍼트린 엄청난 유언비어들 때문에 너무너무 괴로워 앓아누웠어요. 

안 그래도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딸이라는 말 안 듣기 위해서 우리 어머니도 저를 엄하게 키우셨고 저도 그렇게 살아왔는데 저와 동거를 해서 임신 3개월이 됐다는 엄청난 소문을 다 퍼트렸어요. 저를 많이 좋아하던 사람들은  서로 저를 자기 사람 만들려고 그렇게들 많이 그랬어요. 

그런데 바로 그 직전 농촌지도소 본소 직원들까지 다 나서서 율리오씨 하고 저하고 맺어 주려고 할 때라 ‘아, 그래. 내가 누군가에게는 내 마음을 줘야 되겠구나. 결정을 해버리면 이런 일들이 안 일어나겠지.’ 마음먹고는 율리오씨를 떠보기 위해서 시험을 했어요. 

율리오씨도 아주 소문이 굉장했거든요. 하루 저녁에 세 여자를 한꺼번에 데리고 잤다고 할 정도로요. 왜 그러냐면 율리오씨를 지독하게 좋아한 여자들이 또 많았거든요. 사실은 둘 다 잘난 거 없는데 저나 율리오씨나 둘 다 스토커들이 엄청 많았거든요. 

그런데 율리오씨를 좋아한 여자가 내가 율리오씨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소문을 퍼트린 거예요. 하지만 사실 저는 그런 소문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것보다는 내 마음을 결정하려면 어떤 큰 결심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율리오씨를 떠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고통 받지만 힘이 있는데 그때는 제가 힘이 더 있었거든요. 힘센 남자하고 팔씨름을 해가지고 단 한 번도 져 본적이 없었어요. 당시 저는 지게에 150근씩 지고 다녔고 나락 한 가마니는 들어서 짊어졌거든요. 그래서 율리오씨가 아무리 힘이 세다 할지라도 방어할 자신이 있어 율리오씨를 떠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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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밤늦게 율리오씨한테 연락을 해가지고 “내가 지금 광주로 가야되는데 차가 없으니까 금천까지 나를 좀 데려다 줄 수 있겠느냐?” 그랬더니 자전거로 데려다 주겠대요. 봉황면에서 금천까지는 한 3~40리 정도 되는데 둘이 걷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그렇게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엇을 떠봤겠어요? ‘이 남자가 내 손 한번만이라도 잡든가 이상한 말 한 마디라도 하면 당신은 끝이다.’ 생각하고는 금천까지 걸었는데 손 한 번도 안 잡고, 건설적인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그러나 한 번 가지고는 모르니까 또 한 번은 밤중에 고모집이 있는 다도면까지 데려다 주라고 했어요. 떠보려면 낮보다 밤중에 떠봐야 되잖아요. 

거기도 30리가 넘는데 그때도 건전한 얘기만 했어요. 그래도 3번은 떠봐야지 하고는 밤에 또 20리 정도 되는 데를 데려다 주라고 했어요. 그때도 손 한 번 안 잡고 이상한 소리도 안 해서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 그때부터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되었습니다. 

그 약사는 약도 잘 짓고 무지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우리 어머니께서 밥맛이 없다고 하셔서 밥맛 나는 약을 좀 지어달라고 했더니 하루 분만 잡수셨어도 밥맛이 엄청 좋아지는 능력 가였어요. 그때는 적금 같은 것 잘 모르고 계를 할 때인데 그 약사도 저와 같이 계를 했는데 학교 다닐 때부터 저를 눈여겨보고 있었나 봐요.

다른 여자들은 자기를 보고 다 좋아하는데 저만 그런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까 그것이 마음에 더 들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계도 같이 하고 했는데 부모님한테 허락을 받고 왔다고 막무가내로 나하고 결혼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아니다. 내가 아무리 못 배우고 보잘것없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인격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인격 모독이다.”고 그랬어요. 

딴 사람들은 감지덕지라고 할 텐데 다 나보고 웃긴다고 그랬어요. 또 광주, 목포, 서울에 집이 있는 부자하고 결혼을 하라고 할 때 저는 돈 방석에 앉혀준다고 해도 싫으니까 차라리 나를 팔아먹으라고 그랬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그런 일들은 성모님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가난한 길을 걷게 하신 주님의 계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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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율리오씨가 “선아! 내가 가난하니까 호강은 못시켜줘도 여자 문제로는 절대 속상하지 않게 할게.” 하고 내가 묻지도 않은 말을 하셨는데 얼마가지 않아 많은 여자들이 율리오씨 주위에서 떠나지를 않고 마음 졸이게 했습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율리오씨가 어찌 저를 100% 봉헌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도 하나의 주님의 예비하신 삶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을 보시고 혹시라도 “율리오 회장님이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 절대 하지 마십시오. 왜냐면 마누라를 100% 봉헌할 수 있도록 예비하신 주님의 안배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86년도에 율리오씨하고 처음으로 같이 잘 수 있는 부부침실이 생겼는데 세상에 만연한 불륜과 음란죄를 배상하기 위해서 그날부터 정당한 부부관계를 봉헌했습니다. 율리오씨가 저를 만나 행복하기도 하셨겠지만 때로는 안쓰러운 생각이 듭니다. 1986년이면 율리오씨 한창 때였는데 그때부터 마누라 손 한 번도 제대로 못 잡아봤으니까요. 

공지문 이전에 제가 다락방 쓰고 있을 땐데 협력자들이 서로 시기질투 해가지고 싸우다 전부 오지 않았을 때가 있었어요. 아무도 없으니까 우리 어머니가 살림을 하셨는데 물이 제 침대 머리맡에 있었는데도 고통으로 그걸 가져오지 못해서 물도 한 모금 못 먹고 3일 동안 지냈어요. 

그래서 그 다음에 율리오씨한테 “율리오씨! 제가 3일 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고통 중에 있는데 어떻게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으세요?”고 했더니 “미안해, 당신이 그동안에 나한테 오죽이나 잘 했는가? 그래서 당신 보면 옛날 생각날까봐서 일부러 안 찾은 것인데 당신이 그런 상태인 줄은 몰랐네.” 하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한 이불속에서 자면서 1년간을 봉헌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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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따로 자면 그래도 봉헌하면서 잠을 잘 수 있잖아요. 그런데 한 이불 속에서 자면서 살이라도 닿으면 마누라 생각이 날까봐서 제가 양발까지 다 신고 그렇게 봉헌했는데 율리오씨가 너무너무 힘들어 하셔서 “율리오씨 그렇게 힘들어요?” 하니까 

“당신이 다른 부인들처럼 그렇게 살았더라면 뭐가 힘들겠어? 그런데 그동안 당신이 나한테 얼마나 잘해줬는가? 그런 당신이 살이 조금이라도 닿을까봐서 전전긍긍하면서 밤마다 지새우는데 어찌 내가 힘들지 않겠는가? 이것이야 말로 가장 큰 희생이야.” 그러시더라고요. 

율리오씨가 그동안에 친구들 꼬임에 넘어가 화투도 치고, 월급을 계속 날리기도 했지만 그런 일들이 아니었더라면 그런 희생과 보속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아름답게 봉헌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 이야기 한다고 해서 여러분들에게 봉헌하시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신부님께 고해성사 때 말씀을 드렸어요. 그때는 신부님한테 모든 것을 다 말씀드렸기 때문에 그랬더니 신부님께서 정말 율리오씨가 동의했냐고 물으셨는데 사실은 일방적이었거든요. 그래서 고해성사 보고 율리오씨한테 와서 정말 미안하다고 그랬어요.

그때 대부분의 성직자, 수도자들이 너무나 잘못살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음란죄에 빠져서 낙태를 자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 지향을 두고 봉헌을 했거든요. 정말 성직자들이 잘못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가장 큰 봉헌이 성직자들을 위해서였고, 그 다음이 음란죄와 그런 문란한 생활들이 낙태로 이어져 살인자들이 되는 그런 일들을 조금이라도 보속하기 위해서 율리오씨하고 저하고 지금까지 봉헌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이 봉헌을 하겠다고 했는데 좀 지나서 봉헌을 못하겠다고 그러셔요. 혹시 여러분들 중에서도 봉헌하겠다는 마음이 들더라도 나중에 봉헌 못하겠으면 처음부터 봉헌하지 마세요. 절제는 하실 수 있겠지만 봉헌한다고 주님께 약속하고 봉헌 못하면 더 마음 아픈 일이거든요. 그렇죠?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저도 많은 잘못을 하고 실수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잘못과 실수를 통해서 겸손으로 이끄시기 위해 실수도 허락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할 수 있으나 그러나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잘못이나 실수를 허락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좌절하거나 실망치 말고 우리 오늘부터 새로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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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 더우세요?(아니요) 주님과 성모님께서 얼마나 날을 잘 잡아주셨는지 몰라요. 어제까지 얼마나 더워 폭염 주의보까지 내렸는데 오늘 28도로 내려가 이렇게 시원한 거예요.

지금 비록 어렵고 고통스러운 시련의 시간이 우리에게 임박했습니다마는 그러나 조금만 더 아름답게 봉헌하시고 우리가 주님과 성모님의 성심 안에 온전히 용해되고 침잠되어 하나를 이룬다면 반드시 하느님의 의노의 잔 대신에 축복의 잔이 내려 질 것입니다. 우리 희망을 가집시다. 

예수님과 성모님 말씀을 잠시 묵상하시겠습니다. 1992년 5월 27일 예수님의 사랑의 메시지말씀입니다. 

“특별히 불림 받은 나의 자녀들아! 나는 사랑이다. 너희를 위하여 나는 내 자신을 모두 다 내어놓지 않았느냐. 지금도 내가 너희를 위하여 보이지 않는 피땀과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너희가 알았다면 이제 생활로써 나의 피땀을 닦아다오. 그것이 바로 회개의 삶이다. 

유다라는 대표적인 모욕자도 있었지만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너희 모두가 회개하여 위험한 이 세상에서 내 어머니 마리아의 손을 꼭 붙잡고 나에게로 오너라. 내 항상 너희와 함께 하리라”

2007년 5월 5일 성모님의 사랑의 메시지 말씀입니다 .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아! 오늘도 너희를 특별히 불렀다. 자아를 버리고 이기심을 버려라 내가 너희들의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너희가 나와 내 아들 예수를 따르며 일하다가 터무니없는 말들로 인하여 갖은 비난을 다 받으며 온갖 모욕과 박해를 받는다 할지라도 내 아들 예수와 내가 주는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실천하면서 사랑으로 일치하여 일할 때 설사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조수불급 할지라도 나의 망토로 감싸주어 구해 줄 것이다.

하늘과 땅을 잇는 끈인 나의 손을 놓지 않고 임종을 맞이한다면, 마지막 날 내 곁에서 빛나는 월계관을 쓰고 영원한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 먹으며 하느님의 영광과 알렐루야를 노래하게 될 것이니, 더욱 겸손한 작은 영혼으로서 매 순간 새롭게 시작하여라.

시작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배은망덕한 죄인일지라도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눈물을 흘리며 진정한 회개로써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라며 나를 따를 때, 가없는 내 사랑의 초월성으로 아버지 하느님께 봉헌해 주리니,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어린 아가들처럼 단순하게 맡기기 바란다.” 아멘!

예수님과 성모님의 사랑의 메시지 말씀이 여러분 모두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가슴에 손을 얹으시고 눈을 감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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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서 성령이여 임하소서 성령이여. 주님의 뜨거운 성령의 빛을 하늘에서 내리시어 당신 사랑하는 이 모든 자녀들에게 머무르소서. 당신을 믿고 따르며 의지하는 이 모든 자녀들에게 무한한 축복 내리시어 주님 영광 드러내는 당신의 사랑의 도구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 피정 시작 시간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예수님께서 주관하시고 안배하여 주시고 모든 것 인도하시고 주관하시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무한히 축복하여 주시고, 성모님! 이 모든 자녀들 한 사람 한사람 어머니 망토 안에 안아주시고 품어주시고 쓰다듬어 주시고 이 모든 자녀들 엄마의 젖을 먹고 새롭게 자라나 새롭게 양육 받아 새로운 부활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이 피정에 함께 하셔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당신 도구들이 될 수 있도록 무한히 축복해 주소서. 

두고 온 가족들도 무한히 축복해 주시며 이 모든 자녀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세포하나도 빠짐없이 성령으로 수술하시어 건강 영혼 육신을 가지고 주님 영광과 성모 성심의 승리를 위하여 일 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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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희가 받아왔던 이제까지의 모든 상처 태중에서부터 이제까지 받아왔던 이 모든 상처 주님께 낱낱이 말씀 드리지 않아도 잘 알고 계시나이다. 이 모든 자녀들 단 한영혼도 빠짐없이 오늘 예수님과 성모님 성심 안에 온전히 종속시키셔서 주님 닮은 그리고 성모님 닮은 쌍둥이 동생들로서 이제 새로운 부활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이 피정에 친히 주관하시고 안배하셔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비록 미약하고 보잘 것 없지만 이 좁은 장소에서 드리는 피정 그리고 성모님 동산도 너무나 열악하고 정말 보잘것없지만 주님과 성모님께서 참으로 발현하시고 현존하셔서 저희와 함께 계시니 저희들 무서울 것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나이다. 

주님, 친히 이 모든 자녀들에게 성혈을 이슬처럼 내려주시고 그리고 자비의 물줄기를 내려주시고 향유를 내려주셔서 예수님께서 흘려주신 오상의 성혈과 일곱 상처의 보혈로 또한 성모님께서 흘리신 눈물과 피눈물과 향유와 참젖으로 이 모든 자녀들의 더러워진 추한 때까지도 깨끗이 씻어주시고 닦아주시고 막힌 곳을 뚫어주셔서 새롭게 태어나게 해주시옵소서. 

그래서 더욱더 작은 영혼이 되어 겸손하게 주님과 성모님을 꼭 닮은 쌍둥이 동생들로서 주님 영광 온 세상에 들어내는 당신 참 친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오늘 이 모든 자녀들 온전히 예수님께 드리나이다. 

한 사람 한사람 무한히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만이 가지실 수 있는 능력의 손을 권능의 손을 펼치셔서 이 모든 자녀들 머리에 손 얹어 안수하여 주시고 친히 강복해주시고 예수님의 그 성혈을 오상의 성혈과 일곱 상처의 보혈을 이 모든 자녀들에게 수혈 시키셔서 우리 모두가 새롭게 정화되어 기쁨과 사랑과 평화를 가득 누릴 수 있도록 영혼육신 치유하시어 주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들 되게 하여 주소서.

고통도 중요하지만 지금 할 일이 너무나 많사오니 이 모든 자녀들 한 사람 한사람 필요한 은총을 내려주시고 그리고 아픈 모든 부위 부위를 성령으로 수술하셔서 새롭게 태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육신의 치유도 중요하지만 우리 영혼의 치유가 중요합니다. 

이제까지 받아왔던 모든 상처로 인해서 이웃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성격이 괴팍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불가능이 없으시오니 죽은 나자로를 살리신 그 놀라우신 사랑으로 지금 나주에 발현하셔서 현존하시는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그 놀라우신 사랑으로 이 모든 자녀들 새롭게 탄생할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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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고 온 가족들까지도 똑같은 은총을 내려주셔서 그들까지도 축복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곳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한 당신의 자녀들까지도 무한히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께 저희들 온전히 맡겨 드리나이다. 친히 한 사람 한 사람 가슴에 손 얹어 안수하여 주시고 우리 심장 이제까지 받은 모든 상처들로 인해서 많은 아픔을 겪어왔는데 그것이 바로 심장병으로 유발될 수 있었나이다. 우리의 모든 심장병을 치유하여 주시고 울화병을 치유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주님과 성모님을 받아드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친히 임하셔서 사랑의 불을 놓아주시고 사랑의 기적을 행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는 저희의 슬픈 마음도 잘 아십니다. 괴로운 마음도 잘 알고 계시나이다. 우리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도 잘 알고 계시나이다. 우리의 아픔도 잘 알고 계시고 우리의 고뇌와 갈등들도 잘 알고 계시나이다. 참으로 임하셔서 각 사람에게 필요한 은총을 내려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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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죄인의 슬픔들을 모두 다 아시는 주님
지난날의 아픈 상처 성혈로써 씻어주소서
방황에 헤매였던 이 죄인을 안아주소서
의지할 곳 오직 주님 당신 밖에 없나이다

괴로움에 헤매이며 방황했던 이 죄인을
예수님과 성모님이 나주로 불러 주셨다오
성모님 사랑으로 예수님께 다가가서
회개로써 눈물흘리며 치유받기 원합니다.

외로워요 슬퍼요 투정하던 이 죄인을
따스하온 당신의 품 오늘도 찾나이다
주님과 성모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할래요
오로지 당신만이 나의 안식처 이나이다

죄인이면서 죄를 지어서 죄인인줄도 몰랐었네
그러나 이제 내 탓으로 받아들이는 영성안에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받는 아들딸 될래요
영웅적인 사랑으로 부활의 삶 살아갈래요

무거운 내죄 모든 상처 이제 다 치유되었네
주님 성혈 엄마 피눈물 나를 구하여 주셨네
예수님 성모님께 제 한 생애를 드립니다
치유받은 영혼 육신 주 대전에 바치렵니다
주 대전에 바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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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부족한 이 죄인의 기도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을 통하여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모두가 새롭게 부활하기를 바라며 간절히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사랑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은총 많이 받으십시오. 남은 시간들 일치 안에서 더욱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더욱 가슴 안에 가득 안고 예수님 성모님 닮은 쌍둥이 동생들로서 새로 태어납시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새로 태어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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