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4. 가 예언자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봉사자가 된 이의 고백
가 예언자 K자매의 검은 손길은, 그가 모든 나주 성모님 집 봉사자들을 다 빼돌린 뒤에도 계속되었다. 나주 성모님을 통해 큰 은총 받은 사람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주력한 것이다. 심지어 성모님 집에 가지 못하도록 험한 말까지 해가며 가로막았다고 한다. 그들은 나주 본당은 물론, 부산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나를 모함했다.
그들은 성모님 집 첫 토요일 기도회에 첩자를 보내 동향을 파악한 후, 순례자들에게 접근했는데 특히 은총 증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는 것이다. 나주 성모님 집에 순례 다니며 큰 은총을 받았어도 K에게 넘어가서 한참을 그들을 위해 헌신하다, 성모님께서 구해주시어 빠져나와 나주 성모님 집 봉사자가 된 경우도 있었다. 바로 오 빅토리나 자매 부부의 일이다.
그들 부부가 겪은 일들을 들으며 나는 큰 충격에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다. K와 그 무리는 나주 성모님을 떠났을 뿐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나주 성모님을 욕되게 하며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빅토리나 부부는 원래는 불교 신자였다. 첫아기를 낳을 때가 된 빅토리나 자매는 택시를 불러 병원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시골 종갓집이던 시댁에서는 “어디서 택시를 부르냐! 집에서 낳아라!” 하며 택시를 돌려보내 버렸다.
그리고는 아기 낳고 바로 그다음 날부터 놉짓기(모를 심는 사람들에게 밥과 새참을 해 주는 일)를 하라고 했다. 일꾼들을 잔뜩 불러 같이 모를 심는데, 오전 샛거리, 점심밥, 오후 샛거리, 저녁밥까지 다 하다 보니 아기를 돌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첫아들은 태어난 다음 날부터 눈이 퉁퉁 부어 뜨지도 못하고 누런 물만 줄줄 흘렸다는 것이다.
다행히 2주 만에 눈을 뜨긴 했지만, 그 후로도 계속 울면서 깜짝깜짝 놀라며 숨이 넘어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4개월쯤부터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에 물만 먹여도 토했다. 하루에 10차례까지 경기를 하며 2년을 보냈고, 잘한다는 개인병원을 전전하다가 대학병원까지 다 찾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기가 그렇게 돼버렸는데 시댁에서는 경제적 지원도 없으니 시부모가 용서되지 않아 마음도 황폐해지고, 본인도 몸이 좋지 않아 많이 힘들었다. 그녀는 중2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부터 심한 위장병과 십이지장궤양, 간장병 등으로 물만 먹어도 토하고, 만성 신장염으로 신장이식 수술 직전까지 갔었기에 아이와 함께 죽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한다.
그 사이 아이를 하나 더 낳았는데, 둘째인 딸은 의욕상실로 인한 저능아였다. 남편의 세 번의 사업 실패까지 겹쳐 시댁에 얹혀살았는데 시부모님의 온갖 냉대와 학대 속에 정신적, 경제적 갈등으로 시댁과는 원수같이 되어버리고, 육신조차 무너져가 삶을 포기하고자 했다고 한다. 하느님을 모르니 아이를 낫게 하고 남편을 위한답시고 무당까지 찾아가 6년간을 점 보고 푸닥거리를 하며 큰돈을 낭비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낙심했고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 약을 먹고 죽으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절과 무당을 끊고, 몇 년 전 교리를 받았던 기억이 나 주님께 용서를 청하며 “이 죄인 이제 죽어도 좋으니 당신을 알고 죽게 해 주세요.” 하고 간청했다고 한다. 성당에 나가 기도했지만 첫째 아이는 심한 고열과 오한에 시달리며 거의 먹지도 못하고, 날마다 병원을 다녀도 시름시름 앓으며 말라갔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그녀가 성당에 다닌 지 한 달 만에 무면허로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냈고, 빚더미에 올라 돈의 독촉은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첫째 아이는 병원과 약국을 전전해도 전혀 차도가 없이 탈진 상태가 되어 2개월 정도 누워만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옆방의 천주교 신자가 성모님 집에 가서 기도하자고 한 것이다.
아들의 치유를 청하며 성모님 집에 처음 순례 온 날, 빅토리나는 걷지 못하던 할머니가 나주 성모님 집에 도착하자마자 치유되어 지팡이를 던져버리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도 치유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그날 3일간 고통 중이던 내가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나가 순례자들을 만나고 안집으로 들어가던 중이었다.
6-7살 된 아이를 업고 있는 빅토리나 자매가 눈에 띄었다. 빅토리나가 뒤에 있다가 그냥 돌아가려고 하기에, “자매님,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물으니 “아기가 아파서 왔어요.” 했다. 나는 “그러면 여기다(구 경당 성모님집 바깥 성모님상 앞에) 앉혀놓으세요.” 하고 성수를 뿌리며 빅토리나의 아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다.
그런데 그 즉시, 어느 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하고 걷지 못하던 아이가 걷게 되고 건강해져 태어나면서부터 앓았던 고질병을 완전히 치유 받은 것이다. 그 후로 빅토리나는 첫 토요일 기도회에 순례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을 처음으로 집필하게 되었을 때, 그 글들을 읽고 통회하게 되었으며, 교만을 뉘우치고 낙태죄까지도 회개하며 주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며 새롭게 태어났다. 또한 시댁과의 갈등까지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받아들이며 시부모와 가족들 모두를 용서하게 된 것이다.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는 빅토리나의 가정에 은총을 베푸시어 파산 직전의 가정이 회복되며 여러 큰 은총을 받아 빅토리나 먼저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모님 집에 순례 온 그녀에게 어떤 사람이 접근해왔다고 한다. 그 사람이 인도하여 나주 성모님 집의 열심한 협력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K자매를 만나게 된 것이다.
704. 가 예언자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봉사자가 된 이의 고백
가 예언자 K자매의 검은 손길은, 그가 모든 나주 성모님 집 봉사자들을 다 빼돌린 뒤에도 계속되었다. 나주 성모님을 통해 큰 은총 받은 사람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주력한 것이다. 심지어 성모님 집에 가지 못하도록 험한 말까지 해가며 가로막았다고 한다. 그들은 나주 본당은 물론, 부산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나를 모함했다.
그들은 성모님 집 첫 토요일 기도회에 첩자를 보내 동향을 파악한 후, 순례자들에게 접근했는데 특히 은총 증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는 것이다. 나주 성모님 집에 순례 다니며 큰 은총을 받았어도 K에게 넘어가서 한참을 그들을 위해 헌신하다, 성모님께서 구해주시어 빠져나와 나주 성모님 집 봉사자가 된 경우도 있었다. 바로 오 빅토리나 자매 부부의 일이다.
그들 부부가 겪은 일들을 들으며 나는 큰 충격에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다. K와 그 무리는 나주 성모님을 떠났을 뿐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나주 성모님을 욕되게 하며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빅토리나 부부는 원래는 불교 신자였다. 첫아기를 낳을 때가 된 빅토리나 자매는 택시를 불러 병원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시골 종갓집이던 시댁에서는 “어디서 택시를 부르냐! 집에서 낳아라!” 하며 택시를 돌려보내 버렸다.
그리고는 아기 낳고 바로 그다음 날부터 놉짓기(모를 심는 사람들에게 밥과 새참을 해 주는 일)를 하라고 했다. 일꾼들을 잔뜩 불러 같이 모를 심는데, 오전 샛거리, 점심밥, 오후 샛거리, 저녁밥까지 다 하다 보니 아기를 돌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첫아들은 태어난 다음 날부터 눈이 퉁퉁 부어 뜨지도 못하고 누런 물만 줄줄 흘렸다는 것이다.
다행히 2주 만에 눈을 뜨긴 했지만, 그 후로도 계속 울면서 깜짝깜짝 놀라며 숨이 넘어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4개월쯤부터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에 물만 먹여도 토했다. 하루에 10차례까지 경기를 하며 2년을 보냈고, 잘한다는 개인병원을 전전하다가 대학병원까지 다 찾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기가 그렇게 돼버렸는데 시댁에서는 경제적 지원도 없으니 시부모가 용서되지 않아 마음도 황폐해지고, 본인도 몸이 좋지 않아 많이 힘들었다. 그녀는 중2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부터 심한 위장병과 십이지장궤양, 간장병 등으로 물만 먹어도 토하고, 만성 신장염으로 신장이식 수술 직전까지 갔었기에 아이와 함께 죽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한다.
그 사이 아이를 하나 더 낳았는데, 둘째인 딸은 의욕상실로 인한 저능아였다. 남편의 세 번의 사업 실패까지 겹쳐 시댁에 얹혀살았는데 시부모님의 온갖 냉대와 학대 속에 정신적, 경제적 갈등으로 시댁과는 원수같이 되어버리고, 육신조차 무너져가 삶을 포기하고자 했다고 한다. 하느님을 모르니 아이를 낫게 하고 남편을 위한답시고 무당까지 찾아가 6년간을 점 보고 푸닥거리를 하며 큰돈을 낭비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낙심했고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 약을 먹고 죽으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절과 무당을 끊고, 몇 년 전 교리를 받았던 기억이 나 주님께 용서를 청하며 “이 죄인 이제 죽어도 좋으니 당신을 알고 죽게 해 주세요.” 하고 간청했다고 한다. 성당에 나가 기도했지만 첫째 아이는 심한 고열과 오한에 시달리며 거의 먹지도 못하고, 날마다 병원을 다녀도 시름시름 앓으며 말라갔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그녀가 성당에 다닌 지 한 달 만에 무면허로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냈고, 빚더미에 올라 돈의 독촉은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첫째 아이는 병원과 약국을 전전해도 전혀 차도가 없이 탈진 상태가 되어 2개월 정도 누워만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옆방의 천주교 신자가 성모님 집에 가서 기도하자고 한 것이다.
아들의 치유를 청하며 성모님 집에 처음 순례 온 날, 빅토리나는 걷지 못하던 할머니가 나주 성모님 집에 도착하자마자 치유되어 지팡이를 던져버리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도 치유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그날 3일간 고통 중이던 내가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나가 순례자들을 만나고 안집으로 들어가던 중이었다.
6-7살 된 아이를 업고 있는 빅토리나 자매가 눈에 띄었다. 빅토리나가 뒤에 있다가 그냥 돌아가려고 하기에, “자매님,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물으니 “아기가 아파서 왔어요.” 했다. 나는 “그러면 여기다(구 경당 성모님집 바깥 성모님상 앞에) 앉혀놓으세요.” 하고 성수를 뿌리며 빅토리나의 아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다.
그런데 그 즉시, 어느 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하고 걷지 못하던 아이가 걷게 되고 건강해져 태어나면서부터 앓았던 고질병을 완전히 치유 받은 것이다. 그 후로 빅토리나는 첫 토요일 기도회에 순례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을 처음으로 집필하게 되었을 때, 그 글들을 읽고 통회하게 되었으며, 교만을 뉘우치고 낙태죄까지도 회개하며 주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며 새롭게 태어났다. 또한 시댁과의 갈등까지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받아들이며 시부모와 가족들 모두를 용서하게 된 것이다.
주님과 나주 성모님께서는 빅토리나의 가정에 은총을 베푸시어 파산 직전의 가정이 회복되며 여러 큰 은총을 받아 빅토리나 먼저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모님 집에 순례 온 그녀에게 어떤 사람이 접근해왔다고 한다. 그 사람이 인도하여 나주 성모님 집의 열심한 협력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K자매를 만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