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2. 급하다며 “산부인과에 빨리 가보라!”고 한 내과 과장님은 어디에?
부산 성 요셉 병원에서 퇴원한 후, 마지막으로 메리놀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나는 나주로 돌아왔다. 부산으로 치료받으러 갈 때보다 더 안 좋아진 내 모습을 보고 어머니와 주위의 여러분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고통이 계속되니 회복이 늦어지는구나.” 하셨지만, “제가 받는 고통을 통해 주님과 성모님께 위로가 되고, 죄인들이 회개만 할 수 있다면 너무너무 행복한 고통이에요.”하고 말했다.
내가 아름답게 봉헌하니 가족들도 기쁘게 봉헌해주었다. 나주로 돌아온 나는, 우선 나주 병원 내과 과장님께 감사 인사드리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목과 귀와 코를 진료받으러 갔을 때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며 당장에 산부인과에 가보라고 하신 분이었기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나의 극심했던 자궁과 장 유착 상태를 생각하면 너무너무 고마운 분이셨다. 그분이 별다른 관심 없이 귀와 코와 목만을 봐주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배 속이 걸레가 되었다고까지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던 내가 그 위기의 순간에 치료받을 수 있게 도와주신 내과 과장님을 찾아 나주병원에 갔다.
그런데 그 내과 과장님은 안 계시고 다른 분이 내과 과장님으로 계셨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전에 계시던 과장님은 안 계시네요.” 하자 간호사가 “전에 계시던 과장님이요?” 하여 “한 3개월 전쯤이요.” 했다. “예? 지금 계신 과장님은 그 전부터 계셨어요. 뭔가 잘못 알고 오셨나 봐요.” “분명히 다른 과장님한테 두 번이나 봤는데요.”
“예?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과장님은 바뀌지 않았어요.” 간호사는 금시초문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해했다. 나는 남자들 얼굴을 잘 보지 않았지만 과장님은 두 번이나 뵈었기에 인상에 남았었다. ‘어? 이상하다. 분명히 잘생기시고 멋있고 자상하신 분이셨는데?...’ 하고 병원을 다 돌아봤지만 결국 병원 어디에서도 그분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돌아왔다. 내가 내과 과장님의 말에 따라 우리나라 1인자 여수 산부인과에서 자궁과 장 유착 진단을 받을 당시, 나는 ‘나주 병원 내과 과장님이 내 자궁에 문제가 있는지 대체 어떻게 아셨을까?’ 하거나 궁금해하지 않았었다.
‘어떻게 귀와 목, 코를 진료받으러 갔는데, 대번에 배를 진료하고 산부인과가 급하다고 당장 가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 당시의 나는 그저 주님의 뜻으로 생각하며 단순한 마음으로 그분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부산에서 돌아온 후 나주병원을 찾아가 내과 과장님을 만나려다 못 만났을 때 ‘혹시 예수님께서?’하고 스치듯 생각했다가 지나갔다.
그런데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을 쓰면서야 예수님께서 친히 의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말씀해 주셨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한 번은 낙태 보속고통 전, 후로 체중을 비교해 본 적이 있었는데, 54kg이던 몸무게가 8kg이 늘어 62kg가 나가는 것이었다. 실제로 임신하여 출산이 임박한 경우 산모의 체중이 약 7~10kg이 더 나간다고 한다.
임신하면 아이가 자라는 10개월 동안 배가 서서히 불러오는데, 내가 수없이 받아온 낙태보속고통은 순식간에 배가 만삭처럼 불러오기에 자궁이 온 장기들을 짓눌러 버린다. 그러니 자궁과 장이 단단히 유착이 된 것이었다.
모르고 넘어갔다면 장폐색으로 진행되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 낫게 해주실 수도 있었지만, 내과 과장의 모습으로 오시어 큰 위기에 처한 나를 구해주신 것임이 확실했다. 그리고 부산으로 나를 보내시어 당신의 손길이 필요한 영혼들에게 부족한 나를 도구 삼아 사랑의 기적을 행하신 것이다.
그뿐 아니라, 내가 자궁을 제거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다. 자궁을 제거함으로 인해 나는 그 후 여러 모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놀라운 주님의 섭리를 생각할 때, 어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감사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렸다.
‘이 죄인을 단 한 순간도 떠나지 않고 돌보아 주시는 주님과 성모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이 몸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통으로 점철된 삶이라 할지라도 순교하는 그 마음 안에서 누추하고 초라하지만 당신께 온전히 맡겨드리나이다. 이 몸 죽어도 당신의 것이옵고 살아도 당신의 것이오니 오로지 당신 뜻대로 사용하시옵소서. 아멘!’
702. 급하다며 “산부인과에 빨리 가보라!”고 한 내과 과장님은 어디에?
부산 성 요셉 병원에서 퇴원한 후, 마지막으로 메리놀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나는 나주로 돌아왔다. 부산으로 치료받으러 갈 때보다 더 안 좋아진 내 모습을 보고 어머니와 주위의 여러분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고통이 계속되니 회복이 늦어지는구나.” 하셨지만, “제가 받는 고통을 통해 주님과 성모님께 위로가 되고, 죄인들이 회개만 할 수 있다면 너무너무 행복한 고통이에요.”하고 말했다.
내가 아름답게 봉헌하니 가족들도 기쁘게 봉헌해주었다. 나주로 돌아온 나는, 우선 나주 병원 내과 과장님께 감사 인사드리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목과 귀와 코를 진료받으러 갔을 때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며 당장에 산부인과에 가보라고 하신 분이었기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나의 극심했던 자궁과 장 유착 상태를 생각하면 너무너무 고마운 분이셨다. 그분이 별다른 관심 없이 귀와 코와 목만을 봐주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배 속이 걸레가 되었다고까지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던 내가 그 위기의 순간에 치료받을 수 있게 도와주신 내과 과장님을 찾아 나주병원에 갔다.
그런데 그 내과 과장님은 안 계시고 다른 분이 내과 과장님으로 계셨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전에 계시던 과장님은 안 계시네요.” 하자 간호사가 “전에 계시던 과장님이요?” 하여 “한 3개월 전쯤이요.” 했다. “예? 지금 계신 과장님은 그 전부터 계셨어요. 뭔가 잘못 알고 오셨나 봐요.” “분명히 다른 과장님한테 두 번이나 봤는데요.”
“예?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과장님은 바뀌지 않았어요.” 간호사는 금시초문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해했다. 나는 남자들 얼굴을 잘 보지 않았지만 과장님은 두 번이나 뵈었기에 인상에 남았었다. ‘어? 이상하다. 분명히 잘생기시고 멋있고 자상하신 분이셨는데?...’ 하고 병원을 다 돌아봤지만 결국 병원 어디에서도 그분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돌아왔다. 내가 내과 과장님의 말에 따라 우리나라 1인자 여수 산부인과에서 자궁과 장 유착 진단을 받을 당시, 나는 ‘나주 병원 내과 과장님이 내 자궁에 문제가 있는지 대체 어떻게 아셨을까?’ 하거나 궁금해하지 않았었다.
‘어떻게 귀와 목, 코를 진료받으러 갔는데, 대번에 배를 진료하고 산부인과가 급하다고 당장 가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 당시의 나는 그저 주님의 뜻으로 생각하며 단순한 마음으로 그분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부산에서 돌아온 후 나주병원을 찾아가 내과 과장님을 만나려다 못 만났을 때 ‘혹시 예수님께서?’하고 스치듯 생각했다가 지나갔다.
그런데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을 쓰면서야 예수님께서 친히 의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말씀해 주셨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한 번은 낙태 보속고통 전, 후로 체중을 비교해 본 적이 있었는데, 54kg이던 몸무게가 8kg이 늘어 62kg가 나가는 것이었다. 실제로 임신하여 출산이 임박한 경우 산모의 체중이 약 7~10kg이 더 나간다고 한다.
임신하면 아이가 자라는 10개월 동안 배가 서서히 불러오는데, 내가 수없이 받아온 낙태보속고통은 순식간에 배가 만삭처럼 불러오기에 자궁이 온 장기들을 짓눌러 버린다. 그러니 자궁과 장이 단단히 유착이 된 것이었다.
모르고 넘어갔다면 장폐색으로 진행되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 낫게 해주실 수도 있었지만, 내과 과장의 모습으로 오시어 큰 위기에 처한 나를 구해주신 것임이 확실했다. 그리고 부산으로 나를 보내시어 당신의 손길이 필요한 영혼들에게 부족한 나를 도구 삼아 사랑의 기적을 행하신 것이다.
그뿐 아니라, 내가 자궁을 제거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다. 자궁을 제거함으로 인해 나는 그 후 여러 모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놀라운 주님의 섭리를 생각할 때, 어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감사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렸다.
‘이 죄인을 단 한 순간도 떠나지 않고 돌보아 주시는 주님과 성모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이 몸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통으로 점철된 삶이라 할지라도 순교하는 그 마음 안에서 누추하고 초라하지만 당신께 온전히 맡겨드리나이다. 이 몸 죽어도 당신의 것이옵고 살아도 당신의 것이오니 오로지 당신 뜻대로 사용하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