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요. 성모님 수강 아파트 계실 때부터 다녔었는데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다녔어요. 그냥 즐겁기만 해서 다녔는데 오로지 ‘내 고통이 어떻게 덜어질까?’ 그것만 생각하고 다녔어요. 그리고 바쁘니까 안 다녔는데 어느 날 아주 열심한 분이 저 성모님 사진을 갖고 와서 “나주에서 성모님이 이렇게 피눈물 흘리고 우신대요.” 그래 제가 뭐라고 그랬게요? 그럴 수가 어딨냐고 거짓말이라고 제 입으로 아주 당당하게 얘기를 했잖아요.
그러고서 이제 또 세월이 지났어요. 그런데 어느 날 또 갖고 오셔서 성모님 피눈물 흘린 지 10주년 된다고 가자고 그러는데 그때는 눈이 번쩍 뜨여지더라고요. 그러니까는 남편이 옆에 있다가 “그러면 갔다 와.” 그러더라고요.
그날이 언제였냐면 1996년 10월 19일 날, 그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서 못 할 것 같아. 나주를 와서 경당에 들어섰는데 제가 한 발 딱 이렇게 안에다 들여놨어요. 그런데 성모님 제대에서 우렁차게 “네가 터진 입으로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일 먼저 뭐가 생각나냐면 제가 나주 성모님 피눈물 거짓말이라고 했던 그 말! 그게 제일 먼저 생각나고 제가 레지오 한다고 사람들 만나서 남의 얘기하고 그게 다 생각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제 일생이 활동사진같이 지나가는 거예요. 그때 제가 ‘예수님, 제가 잘못했어요. 이제부터 아무 말 안 하고 그냥 입 다물겠습니다.’ 그랬어요. 나 같은 죄인이 세상에 없는 거예요. 성모님이 울고 계시고, 율리아님이 고통받는 건 절대적으로 나 때문이에요. 나 때문에 그렇게 율리아님이 고통을 당하시고 성모님이 울고 계신 거예요.
그때부터 말씀드릴 수가 없었어요. 왜냐면 내 일거일동을 다 알고 계시는데 어떻게 무슨 말을 해요. 그래서 밤새 울다 나주 성당으로 가서 미사를 드리는데 외국 사람이 많이 오니까 한국 사람은 뒤에 서라는 거예요. 저는 어디를 가든지 뒤에는 안 있어요. 왜냐하면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앞으로 가요. 그런데 앞으로 갔는데 우느라고 미사를 어떻게 드렸는지 몰라요.
그런데 율리아 자매님이 성체를 모시는데 피가 되고 살로 변화된 거예요. 그 광경을 보니까 절대적으로 제가 성체를 못 모시는 거예요. 그날은 나 같은 죄인이 도저히 성체를 모실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성체를 못 모셨어요. 그리고 체육관으로 갔는데 억수같이 비가 온 거예요. 그런데 들어오는 사람들은 비를 안 맞고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아, 이상하다. 왜 그러지?’ 밖에 나가 보니까 비가 안 오는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율리아 자매님이 나오셔서 아까 자비의 물줄기가 억수같이 쏟아졌다는 거예요. 그런데 율리아 자매님이 나오셔서 아까 자비의 물줄기가 억수같이 쏟아졌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아침에 집에 갔잖아요. 버스에 내려서 택시를 탔는데 “나를 왜 불렀느냐? 너를 괜히 부르지 않았다.”는 거예요. 주님이 너는 모든 사람한테 전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는데 이게 어마어마한 은총인 거예요.
우리 성당이 8,000명인데 ‘어떻게 나 같은 죄인을 이렇게 부르셨을까?’ 너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만나는 사람한테 메시지고 뭐고 주는 거예요. 제일 먼저 택시 기사를 줬어요. “우리나라 나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이거 꼭 가세요.” 그러면 그냥 받더라고요.
그때부터 집집마다 다니는 거예요. 성모님 사진 갖고 집집마다 다니는데 그때는 잘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우리 구역 사람 다 여기 한 번씩 왔다 갔어요. 그런데 나는 우리 가족과 사돈의 팔촌까지 구해야 되겠다는 그런 의지가 막 생기더라고요.
그러는데 (마리아의) 구원방주라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노아의 방주하고 탁 연결이 되는 거예요. 노아의 방주도 다 탔으면 다 살 수 있었다 이거예요. 그리고 우리 (마리아의) 구원의 방주도 타고 성모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은 구원받잖아요. 또 소돔과 고모라가 딱 연결이 되는 거예요, 저한테는. 아브라함이 하느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롯도 구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열심히 하면 우리 가족들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구함을 받게 해 줄 수 있겠구나.’
그런데 그때부터 나주 올 적마다 제가 밤새 물을 먹는 거예요. 밤새 물을 먹고 화장실 가는 거예요. 왜 그런가 그랬더니 어느 순간에 제 만성위염을 기적수로 치유해 주셨어요.
제가 1년에 한 번씩 꼭 내시경을 하는데 어? 아프지도 않고 병원도 안 가는 거예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속 안 아픕니다. 완전히 기적수로 치유를 해 주셨어요.
그리고 그전에 젊었을 때는 제가 여기 왔다 가면은 그대로 한 마디도 안 빼놓고 남편한테 전합니다. 여기 왔다 가면 남편하고 하루 종일 피정이에요. 그러면 남편이 얼마나 잘 받아들이는지 제가 완전히 변화되니까 남편이 완전히 180도로 변화하는 거예요.
남편이 나주 성모님을 그렇게 잘 받아들이고 차에 매일 테이프도 틀고 다니더라고요. 그런데 율리아 자매님이 서강 대학에 오셨는데 제대에서 말씀하실 때 우리 남편 하는 말이 빛이 쫙 자기한테로 왔다는 거예요. 또 남편이 나주를 몇 번 오셨어요. 율리아 자매님 만남의 시간에 율리아 자매님이 남편 가슴을 딱 이렇게 만졌대요. 남편 가슴에 은행알만큼 이렇게 동그랗게 있었는데 거기 항상 아프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병원에 가야 되겠다.’ 하고는 못 갔는데 그때 그 혹도 없어지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가슴 아프다고 안 합니다. 그때 그걸 잊어버릴 수가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은총받고 변화되니까 상대방이 그렇게 변화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공지문이 났는데
누가 이제부터 첫 토(마다) 안 와도 된다는데 저 제대에서 성모님은 “얘야 그게 아니다. 그게 아니다.”고 막 손짓하고 그렇게 울고 계신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거 하나도 안 보이나 봐요. 그래서 그때 제가 성모님한테 약속을 드렸어요. “성모님,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저는 성모님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 첫 토요일 날 한 번도 안 빠지고 오겠습니다. 올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때 그것만 봉헌하고 갔어요.
1996년 10월 19일부터 지금까지 첫 토요일은 한 번도 안 빠졌습니다. 성모님의 은총 아니면 올 수 있겠어요? 난 절대 못 온다고 생각해요. 또 남편도 절대적으로 반대 안 해요. 아주 기분 좋게 갔다 오라고 그래요. 지금까지도 남편이 너무너무 행복해해요. 지금 80이 넘었는데 자기가 제일 행복하대요. 당신 때문에 천주교를 알았고, 왜냐하면 남편은 목사 되려고 했던 사람인데. 저는 천주교인이니까 나랑 결혼하겠다고 남편이 천주교로 와서 결혼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시집은 다 개신교예요. 어느 날 시어머니가 절 불러서 “우리 집사람이 됐으니까 너는 이제 개신교로 와라.” “저 사람하고 이혼을 할망정 저는 내 신앙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랬어요. 그랬는데 우리 남편이 천주교로 왔더라고요.
그리고 남편이 오로지 나주 물만 먹어요. 다른 물은 절대 안 먹습니다. 자기가 80 중반인데 지금까지 건강하고 일을 하는 것은 이 물로 나주 성모님한테 건강을 받았다 이거예요. 남편이 한 달에 꼭 이 물을 두 말 먹어요. 가게에서 한 말, 집에서 한 말. 그런데 한 말 더 가져가면 또 딸내미도 벌렁 가져가. 그러니까 우리 식구는 아주 나주 물이면 서로가 가져가려고 그래요.
언제 우리 손자를 데리고 왔는데 걔가 4학년이고 걔 동생이 5살이었어요. 그런데 동생이 저기 앉아 있다가 율리아 자매님이 가운데로 나오니까 얼른 뛰어나오더라고. 그러니까 율리아 자매님이 탁 이렇게 만져줬잖아요. 그랬는데 내가 여기서 뭐 하고서 저쪽 뒤에 가니까 우리 4학년짜리 손자가 고개를 이렇게 하고요. 아주 고개를 꼼짝 못 하는 거예요. “너 왜 그러냐?” 그러니까 “할머니, 나 고개가 움직이지 않아요.”
너무 놀라서 큰일났어. 외손자를 데리고 와서 만약에 잘못되면 어떡해. 그런데 우리 그 5살 짜리가 율리아 자매님 손을 만졌잖아요. (그 손으로) 고개를 탁 “오빠! 왜 그래?” 그랬더니 고개를 번쩍 드는 거예요. 어머, 나는 그때 너무 놀란 것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또 작년 피눈물 흘린 기념일에 우리 대녀를 데리고 왔어요. 걔가 자궁암 수술을 했는데 너무 빼빼 말랐어. 그런데 땀이 몸에서 하나도 안 난대요. 그러는데 여기 왔다 가고 땀이 난대요. 그래서 자기 남편 보고 “여보, 여보, 나 살려나 봐. 땀 나.” 그랬대요.
그것뿐 아니라 성모님 수강 아파트 계실 때 우리 루시아 신랑이 폐병을 앓고 딸 둘도 폐병을 앓고. 그때는 폐병이 많았어요. 그런데 내가 “루시아, 나주 가면 아저씨가 나을 텐데...” 그랬대요. 그랬는데 여기 한 번 왔다 가고 완전히 치유됐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을 어떻게 만졌더니 완전히 살아계신 성모님이었대요. 그래서 지금도 지속적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주 다니니까 사람들이 신부님한테 가서 일렀대요. 그랬더니 그 신부님이 “그 사람 생활을 어떻게 하더냐?” 물어보더라는 거예요. “그 사람 생활을 열심히 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집에서 나주 기도도 하고 그래요.” 그랬더니 “그러면 가만 놔둬라.” 그러대요.
또 다른 신부님이 오셨는데 어느 날 성당을 갔더니 “나주를 이제 다니지 말래.” “나주를 다니지 말아? 누구 마음대로 다니지 말아? 나는 절대적으로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나는 나주 간다! 나는 신부님이 아니라 주교님이 불러도 난 가서 할 얘기가 있다. 그런 소리 하지도 마라!” 그랬더니 뭐라 하는 줄 알아요? 형님 마음에서 나주 성모님을 빼버리라는 거예요.
어떻게 빼버리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라 그랬어요. 나한테는 절대적으로 나주 가지 마라 그딴 말 하지 말라고. 나는 내 머리에 칼이 들어와도 가니까 그런 소리 하지도 말라고. 그런데 나주 성모님한테 이렇게 잘못 말씀들을 하더니 지금 아파. 그러니깐요. 우리가 나주 성모님을 함부로 말하면은 정말 큰일 나요. 큰일 나요. 제가 느껴보아서요. 정말 나주 성모님은 별사람이 별소리를 해도 절대적이니까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저는 안 흔들려요.
지금까지 내가 다녔다는 것은 율리아 자매님의 기도 덕분, 그리고 성모님의 은총인 거예요. 그래서 제가 미사 갈 때는 나주 성모님 징표 20주년이라는 책 있잖아요. 그걸 꼭 가방에 갖고 다녀요. 왜냐면 만약에 신부님이 뭐라고 한다. 난 그 책만 내놓을 거예요. 저희 남편이 “우리 애들도 다 잘 되고, 우리가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분명히 난 나주 성모님 은총으로 안다.”
그러니까 너무너무 감사하잖아요. 그래서 너무 감사할 일밖에 없어요. 너무너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율리아님 사랑합니다. 이 모든 영광 주님 성모님께 봉헌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나는 내 머리에 칼이 들어와도 가니까 그런 소리 하지도 말라고.
그런데 나주 성모님한테 이렇게 잘못 말씀들을 하더니 지금 아파.
그러니깐요. 우리가 나주 성모님을 함부로 말하면은 정말 큰일
나요큰일 나요. 제가 느껴보아서요. 정말 나주 성모님은 별사람이
별소리를 해도 절대적이니까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저는 안 흔들려요
아멘!!!아멘!!!아멘!!! 은총증언 감사드리며 받으신 은총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1996년 10월 19일부터 지금까지 첫 토요일은 한 번도 안 빠졌습니다.
성모님의 은총 아니면 올 수 있겠어요? 난 절대 못 온다고 생각해요.
또 남편도 절대적으로 반대 안 해요. 아주 기분 좋게 갔다 오라고 그래요.
지금까지도 남편이 너무너무 행복해해요. 지금 80이 넘었는데 자기가 제일 행복하대요.
당신 때문에 천주교를 알았고, 왜냐하면 남편은 목사 되려고 했던 사람인데.
저는 천주교인이니까 나랑 결혼하겠다고 남편이 천주교로 와서 결혼했어요.
지금까지 내가 다녔다는 것은 율리아 자매님의 기도 덕분, 그리고 성모님의 은총인 거예요.
그래서 제가 미사 갈 때는 나주 성모님 징표 20주년이라는 책 있잖아요. 그걸 꼭 가방에 갖고 다녀요.
왜냐면 만약에 신부님이 뭐라고 한다. 난 그 책만 내놓을 거예요. 저희 남편이 “우리 애들도 다 잘 되고,
우리가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분명히 난 나주 성모님 은총으로 안다.” 그러니까 너무너무 감사하잖아요.
그래서 너무 감사할 일밖에 없어요. 너무너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다녔다는 것은 율리아 자매님의 기도 덕분, 그리고 성모님의 은총인 거예요. 그래서 제가 미사 갈 때는 나주 성모님 징표 20주년이라는 책 있잖아요. 그걸 꼭 가방에 갖고 다녀요. 왜냐면 만약에 신부님이 뭐라고 한다. 난 그 책만 내놓을 거예요. 저희 남편이 “우리 애들도 다 잘 되고, 우리가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분명히 난 나주 성모님 은총으로 안다.”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저는요. 성모님 수강 아파트 계실 때부터 다녔었는데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다녔어요. 그냥 즐겁기만 해서 다녔는데 오로지 ‘내 고통이 어떻게 덜어질까?’ 그것만 생각하고 다녔어요. 그리고 바쁘니까 안 다녔는데 어느 날 아주 열심한 분이 저 성모님 사진을 갖고 와서 “나주에서 성모님이 이렇게 피눈물 흘리고 우신대요.” 그래 제가 뭐라고 그랬게요? 그럴 수가 어딨냐고 거짓말이라고 제 입으로 아주 당당하게 얘기를 했잖아요.
그러고서 이제 또 세월이 지났어요. 그런데 어느 날 또 갖고 오셔서 성모님 피눈물 흘린 지 10주년 된다고 가자고 그러는데 그때는 눈이 번쩍 뜨여지더라고요. 그러니까는 남편이 옆에 있다가 “그러면 갔다 와.” 그러더라고요.
그날이 언제였냐면 1996년 10월 19일 날, 그날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서 못 할 것 같아. 나주를 와서 경당에 들어섰는데 제가 한 발 딱 이렇게 안에다 들여놨어요. 그런데 성모님 제대에서 우렁차게 “네가 터진 입으로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일 먼저 뭐가 생각나냐면 제가 나주 성모님 피눈물 거짓말이라고 했던 그 말! 그게 제일 먼저 생각나고 제가 레지오 한다고 사람들 만나서 남의 얘기하고 그게 다 생각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제 일생이 활동사진같이 지나가는 거예요. 그때 제가 ‘예수님, 제가 잘못했어요. 이제부터 아무 말 안 하고 그냥 입 다물겠습니다.’ 그랬어요. 나 같은 죄인이 세상에 없는 거예요. 성모님이 울고 계시고, 율리아님이 고통받는 건 절대적으로 나 때문이에요. 나 때문에 그렇게 율리아님이 고통을 당하시고 성모님이 울고 계신 거예요.
그때부터 말씀드릴 수가 없었어요. 왜냐면 내 일거일동을 다 알고 계시는데 어떻게 무슨 말을 해요. 그래서 밤새 울다 나주 성당으로 가서 미사를 드리는데 외국 사람이 많이 오니까 한국 사람은 뒤에 서라는 거예요. 저는 어디를 가든지 뒤에는 안 있어요. 왜냐하면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앞으로 가요. 그런데 앞으로 갔는데 우느라고 미사를 어떻게 드렸는지 몰라요.
그런데 율리아 자매님이 성체를 모시는데 피가 되고 살로 변화된 거예요. 그 광경을 보니까 절대적으로 제가 성체를 못 모시는 거예요. 그날은 나 같은 죄인이 도저히 성체를 모실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성체를 못 모셨어요. 그리고 체육관으로 갔는데 억수같이 비가 온 거예요. 그런데 들어오는 사람들은 비를 안 맞고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아, 이상하다. 왜 그러지?’ 밖에 나가 보니까 비가 안 오는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율리아 자매님이 나오셔서 아까 자비의 물줄기가 억수같이 쏟아졌다는 거예요. 그런데 율리아 자매님이 나오셔서 아까 자비의 물줄기가 억수같이 쏟아졌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아침에 집에 갔잖아요. 버스에 내려서 택시를 탔는데 “나를 왜 불렀느냐? 너를 괜히 부르지 않았다.”는 거예요. 주님이 너는 모든 사람한테 전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는데 이게 어마어마한 은총인 거예요.
우리 성당이 8,000명인데 ‘어떻게 나 같은 죄인을 이렇게 부르셨을까?’ 너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만나는 사람한테 메시지고 뭐고 주는 거예요. 제일 먼저 택시 기사를 줬어요. “우리나라 나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이거 꼭 가세요.” 그러면 그냥 받더라고요.
그때부터 집집마다 다니는 거예요. 성모님 사진 갖고 집집마다 다니는데 그때는 잘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우리 구역 사람 다 여기 한 번씩 왔다 갔어요. 그런데 나는 우리 가족과 사돈의 팔촌까지 구해야 되겠다는 그런 의지가 막 생기더라고요.
그러는데 (마리아의) 구원방주라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노아의 방주하고 탁 연결이 되는 거예요. 노아의 방주도 다 탔으면 다 살 수 있었다 이거예요. 그리고 우리 (마리아의) 구원의 방주도 타고 성모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은 구원받잖아요. 또 소돔과 고모라가 딱 연결이 되는 거예요, 저한테는. 아브라함이 하느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롯도 구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열심히 하면 우리 가족들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구함을 받게 해 줄 수 있겠구나.’
그런데 그때부터 나주 올 적마다 제가 밤새 물을 먹는 거예요. 밤새 물을 먹고 화장실 가는 거예요. 왜 그런가 그랬더니 어느 순간에 제 만성위염을 기적수로 치유해 주셨어요.
제가 1년에 한 번씩 꼭 내시경을 하는데 어? 아프지도 않고 병원도 안 가는 거예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속 안 아픕니다. 완전히 기적수로 치유를 해 주셨어요.
그리고 그전에 젊었을 때는 제가 여기 왔다 가면은 그대로 한 마디도 안 빼놓고 남편한테 전합니다. 여기 왔다 가면 남편하고 하루 종일 피정이에요. 그러면 남편이 얼마나 잘 받아들이는지 제가 완전히 변화되니까 남편이 완전히 180도로 변화하는 거예요.
남편이 나주 성모님을 그렇게 잘 받아들이고 차에 매일 테이프도 틀고 다니더라고요. 그런데 율리아 자매님이 서강 대학에 오셨는데 제대에서 말씀하실 때 우리 남편 하는 말이 빛이 쫙 자기한테로 왔다는 거예요. 또 남편이 나주를 몇 번 오셨어요. 율리아 자매님 만남의 시간에 율리아 자매님이 남편 가슴을 딱 이렇게 만졌대요. 남편 가슴에 은행알만큼 이렇게 동그랗게 있었는데 거기 항상 아프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병원에 가야 되겠다.’ 하고는 못 갔는데 그때 그 혹도 없어지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가슴 아프다고 안 합니다. 그때 그걸 잊어버릴 수가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은총받고 변화되니까 상대방이 그렇게 변화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공지문이 났는데
누가 이제부터 첫 토(마다) 안 와도 된다는데 저 제대에서 성모님은 “얘야 그게 아니다. 그게 아니다.”고 막 손짓하고 그렇게 울고 계신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거 하나도 안 보이나 봐요. 그래서 그때 제가 성모님한테 약속을 드렸어요. “성모님,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저는 성모님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 첫 토요일 날 한 번도 안 빠지고 오겠습니다. 올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때 그것만 봉헌하고 갔어요.
1996년 10월 19일부터 지금까지 첫 토요일은 한 번도 안 빠졌습니다. 성모님의 은총 아니면 올 수 있겠어요? 난 절대 못 온다고 생각해요. 또 남편도 절대적으로 반대 안 해요. 아주 기분 좋게 갔다 오라고 그래요. 지금까지도 남편이 너무너무 행복해해요. 지금 80이 넘었는데 자기가 제일 행복하대요. 당신 때문에 천주교를 알았고, 왜냐하면 남편은 목사 되려고 했던 사람인데. 저는 천주교인이니까 나랑 결혼하겠다고 남편이 천주교로 와서 결혼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시집은 다 개신교예요. 어느 날 시어머니가 절 불러서 “우리 집사람이 됐으니까 너는 이제 개신교로 와라.” “저 사람하고 이혼을 할망정 저는 내 신앙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랬어요. 그랬는데 우리 남편이 천주교로 왔더라고요.
그리고 남편이 오로지 나주 물만 먹어요. 다른 물은 절대 안 먹습니다. 자기가 80 중반인데 지금까지 건강하고 일을 하는 것은 이 물로 나주 성모님한테 건강을 받았다 이거예요. 남편이 한 달에 꼭 이 물을 두 말 먹어요. 가게에서 한 말, 집에서 한 말. 그런데 한 말 더 가져가면 또 딸내미도 벌렁 가져가. 그러니까 우리 식구는 아주 나주 물이면 서로가 가져가려고 그래요.
언제 우리 손자를 데리고 왔는데 걔가 4학년이고 걔 동생이 5살이었어요. 그런데 동생이 저기 앉아 있다가 율리아 자매님이 가운데로 나오니까 얼른 뛰어나오더라고. 그러니까 율리아 자매님이 탁 이렇게 만져줬잖아요. 그랬는데 내가 여기서 뭐 하고서 저쪽 뒤에 가니까 우리 4학년짜리 손자가 고개를 이렇게 하고요. 아주 고개를 꼼짝 못 하는 거예요. “너 왜 그러냐?” 그러니까 “할머니, 나 고개가 움직이지 않아요.”
너무 놀라서 큰일났어. 외손자를 데리고 와서 만약에 잘못되면 어떡해. 그런데 우리 그 5살 짜리가 율리아 자매님 손을 만졌잖아요. (그 손으로) 고개를 탁 “오빠! 왜 그래?” 그랬더니 고개를 번쩍 드는 거예요. 어머, 나는 그때 너무 놀란 것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또 작년 피눈물 흘린 기념일에 우리 대녀를 데리고 왔어요. 걔가 자궁암 수술을 했는데 너무 빼빼 말랐어. 그런데 땀이 몸에서 하나도 안 난대요. 그러는데 여기 왔다 가고 땀이 난대요. 그래서 자기 남편 보고 “여보, 여보, 나 살려나 봐. 땀 나.” 그랬대요.
그것뿐 아니라 성모님 수강 아파트 계실 때 우리 루시아 신랑이 폐병을 앓고 딸 둘도 폐병을 앓고. 그때는 폐병이 많았어요. 그런데 내가 “루시아, 나주 가면 아저씨가 나을 텐데...” 그랬대요. 그랬는데 여기 한 번 왔다 가고 완전히 치유됐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을 어떻게 만졌더니 완전히 살아계신 성모님이었대요. 그래서 지금도 지속적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주 다니니까 사람들이 신부님한테 가서 일렀대요. 그랬더니 그 신부님이 “그 사람 생활을 어떻게 하더냐?” 물어보더라는 거예요. “그 사람 생활을 열심히 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집에서 나주 기도도 하고 그래요.” 그랬더니 “그러면 가만 놔둬라.” 그러대요.
또 다른 신부님이 오셨는데 어느 날 성당을 갔더니 “나주를 이제 다니지 말래.” “나주를 다니지 말아? 누구 마음대로 다니지 말아? 나는 절대적으로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나는 나주 간다! 나는 신부님이 아니라 주교님이 불러도 난 가서 할 얘기가 있다. 그런 소리 하지도 마라!” 그랬더니 뭐라 하는 줄 알아요? 형님 마음에서 나주 성모님을 빼버리라는 거예요.
어떻게 빼버리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라 그랬어요. 나한테는 절대적으로 나주 가지 마라 그딴 말 하지 말라고. 나는 내 머리에 칼이 들어와도 가니까 그런 소리 하지도 말라고. 그런데 나주 성모님한테 이렇게 잘못 말씀들을 하더니 지금 아파. 그러니깐요. 우리가 나주 성모님을 함부로 말하면은 정말 큰일 나요. 큰일 나요. 제가 느껴보아서요. 정말 나주 성모님은 별사람이 별소리를 해도 절대적이니까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저는 안 흔들려요.
지금까지 내가 다녔다는 것은 율리아 자매님의 기도 덕분, 그리고 성모님의 은총인 거예요. 그래서 제가 미사 갈 때는 나주 성모님 징표 20주년이라는 책 있잖아요. 그걸 꼭 가방에 갖고 다녀요. 왜냐면 만약에 신부님이 뭐라고 한다. 난 그 책만 내놓을 거예요. 저희 남편이 “우리 애들도 다 잘 되고, 우리가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분명히 난 나주 성모님 은총으로 안다.”
그러니까 너무너무 감사하잖아요. 그래서 너무 감사할 일밖에 없어요. 너무너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율리아님 사랑합니다. 이 모든 영광 주님 성모님께 봉헌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2024년 2월 3일 소화 데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