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은총 증언을 준비하면서 너무 희한한 체험을 하게 됐는데 핸드폰에서 주고받던 파일 글씨가 갑자기 파편처럼 흩어지며 ‘스르륵’ 아래로 쓸어내리면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어요. 너무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다시 찾아보니까 역시 한 글자도 남기지 않고 다 사라졌어요. 율리아 엄마께서 애써 써놓은 파일이라든가 중요한 것들이 사라지고 갖은 행패를 다 부리는 마귀들의 소식을 많이 들었었거든요. 믿고 있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저한테 그런 일이 생긴 거예요.
‘제가 뭐라고 하찮은 저에게 마귀는 또 이런 심술을 부릴까?’ 그러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은총 증언, 주님께 영광을 올리는 것을 마귀가 엄청 싫어하고 있다는 것! 또 오늘 엄마가 너무 편찮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굉장히 마음이 아프거든요. 은총 증언을 통해서 엄마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은총 증언을 하겠습니다. 저는 나주 순례 온 지 24년 차가 되어 갑니다. 크고 작은 은총이 얼마나 많겠어요?
저희 큰아들은 한때 대학교 총장이 추천해서 이름 석 자만 대면 아는 아주 유명한 박사의 조수로 있을 정도로 잘 나가는 아들이었어요. 그런 아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저희 집 건물 마트를 운영하다가 아리따운 여대생을 만납니다. 1년 연애하다가 성당에서 신부님 두 분 주례로 결혼을 했습니다.
선남선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다는 칭찬을 받으면서 또 아들 부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행복감에 아주 가슴 뿌듯하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남의 부러움을 다 사고 결혼한 아들이 몇 년도 안 됐는데 사냐 안 사냐 하면서 싸움을 빡세게 하는 겁니다. 예쁜 딸 3살짜리가 있었고 6살짜리가 있었는데 이혼을 하고 말았어요.
그 광경은 정말 가슴 쓰라려서 못 볼 정도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점점 분노가 솟는지 날이 갈수록 술에 취해 술에 의지해 살면서 성격도 변했어요. 거칠어지고 세상 고민과 고통은 혼자 다 지고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살고 있었어요. 설상가상으로 우울증까지 갖게 되면서 마트는 엉망이고 누가 오면 “여기 폐업해요?” 이러는 거예요.
또 술이 깬 아침이면 “후~ 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니까 “왜 그러니?” 그랬더니 숨이 막혀 죽겠대요. 가슴이 터질 것 같대요. 아들이 그래요. 지켜보면서 저는 덩달아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아들이 우울증 약고 먹고 있었는데 분이 안 풀리니까 “엄마, 나 죽고 싶다.” 정말 죽는다고 하면서 “나 죽는 꼴 좀 볼래요? 먹으면 틀림없이 죽는 약을 지금 사다 놨는데 두고 보실래요?” 그러는 거예요.
그렇게 멋있고 잘 나가던 아들이 완전히 초라해지고 폐인이었어요. 그러는 걸 보면서 제가 덩달아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엄마를 보면서 ‘그래, 엄마가 있지.’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데 엄마를 보면서 하느님을 만나는 거예요. 그렇게 가슴이 저리면서 제가 나주를 계속 오게 됐는데요.
1월 첫 토요일, 지나가면서 “엄마, 저희 아들이 우울증이 아주 심해요. 토마스 아퀴나스가요.” 제가 말했어요. 엄마가 가엾어서 짠한 모습으로 끄덕끄덕하시는데, 그 모습이 집에 와서까지 박혀있어요. 그런데 참 신비한 일이에요. 제가 나주를 갔다 오니까 아들이 술도 안 먹고 말짱해요. “엄마, 나 술, 담배 완전히 끊었어요.” 이러는 거예요.
그러면서 앞으로 계획을 또 얘기하는 거예요. 저는 너무 놀랐지만, 확실히 믿지 못했어요. 그전에도 술 끊는다고 한 일주일까지 견뎌본 적 있어요. 일주일 정도 지나면 언제 그랬냐고 다시 술 먹고 완전 다른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지켜보자 했는데 계속 술 안 먹고 담배도 끊고 가게를 정리정돈하면서 막 쓸고 닦고 또 물건을 들여놓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게 아들이 완전히 변화됐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서 우울증 약도 완전히 끊었다는 거예요. 이것이 누구의 힘이겠어요?
그런데 또 그뿐이 아니에요. 아들이 냉담을 하고 있었는데 올 7월달에 스스로 성당 찾아가서 신부님 면담하고 고해성사 보더니 아침 9시 미사를 보고 와서 마트 열고 아주 착실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전에는 아들이 저한테 “구역장 하는 사람이 나주를 다녀? 내가 성당에다 고발할 거야.” 으름장을 놓더니 제가 6월달 서부터 10살, 7살 손녀들을 첫 토요일마다 나주 데리고 왔거든요. 그런데 이제 나주 간다면 좋아해요. 그래서 지난 10월 피눈물 기념일에는 애들이 물고기 견학 가는데, 거길 가야 된다고 그러는 거예요. 물고기 견학 간다니까 아들이 “무슨 소리야! 나주를 가야지! 물고기 견학은 다음에 가면 되지.” 견학 취소시키고 나주 데리고 왔어요. 그 정도로 아들이 뜨겁게 나주 순례길을 성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큰 손녀가 첫 영성체 교리를 배워요. 그래서 저번 기념일에 나주 데리고 올 수가 없어서 두고 오는데 “할머니, 나를 두고 가느냐? 내가 무슨 수를 쓰든지 쫓아갈 테니까 나를 두고 가면 안 된다.”고. “나주를 가야 된다.”고 그러는 거야. 그렇게 나주를 가족이 다 성원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엄마께서 대속 고통을 치르시면서 얼마나 피나는 희생 봉헌을 했으며 또 엄청난 희생을 하신 걸로 알고 저는 엄마께 너무 정말 감사드리고요. 저는 엄마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그 긴 세월 제가 절망 속에 살 때 엄마한테 늘 의지를 하고 엄마가 오늘처럼 그렇게 아픈 날은 제가 자지러질 듯 힘이 빠져요. 엄마가 어떻게 잘못될까 봐, 그렇지만 제가 앞으로는 더 열심히 해서 엄마의 힘이 되고자 결심합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보답하는 마음으로 뭐를 시작했느냐 하면요. 묵상 프로젝트를 열두 사람한테 알리고 매일같이 1주일 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7분이 성모님 수제자처럼 지금 따라오고 있거든요. 그뿐만 아니라 제가 보내기 위해서 새벽 4시, 5시면 일어나서 다 읽어보고 복습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 오시는 순례자들을 보면 감탄, 감탄을 해요. 엄마를 닮아가는 모습이에요. 영성이 깊고 말없이 희생하고 봉헌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나는 어떻게 하면 저분들처럼 저렇게 영성이 깊어질까?’ 항상 부족한 저를 자책하며 살았는데요.
지난 향유 기념일이에요. 수원역에서 35분에 차를 타기로 했는데 우리 동네에서 차를 보니까 40분 후에 도착한다고 해서 ‘이건 안 되겠다.’ 전철을 타고 오게 됐는데요. 숱하게 전철 타본 적도 있고 내려본 적도 있는데요. 이상하게 출구를 못 찾아요. 그리고 물어보면 반대 방향으로 가르쳐줘서 헤매다가, 한 20분을 헤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오늘은 오면서 바로 찾아 나올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차를 놓쳤는데 그전 같았으면 제가 ‘에이, 차 놓쳤으니까, 집에 편하게 있자!’ 그러고 집으로 갔을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지 와야 된다. 또 은층 증언도 할 준비를 해야 된다.’ 그러면서 역전에 가서 다시 나주 가는 열차를 타고 정성을 들여 계속 묵주 기도하면서 160단을 올렸습니다. 1초도 졸지 않았는데 나주가 나오질 않아요. 그래서 이제 알고 봤더니 여수 가는 차인데 여수에 가서 “나주는 언제 나와요?” 그랬더니 “여기가 종점”이래요.
깜짝 놀라서 다시 나주 오는데 익산에서 4시간 기다리고 또 택시를 타고 오니까 신부님께서 강론 중이셨어요. 그러니까 (밤) 9시 반, 장장 15시간을 제가 그렇게 헤매다 왔어요. 마치 탕자가 된 기분에 그래도 집이 좋아서 찾아온 그런 느낌이었어요. 얼마나 포근하고 따뜻했는지 제가 77세거든요. 그런데 77세 이때껏 그날이 가장 평화롭고 고요하고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어요.
1초도 속상하지 않고, 1초도 불만하지 않고, 엄마의 그 삶, 묵상 프로젝트를 읽으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엄마는 원망도 하지 않고 셈 치고 봉헌하시잖아요. 엄마의 영성을 닮으려면 어림도 없죠. 천 만분의 1도 안 되고 만 만분의 1도 안 되지만 ‘그래도 엄마의 영성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제가 달라진 모습에 감동을 합니다.
그날 제가 집에서 기적수 500(ml)을 갖고 나왔습니다. 15시간, 한 병을 마셨어요. 그런데 놀라운 게 여기 왔는데요. 배가 하나도 안 고파요. 그래서 ‘이 기적수의 힘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고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열차를 기다리고 갈아타는 기나긴 시간 속에서 율리아 엄마 영성을 교훈 삼아 내 자신을 조용히 성찰하며 온전히 셈 치고 봉헌하면서 그토록 평화롭고 고요하며 은혜로울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것은 순전히 5대 영성의 덕분이며, 이날이 제 생애 가장 기도에 심취했던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방향 감각도 모르며 살아왔던 저에게 삶의 나침판이 되시어, 5대 영성으로 이끄신 율리아 엄마를 가까이 보내주신 하느님 아버지! 나주 성모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영원무궁 찬미, 영광 받으소서! 율리아 엄마! 참으로 존경하고 무지무지 사랑합니다. 제가 더 엄마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5대 영성을 더 열심히 실천하고 묵상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주를 알리는 데 힘을 다 쓰도록 다짐해 봅니다.
그리고 끝으로 저희 딸이 아주 고난의 삶을 살고 있었어요. 그 아이 때문에 제 삶도 굉장히 너무너무 힘들고 고달팠는데요. 제가 두 번 여기 데리고 와서 엄마를 만난 적 있어요. 제가 “엄마는 성녀 같은 분이다. 엄마의 영성을 닮아야 된다. 그러면서 “묵상 프로젝트를 앞으로 보내줄 테니까 그거에 따르겠냐?” 그랬더니 “엄마, 그거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보내주세요.” 그랬어요.
그래서 딸이 엄마의 그 묵상 프로젝트 동영상 그 말씀을 읽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취직을 했는데 더 좋은 자리가 나타나 시험을 보러 오라고 했지만, “경력이 없어서 안 될 거야.” 그랬는데 “매니저 역할을 할 수 있냐?” 하고 뽑아줬다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 율리아 엄마 그 묵상 프로젝트는 확실히 은총이 많아” 그러면서 “계속 보내주세요.” 그러는 거예요. 이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올려드리며 감사드립니다.
이것은 순전히 5대 영성의 덕분이며, 이날이 제 생애 가장 기도에 심취했던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방향 감각도 모르며 살아왔던 저에게 삶의 나침판이 되시어, 5대 영성으로 이끄신 율리아 엄마를
가까이 보내주신 하느님 아버지! 나주 성모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영원무궁 찬미, 영광 받으소서!
율리아 엄마! 참으로 존경하고 무지무지 사랑합니다. 제가 더 엄마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5대 영성을
더 열심히 실천하고 묵상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주를 알리는 데 힘을 다 쓰도록 다짐해 봅니다.
아멘 🙏
아드님께서 힘드신 시간들을 겪는 모습을 어머니께서 곁에서 보시며 얼마나 마음고생하셨으리라
상상이 갑니다......
그러나 기도의끈을 놓치않으시고 나주성모님께
순례오시며 율리아엄마의 기도를 통해 아드님께서 치유받으셔서 축하드립니다 🎉
힘든시간을 순례를 통하여 은총받으셔서
축하드립니다 🎉
은총증언 잘들었습니다 ❤️
“묵상 프로젝트를 앞으로 보내줄 테니까 그거에 따르겠냐?
” 그랬더니 “엄마, 그거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보내주세요.”
그랬어요.그래서 딸이 엄마의 그 묵상 프로젝트 동영상 그
말씀을 읽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취직을 했는데 더
좋은 자리가 나타나 시험을 보러 오라고 했지만, “경력이 없어서
안 될 거야.” 그랬는데 “매니저 역할을 할 수 있냐?” 하고
뽑아줬다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 율리아 엄마 그 묵상
프로젝트는 확실히 은총이 많아” 그러면서 “계속 보내주세요.”
그러는 거예요. 이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올려드리며 감사합니다
아멘!!!아멘!!!아멘!!!
1월 첫 토요일, 지나가면서 “엄마, 저희 아들이 우울증이 아주 심해요. 토마스 아퀴나스가요.” 제가 말했어요. 엄마가 가엾어서 짠한 모습으로 끄덕끄덕하시는데, 그 모습이 집에 와서까지 박혀있어요. 그런데 참 신비한 일이에요. 제가 나주를 갔다 오니까 아들이 술도 안 먹고 말짱해요. “엄마, 나 술, 담배 완전히 끊었어요.” 이러는 거예요. 그러면서 앞으로 계획을 또 얘기하는 거예요.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제가 은총 증언을 준비하면서 너무 희한한 체험을 하게 됐는데 핸드폰에서 주고받던 파일 글씨가 갑자기 파편처럼 흩어지며 ‘스르륵’ 아래로 쓸어내리면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어요. 너무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다시 찾아보니까 역시 한 글자도 남기지 않고 다 사라졌어요. 율리아 엄마께서 애써 써놓은 파일이라든가 중요한 것들이 사라지고 갖은 행패를 다 부리는 마귀들의 소식을 많이 들었었거든요. 믿고 있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저한테 그런 일이 생긴 거예요.
‘제가 뭐라고 하찮은 저에게 마귀는 또 이런 심술을 부릴까?’ 그러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은총 증언, 주님께 영광을 올리는 것을 마귀가 엄청 싫어하고 있다는 것! 또 오늘 엄마가 너무 편찮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굉장히 마음이 아프거든요. 은총 증언을 통해서 엄마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은총 증언을 하겠습니다. 저는 나주 순례 온 지 24년 차가 되어 갑니다. 크고 작은 은총이 얼마나 많겠어요?
저희 큰아들은 한때 대학교 총장이 추천해서 이름 석 자만 대면 아는 아주 유명한 박사의 조수로 있을 정도로 잘 나가는 아들이었어요. 그런 아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저희 집 건물 마트를 운영하다가 아리따운 여대생을 만납니다. 1년 연애하다가 성당에서 신부님 두 분 주례로 결혼을 했습니다.
선남선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다는 칭찬을 받으면서 또 아들 부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행복감에 아주 가슴 뿌듯하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남의 부러움을 다 사고 결혼한 아들이 몇 년도 안 됐는데 사냐 안 사냐 하면서 싸움을 빡세게 하는 겁니다. 예쁜 딸 3살짜리가 있었고 6살짜리가 있었는데 이혼을 하고 말았어요.
그 광경은 정말 가슴 쓰라려서 못 볼 정도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점점 분노가 솟는지 날이 갈수록 술에 취해 술에 의지해 살면서 성격도 변했어요. 거칠어지고 세상 고민과 고통은 혼자 다 지고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살고 있었어요. 설상가상으로 우울증까지 갖게 되면서 마트는 엉망이고 누가 오면 “여기 폐업해요?” 이러는 거예요.
또 술이 깬 아침이면 “후~ 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니까 “왜 그러니?” 그랬더니 숨이 막혀 죽겠대요. 가슴이 터질 것 같대요. 아들이 그래요. 지켜보면서 저는 덩달아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아들이 우울증 약고 먹고 있었는데 분이 안 풀리니까 “엄마, 나 죽고 싶다.” 정말 죽는다고 하면서 “나 죽는 꼴 좀 볼래요? 먹으면 틀림없이 죽는 약을 지금 사다 놨는데 두고 보실래요?” 그러는 거예요.
그렇게 멋있고 잘 나가던 아들이 완전히 초라해지고 폐인이었어요. 그러는 걸 보면서 제가 덩달아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엄마를 보면서 ‘그래, 엄마가 있지.’ 하느님은 보이지 않는데 엄마를 보면서 하느님을 만나는 거예요. 그렇게 가슴이 저리면서 제가 나주를 계속 오게 됐는데요.
1월 첫 토요일, 지나가면서 “엄마, 저희 아들이 우울증이 아주 심해요. 토마스 아퀴나스가요.” 제가 말했어요. 엄마가 가엾어서 짠한 모습으로 끄덕끄덕하시는데, 그 모습이 집에 와서까지 박혀있어요. 그런데 참 신비한 일이에요. 제가 나주를 갔다 오니까 아들이 술도 안 먹고 말짱해요. “엄마, 나 술, 담배 완전히 끊었어요.” 이러는 거예요.
그러면서 앞으로 계획을 또 얘기하는 거예요. 저는 너무 놀랐지만, 확실히 믿지 못했어요. 그전에도 술 끊는다고 한 일주일까지 견뎌본 적 있어요. 일주일 정도 지나면 언제 그랬냐고 다시 술 먹고 완전 다른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지켜보자 했는데 계속 술 안 먹고 담배도 끊고 가게를 정리정돈하면서 막 쓸고 닦고 또 물건을 들여놓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게 아들이 완전히 변화됐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서 우울증 약도 완전히 끊었다는 거예요. 이것이 누구의 힘이겠어요?
그런데 또 그뿐이 아니에요. 아들이 냉담을 하고 있었는데 올 7월달에 스스로 성당 찾아가서 신부님 면담하고 고해성사 보더니 아침 9시 미사를 보고 와서 마트 열고 아주 착실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전에는 아들이 저한테 “구역장 하는 사람이 나주를 다녀? 내가 성당에다 고발할 거야.” 으름장을 놓더니 제가 6월달 서부터 10살, 7살 손녀들을 첫 토요일마다 나주 데리고 왔거든요. 그런데 이제 나주 간다면 좋아해요. 그래서 지난 10월 피눈물 기념일에는 애들이 물고기 견학 가는데, 거길 가야 된다고 그러는 거예요. 물고기 견학 간다니까 아들이 “무슨 소리야! 나주를 가야지! 물고기 견학은 다음에 가면 되지.” 견학 취소시키고 나주 데리고 왔어요. 그 정도로 아들이 뜨겁게 나주 순례길을 성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큰 손녀가 첫 영성체 교리를 배워요. 그래서 저번 기념일에 나주 데리고 올 수가 없어서 두고 오는데 “할머니, 나를 두고 가느냐? 내가 무슨 수를 쓰든지 쫓아갈 테니까 나를 두고 가면 안 된다.”고. “나주를 가야 된다.”고 그러는 거야. 그렇게 나주를 가족이 다 성원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엄마께서 대속 고통을 치르시면서 얼마나 피나는 희생 봉헌을 했으며 또 엄청난 희생을 하신 걸로 알고 저는 엄마께 너무 정말 감사드리고요. 저는 엄마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그 긴 세월 제가 절망 속에 살 때 엄마한테 늘 의지를 하고 엄마가 오늘처럼 그렇게 아픈 날은 제가 자지러질 듯 힘이 빠져요. 엄마가 어떻게 잘못될까 봐, 그렇지만 제가 앞으로는 더 열심히 해서 엄마의 힘이 되고자 결심합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보답하는 마음으로 뭐를 시작했느냐 하면요. 묵상 프로젝트를 열두 사람한테 알리고 매일같이 1주일 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7분이 성모님 수제자처럼 지금 따라오고 있거든요. 그뿐만 아니라 제가 보내기 위해서 새벽 4시, 5시면 일어나서 다 읽어보고 복습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 오시는 순례자들을 보면 감탄, 감탄을 해요. 엄마를 닮아가는 모습이에요. 영성이 깊고 말없이 희생하고 봉헌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나는 어떻게 하면 저분들처럼 저렇게 영성이 깊어질까?’ 항상 부족한 저를 자책하며 살았는데요.
지난 향유 기념일이에요. 수원역에서 35분에 차를 타기로 했는데 우리 동네에서 차를 보니까 40분 후에 도착한다고 해서 ‘이건 안 되겠다.’ 전철을 타고 오게 됐는데요. 숱하게 전철 타본 적도 있고 내려본 적도 있는데요. 이상하게 출구를 못 찾아요. 그리고 물어보면 반대 방향으로 가르쳐줘서 헤매다가, 한 20분을 헤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오늘은 오면서 바로 찾아 나올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차를 놓쳤는데 그전 같았으면 제가 ‘에이, 차 놓쳤으니까, 집에 편하게 있자!’ 그러고 집으로 갔을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지 와야 된다. 또 은층 증언도 할 준비를 해야 된다.’ 그러면서 역전에 가서 다시 나주 가는 열차를 타고 정성을 들여 계속 묵주 기도하면서 160단을 올렸습니다. 1초도 졸지 않았는데 나주가 나오질 않아요. 그래서 이제 알고 봤더니 여수 가는 차인데 여수에 가서 “나주는 언제 나와요?” 그랬더니 “여기가 종점”이래요.
깜짝 놀라서 다시 나주 오는데 익산에서 4시간 기다리고 또 택시를 타고 오니까 신부님께서 강론 중이셨어요. 그러니까 (밤) 9시 반, 장장 15시간을 제가 그렇게 헤매다 왔어요. 마치 탕자가 된 기분에 그래도 집이 좋아서 찾아온 그런 느낌이었어요. 얼마나 포근하고 따뜻했는지 제가 77세거든요. 그런데 77세 이때껏 그날이 가장 평화롭고 고요하고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어요.
1초도 속상하지 않고, 1초도 불만하지 않고, 엄마의 그 삶, 묵상 프로젝트를 읽으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엄마는 원망도 하지 않고 셈 치고 봉헌하시잖아요. 엄마의 영성을 닮으려면 어림도 없죠. 천 만분의 1도 안 되고 만 만분의 1도 안 되지만 ‘그래도 엄마의 영성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제가 달라진 모습에 감동을 합니다.
그날 제가 집에서 기적수 500(ml)을 갖고 나왔습니다. 15시간, 한 병을 마셨어요. 그런데 놀라운 게 여기 왔는데요. 배가 하나도 안 고파요. 그래서 ‘이 기적수의 힘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고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열차를 기다리고 갈아타는 기나긴 시간 속에서 율리아 엄마 영성을 교훈 삼아 내 자신을 조용히 성찰하며 온전히 셈 치고 봉헌하면서 그토록 평화롭고 고요하며 은혜로울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것은 순전히 5대 영성의 덕분이며, 이날이 제 생애 가장 기도에 심취했던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방향 감각도 모르며 살아왔던 저에게 삶의 나침판이 되시어, 5대 영성으로 이끄신 율리아 엄마를 가까이 보내주신 하느님 아버지! 나주 성모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영원무궁 찬미, 영광 받으소서! 율리아 엄마! 참으로 존경하고 무지무지 사랑합니다. 제가 더 엄마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5대 영성을 더 열심히 실천하고 묵상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주를 알리는 데 힘을 다 쓰도록 다짐해 봅니다.
그리고 끝으로 저희 딸이 아주 고난의 삶을 살고 있었어요. 그 아이 때문에 제 삶도 굉장히 너무너무 힘들고 고달팠는데요. 제가 두 번 여기 데리고 와서 엄마를 만난 적 있어요. 제가 “엄마는 성녀 같은 분이다. 엄마의 영성을 닮아야 된다. 그러면서 “묵상 프로젝트를 앞으로 보내줄 테니까 그거에 따르겠냐?” 그랬더니 “엄마, 그거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보내주세요.” 그랬어요.
그래서 딸이 엄마의 그 묵상 프로젝트 동영상 그 말씀을 읽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취직을 했는데 더 좋은 자리가 나타나 시험을 보러 오라고 했지만, “경력이 없어서 안 될 거야.” 그랬는데 “매니저 역할을 할 수 있냐?” 하고 뽑아줬다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 율리아 엄마 그 묵상 프로젝트는 확실히 은총이 많아” 그러면서 “계속 보내주세요.” 그러는 거예요. 이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올려드리며 감사드립니다.
2023년 12월 9일 카타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