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이 글이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성모님께는 위로가 되며
읽는 모두에게는 유익이 될 수 있도록 사랑의 꽃을 피워 성령의 열매 맺게 해 주시고
엄마께는 참독한 고통 이겨내실 힘을 주소서. 아멘

찬미예수님! 찬미성모님!
인천지부 유연숙 릿다님의 은총 증언입니다.
제가 세월이 흘러 보니까 지금 이렇게 순례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나가서도 성모님을 박해하고 인준난 곳이 아닌데
아직 다니냐고도 하지만 순례다니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2000년도 전에는 제가 나주를 남편의 말씀을 빌리자면 밥 먹듯이 다녔습니다.
인천교구에서 차를 다달이 4-5대, 최하 3대씩 모시고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은혜가 엄청 많이 내려왔는데도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없어지고
오늘 계신 분들은 정말 손에 뽑을 정도로 아는 분들이 없어요.
저희 딸이 싱가포르에 사는데 손자가 발달장애가 있었어요.
머리는 좋고 집안이 좋은 집 자녀인데 태변을 먹어서 아이가 그런 증세가 있었습니다.
근데 제가 바로 기적수를 가지고 강남 성모병원 응급실 중환자실에 갔는데
발에다 발라주라고 그랬어요. 그때 2009년 12월 첫 주였어요.
그런 아이가 싱가포르 갔는데 어려서부터 성모님 안에서 자라서
지금 싱가포르 국제학교 다니고 중학교를 갔습니다.
지난번에 한국에 왔을 때 아빠가 “너 오늘 기적수 가져가지 마.
아빠가 이미 가방 다 닫았어.” 그러니까 얘가 얼른 건넛방에 오더니
기적수를 딱 따가지고 벌컥벌컥 마시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이렇게 마시니?” “할머니 내가 이걸 먹어야 몸에 힘이 돼요.” 하는 거예요.
그리고 조그만 기적성수 있잖아요. 그거를 자기 아빠 엄마 모르게
어떻게 넣어가지고 가서 싱가포르 집에 가서 누가 아프다 그러면 얼른 갖고 나온대요.
그런 효과를 봐서 이 아이가 우리 성모님께 그런 찬미를 드릴 수 있는
그런 영성이 되더라고요. 근데 지금 이 아이가 정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딸은 무슨 일만 있으면 나주에 미사 봉헌을 합니다.
1년 동안 거의 한 달에 미사를 계속 드린 적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희는 그냥 눈만 뜨면 나주에다가 무조건 해요.
무조건 하면 이루어지든 아니든 상관없이 제 마음의 위안도 받고
또 이루어진 것도 많이 있어요.
제가 옛날에는 시어머니 시집살이 살고 7남매 맏며느리로
시어머니 모시고 22년 살았었는데
그때 제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는 그때는 어떻게 용기가 났는지요.
아침에 순례를 가면 그 전날 저녁에 9시가 돼서 어머니 저 나주 가요.
그럼 대답 없으셔도 어머니를 물리치고 내가 나주 다녔어요.
늦으면 비행기 타고 막 다녔어요. 하여튼 그렇게 열정적으로 많이 했었어요.
우리 아이들도 지금도 싱가포르에서 저한테 “엄마 오늘 첫토를 꼭 하셔야 됩니다.”
그러고 어제 또 미사를 넣드라고요.
또 제 장부가 지금 80인데 지금도 회사 대표로 일을 하고 계세요.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데 제가 토요일 날이기 때문에 못 가고
기념일에 가는 이유가 뭐냐면 “내가 오는데 미사도 드렸잖아.
나주는 다음에 가.” 이래요. 이번에는 제가 “나주 가야될 것 같아.” 그랬더니
어쩐 일인지 “나주 갔다 와.” 그래서 “아멘, 알렐루야” 하고는
제가 동생도 불러들이고 어디 언니도 15년 만에 “갑시다.” 하고 왔어요.
항구하게 정말 엄마한테 다가가고 이럴 때 함께할 수 있고 마지막 가는 길이니까
뭐 말씀 안 드려도 여러분 더 잘 아시고 하니까 다 함께 성모님 손을 잡고 갑시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새 빈대가 요새 유행하잖아요.
근데 제 아들이 동성제약에 자기가 그 빈대 약을 디자인해서 다 넣었는데
조그만 건 많이 팔렸는데 건강식품하고 처음에 스무 가지밖에 안 시작했는데
아들이 지금은 천 개 정도 물품을 하고, 20평으로 시작했는데 지금 한 6~7년 지나서
150평짜리 그런 건물에다가 사업을 하고 있어요.
근데 그 아들도 어릴 때부터 여름에 나주에 갔었거든요. 휴가를 나주로 해서 항상 돌았어요.
제가 나중에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 모실 때도 “너 모셔야 돼.” “네.” 그래요.
신심이 좋은데, 아들이 올 초에 보건 계약으로 빈대 약을 4만 개를 했대요.
그런데 이게 안 팔리는 거에요. 재고 어떻게 할지 안 팔려가지고 힘들었는데
이 빈대가 터진 겁니다. 지금 그걸 하루에 4천 개씩 막 물량을 공급하고 있는 거예요.
또 한 가지는 저희 남편이 회사 갔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오면
저 어디 제부도 가는 쪽에 회사가 있는데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께 늘 절을 해요.
큰절을 하면서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 저 왔습니다. 오늘도 제가 일을 잘하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딸(아내) 지켜줘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절하고 또 갈 때도 큰절을 해요.
이런 기도를 하기 때문에 저는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 덕분에 정말 남편한테까지
사랑을 많이 받고 있고 저 스스로가 어떤 경우가 돼도 흔들리지 않고 화가 나고
마음에 분심이 들 때 “아버지 어떡하면 좋아요. 해주세요.” 말씀드리면 편안해지고
잘 이루어지는 체험을 수시로 했습니다.
제가 이번에 일을 2년 반 정도 했는데 퇴직금을 탈 상황이 아닌데
보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사장이 저한테 850만 원을 줬어요.
제가 아침에 나가면서 “예수님 저 이거 성사되면은 50만 원 나주에 봉헌하겠습니다.” 했죠.
그래서 제가 봉헌한다는 말씀만 드리면 그게 다 이루어지더라고요.
너무 계산적으로 얘기하는데 그런 실험도 했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과 성모님께 돌려드립니다.

"나를 온전히 신뢰하면서 이 길을 걸어 천상의 나라에 올 때까지
다만 사랑을 위하여 살고 끊임없이 고통을 당할지라도
그 고통을 통하여 사랑의 마음을 보존하여라.
설령 너희가 자유의지로 과오를 범할지라도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너희는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1988년 9월 14일 예수님 말씀)

주님! 이 글이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성모님께는 위로가 되며
읽는 모두에게는 유익이 될 수 있도록 사랑의 꽃을 피워 성령의 열매 맺게 해 주시고
엄마께는 참독한 고통 이겨내실 힘을 주소서. 아멘
찬미예수님! 찬미성모님!
인천지부 유연숙 릿다님의 은총 증언입니다.
제가 세월이 흘러 보니까 지금 이렇게 순례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나가서도 성모님을 박해하고 인준난 곳이 아닌데
아직 다니냐고도 하지만 순례다니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2000년도 전에는 제가 나주를 남편의 말씀을 빌리자면 밥 먹듯이 다녔습니다.
인천교구에서 차를 다달이 4-5대, 최하 3대씩 모시고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은혜가 엄청 많이 내려왔는데도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없어지고
오늘 계신 분들은 정말 손에 뽑을 정도로 아는 분들이 없어요.
저희 딸이 싱가포르에 사는데 손자가 발달장애가 있었어요.
머리는 좋고 집안이 좋은 집 자녀인데 태변을 먹어서 아이가 그런 증세가 있었습니다.
근데 제가 바로 기적수를 가지고 강남 성모병원 응급실 중환자실에 갔는데
발에다 발라주라고 그랬어요. 그때 2009년 12월 첫 주였어요.
그런 아이가 싱가포르 갔는데 어려서부터 성모님 안에서 자라서
지금 싱가포르 국제학교 다니고 중학교를 갔습니다.
지난번에 한국에 왔을 때 아빠가 “너 오늘 기적수 가져가지 마.
아빠가 이미 가방 다 닫았어.” 그러니까 얘가 얼른 건넛방에 오더니
기적수를 딱 따가지고 벌컥벌컥 마시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이렇게 마시니?” “할머니 내가 이걸 먹어야 몸에 힘이 돼요.” 하는 거예요.
그리고 조그만 기적성수 있잖아요. 그거를 자기 아빠 엄마 모르게
어떻게 넣어가지고 가서 싱가포르 집에 가서 누가 아프다 그러면 얼른 갖고 나온대요.
그런 효과를 봐서 이 아이가 우리 성모님께 그런 찬미를 드릴 수 있는
그런 영성이 되더라고요. 근데 지금 이 아이가 정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딸은 무슨 일만 있으면 나주에 미사 봉헌을 합니다.
1년 동안 거의 한 달에 미사를 계속 드린 적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희는 그냥 눈만 뜨면 나주에다가 무조건 해요.
무조건 하면 이루어지든 아니든 상관없이 제 마음의 위안도 받고
또 이루어진 것도 많이 있어요.
제가 옛날에는 시어머니 시집살이 살고 7남매 맏며느리로
시어머니 모시고 22년 살았었는데
그때 제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는 그때는 어떻게 용기가 났는지요.
아침에 순례를 가면 그 전날 저녁에 9시가 돼서 어머니 저 나주 가요.
그럼 대답 없으셔도 어머니를 물리치고 내가 나주 다녔어요.
늦으면 비행기 타고 막 다녔어요. 하여튼 그렇게 열정적으로 많이 했었어요.
우리 아이들도 지금도 싱가포르에서 저한테 “엄마 오늘 첫토를 꼭 하셔야 됩니다.”
그러고 어제 또 미사를 넣드라고요.
또 제 장부가 지금 80인데 지금도 회사 대표로 일을 하고 계세요.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데 제가 토요일 날이기 때문에 못 가고
기념일에 가는 이유가 뭐냐면 “내가 오는데 미사도 드렸잖아.
나주는 다음에 가.” 이래요. 이번에는 제가 “나주 가야될 것 같아.” 그랬더니
어쩐 일인지 “나주 갔다 와.” 그래서 “아멘, 알렐루야” 하고는
제가 동생도 불러들이고 어디 언니도 15년 만에 “갑시다.” 하고 왔어요.
항구하게 정말 엄마한테 다가가고 이럴 때 함께할 수 있고 마지막 가는 길이니까
뭐 말씀 안 드려도 여러분 더 잘 아시고 하니까 다 함께 성모님 손을 잡고 갑시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새 빈대가 요새 유행하잖아요.
근데 제 아들이 동성제약에 자기가 그 빈대 약을 디자인해서 다 넣었는데
조그만 건 많이 팔렸는데 건강식품하고 처음에 스무 가지밖에 안 시작했는데
아들이 지금은 천 개 정도 물품을 하고, 20평으로 시작했는데 지금 한 6~7년 지나서
150평짜리 그런 건물에다가 사업을 하고 있어요.
근데 그 아들도 어릴 때부터 여름에 나주에 갔었거든요. 휴가를 나주로 해서 항상 돌았어요.
제가 나중에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 모실 때도 “너 모셔야 돼.” “네.” 그래요.
신심이 좋은데, 아들이 올 초에 보건 계약으로 빈대 약을 4만 개를 했대요.
그런데 이게 안 팔리는 거에요. 재고 어떻게 할지 안 팔려가지고 힘들었는데
이 빈대가 터진 겁니다. 지금 그걸 하루에 4천 개씩 막 물량을 공급하고 있는 거예요.
또 한 가지는 저희 남편이 회사 갔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오면
저 어디 제부도 가는 쪽에 회사가 있는데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께 늘 절을 해요.
큰절을 하면서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 저 왔습니다. 오늘도 제가 일을 잘하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딸(아내) 지켜줘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절하고 또 갈 때도 큰절을 해요.
이런 기도를 하기 때문에 저는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 덕분에 정말 남편한테까지
사랑을 많이 받고 있고 저 스스로가 어떤 경우가 돼도 흔들리지 않고 화가 나고
마음에 분심이 들 때 “아버지 어떡하면 좋아요. 해주세요.” 말씀드리면 편안해지고
잘 이루어지는 체험을 수시로 했습니다.
제가 이번에 일을 2년 반 정도 했는데 퇴직금을 탈 상황이 아닌데
보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사장이 저한테 850만 원을 줬어요.
제가 아침에 나가면서 “예수님 저 이거 성사되면은 50만 원 나주에 봉헌하겠습니다.” 했죠.
그래서 제가 봉헌한다는 말씀만 드리면 그게 다 이루어지더라고요.
너무 계산적으로 얘기하는데 그런 실험도 했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과 성모님께 돌려드립니다.
"나를 온전히 신뢰하면서 이 길을 걸어 천상의 나라에 올 때까지
다만 사랑을 위하여 살고 끊임없이 고통을 당할지라도
그 고통을 통하여 사랑의 마음을 보존하여라.
설령 너희가 자유의지로 과오를 범할지라도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너희는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1988년 9월 14일 예수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