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 장부가 ‘아멘’으로 응답하여 회개의 삶으로
1982년 7월 5일, 철야 기도회에 늦지 않으려고 직장에서 돌아온 장부를 재촉했다. 그날 나는 하늘을 나는 듯 기쁜 마음이었다. 그런데 늘 한결같이 순수하게 따라주던 장부가 그날은 짜증 섞인 볼멘 목소리로 “하루라도 좀 안 가면 안 되나?” 하는 것이었다. 장부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내가 살아난 것에 주님께 감사해했지만, 내가 계속 철야기도회를 다니니 피곤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장부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장부가 기쁘게 따라준 셈치고 봉헌하며 ‘언제나 잘 따라주던 장부가 저토록 가기 싫어하는 것을 보니 오늘 받을 은총이 크겠구나.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마귀들이 그 은총을 받지 못하게 하려고 방해를 놓는 것이 틀림없으니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데려가야지.’ 생각했다.
생활의 기도를 봉헌하며 몇 번을 권유했으나 여전히 잘 따라 주지를 않았다. 그래서 나는 죽음에서 나를 살려주신 주님께 너무 죄송하여 “그래, 내가 다시 암에 걸려 죽는다면 그때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 있겠어요? 주님! 차라리 제가 다시 암에 걸려 죽음으로써 남편이 온전히 회개하여 당신의 영광 드러내는 도구로 쓰일 수만 있다면 남편을 위하여 기꺼이 죽겠습니다.” 하고 진심으로 기도했다.
그러자 장부가 깜짝 놀라며 “여보, 미안해. 같이 갈게. 에이, 당신이 죽고 내가 살아있으면 뭐해. 이제 나는 당신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소. 그러니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기도하지 말어, 응?” 했다. 그리고는 오히려 장부가 기도회에 늦겠다며 서둘렀다. 우리 부부는 항상 앞에서 나란히 앉곤 했는데, 이날만은 나는 앞에, 장부는 뒤에 앉게 되었다.
새벽 3시경 기도 중에 ‘엉엉’ 하고 한 형제가 크게 우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바로 그때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던 나에게 옆의 봉사자들이 “율리아! 축하해.” 하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른 내가 “왜요?” 하자, “지금 우는 사람이 율리오씨야!” 하여 돌아다 보았더니 정말로 소리 내어 울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내 남편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오, 주님! 제 기도를 들어주셨군요.”하는데 감사의 이슬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날 피정에는 증언 시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기도회가 끝나자 장부가 느닷없이 앞으로 나가더니 “제가 증언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여 모두들 박수로 환영했다. 장부는 울먹이며 “저는 그동안 죄인이면서도 죄인인 줄도 모르고 살아온 김 율리오입니다.
제 아내 율리아가 말기암으로 고생하고 있는데도, 암에 걸려있는 줄도 모른 채 저는 그저 직장에만 충실했습니다. 제 아내는 8남매의 장남인 저와 결혼하여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도 아내는 불평은커녕 언제나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제 동생들을 친동생들처럼 거두면서 사이좋게 지냈기에 제 남동생은 누나라고까지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말기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는 중에도 자청해서 90세가 넘으신 제 외할머니까지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까지도 아내가 암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단순하게 ‘아내는 원래 착한 성격의 소유자야’ 하면서 그저 마음으로는 고맙게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살갑게 대해주거나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주지 못하고 오히려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는 그렇게 몸이 아프면서도 아프다는 말을 입 밖에도 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못해도 무정한 저를 달래 주고, 오히려 위로해주며 안아주고 안마까지 해주면서 언제나 ‘우리 다시 새로 시작합시다.’ 하고 따뜻이 웃어주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제가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화내지 않고 안마해주는 그녀가 바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아내가 아픈 지 7년 만에 자리에 눕게 되자, 저는 그때에서야 비로소 눈이 조금 뜨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때가 늦어 병원에서도 가망이 없다며 포기하고 아내를 퇴원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함께 살아오는 동안 저와 가족 모두에게 그렇게 사랑만 베풀던 아내에게 저는 따스한 말 한마디 해 주지를 못 했기에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니 정말로 후회가 막심했습니다.”
730. 장부가 ‘아멘’으로 응답하여 회개의 삶으로
1982년 7월 5일, 철야 기도회에 늦지 않으려고 직장에서 돌아온 장부를 재촉했다. 그날 나는 하늘을 나는 듯 기쁜 마음이었다. 그런데 늘 한결같이 순수하게 따라주던 장부가 그날은 짜증 섞인 볼멘 목소리로 “하루라도 좀 안 가면 안 되나?” 하는 것이었다. 장부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내가 살아난 것에 주님께 감사해했지만, 내가 계속 철야기도회를 다니니 피곤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장부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장부가 기쁘게 따라준 셈치고 봉헌하며 ‘언제나 잘 따라주던 장부가 저토록 가기 싫어하는 것을 보니 오늘 받을 은총이 크겠구나.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마귀들이 그 은총을 받지 못하게 하려고 방해를 놓는 것이 틀림없으니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데려가야지.’ 생각했다.
생활의 기도를 봉헌하며 몇 번을 권유했으나 여전히 잘 따라 주지를 않았다. 그래서 나는 죽음에서 나를 살려주신 주님께 너무 죄송하여 “그래, 내가 다시 암에 걸려 죽는다면 그때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 있겠어요? 주님! 차라리 제가 다시 암에 걸려 죽음으로써 남편이 온전히 회개하여 당신의 영광 드러내는 도구로 쓰일 수만 있다면 남편을 위하여 기꺼이 죽겠습니다.” 하고 진심으로 기도했다.
그러자 장부가 깜짝 놀라며 “여보, 미안해. 같이 갈게. 에이, 당신이 죽고 내가 살아있으면 뭐해. 이제 나는 당신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소. 그러니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기도하지 말어, 응?” 했다. 그리고는 오히려 장부가 기도회에 늦겠다며 서둘렀다. 우리 부부는 항상 앞에서 나란히 앉곤 했는데, 이날만은 나는 앞에, 장부는 뒤에 앉게 되었다.
새벽 3시경 기도 중에 ‘엉엉’ 하고 한 형제가 크게 우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바로 그때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던 나에게 옆의 봉사자들이 “율리아! 축하해.” 하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른 내가 “왜요?” 하자, “지금 우는 사람이 율리오씨야!” 하여 돌아다 보았더니 정말로 소리 내어 울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내 남편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오, 주님! 제 기도를 들어주셨군요.”하는데 감사의 이슬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날 피정에는 증언 시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기도회가 끝나자 장부가 느닷없이 앞으로 나가더니 “제가 증언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여 모두들 박수로 환영했다. 장부는 울먹이며 “저는 그동안 죄인이면서도 죄인인 줄도 모르고 살아온 김 율리오입니다.
제 아내 율리아가 말기암으로 고생하고 있는데도, 암에 걸려있는 줄도 모른 채 저는 그저 직장에만 충실했습니다. 제 아내는 8남매의 장남인 저와 결혼하여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도 아내는 불평은커녕 언제나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제 동생들을 친동생들처럼 거두면서 사이좋게 지냈기에 제 남동생은 누나라고까지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말기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는 중에도 자청해서 90세가 넘으신 제 외할머니까지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까지도 아내가 암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단순하게 ‘아내는 원래 착한 성격의 소유자야’ 하면서 그저 마음으로는 고맙게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살갑게 대해주거나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주지 못하고 오히려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는 그렇게 몸이 아프면서도 아프다는 말을 입 밖에도 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못해도 무정한 저를 달래 주고, 오히려 위로해주며 안아주고 안마까지 해주면서 언제나 ‘우리 다시 새로 시작합시다.’ 하고 따뜻이 웃어주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제가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화내지 않고 안마해주는 그녀가 바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아내가 아픈 지 7년 만에 자리에 눕게 되자, 저는 그때에서야 비로소 눈이 조금 뜨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때가 늦어 병원에서도 가망이 없다며 포기하고 아내를 퇴원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함께 살아오는 동안 저와 가족 모두에게 그렇게 사랑만 베풀던 아내에게 저는 따스한 말 한마디 해 주지를 못 했기에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니 정말로 후회가 막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