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나의 온 생애를 통해 위기의 순간 여러 번 말씀을 해주셨지만, 나에게 당신이 예수님이심을 드러내시며 공식적으로 하신 첫 말씀은 말기암을 치유해주실 때였다. “성경을 가까이하여라. 성경은 바로 살아있는 나의 말이니라.” 나는 그 후부터 성경을 예수님으로 생각하고 품에 안고 다니면서 성경 읽기를 즐겨 했다.
예수님께서 ‘성경은 살아있는 나의 말이니라.’ 하신 말씀을 그대로 단순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대화는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질 않는가! 그래서 나는 항상 주님과 대화 나누는 셈 치고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했다. 예수님께서 다정한 목소리로 나에게 직접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기에 성경을 읽을 때면 세상 그 어느 곳에도 맛볼 수 없는 꿀보다 더 단 단맛을 느낄 수 있었다.
바삐 일하느라 여유가 없어도 틈틈이 읽는 성경은 내 영혼의 양식이었고, 끊임없이 바치는 생활의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를 완성시키는 열쇠라고까지 느껴졌다. 그러니 성경은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 당시 천주교는 ‘성서’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였는데도 예수님께서 친히 ‘성경’이라고 표현하셨기에 ‘성경’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성서라고 해도 나는 ‘성경’이라고 불렀다. (훗날 천주교에서 성경으로 공식 명칭이 변경됨) 내가 열병에 걸려 입원했을 때의 일이다. 나주 본당 이요한 회장님이 병문안을 오셨다. 요한 회장님은 나주 본당 원로 신자로 공소 회장님도 몇십 년이나 하시고 매일 미사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니신 아주 열심한 분이시다.
그분은 내게 쾌유를 비는 기도를 해주고 가시겠다며 레지오 수첩에 쓰인 기도문만을 바치시는 것이었다. 성경은 읽지 않으시기에, 나는 예수님께 함께 말씀해 주시기를 청하며 공손하게 “회장님! 기도하실 때 성경은 안 읽으셔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회장님은 생소하다는 듯 “성서는 왜요?” 하고 반문하셨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잖아요.” “그렇죠.” “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라면, 우리가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며 청원하면서 하느님 말씀도 들어야 만이 완전한 대화가 되지 않나요?” “아, 정말 그렇네요. 여든 살 먹은 노인이 세 살 먹은 손자한테도 배울 것이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네요.
60이 넘도록 살아오면서 여러 공소의 회장과 본당 회장까지 해온 내가 갓 세례받은 율리아 자매한테 오늘 새로운 것을 배웠네요. 고마워요.” “아니에요. 제가 가르쳐 드린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말씀이니 주님께 감사드려야지요.”
“어쨌든 주님이 가르쳐 주셨을지라도 율리아 자매를 통해서 가르쳐 주심이니 주님께도 감사하고 자매에게도 감사하지요.” 나는 웃으며 “모든 것 주님께 영광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기쁨에 차 “주여 영광과 찬미를, 주여 영광과 찬미를, 주여 영원히 받으소서!~” 하고 노래하면서 주님께 찬미 찬양을 드렸다.
“주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나이 많은 어르신께 혹 결례가 되지는 않을까?’ 해서 많이 망설이다가 말했는데 겸손하게 받아들이시고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그래, 사랑하는 내 귀여운 작은 아기야! 네가 나의 진리 안에 들어와서 하는 대화이기에 그에게는 겸손의 자양분이 된 것이란다.”
주님께서 나의 온 생애를 통해 위기의 순간 여러 번 말씀을 해주셨지만,
나에게 당신이 예수님이심을 드러내시며 공식적으로 하신 첫 말씀은 말기암을 치유해주실 때였다.
“성경을 가까이하여라. 성경은 바로 살아있는 나의 말이니라.”
나는 그 후부터 성경을 예수님으로 생각하고 품에 안고 다니면서 성경 읽기를 즐겨 했다.
예수님께서 ‘성경은 살아있는 나의 말이니라.’ 하신 말씀을 그대로 단순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대화는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질 않는가! 그래서 나는 항상 주님과 대화 나누는 셈 치고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했다. 예수님께서 다정한 목소리로 나에게 직접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기에
성경을 읽을 때면 세상 그 어느 곳에도 맛볼 수 없는 꿀보다 더 단 단맛을 느낄 수 있었다.
바삐 일하느라 여유가 없어도 틈틈이 읽는 성경은 내 영혼의 양식이었고,
끊임없이 바치는 생활의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를 완성시키는 열쇠라고까지 느껴졌다.
그러니 성경은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 당시 천주교는 ‘성서’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였는데도
예수님께서 친히 ‘성경’이라고 표현하셨기에 ‘성경’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성서라고 해도 나는 ‘성경’이라고 불렀다. (훗날 천주교에서 성경으로 공식 명칭이 변경됨)
💖성경을 읽을 때면 세상 그 어느 곳에도 맛볼 수 없는 꿀보다
더 단 단맛을 느낄 수 있었다. 바삐 일하느라 여유가 없어도 틈틈이 읽는
성경은 내 영혼의 양식이었고, 끊임없이 바치는 생활의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를 완성시키는 열쇠라고까지 느껴졌다. 그러니 성경은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아멘, 감사합니다. 저희는 성부 하느님,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 성모님께서
엄마를 통해서 주신 사랑의 메시지 말씀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지 몰라요.😍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고자 더 갈망하고 한 순간도 놓치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잖아요.” “그렇죠.” “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라면, 우리가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며 청원하면서 하느님
말씀도 들어야 만이 완전한 대화가 되지 않나요?” “아, 정말
그렇네요. 여든 살 먹은 노인이 세 살 먹은 손자한테도 배울
것이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네요. 아멘!!!아멘!!!아멘!!! 감사합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니, 성경을 읽어야 하지요
주님께서 나의 온 생애를 통해 위기의 순간 여러 번 말씀을 해주셨지만, 나에게 당신이 예수님이심을 드러내시며 공식적으로 하신 첫 말씀은 말기암을 치유해주실 때였다. “성경을 가까이하여라. 성경은 바로 살아있는 나의 말이니라.” 나는 그 후부터 성경을 예수님으로 생각하고 품에 안고 다니면서 성경 읽기를 즐겨 했다.
예수님께서 ‘성경은 살아있는 나의 말이니라.’ 하신 말씀을 그대로 단순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대화는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질 않는가! 그래서 나는 항상 주님과 대화 나누는 셈 치고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했다. 예수님께서 다정한 목소리로 나에게 직접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기에 성경을 읽을 때면 세상 그 어느 곳에도 맛볼 수 없는 꿀보다 더 단 단맛을 느낄 수 있었다.
바삐 일하느라 여유가 없어도 틈틈이 읽는 성경은 내 영혼의 양식이었고, 끊임없이 바치는 생활의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를 완성시키는 열쇠라고까지 느껴졌다. 그러니 성경은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 당시 천주교는 ‘성서’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였는데도 예수님께서 친히 ‘성경’이라고 표현하셨기에 ‘성경’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성서라고 해도 나는 ‘성경’이라고 불렀다. (훗날 천주교에서 성경으로 공식 명칭이 변경됨) 내가 열병에 걸려 입원했을 때의 일이다. 나주 본당 이요한 회장님이 병문안을 오셨다. 요한 회장님은 나주 본당 원로 신자로 공소 회장님도 몇십 년이나 하시고 매일 미사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니신 아주 열심한 분이시다.
그분은 내게 쾌유를 비는 기도를 해주고 가시겠다며 레지오 수첩에 쓰인 기도문만을 바치시는 것이었다. 성경은 읽지 않으시기에, 나는 예수님께 함께 말씀해 주시기를 청하며 공손하게 “회장님! 기도하실 때 성경은 안 읽으셔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회장님은 생소하다는 듯 “성서는 왜요?” 하고 반문하셨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잖아요.” “그렇죠.” “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라면, 우리가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며 청원하면서 하느님 말씀도 들어야 만이 완전한 대화가 되지 않나요?” “아, 정말 그렇네요. 여든 살 먹은 노인이 세 살 먹은 손자한테도 배울 것이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네요.
60이 넘도록 살아오면서 여러 공소의 회장과 본당 회장까지 해온 내가 갓 세례받은 율리아 자매한테 오늘 새로운 것을 배웠네요. 고마워요.” “아니에요. 제가 가르쳐 드린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말씀이니 주님께 감사드려야지요.”
“어쨌든 주님이 가르쳐 주셨을지라도 율리아 자매를 통해서 가르쳐 주심이니 주님께도 감사하고 자매에게도 감사하지요.” 나는 웃으며 “모든 것 주님께 영광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기쁨에 차 “주여 영광과 찬미를, 주여 영광과 찬미를, 주여 영원히 받으소서!~” 하고 노래하면서 주님께 찬미 찬양을 드렸다.
“주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나이 많은 어르신께 혹 결례가 되지는 않을까?’ 해서 많이 망설이다가 말했는데 겸손하게 받아들이시고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그래, 사랑하는 내 귀여운 작은 아기야! 네가 나의 진리 안에 들어와서 하는 대화이기에 그에게는 겸손의 자양분이 된 것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