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5년 전, 나주를 처음 오게 되었는데 그때 받은 은총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29년 전쯤 제가 결혼할 당시 천주교 모태 신앙이었고 장부는 개신교 모태 신앙으로 냉담 상태에서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시아버지는 장로이시고 가까운 친척 중에는 목사가 많은 집안이었어요.
제가 천주교인이라는 사실을 아셨지만, 시댁에서는 개신교 신자가 되기를 바라셔서 집안 분위기상 저는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교회를 다니고 있었어요. 평범한 결혼생활을 하면서 딸 둘을 낳았는데 첫째가 4살, 둘째가 2살쯤 되었을 무렵입니다. 장부는 자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리를 옮겨야겠다고 하며 권리금을 많이 받고 가게를 정리했습니다.
더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서 잠시 쉬던 중, 신문을 보게 되었는데 주식이 사상 최대라고 하며 끝도 없이 오를 때였어요. 장부는 저와 상의도 하지 않은 채 대출받은 돈과 가게를 정리하면서 가진 돈을 모두 들고 증권사로 갔습니다. 아무런 지식도 없이 증권사 직원이 추천해 준 한 종목에 모든 돈을 다 투자했어요.
저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언제부터인가 장부는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안절부절해 하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에게 주식 투자 사실을 모두 다 숨기고 이 카드, 저 카드 현금 서비스를 받아 생활비를 주다가 저한테 더 이상 생활비를 줄 수 없을 지경에 와서야 전 재산을 주식에 투자했고 현재 반 토막이 났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좋으니 처분하고 새로 시작하자고 했지만, 장부는 본전 생각에 주식을 팔지 않았어요. 2000년도에 1년간 대폭락 장이 와서 저희가 가지고 있던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전 재산을 다 잃게 되었고 대출금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대출이자 연체와 카드 연체로 은행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십 통의 독촉 전화가 왔었고,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저라도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일을 하려고 하면 아이들이 아프거나 저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 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장부는 충격에 빠져 우울과 무기력감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고, 일을 해결해야 될 의지나 삶에 대한 의지조차 없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장부의 모습을 보고 저는 미움과 원망의 마음이 커져갔습니다.
시간은 자꾸 흘러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 모든 상황이 장부의 탓만 같고, 미래에 대한 근심과 걱정으로 저는 몸도 마음도 병들기 시작했어요. 절망과 좌절로 세상과 단절하며 죽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았어요. 장부 또한 여러 번 자살 충동을 느끼며 삶을 포기하려고도 했어요.
그러던 중 친정엄마가 이런 상황을 아시고 너무 마음 아파하셨고, 성당에 가자고 하셔서 그때부터 시댁과 남편 몰래 성당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친정엄마는 저와 아이들을 데리고 좋다는 피정은 다 데리고 다니셨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괴로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 마지막으로 나주에 피눈물 흘리는 성모님이 계시는데, 그곳에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나주 가는 차 안에서 기도하고 성혈 영상을 보여주었는데 저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이 났고,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 찬 마음들이 조금 누그러드는 듯했어요.
경당에 도착했는데 경당 안에 자리가 없어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친정엄마는 저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겨우 자리를 만들었는데 너무 사람들이 많아 몸을 꼼짝달싹할 수도 없었고, 쪼그리고 앉아 밤을 새웠는데 너무 힘이 들어서 다음부터는 절대로 나주에 안 오겠다고 했어요.
기도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그렇게 밉던 장부가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예쁘게 보이는 거예요. 어제와 오늘은 상황이 변하지 않았는데 뭔지 모를 기쁨이 가슴에 꽉 차면서 너무 기뻤습니다. 제가 너무 이상해서 ‘이게 무슨 일이지?’ 하면서 밖에 나갔어요.
예쁜 하늘이 보이고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고 ‘아,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주변 사람들도 모두 다 예쁘게 보였습니다. 순간 저는 ‘아, 이런 게 천국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모든 근심 걱정이 다 사라졌어요. 너무 행복했습니다. 어둠 속에 있던 제 마음이 천국으로 바뀌면서 매일매일 이렇게 살고 싶었고,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나주를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저의 발길은 매달 나주를 가고 있었고, 나주를 가야지만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나주에서 『님 향한 사랑의 길』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밤새워 읽었습니다. 율리아 엄마께서 살아온 삶을 보고 하염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고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어요.
내가 당하는 고통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율리아 엄마가 당한 고통에 비하면 정말 작게 느껴졌습니다. 나주를 다니면서 우울했던 마음이 없어지고 아픈 몸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두 딸을 위해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고,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집을 처분해 월세로 옮겨 빚을 갚게 되었습니다.
저희도 고통 중에 있었지만 저희 시댁에서도 시누이 부부가 사업에 실패하고 시아버지와 시동생을 하늘나라에 보내는 그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어요.
장부는 아버지와 형제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저는 나주에서 가르쳐주는 영성으로 고통을 봉헌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경제적으로 고통당하며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혼자 울고 또 울며 힘들 때마다 『님 향한 사랑의 길』 책을 읽으며 위로받고 성모님 피눈물 흘리고 예수님 피땀과 가시관 쓰심을 묵상하면서 버텼습니다.
때로는 인간적인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와서 장부와 이혼하고 싶었지만, 나주 성모님의 피눈물과 율리아 엄마의 삶을 보며 체면과 이목, 나의 자존심,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장부와 어린 두 딸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건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것이었어요. 저는 “성모님, 이 아이들 저의 힘으로 키우지 않고 성모님 품 안에서 잘 키워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성당을 매일 내 집같이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주님 성모님 품 안에서 잘 자라게 되었어요.
나주 성모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저는 살아갈 힘이 생겼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직장도 구했습니다. 장부 또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로 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한동안 나주를 오지 못했지만, 나주 성모님께서 주신 은총을 잊을 수가 없어 성모님께 매달 나주를 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새로운 직장을 마련해 주셔서 10년 전부터는 꾸준히 나주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은총은 나주 성모님과 율리아 엄마의 사랑 실천 가르침으로 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저의 가정이 위기에 있을 때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르고, 저 또한 세속과 타협하며 영적으로 눈이 멀고 귀가 멀어 죄가 죄였는지도 모르고 살았을 텐데 나주 성모님을 만나 새로운 영혼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셨습니다. 나주 성모님과 율리아 엄마께 감사드리며 은총 증언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가정에 큰 일을 겪으시며 많은 고통을 받으셨지만 나주에 오셔서 주님, 성모님의 은총과
율리아 엄마의 5대영성의 삶을 통해서 모든 고통을 잘 이겨내심에 존경과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도 주님, 성모님께서 자매님의 가정에 무한하신 축복과 사랑으로 현존으로 함께 하실거라 믿어요. 아멘
"나주 성모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살아갈 힘"이 생기셨네요!
아멘~ 아멘~!
너무도 절망적인 상황,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
단지 나주 성모님 집에 오시게 되었는데,
그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마음의 평화를 누리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는 살아계시며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고 느끼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불목하고 메마른 가정에서 평화와 행복을 심어주시고
성모님의 손길을 통하여 가정이 되살아 났네요.
오늘날에도 수많은 가정들이 이혼과 갖가지 문제에 휩싸여 있지만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과 율리아 엄마의 삶을 통하여
새로운 탄생과 새로운 부활을 맞이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그렇게 밉던 장부가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예쁘게 보이는 거예요. 어제와 오늘은 상황이 변하지 않았는데 뭔지 모를 기쁨이 가슴에 꽉 차면서 너무 기뻤습니다. 제가 너무 이상해서 ‘이게 무슨 일이지?’ 하면서 밖에 나갔어요.
예쁜 하늘이 보이고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고 ‘아,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주변 사람들도 모두 다 예쁘게 보였습니다. 순간 저는 ‘아, 이런 게 천국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모든 근심 걱정이 다 사라졌어요. 너무 행복했습니다. 어둠 속에 있던 제 마음이 천국으로 바뀌면서 매일매일 이렇게 살고 싶었고,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저는 25년 전, 나주를 처음 오게 되었는데 그때 받은 은총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29년 전쯤 제가 결혼할 당시 천주교 모태 신앙이었고 장부는 개신교 모태 신앙으로 냉담 상태에서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시아버지는 장로이시고 가까운 친척 중에는 목사가 많은 집안이었어요.
제가 천주교인이라는 사실을 아셨지만, 시댁에서는 개신교 신자가 되기를 바라셔서 집안 분위기상 저는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교회를 다니고 있었어요. 평범한 결혼생활을 하면서 딸 둘을 낳았는데 첫째가 4살, 둘째가 2살쯤 되었을 무렵입니다. 장부는 자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리를 옮겨야겠다고 하며 권리금을 많이 받고 가게를 정리했습니다.
더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서 잠시 쉬던 중, 신문을 보게 되었는데 주식이 사상 최대라고 하며 끝도 없이 오를 때였어요. 장부는 저와 상의도 하지 않은 채 대출받은 돈과 가게를 정리하면서 가진 돈을 모두 들고 증권사로 갔습니다. 아무런 지식도 없이 증권사 직원이 추천해 준 한 종목에 모든 돈을 다 투자했어요.
저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언제부터인가 장부는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안절부절해 하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에게 주식 투자 사실을 모두 다 숨기고 이 카드, 저 카드 현금 서비스를 받아 생활비를 주다가 저한테 더 이상 생활비를 줄 수 없을 지경에 와서야 전 재산을 주식에 투자했고 현재 반 토막이 났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좋으니 처분하고 새로 시작하자고 했지만, 장부는 본전 생각에 주식을 팔지 않았어요. 2000년도에 1년간 대폭락 장이 와서 저희가 가지고 있던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전 재산을 다 잃게 되었고 대출금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대출이자 연체와 카드 연체로 은행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십 통의 독촉 전화가 왔었고,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저라도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일을 하려고 하면 아이들이 아프거나 저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 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장부는 충격에 빠져 우울과 무기력감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고, 일을 해결해야 될 의지나 삶에 대한 의지조차 없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장부의 모습을 보고 저는 미움과 원망의 마음이 커져갔습니다.
시간은 자꾸 흘러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 모든 상황이 장부의 탓만 같고, 미래에 대한 근심과 걱정으로 저는 몸도 마음도 병들기 시작했어요. 절망과 좌절로 세상과 단절하며 죽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았어요. 장부 또한 여러 번 자살 충동을 느끼며 삶을 포기하려고도 했어요.
그러던 중 친정엄마가 이런 상황을 아시고 너무 마음 아파하셨고, 성당에 가자고 하셔서 그때부터 시댁과 남편 몰래 성당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친정엄마는 저와 아이들을 데리고 좋다는 피정은 다 데리고 다니셨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괴로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 마지막으로 나주에 피눈물 흘리는 성모님이 계시는데, 그곳에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나주 가는 차 안에서 기도하고 성혈 영상을 보여주었는데 저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이 났고,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 찬 마음들이 조금 누그러드는 듯했어요.
경당에 도착했는데 경당 안에 자리가 없어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친정엄마는 저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겨우 자리를 만들었는데 너무 사람들이 많아 몸을 꼼짝달싹할 수도 없었고, 쪼그리고 앉아 밤을 새웠는데 너무 힘이 들어서 다음부터는 절대로 나주에 안 오겠다고 했어요.
기도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그렇게 밉던 장부가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예쁘게 보이는 거예요. 어제와 오늘은 상황이 변하지 않았는데 뭔지 모를 기쁨이 가슴에 꽉 차면서 너무 기뻤습니다. 제가 너무 이상해서 ‘이게 무슨 일이지?’ 하면서 밖에 나갔어요.
예쁜 하늘이 보이고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고 ‘아,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주변 사람들도 모두 다 예쁘게 보였습니다. 순간 저는 ‘아, 이런 게 천국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모든 근심 걱정이 다 사라졌어요. 너무 행복했습니다. 어둠 속에 있던 제 마음이 천국으로 바뀌면서 매일매일 이렇게 살고 싶었고,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나주를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저의 발길은 매달 나주를 가고 있었고, 나주를 가야지만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나주에서 『님 향한 사랑의 길』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밤새워 읽었습니다. 율리아 엄마께서 살아온 삶을 보고 하염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고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어요.
내가 당하는 고통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율리아 엄마가 당한 고통에 비하면 정말 작게 느껴졌습니다. 나주를 다니면서 우울했던 마음이 없어지고 아픈 몸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두 딸을 위해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고,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집을 처분해 월세로 옮겨 빚을 갚게 되었습니다.
저희도 고통 중에 있었지만 저희 시댁에서도 시누이 부부가 사업에 실패하고 시아버지와 시동생을 하늘나라에 보내는 그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어요.
장부는 아버지와 형제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저는 나주에서 가르쳐주는 영성으로 고통을 봉헌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경제적으로 고통당하며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혼자 울고 또 울며 힘들 때마다 『님 향한 사랑의 길』 책을 읽으며 위로받고 성모님 피눈물 흘리고 예수님 피땀과 가시관 쓰심을 묵상하면서 버텼습니다.
때로는 인간적인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와서 장부와 이혼하고 싶었지만, 나주 성모님의 피눈물과 율리아 엄마의 삶을 보며 체면과 이목, 나의 자존심,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장부와 어린 두 딸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건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것이었어요. 저는 “성모님, 이 아이들 저의 힘으로 키우지 않고 성모님 품 안에서 잘 키워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성당을 매일 내 집같이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주님 성모님 품 안에서 잘 자라게 되었어요.
나주 성모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저는 살아갈 힘이 생겼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직장도 구했습니다. 장부 또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로 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한동안 나주를 오지 못했지만, 나주 성모님께서 주신 은총을 잊을 수가 없어 성모님께 매달 나주를 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새로운 직장을 마련해 주셔서 10년 전부터는 꾸준히 나주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은총은 나주 성모님과 율리아 엄마의 사랑 실천 가르침으로 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저의 가정이 위기에 있을 때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르고, 저 또한 세속과 타협하며 영적으로 눈이 멀고 귀가 멀어 죄가 죄였는지도 모르고 살았을 텐데 나주 성모님을 만나 새로운 영혼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셨습니다. 나주 성모님과 율리아 엄마께 감사드리며 은총 증언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5월 4일 릿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