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89년도에 나주에 처음 오게 되었는데 서울에 사는 수녀님께서 나주 소식을 듣고 가보자고 하여 사흘 후에 나주에 처음 오게 되었습니다. 경당에 들어와 보니 성모님께서 눈물을 볼까지 흘리고 계셨고 기도하는 동안 많은 눈물을 흘리셔서 발밑에까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결혼을 하였고 삶이 힘들 때마다 나주 성모님 집에 왔다 갔다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때마다 성모님께서 저를 위로해 주시고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힘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장부와 저는 생활 방식이 많이 달라 저는 많이 울고 살았는데 기도회 때 성모님께서 제 마음속에 사랑이 샘솟는 은총을 주셨고 장부가 갑자기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체험을 기도회 때 자주 하였습니다. 그래서 헤어지지 않고 봉헌하면서 살 수 있었습니다. 메아리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씀처럼 지금은 “저와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고 합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저의 의무는 시댁 식구 영혼 구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시댁 식구는 형제지간이 4남 1녀인데 어머니는 오랫동안 냉담을 하시다 성당 다니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고 시숙님은 유아 세례를 받으시고 오랫동안 냉담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주 성모님께 시댁 식구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봉헌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얼마 뒤에 시숙님께서 첫영성체를 하셨고 시누이와 시동생 부부도 영세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제가 성당에 다니자고 자주 권면을 드렸는데 거절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모님께 아버님 돌아가시기 전에는 꼭 세례를 받게 해 주시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께서 큰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는데 사흘 후에 임종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입원하셨다가 퇴원을 하셨는데 아버님께서 저에게 갑자기 “성당에서 세례를 어떻게 받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가지고 다니던 기적수로 아버님께 대세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은 2년을 더 사셨습니다. 성모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고 주님께서 아버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고 구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 둘째 시숙님 부부는 자주 싸우셔서 성격상 도저히 성당에서 세례받기가 힘드실 것 같아 ‘기도를 그만둘까?’ 생각하다가 엄마께서 하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할 때 메아리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씀을 생각하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둘째 시숙님 부부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1박 2일 부부 모임이 있는데 부부 모임 가면 저는 나주 성모님에 대해서 얘기를 해 주고 성모님 눈물, 피눈물, 기적과 징표에 대해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개신교 자매가 개종을 해서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임 부부들도 거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나주 성모님께 의탁하면서 끝까지 기도한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주 성지에 봉사 다니면서 성모님께서 눈물 흘리시고, 피눈물 흘리시고 온몸을 다 짜내어 향유를 흘려주시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하였고, 제주교구 김창렬 주교님과 교황청 조반니 데르꼴레 몬시뇰께서 오셨을 때 성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리고 경당에서 율리아 엄마 얼굴과 옷에 성혈이 많이 내려오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 11월 9일 십자가의 길에 맨 처음 성혈을 흘리신 날, 아침에 성모님동산에 왔다가 성혈이 내려오신 것을 보고 수거를 하였는데 내려오신 시간부터 수거하는 시간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성혈이 굳지를 않고 방금 흘리신 것처럼 너무 선명하였습니다. 사람의 피는 금방 굳어지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에 제3처 ‘예수님께서 첫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앞에 예수님께서 편태를 받으시고 떨어져 나간 살점이 돌 위에 있는 것을 목격하였고, 9처 앞에는 성혈이 제일 많이 흘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12처 큰 바위 위에 십자가 모양으로 성혈을 흘리셨는데 그 안에는 가시관 쓰시고 피눈물을 흘리시는 성모님께서 계신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갈바리아 십자가 예수님께서 진액을 흘리시고 요한 사도 성상 옷깃에서 진액 흘리는 것을 자주 목격하였고, 기적수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천상의 은총 가루, 금가루, 은가루, 오색찬란한 가루들을 많이 쏟아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징표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목요 성시간과 철야기도를 빠짐없이 다니던 중 2007년도에 ‘한 달만 쉬었다 오자.’ 이렇게 생각하다가 10년이 넘게 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은총 관리를 하지 못하고 자유 의지를 남용할 때 죄를 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은총 장소를 이렇게 떠난 것이 너무 잘못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2019년도에 다시 순례를 할 수 있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다시 순례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마리아의 구원방주 성모님이 계신 모든 징표로 만들어진 은총 이불을 구입해, 자려고 덮었는데 높은 톤의 여성 합창단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마리아의 구원방주 성가였습니다. 제가 부른 것보다 훨씬 더 높은음의 노래였습니다. 성인 성녀들의 합창단 같았습니다. 마리아의 구원방주에 탔으니 절대 내리지 말라는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남동생은 공무원 시험을 2번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네 뜻대로 하지 말고 나주 성모님께 가서 기도하고, 주님 뜻대로 하게 해 주시라고 기도해라.” 얘기를 했는데 성모님께 와서 기도하고 갔습니다. 그리고 다른 과목으로 3개월을 시험 준비를 하였는데 합격을 했습니다. 자신이 공부한 책에서 문제가 거의 다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2문제 틀리고 합격을 했는데 저에게 “나주 성모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 확실하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저희 아이가 보이스 피싱을 당하게 됐는데 거짓말에 속아서 모아둔 돈을 다 주고 또 저축은행 여러 군데에서 대출을 받아서 몇천만 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고통도 사랑이라 생각하고 사랑받은 셈 치고 그 숫자만큼 죄인들이 회개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족들은 일이 잘 해결되도록 서로 도왔습니다.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면서 왔다 갔다 하다 보니까 전국에 피해자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도록 기도했습니다.
경찰서에서 형사님이, 조사를 받으러 오면 서로 싸우고 경찰서가 소란스러운데 저희 가족은 너무나 조용하다고 하면서 아주 좋은 느낌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저희는 5대 영성으로 봉헌하니까 평화를 잃지 않고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5대 영성은 제 삶의 지표입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하면서 받은 가장 큰 은총은 제가 죄만 짓고 살아온 죄인 중에 가장 큰 죄인이라는 것과 장부 탓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다 제 탓이었고 엄마처럼 사랑 실천을 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저를 엄마께서 대속 고통으로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시고 살려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은총에 대한 감사와 찬미를, 성모님을 통해서 주님께 돌려드리며 율리아 엄마께 감사드립니다. 율리아 엄마 사랑합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하면서 받은 가장 큰 은총은 제가
죄만 짓고 살아온 죄인 중에 가장 큰 죄인이라는 것과
장부 탓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다 제 탓이었고 엄마처럼
사랑 실천을 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저를 엄마께서
대속 고통으로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시고 살려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멘!!!아멘!!!아멘!!!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저는 89년도에 나주에 처음 오게 되었는데 서울에 사는 수녀님께서 나주 소식을 듣고 가보자고 하여 사흘 후에 나주에 처음 오게 되었습니다. 경당에 들어와 보니 성모님께서 눈물을 볼까지 흘리고 계셨고 기도하는 동안 많은 눈물을 흘리셔서 발밑에까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결혼을 하였고 삶이 힘들 때마다 나주 성모님 집에 왔다 갔다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때마다 성모님께서 저를 위로해 주시고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힘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장부와 저는 생활 방식이 많이 달라 저는 많이 울고 살았는데 기도회 때 성모님께서 제 마음속에 사랑이 샘솟는 은총을 주셨고 장부가 갑자기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체험을 기도회 때 자주 하였습니다. 그래서 헤어지지 않고 봉헌하면서 살 수 있었습니다. 메아리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씀처럼 지금은 “저와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고 합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저의 의무는 시댁 식구 영혼 구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시댁 식구는 형제지간이 4남 1녀인데 어머니는 오랫동안 냉담을 하시다 성당 다니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고 시숙님은 유아 세례를 받으시고 오랫동안 냉담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주 성모님께 시댁 식구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봉헌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얼마 뒤에 시숙님께서 첫영성체를 하셨고 시누이와 시동생 부부도 영세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제가 성당에 다니자고 자주 권면을 드렸는데 거절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모님께 아버님 돌아가시기 전에는 꼭 세례를 받게 해 주시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께서 큰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는데 사흘 후에 임종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입원하셨다가 퇴원을 하셨는데 아버님께서 저에게 갑자기 “성당에서 세례를 어떻게 받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가지고 다니던 기적수로 아버님께 대세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은 2년을 더 사셨습니다. 성모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고 주님께서 아버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고 구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 둘째 시숙님 부부는 자주 싸우셔서 성격상 도저히 성당에서 세례받기가 힘드실 것 같아 ‘기도를 그만둘까?’ 생각하다가 엄마께서 하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할 때 메아리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씀을 생각하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둘째 시숙님 부부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1박 2일 부부 모임이 있는데 부부 모임 가면 저는 나주 성모님에 대해서 얘기를 해 주고 성모님 눈물, 피눈물, 기적과 징표에 대해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개신교 자매가 개종을 해서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임 부부들도 거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나주 성모님께 의탁하면서 끝까지 기도한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주 성지에 봉사 다니면서 성모님께서 눈물 흘리시고, 피눈물 흘리시고 온몸을 다 짜내어 향유를 흘려주시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하였고, 제주교구 김창렬 주교님과 교황청 조반니 데르꼴레 몬시뇰께서 오셨을 때 성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리고 경당에서 율리아 엄마 얼굴과 옷에 성혈이 많이 내려오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 11월 9일 십자가의 길에 맨 처음 성혈을 흘리신 날, 아침에 성모님동산에 왔다가 성혈이 내려오신 것을 보고 수거를 하였는데 내려오신 시간부터 수거하는 시간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성혈이 굳지를 않고 방금 흘리신 것처럼 너무 선명하였습니다. 사람의 피는 금방 굳어지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에 제3처 ‘예수님께서 첫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앞에 예수님께서 편태를 받으시고 떨어져 나간 살점이 돌 위에 있는 것을 목격하였고, 9처 앞에는 성혈이 제일 많이 흘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12처 큰 바위 위에 십자가 모양으로 성혈을 흘리셨는데 그 안에는 가시관 쓰시고 피눈물을 흘리시는 성모님께서 계신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갈바리아 십자가 예수님께서 진액을 흘리시고 요한 사도 성상 옷깃에서 진액 흘리는 것을 자주 목격하였고, 기적수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천상의 은총 가루, 금가루, 은가루, 오색찬란한 가루들을 많이 쏟아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징표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목요 성시간과 철야기도를 빠짐없이 다니던 중 2007년도에 ‘한 달만 쉬었다 오자.’ 이렇게 생각하다가 10년이 넘게 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은총 관리를 하지 못하고 자유 의지를 남용할 때 죄를 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은총 장소를 이렇게 떠난 것이 너무 잘못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2019년도에 다시 순례를 할 수 있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다시 순례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마리아의 구원방주 성모님이 계신 모든 징표로 만들어진 은총 이불을 구입해, 자려고 덮었는데 높은 톤의 여성 합창단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마리아의 구원방주 성가였습니다. 제가 부른 것보다 훨씬 더 높은음의 노래였습니다. 성인 성녀들의 합창단 같았습니다. 마리아의 구원방주에 탔으니 절대 내리지 말라는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남동생은 공무원 시험을 2번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네 뜻대로 하지 말고 나주 성모님께 가서 기도하고, 주님 뜻대로 하게 해 주시라고 기도해라.” 얘기를 했는데 성모님께 와서 기도하고 갔습니다. 그리고 다른 과목으로 3개월을 시험 준비를 하였는데 합격을 했습니다. 자신이 공부한 책에서 문제가 거의 다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2문제 틀리고 합격을 했는데 저에게 “나주 성모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 확실하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저희 아이가 보이스 피싱을 당하게 됐는데 거짓말에 속아서 모아둔 돈을 다 주고 또 저축은행 여러 군데에서 대출을 받아서 몇천만 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고통도 사랑이라 생각하고 사랑받은 셈 치고 그 숫자만큼 죄인들이 회개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족들은 일이 잘 해결되도록 서로 도왔습니다.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면서 왔다 갔다 하다 보니까 전국에 피해자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도록 기도했습니다.
경찰서에서 형사님이, 조사를 받으러 오면 서로 싸우고 경찰서가 소란스러운데 저희 가족은 너무나 조용하다고 하면서 아주 좋은 느낌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저희는 5대 영성으로 봉헌하니까 평화를 잃지 않고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5대 영성은 제 삶의 지표입니다.
제가 나주 성모님께 순례하면서 받은 가장 큰 은총은 제가 죄만 짓고 살아온 죄인 중에 가장 큰 죄인이라는 것과 장부 탓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다 제 탓이었고 엄마처럼 사랑 실천을 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저를 엄마께서 대속 고통으로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시고 살려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은총에 대한 감사와 찬미를, 성모님을 통해서 주님께 돌려드리며 율리아 엄마께 감사드립니다. 율리아 엄마 사랑합니다.
2025년 4월 5일 문 율리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