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지부 전혜원 릴리아나입니다.
지난날 너무나 힘들어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했던 그 아픔들을
나주 성모님께서 함께해 주시고 율리아님의 사랑의 기도로 제 아픔을 치유받았어요.
저희는 아빠 일 관계로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도인 리야드에 나가서 살게 됐었고
그곳에서 외국인 학교를 다니다가, 한국 초등학교에 전학했습니다.

그 후, 아빠의 장기 출장이 이어지다가 제가 2학년 되던 해에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여동생만 데리고 부모님께서 다시 사우디로 나가셨고, 저와 두 살 위인 오빠와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맡으셨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계실 때는 그렇게 자상하시던 할머니께서 부모님이 출국을 위해
공항으로 떠난 그 순간부터, 갑자기 돌변하셔서 저를 구박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함께 남겨진 오빠도 합세를 해서 그때부터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지요.
제가 가만히 있어도, 뭘 해도,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일거수일투족,
아니 제 존재 자체가 할머니와 오빠한테는 그렇게도 눈에 가시였나 봅니다.
오빠가 먼저 원인 제공을 해서 저랑 다투게 돼도, 항상 모든 것은 결국 다
제 잘못으로 돌아왔고, 할머니는 송충이처럼 발이 여러개 달린 버러지 보면 징그러운 것처럼,
저만 보면 그렇게 징그럽다 하셨고, 제 트레이드 마크는 늘 '못돼 쳐먹은 년'이었습니다.

오빠는 오빠대로 제가 실수를 하거나, 뭘 잘못하면 "할머니~ 얘 좀 보래요."
일러바치는데 1초도 안 걸렸고, 그러면 할머니는 눈썹을 휘날리며 나타나셔서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저를 야단치곤 하셨어요.
오빠는 늘 귀한 장손에, 귀한 손자라는 이유로 할머니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못돼 쳐먹은 년의 진수를 보여주자.'
이런 반항심에 하루가 멀다 하고 독하게 오빠랑 싸웠습니다.
뭐, 제가 뭘 해도, 가만히 있어도 어차피 모든 것은 다 제 잘못이니까요..
오빠가 저 때문에 속상해서 울면서 할머니한테 일러바치면, 할머니한테 야단을 맞긴 해도
한편으로는 그 두 사람 속을 뒤집어 놨다는 사실에 속으로 뿌듯하기도 했을 정도로
저를 힘들게 했어요.

그렇게 억울해도 어디에 호소 할 곳도 없었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식구들 사이에서 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었습니다.
가끔 억울해서 오빠한테 대들다가 뺨도 여러 번 맞았습니다.
방학 때 잠깐 부모님이 귀국하셨을 때, 할머니가 나만 미워한다고 말씀드려 봤지만,
저를 사랑해서 야단치시는 것을 그렇게 비뚤어진 생각으로 받아들이면 안된다며
오히려 저만 혼나곤 했습니다.

'그래, 결국 또 내 탓이다. 다 내 잘못이다.'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는구나.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그런 생각도 수없이 했어요.
부모님한테 조차 외면당한 내 억울함! 그 당시, 저는 이렇게 상상하곤 했어요.
누군가..이 모든 것을 낱낱이 지켜보는 누군가 있다면, 이 세상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만은 나를 이해해 줄 거라고.. 보이지는 않지만..
^^네..그래요!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다 지켜보고 계셨고, 함께 아파하고 계셨던 거에요.

그래서, 메시지 말씀을 읽다가 "아멘!"으로 응답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저를
품에 안아주시고 제 상처를 치유하여 주시어, 평생 용서를 할래야 할 수 없었던,
지옥도 당신한테는 아깝다고 그렇게 할머니를 증오하며 용서하지 못했던 제가
할머니를 용서할 수 있게 해주신 거였어요.
그리고, 제가 있음으로 인해서 할머니랑 오빠가 저를 그렇게 미워한 거니까,
이 또한 제 탓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셨어요.
저희 할머니는 불교신자였는데, 부처를 믿기 보다는 다니던 절에
신들린 어느 여자의 말에 목숨을 걸고 그 여자가 기도가 필요하다고 하면,
살림에 써야되는 생활비까지도 엄마한테 요구하셔서 그 여자한테
아낌없이 갖다 바치곤 하셨습니다.
고모의 설득에 못 이겨서 할머니께서 결국 개신교로 개종은 하셨지만,
진정 마음 속에 하느님을 섬기진 못했고, 8년간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것이 먼 훗날,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저를 불러주실 것을 미리 알고 있던 마귀들이 저를 엄청 미워해서
가까운 가족을 통하여 그토록 악랄하게 괴롭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율리아님께서도 저희 각자가 모두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이라고 하셨듯이..
그리고, 언젠가 11시 쯤 뜬금없이 오빠로부터 온 한통의 문자!
'부모님 사우디 가시고 둘이 있을 때 너무 때리고 보호해 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30년도 지난 일에 대해서 처음으로 저한테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내 온 오빠에게
저는 괜찮다고.. 마귀가 나를 엄청 미워해서 가까운 가족 통해서 그런 거라고..

난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고..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다 지켜보시고 함께 아파하셨다고..
그 때 내가 느꼈던 억울함, 지독한 외로움, 모욕감을 통해서 예수님 마음이 어떠실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고.. 그래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그러니까, 더 이상 그 일로 나한테 미안해 하지 말라고.. 그렇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이 은총 넘치는 어느 해 사순시기! 오빠한테 회개의 은총을 허락하신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율리아님의 고통과 희생을 통하여, 상처투성이였던 저를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불러주시어, 치유하여 주시고, 회개와 용서의 은총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은총의 통로가 되어주시는 율리아 자매님께도 너무나 감사드려요.
엄마~~~무지무지 사랑해여~*
수원지부 전혜원 릴리아나입니다.
지난날 너무나 힘들어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했던 그 아픔들을
나주 성모님께서 함께해 주시고 율리아님의 사랑의 기도로 제 아픔을 치유받았어요.
저희는 아빠 일 관계로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도인 리야드에 나가서 살게 됐었고
그곳에서 외국인 학교를 다니다가, 한국 초등학교에 전학했습니다.
그 후, 아빠의 장기 출장이 이어지다가 제가 2학년 되던 해에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여동생만 데리고 부모님께서 다시 사우디로 나가셨고, 저와 두 살 위인 오빠와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맡으셨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계실 때는 그렇게 자상하시던 할머니께서 부모님이 출국을 위해
공항으로 떠난 그 순간부터, 갑자기 돌변하셔서 저를 구박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함께 남겨진 오빠도 합세를 해서 그때부터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지요.
제가 가만히 있어도, 뭘 해도,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일거수일투족,
아니 제 존재 자체가 할머니와 오빠한테는 그렇게도 눈에 가시였나 봅니다.
오빠가 먼저 원인 제공을 해서 저랑 다투게 돼도, 항상 모든 것은 결국 다
제 잘못으로 돌아왔고, 할머니는 송충이처럼 발이 여러개 달린 버러지 보면 징그러운 것처럼,
저만 보면 그렇게 징그럽다 하셨고, 제 트레이드 마크는 늘 '못돼 쳐먹은 년'이었습니다.
오빠는 오빠대로 제가 실수를 하거나, 뭘 잘못하면 "할머니~ 얘 좀 보래요."
일러바치는데 1초도 안 걸렸고, 그러면 할머니는 눈썹을 휘날리며 나타나셔서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저를 야단치곤 하셨어요.
오빠는 늘 귀한 장손에, 귀한 손자라는 이유로 할머니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못돼 쳐먹은 년의 진수를 보여주자.'
이런 반항심에 하루가 멀다 하고 독하게 오빠랑 싸웠습니다.
뭐, 제가 뭘 해도, 가만히 있어도 어차피 모든 것은 다 제 잘못이니까요..
오빠가 저 때문에 속상해서 울면서 할머니한테 일러바치면, 할머니한테 야단을 맞긴 해도
한편으로는 그 두 사람 속을 뒤집어 놨다는 사실에 속으로 뿌듯하기도 했을 정도로
저를 힘들게 했어요.
그렇게 억울해도 어디에 호소 할 곳도 없었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식구들 사이에서 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었습니다.
가끔 억울해서 오빠한테 대들다가 뺨도 여러 번 맞았습니다.
방학 때 잠깐 부모님이 귀국하셨을 때, 할머니가 나만 미워한다고 말씀드려 봤지만,
저를 사랑해서 야단치시는 것을 그렇게 비뚤어진 생각으로 받아들이면 안된다며
오히려 저만 혼나곤 했습니다.
'그래, 결국 또 내 탓이다. 다 내 잘못이다.'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는구나.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그런 생각도 수없이 했어요.
부모님한테 조차 외면당한 내 억울함! 그 당시, 저는 이렇게 상상하곤 했어요.
누군가..이 모든 것을 낱낱이 지켜보는 누군가 있다면, 이 세상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만은 나를 이해해 줄 거라고.. 보이지는 않지만..
^^네..그래요!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다 지켜보고 계셨고, 함께 아파하고 계셨던 거에요.
그래서, 메시지 말씀을 읽다가 "아멘!"으로 응답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저를
품에 안아주시고 제 상처를 치유하여 주시어, 평생 용서를 할래야 할 수 없었던,
지옥도 당신한테는 아깝다고 그렇게 할머니를 증오하며 용서하지 못했던 제가
할머니를 용서할 수 있게 해주신 거였어요.
그리고, 제가 있음으로 인해서 할머니랑 오빠가 저를 그렇게 미워한 거니까,
이 또한 제 탓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셨어요.
저희 할머니는 불교신자였는데, 부처를 믿기 보다는 다니던 절에
신들린 어느 여자의 말에 목숨을 걸고 그 여자가 기도가 필요하다고 하면,
살림에 써야되는 생활비까지도 엄마한테 요구하셔서 그 여자한테
아낌없이 갖다 바치곤 하셨습니다.
고모의 설득에 못 이겨서 할머니께서 결국 개신교로 개종은 하셨지만,
진정 마음 속에 하느님을 섬기진 못했고, 8년간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것이 먼 훗날,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저를 불러주실 것을 미리 알고 있던 마귀들이 저를 엄청 미워해서
가까운 가족을 통하여 그토록 악랄하게 괴롭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율리아님께서도 저희 각자가 모두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이라고 하셨듯이..
그리고, 언젠가 11시 쯤 뜬금없이 오빠로부터 온 한통의 문자!
'부모님 사우디 가시고 둘이 있을 때 너무 때리고 보호해 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30년도 지난 일에 대해서 처음으로 저한테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내 온 오빠에게
저는 괜찮다고.. 마귀가 나를 엄청 미워해서 가까운 가족 통해서 그런 거라고..
난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고..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다 지켜보시고 함께 아파하셨다고..
그 때 내가 느꼈던 억울함, 지독한 외로움, 모욕감을 통해서 예수님 마음이 어떠실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고.. 그래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그러니까, 더 이상 그 일로 나한테 미안해 하지 말라고.. 그렇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이 은총 넘치는 어느 해 사순시기! 오빠한테 회개의 은총을 허락하신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율리아님의 고통과 희생을 통하여, 상처투성이였던 저를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불러주시어, 치유하여 주시고, 회개와 용서의 은총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은총의 통로가 되어주시는 율리아 자매님께도 너무나 감사드려요.
엄마~~~무지무지 사랑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