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영상“35세에 난치병, 자율 신경 이상, 급성 치매, 5개월 만에 완치!”

운영진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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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삶에서 가장 큰 기적은 나주 순례! -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저는 2015년 10월부터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의학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뇌의 이상으로 35세의 나이에 난치병을 진단받았습니다. 증상은 자율신경 이상과 급성 치매가 왔었습니다. 그래서 운전하는 것도 힘들었고 차를 주차해 놓아도 어디다 주차했는지 기억을 못 해서 1시간을 헤매고 다닌 적이 있었어요.

 

점점 증세가 심해지니까 이제 아이들 얼굴도 기억이 안 나고 이제 이름도 기억이 안 나고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으니까 ‘이제 내가 죽을 날만 남았구나.’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언니를 먼저 이제 하늘나라로 보냈거든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가 마음에 걸려서 더 정신이 없기 전에 엄마한테라도 내 마음을 좀 전해야겠다 싶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제 증상을 말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제가 아프다고도 말을 안 했었어요.

 

그런데 말씀을 드리니까 저희 어머니께서는 무속 신앙이랑 이런 불교 쪽으로 되게 많이 믿으셨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여기저기 다 여쭤보니까 굿 같은 걸 해야 되고 돈이 3천만 원 들고 막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저는 “그걸 하지 말아라. 내가 알아서 하겠다.” 죽어도 이제 제 종교로 해서 죽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세례를 받고 10년 정도 결혼 생활하면서 거의 냉담 중이었어요.


그래서 성당에 갔는데 그냥 병원에 가고 안 되면 정신병원에 가라고 하는 사람들 대답을 듣고 (기도 한 번 못 받음.) 요양원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희 아이들 나이가 3살, 6살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인터넷을 막 뒤져보니까 나주 성모님 관련된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읽고 정말 힘들게, 힘들게 차를 끌고 와서 그때 (2015년 10월 19일)부터 나주 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제 증상이 소름 돋고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증상이었습니다. 잠을 거의 자지를 못했었고 그런데 (11월 첫 토요일) 율리아 엄마께서 “벌레가 다 기어가는 것 같다.” 이렇게 말씀을 하셔서 옆에 있는 자매님께서 “아멘!” 하라고 저는 그때 이제 의미도 모르고 그냥 “아멘” 했는데 제가 5개월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저는 개과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정말 개과천선했거든요. 그전에 제 삶은 진짜 나를 지키는 건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진짜 독으로 살았고 악으로 갚았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고 삶을 원망했고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정말 부정적이었어요. 사실은 돌아가신 언니가 되게 천재셨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천덕꾸러기로 자랐고 부모님께서 차별을 굉장히 많이 하셨어요. 초등학교 때는 집이 원체 어렵고 가난하고 IMF 타격을 100% 받아서 되게 힘들었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학교 폭력을 제가 굉장히 오래 당했어요. 한 2년 정도. 그 수위가 얼굴에 멍이 들지 않는 날이 없었어요.

 

그리고 피가 날 정도로 맞고. 그런데 그 어린 나이에도 집에 가면 엄마한테 혼날까 봐 바닷물에 얼굴 씻고 가고 저는 부모님한테 제가 맞는다는 소리를 하지 못했어요. 왜냐? 병원비가 더 많이 든다고 엄마가 화를 내시니까 말을 못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 제 마음에는 ‘착하고 선한 것은 나랑 맞지 않다. 나는 독으로 살아야 된다’라고 생각을 했고 정말 못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에서 살아났고 살아남과 동시에 대가가 없는 진정한 선함을 배웠습니다.


저는 결혼 후에도 산후우울증하고 갖가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이 왔었어요. 저희 남편이 기술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셔서 월급이 굉장히 적었는데 아이한테 드는 돈이 너무 많다 보니까 친정어머니께서 식당에서 일하면서 10년 동안 저희한테 생활비도 대주고 아이 기저귓값 뭐 다 대셨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저는 성인이 돼서 부모님한테 돈을 빌려본 적이 없고 19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고 뭐든지 다 제가 스스로 해결을 했었는데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 이게 막히니까 자존심이 상하고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무기력도 왔고 산후우울증도 되게 심하게 왔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병을 얻게 됐고 그런 제가 율리아 엄마의 대속 고통을 통해서 기적적으로 병이 나았습니다. 그 뒤로 『님 향한 사랑의 길』을 매일 읽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주머니에 생활의 기도 책을 들고 다니면서 외웠어요. 항상 운전할 때나 차를 탈 때나 책을 보면서 달달달 외우면서 했었어요.


그리고 율리아 엄마 말씀하실 때 졸지 않고 들었고 그때 제가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배우지 못했던 사랑 그리고 저는 제 자신을 용서하는 데 3년이 걸렸습니다. 3년 동안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엄마 말씀 중에 항상 들으면 ‘왜 나는 저렇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되는 건데, 나는 왜 그렇게 분노와 미움으로 살았을까?’ 그래서 먹구름이 가득했던 제 머리가 이제 맑게 개는 것처럼 5대 영성에 대해서 배우면서 제가 변화되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용서에 대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항상 율리아 엄마께서 말씀하시면 이제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 다 데리고 나오라고 하시잖아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생각이 드는 게 ‘나는 용서할 수 있는데 내가 용서받지를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두려움이 되게 왔었어요. 그래서 제가 순례 1년 차일 때인 것 같아요. 남편을 되게 미워했었습니다.


결혼할 때는 몸고생은 시켜도 마음고생은 안 시키겠다고 했는데 마음고생을 너무 시키니까 너무 힘들었었습니다. 그런데 내 탓 영성을 배우고 난 다음에 제가 순례 1년 차일 때 남편에게 제가 엎드려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한테도 절을 했어요. 너무 힘들다 보니까 평소에 아이들한테 굉장히 화도 많이 냈고 짜증도 많이 냈었거든요.

 

그래서 엄마를 용서해 줬으면 좋겠다고 절을 했고 그러다 보니까 저희 남편도 첫 토 순례할 때는 가라고 했고 오늘도 같이 왔습니다. 저희 남편은 참고로 비신자입니다. 그런데도 오셨어요. 또 은총받은 게 너무 많아요. 저희 친정어머니는 딱 한 번 저랑 같이 2015년도 10월에 오셨거든요. 오시고 너무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무릎 수술을 하셔야 되는데 수술하러 들어가시기 전에 다 검사를 하잖아요. 어머니가 매년 복부 초음파를 하셨는데 아무 이상이 없으셨거든요. 그런데 위에서 암이 발견됐었어요.

 

그런데 그 크기가 딱 5cm인데 1cm만 더 컸어도 쓸개, 췌장 다 떼내야 되는데 딱 5cm에 걸리셔서 수술을 잘 받으시고 지금은 완치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23년간 아버지에게 맞고 사셨고 자식을 먼저 보냈고 남편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분에게 갔지만 한 번도 원망하지 않으셨던 분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의 암 완치는 완치 판정은 저한테 굉장히 아주 큰 기적이고 주님, 성모님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희 어머니께 카카오톡으로 매일 율리아 엄마의 말씀 묵상을 제가 보내드리면 거기서 5대 영성을 배우세요. 이제 저희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셨는데 용서하시고 받아들이셔서 두 분 지금 잘 사시는데 거기에 자꾸 5대 영성을 말씀하시면서 “내가 오늘 이렇게 셈 쳤다.” “내가 오늘 이렇게 아멘으로 했다.”

 

이렇게 말씀하실 때마다 제가 여기 순례를 한 게 ‘정말 저한테는 기적이었구나’라고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저희 둘째 아이가 언어장애가 있습니다. 조음 장애라고 해서 발음 장애인데 엄청 심했어요. 다섯 살 때까지 엄마 발음도 제대로 못 했어요.

 

그런데 3살 때 순례 오고 엄마께서 처음 뽀뽀 해주고 난 다음에 아이가 그 한 달 동안 굉장히 좋아졌어요. 말이 갑자기 확 늘었어요. 엄마께서 항상 아이에게 뽀뽀를 해주시는데 지금은 아이가 정말 영특해졌고 말을 너무 잘합니다.

 

아이 : “안녕하세요. 율리아 할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제가 또 받은 은총은 나주에서 살아난 이후에 제가 또 너무 신나 몸을 무리해서 허리가 나갔습니다. 그래서 세 번이나 허리 시술을 받고 어느 정도 심했냐면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고 다녔어요. 그래서 십자가의 길 할 때도 도저히 걷지를 못해서 거의 기어서 한 적도 있고 흔한 운동화도 신지를 못해서 스프링 신발을 5년 넘게 신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만남을 할 때 저는 말씀을 안 드렸는데 율리아 엄마께서 제 허리에 뽀뽀를 한 번 해주셨어요.

 

전혀 기억을 못 하고 있다가 지금은 제가 어느 정도 좋아졌냐면 일반 운동화를 신고 가끔씩 힐을 신고 하루 종일 걸어도 허리가 이제 안 아프고 근육통으로 병원에 가서 허리 사진을 찍으면 분명히 3번 시술해서 흔적이 남아 있어야 되는데 하나도 없고 너무 깨끗하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성모님께 정말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또 다른 은총은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 성화를 모시게 된 은총인데 당시 저는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을 집에 모실 형편이 안 됐어요. 왜냐하면 남편이 돈 관리를 다 하기 때문에 제 월급을 다 가져갑니다. 그래서 고민, 고민하고 있다가 너무 모시고 싶은데 못 모시니까 너무 속상했어요.

 

그래서 묵주기도도 했었는데 이틀 정도 지났을 때 제 통장에 정확히 130만 원이 찍혔습니다. 알고 보니까 건강보험료 환급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의료비가 들어와서 저는 바로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을 저희 집 가운데 딱 모실 수 있었습니다. 아멘!

또 다른 은총은 제가 20살 때 심장병이 있었는지 모르고 있다가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갔다가 중환자실에 갔습니다. 그 당시 상태가 심장이 돌지 않아서 피검사를 하려고 주사기를 꽂으면 물이 나왔어요. 그래서 걸어서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3일 동안 혼수 상태에 있다가 수혈을 9개 하고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심장이 안 좋아서 부정맥도 있고 그랬었는데 제가 부정맥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고 감기약을 먹고 심장마비가 새벽에 왔어요. 식구들 깨워야 되는데 너무 고통이 심하다 보니까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너무 감사한 게 항상 제가 은총 묵주를 팔에 감고 잡니다. 너무 아파서 살려달라고 말도 안 나오니까 은총 묵주를 팔에 감고 이렇게 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은총 묵주에서 장미향기가 엄청 나면서 온 집안에 장미향기가 나는 거예요. 이렇게 막 대고 한 5분? 몇 분 지난 것 같아요. 그런데 통증이 싹 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남편을 깨워서 다음 날 같이 병원에 갔어요.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왜 부정맥이 있다고 말을 하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과하게 처방을 하게 했냐? 지금이라도 병원 가서 제대로 정밀 검사를 받아야 된다.”고 하셨는데 안 아프니까 저는 그냥 웃으면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또 한 번 저를 살려주셨고 그날 밤새 감사하면서 울었습니다. 저를 몇 번이나 살려주셨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코로나 때 우울증이 굉장히 심하게 왔습니다. 제가 너무 이제 힘드니까 술을 마시고 방에 혼자 들어갔는데 마침 옆에 이제 커터 칼이 보이길래 제가 손목을 엄청 세게 여러 번 긋고 난 다음에 기억이 없어요.


그런데 아침에 남편이 저를 깨웠는데, 어느 정도 심각했냐면 피가 온 방에 다 튀어 있고 성모님상에도 피가 다 튀었고 이불엔 피가 너무 많이 튀어 이불을 버려야 되는 상황이고 제 옷에도 피가 엄청 심하게 있었어요. 제가 봤을 때 출혈이 굉장히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남편이 놀라서 제 손목을 이렇게 살펴보는데 진짜 살짝 긁힌 것처럼만 돼 있었어요. 그리고 딱지가 앉아 있었어요. 누가 보면 이게 칼로 긁었다는 흔적이 없을 정도로 너무 가볍게. 그래도 급한 마음에 응급실을 갔더니 응급실에서 이런 걸로 오지 말라고.

 

파상풍 주사만 맞고 올 정도로. 그런데 정말 심각했습니다. 방이 온통 피였어요. 그래서 또 살려주셨어요. 저를 몇 번이나 살려주시는지 감사해요. 그리고 우울증도 사라지고 지금 건강하게 매일 아주 감사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은총은 제가 세상에서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저는 저희 아버지라고 말을 합니다. 저한테는 큰 십자가였어요. 저희 언니가 천재이다 보니까 언니한테 다 올인하셨고 저한테는 어떠한 지원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림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고 대학은 가고 싶은데 가지 말라고 하시고, 그래서 19살 때부터 부모님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모았습니다. 그래서 독학으로 그림을 해서 예술대학교에 갔어요. 아버지께서는 자식한테 돈을 쓰는 것을 굉장히 인색하셨고 남한테 돈을 쓰는 것에 인색하지 않으셨습니다.

 

노름도 하셨고 몇 번 바람도 피우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돈이 없으면 제가 돈을 대야 했습니다. 저는 그게 너무 한이 맺혔고 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는 장례식장에도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상주였고 이제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교를 제가 잠시 접었습니다. 당시 일본에 유학을 가려고 1년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3개 이상 뛰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새벽까지 일을 하고 모았던 돈으로 언니 장례식을 치르고 어머니를 달래가면서 혼자서 그렇게 상을 치렀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도 저희 아버지는 (저랑) 저희 엄마를 저랑 내버려두시고 본인의 삶을 사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저한테는 용서할 수 없는 십자가였어요.

제가 아버지를 용서하게 된 것은 저 오로지 정말 나주 성모님 덕분입니다. 나주 성모님, 율리아 엄마 덕분에 제가 용서하는 방법을 배웠고 제 자신을 돌아보고 제가 개과천선을 하고 저를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기 때문에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아버지 칠순 잔치를 제가 아주 크게 해드렸는데 남편에게 손 빌리기가 그래서 낮에는 본업 회사를 다니고 새벽까지 편의점 알바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돈 가지고 아버지 칠순 잔치를 해드렸는데 작년 설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절대로 본인 입에서 그렇게 말을 하실 분이 아닌데 저한테 오시더니 “정말 내가 너한테 해 준 게 없어서 미안했다. 나를 용서해다오.”라고 말을 하셨어요. 그래서 그때 제가 사십 평생 가슴에 묻어둔 한이 사라지면서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제 삶에서 정말 가장 큰 기적은 여기 이곳(나주)을 순례하는 거고, 나주 성모님을 알게 되고 늘 기도해 주시는 율리아 엄마 덕분이고 하루하루가 은총이고 감사입니다. 나주 성모님을 알기 전에 하늘을 보면 그냥 답답한 하늘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순례하면서 하늘을 볼 때마다 정말 너무 기쁘고 그 하늘을 보면서 생활의 기도를 바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습니다. 한 번씩은 흔들리고 교만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내가 가야 할 마지막이 바로 이제 저기 천국임을 알기에 힘이 들어 주저앉아도 다시 한번 일어나서 새롭게 시작합니다.


이 용기를 갖게 해 주신 주님, 성모님,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고통과 기도를 통해 이 죄인이 새 생명을 얻게 해 주신 율리아 엄마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2024년 4월 6일 아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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