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92년도에 처음 왔다가 2018년 피눈물 흘리신 기념일에 오면서 그전까지 두통약을 하루에 네 알을 먹어도 안 낫고, 다섯 알을 먹어도 안 먹고, 그러다가 구토가 나서 토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드러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했었는데,2018년도에 제 모든 약들을 봉헌하면서 이렇게 말짱히 주님, 성모님께서 살려주셔서 이 자리에 또 이렇게 은총 증언을 하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은총 증언 나눌까 합니다.
저희 시아버님이 지금 아흔하나 되시네요. 치매를 앓고 계셨어요. 그래서 갈수록 상태가 좀 심해지셨는데 갑자기 아버님 사라지셨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아버님은 인천에 계시는데, 인천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치매를 앓고 있거나 또 치매 가족을 돌보고 계시는 분들이 얼마나 아프고 힘들고 그런 걸 더 잘 아실 거예요. 저희도 어머님과 시동생 그리고 저희 아들이 항상 곁에서 지켜드리면서 힘들게 생활하고 계셨거든요.
아버님 목에 핸드폰을 걸어서 위치 추적 장치 등을 다 해 놨었는데, CCTV를 이렇게 보니까 의자에 앉으셨다가 핸드폰을 바닥에 놓고서 그냥 자리를 옮기신 거예요. 112에 어머님이 신고를 해 놓으셨는데 담당 형사도 CCTV를 계속 추적하면서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고 하는 연락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애를 태우면서 장부와 함께 밤새 찾아다녔습니다. 실종 신고는 오후 2시쯤이었는데 그다음 날 아침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언젠가 저희 지부 자매님이 “치매로 실종되셨던 친정아버지를 나주에 미사 봉헌하시고 율리아님의 기도 봉헌으로 찾으셨다.”는 은총 증언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서 미사 봉헌을 부탁드렸는데, 촛불 봉헌까지 해 주시겠다고 하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침부터 다시 계속 찾아다녀도 아무 연락이 없는 거예요. 저녁 5시가 다 되는데 그때 마침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버님께서 옷도 얇게 입으시고 슬리퍼 차림으로 나가셨기에 비가 오면 기온이 더 내려가서 저체온증으로 위험하실까 봐 더욱 걱정이 되었습니다. 경찰한테도 연락이 없고 도저히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장남인 장부가 시간이 점점 흐르니까 얼굴빛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그래도 다음 날 아침이면 무슨 연락이 있겠지.’ 했는데 아무 소식이 없으니까, 평소에 그렇게 침착하던 장부가 어찌할 바를 몰라 했습니다. 저 역시 맏자식으로서 제가 많이 아프고 그랬으니까 더욱 제대로 해 드리지도 못하고 항상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아, 이러다가 정말 큰일을 치르는 거 아닌가?’ 하는 각오까지 하면서 가슴을 조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6시가 넘어서 연락이 왔다고 아들이 전화를 한 것입니다. 저희 아버님이 어느 사거리 횡단보도에 앉아 계셨는데, 인천에서 부천까지 이틀을 계속 걸어서 거기까지 가신 거예요. 지나가시던 할머니가 이제 할아버지가 바닥에 그냥 앉아 계시니까 아버님이 조끼를 입으셨었는데 그 조끼에 연락처나 그런 것들을 적어서 넣어 드렸는데 그 할머니께서 그걸 보시고 당신이 눈이 어두우시니까 지나가던 애기 엄마를 불러서 이 할아버지가 이상하니까 이 번호로 전화 좀 해 달라고 그렇게 해서 저희 어머님한테 전화가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희 아들, 딸, 그리고 손녀들까지 동원되어서 다양한 방법으로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는데 그렇게 연락이 온 것입니다. 자매님이 미사 봉헌과 기도 봉헌하고 아버지를 찾으셨다고 했듯이 저희도 비가 막 쏟아지고 너무 걱정이 되는 그 시간에 연락이 와서 너무너무 감사하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영광의 자비의 예수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지켜주신 것이겠죠. 너무 깨끗하게 정말 옷 하나 버리지 않으시고 멀쩡히 돌아오신 거예요.
그래서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드리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버님 찾았다고 수녀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나주에 미사 봉헌하신 시점부터 은총이 흘러 들어가서 엄마의 기도와 함께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찾아주셨네요!” 문자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버님을 찾아주셔서 제가 또 무사히 10월 첫 토에 순례 올 수 있었습니다.
또 얼마 안 있으면 추석이었는데 추석 전에 안 좋은 일이 생겼다면 제가 더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요. 나주 순례를 하는 그 가족들까지도 돌봐주시고 지켜주신다는 율리아님의 말씀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통해서 더 큰 은총을 주신 것 같아요. 바로 저희 장부 나주 순례의 은총이었습니다.
1992년 겨울, 제가 혼배 성사를 위해서 교리를 받던 중에 대모님 되실 분이 저와 장부를 처음으로 나주에 데리고 오셨었어요. 그렇게 다녀간 뒤로 정말 까맣게 잊고 살았었는데 피눈물 흘리신 32주년에 제가 첫 순례를 할 수 있었고 장부가 제가 사간 5대 영성 책을 읽고 “5대 영성 실천만이 천국 가는 지름길”이라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지속적인 나주 순례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제가 함께 순례하자고 하면 “마음은 이미 가 있으니 언젠가는 몸도 가 있을 거야.” 하면서
“나주는 참이고 진리이니 말로만 전하려 하지 말고 율리아님의 양육을 받는 사람들이라면 5대 영성 실천으로 우리의 생활, 우리의 삶, 너의 행동 그 자체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아직 갈 때가 아니라면서 순례를 미루기만 하던 장부가 아버님을 찾게 된 그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이제 부모님 모시고 나주 순례를 하겠노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놀랐지만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지난 피눈물을 흘리신 39주년 기념일부터 순례를 시작했고 11월 첫 토에 이어 오늘까지 함께 순례를 이어오게 되었습니다. 율리아 엄마께서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라고 하셨는데요. 아버님을 잃고 찾아 헤매이던 그 시간이 ‘어쩌면 장부의 나주 순례를 위해 예비하신 시간이 아닌가!’ 했습니다.
얼마 전에야 장부가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지난 40주년 눈물 흘리신 기념일에 이사를 하면서 다친 허리가 너무 안 좋아서 지금 신경까지 안 좋은 상황인데 그 다리를 가지고 봉사를 했는데 그 후에 율리아 엄마께서 만남을 하게 되어서 안아주셨을 때 “뭔가 뜨거운 것이 엄마로부터 자기 가슴 속으로 왔다.”는 거예요.
그런 말 잘 안 하는 사람이 본인도 이제 좀 신기했는지 “정말 뜨거운 무언가가 자기 가슴 속으로 왔다.”고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아마도 그때부터 장부의 마음에 변화가 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매일매일 극심한 고통과 힘드신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저희 순례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봉헌해 주시는 엄마, 저희가 지금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은총이 율리아 엄마 덕분입니다.
좀 더 작아져서 엄마의 곁에서 엄마를 도와드리는 그런 작은 영혼들 되기를 저희 부부가 이제 함께 말을 나누기도 했는데, 아직 많은 것들이 부족하고 모자라고 그런 상황에서 순례를 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 오롯이 주님과 성모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려드리는 엄마께 더 감사드리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엄마의 살아오신 그 삶을 통해서 지나온 저의 삶을 돌아보며 위로받고 위안받습니다. 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저희들 아직 너무 많이 부족하여 엄마 마음 더 아프게만 해드리지만, 엄마! 조금만 더 기운 내시고 힘내세요! 엄마 말씀처럼 새롭게 다시 시작하면서 엄마 닮은 작은 영혼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든 영광 주님과 성모님께 돌려드리며 엄마께 위로를 드립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나주는 참이고 진리이니 말로만 전하려 하지 말고
율리아님의 양육을 받는 사람들이라면 5대 영성 실천으로
우리의 생활, 우리의 삶, 너의 행동 그 자체가 변화되어야 한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아직 갈 때가 아니라면서 순례를
미루기만 하던 장부가 아버님을 찾게 된 그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이제 부모님 모시고 나주 순례를 하겠노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아멘!!!아멘!!!아멘!!!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저는 92년도에 처음 왔다가 2018년 피눈물 흘리신 기념일에 오면서 그전까지 두통약을 하루에 네 알을 먹어도 안 낫고, 다섯 알을 먹어도 안 먹고, 그러다가 구토가 나서 토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드러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했었는데,2018년도에 제 모든 약들을 봉헌하면서 이렇게 말짱히 주님, 성모님께서 살려주셔서 이 자리에 또 이렇게 은총 증언을 하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은총 증언 나눌까 합니다.
저희 시아버님이 지금 아흔하나 되시네요. 치매를 앓고 계셨어요. 그래서 갈수록 상태가 좀 심해지셨는데 갑자기 아버님 사라지셨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아버님은 인천에 계시는데, 인천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치매를 앓고 있거나 또 치매 가족을 돌보고 계시는 분들이 얼마나 아프고 힘들고 그런 걸 더 잘 아실 거예요. 저희도 어머님과 시동생 그리고 저희 아들이 항상 곁에서 지켜드리면서 힘들게 생활하고 계셨거든요.
아버님 목에 핸드폰을 걸어서 위치 추적 장치 등을 다 해 놨었는데, CCTV를 이렇게 보니까 의자에 앉으셨다가 핸드폰을 바닥에 놓고서 그냥 자리를 옮기신 거예요. 112에 어머님이 신고를 해 놓으셨는데 담당 형사도 CCTV를 계속 추적하면서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고 하는 연락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애를 태우면서 장부와 함께 밤새 찾아다녔습니다. 실종 신고는 오후 2시쯤이었는데 그다음 날 아침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언젠가 저희 지부 자매님이 “치매로 실종되셨던 친정아버지를 나주에 미사 봉헌하시고 율리아님의 기도 봉헌으로 찾으셨다.”는 은총 증언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서 미사 봉헌을 부탁드렸는데, 촛불 봉헌까지 해 주시겠다고 하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침부터 다시 계속 찾아다녀도 아무 연락이 없는 거예요. 저녁 5시가 다 되는데 그때 마침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버님께서 옷도 얇게 입으시고 슬리퍼 차림으로 나가셨기에 비가 오면 기온이 더 내려가서 저체온증으로 위험하실까 봐 더욱 걱정이 되었습니다. 경찰한테도 연락이 없고 도저히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장남인 장부가 시간이 점점 흐르니까 얼굴빛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그래도 다음 날 아침이면 무슨 연락이 있겠지.’ 했는데 아무 소식이 없으니까, 평소에 그렇게 침착하던 장부가 어찌할 바를 몰라 했습니다. 저 역시 맏자식으로서 제가 많이 아프고 그랬으니까 더욱 제대로 해 드리지도 못하고 항상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아, 이러다가 정말 큰일을 치르는 거 아닌가?’ 하는 각오까지 하면서 가슴을 조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6시가 넘어서 연락이 왔다고 아들이 전화를 한 것입니다. 저희 아버님이 어느 사거리 횡단보도에 앉아 계셨는데, 인천에서 부천까지 이틀을 계속 걸어서 거기까지 가신 거예요. 지나가시던 할머니가 이제 할아버지가 바닥에 그냥 앉아 계시니까 아버님이 조끼를 입으셨었는데 그 조끼에 연락처나 그런 것들을 적어서 넣어 드렸는데 그 할머니께서 그걸 보시고 당신이 눈이 어두우시니까 지나가던 애기 엄마를 불러서 이 할아버지가 이상하니까 이 번호로 전화 좀 해 달라고 그렇게 해서 저희 어머님한테 전화가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희 아들, 딸, 그리고 손녀들까지 동원되어서 다양한 방법으로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는데 그렇게 연락이 온 것입니다. 자매님이 미사 봉헌과 기도 봉헌하고 아버지를 찾으셨다고 했듯이 저희도 비가 막 쏟아지고 너무 걱정이 되는 그 시간에 연락이 와서 너무너무 감사하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영광의 자비의 예수님과 나주 성모님께서 지켜주신 것이겠죠. 너무 깨끗하게 정말 옷 하나 버리지 않으시고 멀쩡히 돌아오신 거예요.
그래서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드리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버님 찾았다고 수녀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나주에 미사 봉헌하신 시점부터 은총이 흘러 들어가서 엄마의 기도와 함께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찾아주셨네요!” 문자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버님을 찾아주셔서 제가 또 무사히 10월 첫 토에 순례 올 수 있었습니다.
또 얼마 안 있으면 추석이었는데 추석 전에 안 좋은 일이 생겼다면 제가 더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요. 나주 순례를 하는 그 가족들까지도 돌봐주시고 지켜주신다는 율리아님의 말씀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통해서 더 큰 은총을 주신 것 같아요. 바로 저희 장부 나주 순례의 은총이었습니다.
1992년 겨울, 제가 혼배 성사를 위해서 교리를 받던 중에 대모님 되실 분이 저와 장부를 처음으로 나주에 데리고 오셨었어요. 그렇게 다녀간 뒤로 정말 까맣게 잊고 살았었는데 피눈물 흘리신 32주년에 제가 첫 순례를 할 수 있었고 장부가 제가 사간 5대 영성 책을 읽고 “5대 영성 실천만이 천국 가는 지름길”이라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지속적인 나주 순례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제가 함께 순례하자고 하면 “마음은 이미 가 있으니 언젠가는 몸도 가 있을 거야.” 하면서
“나주는 참이고 진리이니 말로만 전하려 하지 말고 율리아님의 양육을 받는 사람들이라면 5대 영성 실천으로 우리의 생활, 우리의 삶, 너의 행동 그 자체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아직 갈 때가 아니라면서 순례를 미루기만 하던 장부가 아버님을 찾게 된 그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이제 부모님 모시고 나주 순례를 하겠노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놀랐지만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지난 피눈물을 흘리신 39주년 기념일부터 순례를 시작했고 11월 첫 토에 이어 오늘까지 함께 순례를 이어오게 되었습니다. 율리아 엄마께서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라고 하셨는데요. 아버님을 잃고 찾아 헤매이던 그 시간이 ‘어쩌면 장부의 나주 순례를 위해 예비하신 시간이 아닌가!’ 했습니다.
얼마 전에야 장부가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지난 40주년 눈물 흘리신 기념일에 이사를 하면서 다친 허리가 너무 안 좋아서 지금 신경까지 안 좋은 상황인데 그 다리를 가지고 봉사를 했는데 그 후에 율리아 엄마께서 만남을 하게 되어서 안아주셨을 때 “뭔가 뜨거운 것이 엄마로부터 자기 가슴 속으로 왔다.”는 거예요.
그런 말 잘 안 하는 사람이 본인도 이제 좀 신기했는지 “정말 뜨거운 무언가가 자기 가슴 속으로 왔다.”고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아마도 그때부터 장부의 마음에 변화가 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매일매일 극심한 고통과 힘드신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저희 순례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봉헌해 주시는 엄마, 저희가 지금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은총이 율리아 엄마 덕분입니다.
좀 더 작아져서 엄마의 곁에서 엄마를 도와드리는 그런 작은 영혼들 되기를 저희 부부가 이제 함께 말을 나누기도 했는데, 아직 많은 것들이 부족하고 모자라고 그런 상황에서 순례를 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 오롯이 주님과 성모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려드리는 엄마께 더 감사드리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엄마의 살아오신 그 삶을 통해서 지나온 저의 삶을 돌아보며 위로받고 위안받습니다. 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저희들 아직 너무 많이 부족하여 엄마 마음 더 아프게만 해드리지만, 엄마! 조금만 더 기운 내시고 힘내세요! 엄마 말씀처럼 새롭게 다시 시작하면서 엄마 닮은 작은 영혼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든 영광 주님과 성모님께 돌려드리며 엄마께 위로를 드립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2025년 12월 31일 김 율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