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제가 순례 다닌 지는 20년 됐는데 처음에 올 때 모시고 온 바오로 할아버지를 나주 순례를 도와드리면서 받았던 은총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1992년, 생활정보 센터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상담을 하다 보니까 그곳을 운영하는 할아버지가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 교감 선생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젊은 시절에 미래까지 약속했던 서로 너무 지극히 사랑했던 동료 여교사의 충격적인 자살과 보증을 잘못 서셨다가 교회 신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집안도 파토 나고 ‘하느님이 살아계시면 어찌 이럴 수가 있나?’ 하면서 굉장히 힘들어하며 혼자 지내고 계셨습니다. 그때 제가 나타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할아버지를 도와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사업을 결혼상담소로 바꾸면서 점점 확장하였는데 할아버지께서는 그때 이미 부채가 많아서 매일매일 일수를 내고 계셨어요. 그래서 저는 첫 달 월급만 받고 그 이후로는 월급을 거의 받지 않은 채로 도와드렸습니다. 돈 버는 데만 집중되어 신앙생활이 소홀해지면서 저는 기도도 안 하게 되고 영적으로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영적으로 질식할 상태였던 저는 2004~5년에 ‘그래, 성모님 발현지 순례라도 한번 가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아는 발현지는 루르드나 파티마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넷에 성모님 발현지를 검색해 보다가 나주를 알게 되었고 나주 성모님께서 눈물, 피눈물 흘리신다는 내용, 그리고 특히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을 읽고 너무나 가슴이 저미는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영적 오아시스를 찾은 것입니다. 일에는 집중을 못 한 채 한 두 달 동안 나주를 계속 검색해 보게 되었습니다. 율리아님이 어떤 분인지 먼저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율리아 엄마에 대해서 쭉 찾아 읽다가 가슴이 저미는 떨림으로 결국 나주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돈 버는 데만 집중하여 영혼이 피폐해진 저는 나주 순례를 하게 되었는데 순례를 거듭할수록 엄마의 삶을 통하여 5대 영성으로 할아버지를 끝까지 모시게 되었습니다.
엄마께서 그 고통 중에도 행려자들을 작은 예수님, 작은 성모님이라 부르시며 성모님집으로 모셔 오셔서 깨끗이 씻겨주시고 새 옷 입혀주시고 먹여주시며 부활의 삶을 살게 해 주시는 대목이 저에게 큰 감동으로 왔습니다. 그 지극한 사랑에 하느님마저 감동하시어 맹인이었던 봉 안드레아 할아버지가 눈을 뜨시는 사랑의 기적이 일어나는 거 모두들 알고 계시잖아요.
제 믿음으로서는 고작 한 1년 정도 순례 모시고 오면 그만두려고 했거든요. 엄마의 그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점철된 보속 고통 은총으로 할아버지의 선종까지 돌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엄마의 대속 고통 덕분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나주 순례를 하시면서 1번도 만남을 하지 않았는데, 4년 만에 대전지부 기도회 때 율리아 엄마 만남을 하고 나서는 할아버지가 화장실에 막 뛰어가는 걸 보고 그때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 저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기도회 때 영적 육적 치유 은총 증언까지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원래 개신교를 다니셨는데 교회 신자에게 배신을 당한 이후로 교회는 아예 안 나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나주에 순례 오시면서 거부감을 느끼던 성모님을 받아들이시더니 나중에는 가톨릭 영세도 받으셨고 견진 성사도 받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오토바이 타고 사고도 나기도 하고 한번은 집 안 침상에서 떨어져 방 안에 있는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머리를 박았는지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우그러져 있고 위에 올려 있는 철 2개가 튕겨 나가 있는데도 “아, 이런데 내가 괜찮네?” 그러면서 앉아 계시더라고요. 바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니까 “아멘!” 하시더라고요.
이제 어떨 때는 좀 힘들고 이러니까 안 오기도 하고 이래 몇 번 그래서 이제는 마지막이다 싶어서 한 번 모시고 왔는데 만남 때 엄마께서 “왜 안 오셨어요? 어디가 아프셔요?” 하면서 너무나 애절하게 돌아온 탕자를 만나듯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고는 그 말씀이 제 가슴에 박혀서 ‘아 이렇게 계속 모시고 오는 게 맞겠구나.’ 싶어서 계속 모시고 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율리아 엄마께 배운 5대 영성 그 사랑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80대 중반에 들어서서 코로나 직전 2018년 돌아가시기 전에 치매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모셔야 하나? 요양원에 보내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나주 성모님 사랑의 메시지와 5대 영성 안에서 생각해 보니 영혼 구령이 첫째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모시겠습니다.” 하고 집에서 모시기로 했습니다. 치매가 진행되면서 원래 그렇게 좋아하시던 텔레비전 바둑 같은 것도 잘 안 보시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이걸 컴퓨터로 글씨로 크게 확대해서 보여주면 열심히 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옛날에 건강할 때 컴퓨터는 뭐 조금 만질 수 있었으니까 손으로 누르면서 계속 한두 시간 보면 그 시간에 제가 빨리 시장 봐 오고 이랬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프로젝트를 하면서 쭉 읽으면서 댓글까지 쭉 계속 읽으시더라고요.
읽으면서 제일 끝에 보니까 ‘댓글은 모바일에서’ 하니까 “이게 뭐야?” 물어보시길래 설명해 드리고 할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시기 3, 4개월 전까지 댓글도 달아드렸습니다. 댓글 달아드릴 때마다 엄마께서 기도해 주신다는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그게 제일 쉬운 방법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연속극 보고 나면은 다음 장면이 어떨까 싶어 기다리듯이 그렇게 예비하신 삶에 푹 빠져서 열심히 보셨는데 처음에 치매가 걸려서 검사할 때 할아버지에게 “오늘 며칠이에요?” 이러면 시계를 보시고 “10월 45일, 10월 45일.” 이렇게 인지 기능이 저하되는 분이 어떻게 5대 영성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댓글까지 쓸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주님 성모님 은총입니다. 엄마의 사랑으로 점철된 대속 고통 봉헌의 덕분입니다.
나주에서 발현하신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 성화가 나오고 은총 징표 성물들, 은총 이불이 나올 때마다 구입해서 사용하시도록 도와드렸습니다. 코로나 시절이라 모든 기도회, 미사 등 유튜브로 진행되고 기도회는 줌으로 하여 할아버지와 함께 모두 참석하셨습니다. 기도회 시간이 되면 항상 그 의자에 먼저 앉아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매주 성시간도 항상 참석하시고.
치매 환자는 인지 능력 자체가 떨어지는데 (치매 예방 차원에서) 거꾸로 말하고 이렇게 하면은 내가 몇 번 가르쳐 드리면 금방 따라 하시는 겁니다. 일반인도 금방 따라 하기 좀 힘들 것 같은데 예를 들어서 “래할 잔 한 피커?” 이렇게 하면 “커피 한잔할래?”. “래할 잔 한 유우?” 하면은 “우유 한잔할래?”, “래할 잔 한 주감?” 이렇게 하면 “감주 한 잔 할래?” 금방 따라 하시더라고요.
이건 바로 주님,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덕분입니다. 자녀들과 평소에 왕래가 거의 없었던 할아버지는 저에게만 온전히 의지하였는데 마지막 1년 정도는 이제는 어르신을 요양원에 보내야 하나 고민하면서도 ‘아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 마무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돌아가시기 1년 동안은 큰아들이 약 타서 온다고 두 달, 한 달 만에 이렇게 항상 방문했는데 그럴 때마다 좋아지고 이렇게 변화되는 걸 보고 “아, 수산나 자매님 감사합니다.” 하며 “성모님께도 감사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참 고맙게 생각하고 할아버지 뜻대로 성당 예식대로 장례를 해 드리겠다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한두 달 전쯤에 큰아들이 다시 와서는 그냥 그렇게 하지 말고 간단하게 하면 안 되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은 ‘아, 이건 아니다!’ 싶어서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마지막 마무리가 제일 중요한데 싶어서 제가 “100% 제가 모시겠습니다. 책임지고 모시겠습니다.” “힘들 텐데요.” 하는 거 제가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님 향한 사랑의 길 봉 안드레아 할아버지 일화가 떠올랐고, 엄마에게서 배운 5대 영성으로 작은 예수님 모시는 마음으로 1년이든 얼마가 더 남았든 끝까지 내가 모시겠다 마음먹고 할아버지를 휠체어 모시고 계속 나주에 갔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저도 모르게 “예수님”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할아버지가 피식 웃더라고요. 그건 저도 모르게 하는 말인데.
마지막에는 장례식장에 올 사람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서 큰아들은 장례식장도 따로 잡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날 장사 치르고는 그때 있던 철야 기도를 곧바로 왔습니다. 이 기도만큼 좋은 기도가 없으니까. 2022년 11월 5일 첫 토요일 오전 7시에 선종하셔서 지부장님께 전화드렸습니다.
그때 첫 토요일이라 순례 차 3대가 왔는데 연도를 해 드렸다는 그 말씀을 듣고 저는 천국 가는 빵빠레를 울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나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끝까지 할아버지를 모실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온 생을 거쳐서 대속 고통을 아름답게 봉헌해 오신 엄마의 5대 영성의 은총입니다. 율리아 엄마를 보내주신 주님과 성모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갑자기 생각나는 거 하나 말씀드릴게요. 그때 할아버지를 모시고 돌아가시기 6개월 동안은 오토바이 키를 제가 한 30번가량 잃어버렸는데 그때마다 다 찾아주셨습니다. 한번은 집에 오니까 할아버지가 그 오토바이를 선물했는데 저는 별로 뭐 눈에 띄는 거 안 좋아하는데 백색 혼다 오토바이를 선물해 주셔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아버지 심부름 많이 하고 기적수도 잘 떠서 나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오토바이 키가 한 번은 성삼일에 3번 잃어버린 적도 있는데 사람이 버글버글하는데 3일 동안 그 키가 있었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거고, 또 한번 성삼일에도 누구에게 부탁할 겨를도 없어서 ‘주님, 성모님께 봉헌합니다. 알아서 해 주십시오.’ 했는데 그 한 개만 찾은 거 해도 300만 원 이상 되는데 순례를 빠질 수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게 해 주신 주님, 성모님 사랑에 무한 감사를 드리며 온 마음과 마음을 다 바쳐서 대속 제물이 되신 율리아 엄마께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새롭게 시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제가 순례 다닌 지는 20년 됐는데 처음에 올 때 모시고 온 바오로 할아버지를 나주 순례를 도와드리면서 받았던 은총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1992년, 생활정보 센터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상담을 하다 보니까 그곳을 운영하는 할아버지가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 교감 선생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젊은 시절에 미래까지 약속했던 서로 너무 지극히 사랑했던 동료 여교사의 충격적인 자살과 보증을 잘못 서셨다가 교회 신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집안도 파토 나고 ‘하느님이 살아계시면 어찌 이럴 수가 있나?’ 하면서 굉장히 힘들어하며 혼자 지내고 계셨습니다. 그때 제가 나타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할아버지를 도와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사업을 결혼상담소로 바꾸면서 점점 확장하였는데 할아버지께서는 그때 이미 부채가 많아서 매일매일 일수를 내고 계셨어요. 그래서 저는 첫 달 월급만 받고 그 이후로는 월급을 거의 받지 않은 채로 도와드렸습니다. 돈 버는 데만 집중되어 신앙생활이 소홀해지면서 저는 기도도 안 하게 되고 영적으로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영적으로 질식할 상태였던 저는 2004~5년에 ‘그래, 성모님 발현지 순례라도 한번 가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아는 발현지는 루르드나 파티마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넷에 성모님 발현지를 검색해 보다가 나주를 알게 되었고 나주 성모님께서 눈물, 피눈물 흘리신다는 내용, 그리고 특히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을 읽고 너무나 가슴이 저미는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영적 오아시스를 찾은 것입니다. 일에는 집중을 못 한 채 한 두 달 동안 나주를 계속 검색해 보게 되었습니다. 율리아님이 어떤 분인지 먼저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율리아 엄마에 대해서 쭉 찾아 읽다가 가슴이 저미는 떨림으로 결국 나주 순례를 오게 되었습니다.
돈 버는 데만 집중하여 영혼이 피폐해진 저는 나주 순례를 하게 되었는데 순례를 거듭할수록 엄마의 삶을 통하여 5대 영성으로 할아버지를 끝까지 모시게 되었습니다.
엄마께서 그 고통 중에도 행려자들을 작은 예수님, 작은 성모님이라 부르시며 성모님집으로 모셔 오셔서 깨끗이 씻겨주시고 새 옷 입혀주시고 먹여주시며 부활의 삶을 살게 해 주시는 대목이 저에게 큰 감동으로 왔습니다. 그 지극한 사랑에 하느님마저 감동하시어 맹인이었던 봉 안드레아 할아버지가 눈을 뜨시는 사랑의 기적이 일어나는 거 모두들 알고 계시잖아요.
제 믿음으로서는 고작 한 1년 정도 순례 모시고 오면 그만두려고 했거든요. 엄마의 그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점철된 보속 고통 은총으로 할아버지의 선종까지 돌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엄마의 대속 고통 덕분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나주 순례를 하시면서 1번도 만남을 하지 않았는데, 4년 만에 대전지부 기도회 때 율리아 엄마 만남을 하고 나서는 할아버지가 화장실에 막 뛰어가는 걸 보고 그때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 저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기도회 때 영적 육적 치유 은총 증언까지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원래 개신교를 다니셨는데 교회 신자에게 배신을 당한 이후로 교회는 아예 안 나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나주에 순례 오시면서 거부감을 느끼던 성모님을 받아들이시더니 나중에는 가톨릭 영세도 받으셨고 견진 성사도 받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오토바이 타고 사고도 나기도 하고 한번은 집 안 침상에서 떨어져 방 안에 있는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머리를 박았는지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우그러져 있고 위에 올려 있는 철 2개가 튕겨 나가 있는데도 “아, 이런데 내가 괜찮네?” 그러면서 앉아 계시더라고요. 바로 “나주 성모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니까 “아멘!” 하시더라고요.
이제 어떨 때는 좀 힘들고 이러니까 안 오기도 하고 이래 몇 번 그래서 이제는 마지막이다 싶어서 한 번 모시고 왔는데 만남 때 엄마께서 “왜 안 오셨어요? 어디가 아프셔요?” 하면서 너무나 애절하게 돌아온 탕자를 만나듯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고는 그 말씀이 제 가슴에 박혀서 ‘아 이렇게 계속 모시고 오는 게 맞겠구나.’ 싶어서 계속 모시고 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율리아 엄마께 배운 5대 영성 그 사랑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80대 중반에 들어서서 코로나 직전 2018년 돌아가시기 전에 치매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모셔야 하나? 요양원에 보내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나주 성모님 사랑의 메시지와 5대 영성 안에서 생각해 보니 영혼 구령이 첫째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모시겠습니다.” 하고 집에서 모시기로 했습니다. 치매가 진행되면서 원래 그렇게 좋아하시던 텔레비전 바둑 같은 것도 잘 안 보시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이걸 컴퓨터로 글씨로 크게 확대해서 보여주면 열심히 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옛날에 건강할 때 컴퓨터는 뭐 조금 만질 수 있었으니까 손으로 누르면서 계속 한두 시간 보면 그 시간에 제가 빨리 시장 봐 오고 이랬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프로젝트를 하면서 쭉 읽으면서 댓글까지 쭉 계속 읽으시더라고요.
읽으면서 제일 끝에 보니까 ‘댓글은 모바일에서’ 하니까 “이게 뭐야?” 물어보시길래 설명해 드리고 할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시기 3, 4개월 전까지 댓글도 달아드렸습니다. 댓글 달아드릴 때마다 엄마께서 기도해 주신다는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그게 제일 쉬운 방법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연속극 보고 나면은 다음 장면이 어떨까 싶어 기다리듯이 그렇게 예비하신 삶에 푹 빠져서 열심히 보셨는데 처음에 치매가 걸려서 검사할 때 할아버지에게 “오늘 며칠이에요?” 이러면 시계를 보시고 “10월 45일, 10월 45일.” 이렇게 인지 기능이 저하되는 분이 어떻게 5대 영성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댓글까지 쓸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주님 성모님 은총입니다. 엄마의 사랑으로 점철된 대속 고통 봉헌의 덕분입니다.
나주에서 발현하신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 성화가 나오고 은총 징표 성물들, 은총 이불이 나올 때마다 구입해서 사용하시도록 도와드렸습니다. 코로나 시절이라 모든 기도회, 미사 등 유튜브로 진행되고 기도회는 줌으로 하여 할아버지와 함께 모두 참석하셨습니다. 기도회 시간이 되면 항상 그 의자에 먼저 앉아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매주 성시간도 항상 참석하시고.
치매 환자는 인지 능력 자체가 떨어지는데 (치매 예방 차원에서) 거꾸로 말하고 이렇게 하면은 내가 몇 번 가르쳐 드리면 금방 따라 하시는 겁니다. 일반인도 금방 따라 하기 좀 힘들 것 같은데 예를 들어서 “래할 잔 한 피커?” 이렇게 하면 “커피 한잔할래?”. “래할 잔 한 유우?” 하면은 “우유 한잔할래?”, “래할 잔 한 주감?” 이렇게 하면 “감주 한 잔 할래?” 금방 따라 하시더라고요.
이건 바로 주님, 나주 성모님의 은총의 덕분입니다. 자녀들과 평소에 왕래가 거의 없었던 할아버지는 저에게만 온전히 의지하였는데 마지막 1년 정도는 이제는 어르신을 요양원에 보내야 하나 고민하면서도 ‘아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 마무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돌아가시기 1년 동안은 큰아들이 약 타서 온다고 두 달, 한 달 만에 이렇게 항상 방문했는데 그럴 때마다 좋아지고 이렇게 변화되는 걸 보고 “아, 수산나 자매님 감사합니다.” 하며 “성모님께도 감사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참 고맙게 생각하고 할아버지 뜻대로 성당 예식대로 장례를 해 드리겠다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한두 달 전쯤에 큰아들이 다시 와서는 그냥 그렇게 하지 말고 간단하게 하면 안 되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은 ‘아, 이건 아니다!’ 싶어서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마지막 마무리가 제일 중요한데 싶어서 제가 “100% 제가 모시겠습니다. 책임지고 모시겠습니다.” “힘들 텐데요.” 하는 거 제가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님 향한 사랑의 길 봉 안드레아 할아버지 일화가 떠올랐고, 엄마에게서 배운 5대 영성으로 작은 예수님 모시는 마음으로 1년이든 얼마가 더 남았든 끝까지 내가 모시겠다 마음먹고 할아버지를 휠체어 모시고 계속 나주에 갔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저도 모르게 “예수님”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할아버지가 피식 웃더라고요. 그건 저도 모르게 하는 말인데.
마지막에는 장례식장에 올 사람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서 큰아들은 장례식장도 따로 잡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날 장사 치르고는 그때 있던 철야 기도를 곧바로 왔습니다. 이 기도만큼 좋은 기도가 없으니까. 2022년 11월 5일 첫 토요일 오전 7시에 선종하셔서 지부장님께 전화드렸습니다.
그때 첫 토요일이라 순례 차 3대가 왔는데 연도를 해 드렸다는 그 말씀을 듣고 저는 천국 가는 빵빠레를 울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나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끝까지 할아버지를 모실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온 생을 거쳐서 대속 고통을 아름답게 봉헌해 오신 엄마의 5대 영성의 은총입니다. 율리아 엄마를 보내주신 주님과 성모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갑자기 생각나는 거 하나 말씀드릴게요. 그때 할아버지를 모시고 돌아가시기 6개월 동안은 오토바이 키를 제가 한 30번가량 잃어버렸는데 그때마다 다 찾아주셨습니다. 한번은 집에 오니까 할아버지가 그 오토바이를 선물했는데 저는 별로 뭐 눈에 띄는 거 안 좋아하는데 백색 혼다 오토바이를 선물해 주셔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아버지 심부름 많이 하고 기적수도 잘 떠서 나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오토바이 키가 한 번은 성삼일에 3번 잃어버린 적도 있는데 사람이 버글버글하는데 3일 동안 그 키가 있었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거고, 또 한번 성삼일에도 누구에게 부탁할 겨를도 없어서 ‘주님, 성모님께 봉헌합니다. 알아서 해 주십시오.’ 했는데 그 한 개만 찾은 거 해도 300만 원 이상 되는데 순례를 빠질 수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게 해 주신 주님, 성모님 사랑에 무한 감사를 드리며 온 마음과 마음을 다 바쳐서 대속 제물이 되신 율리아 엄마께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새롭게 시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12월 31일 박 수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