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에서 기도회를 할 때 율리아 엄마께서
이 은총이 집에 있는 가족에게도 흘러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보고 정말 그렇게 될까,
설마 그럴 리가 없을 거야 하고 의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보니 정말 집에 있는 가족이 은총을 받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 증언으로는 그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저의 어머니 마리아는 병약하셨습니다.
어디 아프지 않으신 데가 없었습니다.
특히 두통이 심해 아주 오랫동안 ‘뇌신’이란 약을 복용하셨습니다.
정확하게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만 아마 짧게는 십 수 년이나 길게는 수십 년 동안 드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마리아 어머니께 기적수를 드리며 약은 드시지 말고
대신 기적수를 마시거나 바르시라 당부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요청대로 머리가 아파오면 기적수를 머리꼭지에 바르셨습니다.
어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기적수를 바를 때마다
그 자리에서 “무엇인가가 바글바글 끓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뒤 완전히 치유 받아 약을 딱 끊으셨습니다.
두통만 치유 받은 게 아니고 건강도 회복하셔서 아픈 데 없이
97세까지 건강하게 사시다가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두고 편안히 선종하셨습니다.
저의 아버지 요셉께서도 처음엔 철저한 무신론자였는데
나주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자 마음이 열리시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아흔 셋 되던 해,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모든 사람은 ‘복노인’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곧 그것이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임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바로 그날까지 마실을 가고, 일을 하셨으며, 독서를 하고 시를 지으셨습니다.
그날, 평소에 노시던 곳에서 어울려 노시다가 한 시 무렵에 집으로 돌아오셨답니다.
어머니가 차려 주신 점심을 드시고 잠시 쉬셨습니다.
오후 네 시경 상추씨를 들고 밭으로 이용하는 아파트 화단으로 가셨습니다.
상추씨를 뿌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책을 보다가 누워서 잠이 드셨습니다.
저녁상을 차린 어머니는 아버지를 깨웠습니다.
그때는 아버지가 이미 숨을 거두신 후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죽음을 결코 본 적이 없다 하였습니다.
93세 되는 노인이 복이 많지 않으면 그런 일이 가능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우연이거나 뭐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차츰 나주 성모님의 도움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섰습니다.
그걸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신기하게도 요셉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은
가톨릭력으로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요셉’ 성인 대축일 3월 19일입니다.
둘째 아들에게서 태어난 손녀의 눈물길이 열리지 않아 늘 걱정이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율리아 엄마께 기도를 청했습니다.
그러자 곧 왼쪽 눈이 치유를 받아 깨끗해졌습니다.
우리는 깨끗해진 왼쪽 눈을 신기하게 여기며 오른쪽 눈도 그렇게 치유될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오른쪽 눈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늘 눈곱이 끼어 그걸 닦아 주기도 불편했고 조금씩 헐어 아이가 칭얼거렸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난 다음에 마침내 의사가 수치를 제시하며
오른쪽은 눈물길이 열리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수술 날짜까지 잡았습니다.
수술일이 다가올수록 조바심이 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이 할머니와 난 손녀를 가까운 유원지로 데려갔습니다.
손녀를 벤치에 앉히고 몇 번이고 기적수를 눈에 쏟아 부었습니다.
며칠 뒤에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왼쪽 눈도 마저 치유 받아 수술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주 성모님의 역사하심으로 점쟁이에게 쫓겨나서 세례를 받고
독실한 신자가 된 형님 이야기는 얼마 전에 했으므로 생략합니다.
이 모든 은총이 집에 있는 가족에게 흘러간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멘. 알렐루야.
순례할 때 가족에게까지도 은총이 흘러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율리아 엄마께 감사드립니다.
저희에게 율리아 엄마와 기적수를 주신 주님과 성모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나주에서 기도회를 할 때 율리아 엄마께서
이 은총이 집에 있는 가족에게도 흘러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보고 정말 그렇게 될까,
설마 그럴 리가 없을 거야 하고 의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보니 정말 집에 있는 가족이 은총을 받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 증언으로는 그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저의 어머니 마리아는 병약하셨습니다.
어디 아프지 않으신 데가 없었습니다.
특히 두통이 심해 아주 오랫동안 ‘뇌신’이란 약을 복용하셨습니다.
정확하게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만 아마 짧게는 십 수 년이나 길게는 수십 년 동안 드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마리아 어머니께 기적수를 드리며 약은 드시지 말고
대신 기적수를 마시거나 바르시라 당부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요청대로 머리가 아파오면 기적수를 머리꼭지에 바르셨습니다.
어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기적수를 바를 때마다
그 자리에서 “무엇인가가 바글바글 끓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뒤 완전히 치유 받아 약을 딱 끊으셨습니다.
두통만 치유 받은 게 아니고 건강도 회복하셔서 아픈 데 없이
97세까지 건강하게 사시다가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두고 편안히 선종하셨습니다.
저의 아버지 요셉께서도 처음엔 철저한 무신론자였는데
나주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자 마음이 열리시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아흔 셋 되던 해,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모든 사람은 ‘복노인’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곧 그것이 나주 성모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임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바로 그날까지 마실을 가고, 일을 하셨으며, 독서를 하고 시를 지으셨습니다.
그날, 평소에 노시던 곳에서 어울려 노시다가 한 시 무렵에 집으로 돌아오셨답니다.
어머니가 차려 주신 점심을 드시고 잠시 쉬셨습니다.
오후 네 시경 상추씨를 들고 밭으로 이용하는 아파트 화단으로 가셨습니다.
상추씨를 뿌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책을 보다가 누워서 잠이 드셨습니다.
저녁상을 차린 어머니는 아버지를 깨웠습니다.
그때는 아버지가 이미 숨을 거두신 후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죽음을 결코 본 적이 없다 하였습니다.
93세 되는 노인이 복이 많지 않으면 그런 일이 가능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우연이거나 뭐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차츰 나주 성모님의 도움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섰습니다.
그걸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신기하게도 요셉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은
가톨릭력으로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요셉’ 성인 대축일 3월 19일입니다.
둘째 아들에게서 태어난 손녀의 눈물길이 열리지 않아 늘 걱정이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율리아 엄마께 기도를 청했습니다.
그러자 곧 왼쪽 눈이 치유를 받아 깨끗해졌습니다.
우리는 깨끗해진 왼쪽 눈을 신기하게 여기며 오른쪽 눈도 그렇게 치유될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오른쪽 눈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늘 눈곱이 끼어 그걸 닦아 주기도 불편했고 조금씩 헐어 아이가 칭얼거렸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난 다음에 마침내 의사가 수치를 제시하며
오른쪽은 눈물길이 열리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수술 날짜까지 잡았습니다.
수술일이 다가올수록 조바심이 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이 할머니와 난 손녀를 가까운 유원지로 데려갔습니다.
손녀를 벤치에 앉히고 몇 번이고 기적수를 눈에 쏟아 부었습니다.
며칠 뒤에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왼쪽 눈도 마저 치유 받아 수술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주 성모님의 역사하심으로 점쟁이에게 쫓겨나서 세례를 받고
독실한 신자가 된 형님 이야기는 얼마 전에 했으므로 생략합니다.
이 모든 은총이 집에 있는 가족에게 흘러간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멘. 알렐루야.
순례할 때 가족에게까지도 은총이 흘러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율리아 엄마께 감사드립니다.
저희에게 율리아 엄마와 기적수를 주신 주님과 성모님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