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사랑의 메시지

증언 영상하느님을 욕하고 점쟁이를 찾아다니던 제가!

운영진
2021-12-20
조회수 4207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없는 정말 죄 많은 죄인 박 줄리아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영세를 받았는데요. 제가 죽음의 고통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 성모님께서 저를 살려주셨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감사해서 성소의 꿈을 안고서 ‘수녀가 돼야 되겠다.’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했는데, 어떤 남자를 알고 난 뒤부터 그 성소가 가시고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하셨는데도 저는 배반을 했어요. 하느님을 욕하고 점쟁이를 굉장히 많이 찾아다녔어요. 그러면서 냉담을 한 13~14년 했거든요.
 
그런데 동생은 굉장히 열심이었거든요. 남편은 무신론자인데 남편과 저는 1년 동안을 동생을 구박을 했어요. 동생이 옥상에서 기도하고 있으면 “여보, 여보 지금 동생이 옥상에서 기도하고 있다.”고 “빨리 가서 잡아 오자!”고 그 정도로 동생을 굉장히 제가 핍박을 했어요.
 
제가 3번이나 유산을 했는데 그 3번째 아기를 굉장히 어렵게 가졌거든요. 그래 동생이 “눈물로서 기도를 했다.” 그래요. 저는 “생명은 그냥 생기는 거지 무슨 눈물로 성모님한테 기도를 해서 생기느냐?” 또 그때도 굉장히 구박을 했거든요. 동생이 성령을 받았을 때 우리 장부가 십자가를 던져버리더라고요. 그러니까 저도 막 잘했다고 박수 치면서 같이 합세를 했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동생은 눈물로써 굉장히 기도를 많이 해줬어요.
 
동생이 나주 성모님을 꼭 찾아오더라고요. 저는 “나주 가면 뭐 떡을 주냐? 옷을 주냐?” 막 그러면서 옛날에 그렇게 성모님을 사랑했던 마음은 없어져 버리고 완전히 마귀와 사탄으로 둘둘 감아있는 그런 저를 전혀 깨닫지 못했어요. 그리고 낙태를 굉장히 많이 했었거든요. 죄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성모님이 저에게 그렇게 많은 사랑을 주시리라는 것을 몰랐었어요. 어느 날 동생이 저에게 나주 성모님한테 한 번만 가재요. ‘그래 동생이 그렇게 미치도록 좋아하는 성모님한테 한번 가보자. 나주 성모님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데?’ 그러면서 저는 신랑하고 같이 눈물, 피눈물 난 거 뒤에서 주사기로 넣었을 것이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못 이긴 척하고 신랑이 마침 외국으로 나가셨기 때문에 신랑 기다리는 그 시간이 너무 지루해서 그냥 한번 따라와 봤어요.
 
동생이 어머 장미향기가 이렇게 진하게 나느냐고. 저는 아무리 코를 씩씩거려도 냄새가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냄새가 나냐?”고. 그때는 그냥 돌아갔었거든요. 다음에 왠지 그냥 한번 와보고 싶었어요. ‘내가 옛날에 굉장히 좋아했던 성모님이니까 다시 한번 와보자.’ 그래서 제가 혼자 와봤어요. 그런데 그때는 정말 냄새가 진하게 나더라고요. ‘아~ 이거 냄새, 이런 게 바로 성모님의 사랑인가?’
 
그런데 어느 날 굉장히 친하지도 않은 친구인데, 간암으로 3달밖에 못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주 성모님한테 데리고 와야 되겠다. 어떻게 하든지 그 친구를 살려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 굉장히 작용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나주 성모님한테 가면 네 병이 치유된다더라.” 저희 장부한테도 사정을 했죠. 저희 장부는 성모상을 저 구석지에다가 넣어놓을 정도로 굉장히 싫어했었어요.
 
왠지 장부한테도 나주 성모님 눈물 난 것 주삿바늘 (조작)이 아니라는 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면서 기도를 드렸죠. ‘성모님 당신한테 모든 걸 맡깁니다. 여기 데리고만 오겠습니다.’ 저희 장부한테도 당신의 사랑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왔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때 무슨 병을 앓고 있었냐면 장염에다 지방간을 앓고 있었어요. 별로 대수롭게 생각 안 했거든요. 그런데 친구가 고통이 시작되자 저도 고통이 함께 시작됐어요. 지방간에 의한 그 고통이 저는 그냥 뭐 ‘남들 아프니까 그냥 아픈갑다.’ 생각했는데, 밥을 못 할 정도로, 남편이 매일 밥을 해서 바치고 이럴 정도로 고통이 심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친구를 살려보겠다는 그 하나의 일념으로 두 아이를 업고 병원을 찾아다녔어요. 그리고 나주 성모님 쫓아다녔어요, 제 일같이.
 
친구는 결국 저를 통해서 영세를 받고 영성체까지 모시면서 그다음 날 죽었어요. 하지만 그 가정에 모두 구원을 이뤘거든요. 지금은 다 교리를 받고 있고 또 친구 데리고 여기 나주 성모님한테 와서 제가 지방간이 깨끗이 치유됐어요. 간암으로 친구 부인이 죽자 마누라를 잃을까 봐 신랑이 너무너무 놀란 거예요. 그래서 전대 병원에 가서 CT 촬영까지 싹 했거든요? 그랬더니 깨끗이 치유됐대요. 그래서 너무너무 감사하고 그렇게 많은 은총을 주셨는데도 제가 너무 요즘에 변덕스럽게 그걸 감사할 줄 모르고 또 잊고 살았었거든요.
 
그런데 성모님은 또 저를 이렇게 사랑으로 깨워주시려고 오늘 이렇게 다시 불러주셨어요. 저희 딸이 며칠 전에 42도라는 열로 응급실에 갈 정도로 굉장히 열이 심했어요. 그래서 제가 시어머니 생신을 쇠러 서울에 못 갔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여기 오려고 생각도 안 했는데, 갑자기 기도 중에 정말 나주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남편이 그렇게 하느님을 싫어하고 여기 나주를 굉장히 못 가게 하거든요. 그래서 올 수 없는데 외국에서 일을 보다가 더 늦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다른 때 같으면 굉장히 화가 날 텐데 저는 나주를 오고 싶었기 때문에 나주로 올 수 있다는 그런 감사의 마음으로 너무 반가웠어요. 

제가 이렇게 많이 성모님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열어주셨고 또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는 것은 신랑에게 스카풀라를 제가 줬거든요. 외국에 가 있는 동안 정말 이건 내 마음이라고. 사실은 내 마음속으로는 성모님의 사랑이라고 주고 싶었지만, 그 말을 하면 또 뭐라고 할 것 같아서 이건 정말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니까 이 스카풀라를 꼭 차고 가라고 그랬거든요. 그리고 성모상 앞에다 스카풀라를 가만히 살짝 놔둬 봤어요. 그런데 외국에 있는 동안에 계속 차고 있었대요.
 
그래서 어떤 에피소드가 있는데 한국 사람이 다 잡혀갔는데, 저희 장부만 안 잡혀갔다고. “그거 이 스카풀라를 차서 그러나?” 신랑이 그러더라고요. 그 집안은 너무 불교를 열심히 믿는 집안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느님을 싫어하고 전혀 믿지 않는데 그 스카풀라를 차고 갔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저도 감사 기도를 드렸어요. 이렇게 증언할 수 있어 감사드리고 더 당신을 사랑하라고 이 자리에 서게 주신 거라 생각하고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1994년 8월 7일 박 줄리아
1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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