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경기도 안성 최 말가리다입니다. 제가 1993년 6월 1일 날 여기 와서 치유를 받았을 적에 생일이었는데, 오늘 96년도에는 첫 토요일이 됐어요. 횟수로는 4년이고 만 3년이 됐습니다. 우리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제가 치유를 받았습니다. 지금 가톨릭 대학교(신학대학교) 입학을 했거든요.
제가 증언하면서 그걸 빠뜨렸어요. 이번에 부활 때 왔었거든요. 성모님 피눈물 그치고 나서 눈이 충혈되었을 때 7살 때 여기 와서 여기 제단 위에까지 올라가서 성모님 눈을 이렇게 쳐다봤어요. 성모님이 울고 나서 눈물 닦은 중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저한테. 이번에 저한테 “엄마, 예수님을 만나려면 아래로 내려가서 만나야 됩니다. 저도 그렇게 노력합니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을 때 제가 성모님께 아들이 작은 사제, 작은 영혼이 되게 해달라고 늘 봉헌했거든요.
어쨌든 저 애가 겸손해지고 또 사제가 되면 나주 성모님을 더 많이 전파하겠다고. 아들이 나주 성모님상을 안고 사진을 찍은 게 있거든요. 그 사진에 성체가 나타났어요. 여기서 치유받은 기념으로 성모상을 저에게 줬는데, 그걸 안고 우리 아들이 사진을 찍었거든요. 그러면서 성모님을 좋아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 모든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해서 여기 나왔습니다.
저는 왼쪽 유방 종양으로 2번 수술했었고, 3번째 재발이 됐었어요. 자궁에 혹이 한 4.5cm 정도 됐는데, 한 2개월 동안 계속 하혈을 막 했었어요. 그때 암으로, 하혈로, 방을 이렇게 막 움직이고 막 기어 다니고 막 그랬거든요. 몸 전체가 합병증, 알레르기, 열, 두통으로 만신창이 될 정도로 힘들었고 가슴 종양은 몽우리였었는데, 2번째 그때까지 몽우리였었는데, 3번째 재발했을 때는 그 부위가 다 딱딱할 정도로 됐고 덩어리로 뭉쳐있었어요. 그 부위는 차고 팔이 저려오면서 왼쪽 (눈)이 안 보였었어요.
그때 안경을 쓰게 됐는데, 제 생활도 너무 어려웠고 암 치료를 받는다 하면 아이들을 가르칠 수도 없어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임종)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그런데 하혈이 너무 많이 흐르니까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자궁만 수술하려고 6월 1일 날 빈센트 병원에 아빠(남편)랑 약속을 해놓고, 우리 본당에서 인솔하는 자매님이 나주를 간다고 연락이 왔었어요.
그래서 아빠(남편)한테 알리지도 않고 병원에 가지 않고 여기를 왔었어요. 그전에 2번 왔지만, 그냥 왔다가 갔었어요. 그런데 그때 회장님께서 성모님에 대한 말씀을 다 얘기를 해 주시는데 회개가 막 오더라고요. 그리고 율리아 자매님께서 지금 고통이 너무 심하시기 때문에 비디오방에 가서 비디오를 보면서 기다리시라고. 그래서 비디오를 보는데, 그 낙태아들 그런 거 내가 어떤 처녀를 2 번 유산하라고 알선해 주었어요. 그래서 가슴을 치면서 너무너무 울었어요.
많은 비디오를 보면서 회개를 하였고 또 율리아 자매님 고통 겪은 것, 그걸 보고 7시쯤에 그때 나오셨어요. 우리가 여기 12시인가 도착을 했지만, 율리아 자매님께서 계속 고통이 너무 많이 심하셨다고 7시에 나오셨는데, 성모님 메시지 말씀을 전하시면서 “여러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 자비의 빛이 여러분에게 비추고 있습니다.” 그랬을 때 제가 성모상을 봤거든요.
그때 그 흰빛, 붉은빛 두 줄기를 제가 봤어요. 그때 본 빛을 오늘도 똑같이 보여주셨어요. 치유받은 그달, 처음에 저 문에서 회장님하고 율리아 자매님 찬미 드리는 모습을 볼 때 성모님도 이렇게 보시는데 그 빛이 치유받을 때에 똑같이 보여주셨거든요. 그때 율리아 자매님이 우리 하나하나 이렇게 손을 얹어 주셨는데, 어쩜 이렇게 수술한 그 아픈 부위를 손을 탁 대면서 기도를 해주셔요. 그때 그 뜨거움이 온몸으로 다 가면서 갈 때까지 몸이 불덩어리가 됐어요. 옆에 앉은 자매님이 너무 뜨거워서 도저히 내 옆에 앉지 못하겠대요.
그래서 집에 가서 11시 반쯤에나 도착을 했는데, 찬물로 끼얹어도 이 몸이 식질 않아요. 그래서 그때 기도하면서 치유란 걸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 제가 죄투성이란 걸 느꼈어요. 잘못 살아오고 그 죄가 많은 걸 생각할 때 내일 아침에 고백성사라도 마지막 볼 수 있도록 그 기회만 달라고 기도하면서 잤는데 5시 10분엔가 깼거든요.
그런데 그때 여기서 맡았던 장미향기가 온 방안에 가득했어요. 제가 깜짝 놀란 게 몸이 가볍고 잘 때 패드를 끼고 자는데 (피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거울 보니까 알레르기도 다 사라지고 또 가슴도 부드러워지면서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어요. (유방암이 치유됨)
그다음 날 레지오를 하는데, 내가 5단까지 다 선창을 하니까 레지오 부단장님이 자꾸 힐끔힐끔 봐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주 가서 나 치유받은가 봐.” 그랬더니 편지를 써야 된대요. 그래서 내 죄가 또다시 적나라하게 보이게 될까 싶어서 아휴, 나 안 쓴다고. 그거 못하겠다고 그랬더니 “안된다. 영광을 돌려드려야 된다.”고 인솔자 자매님이 그러셔요.
그날부터 다시 막 추워지대요. 그래서 밤에 막 회개를 하면서 한번도 써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매님 보고 대신 써달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6월 30일 날 행사에 와서 증언을 잘 못했어요. 마음도 붕 뜬 데다가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4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첫 토요일을 지키게 해 주셨어요. 그동안 매일 아침에 회개의 은총을 달라고. 그것밖에 기도한 적이 없어요. 회개함으로써 하느님을 알 수 있더라고요. 너무 새롭고 항상 그 (사랑의) 메시지 속에서 생활이 봉헌되도록 나를 쇄신시켜주더라고요. 그리고 “율리아 자매님께서 지금 고통 중에 계십니다.” 하면 그대로 믿었죠. 제 눈으로 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95년도 6월 30일 날 아까 강론하신 신부님께서 낙태아를 얘기할 때 갑자기 율리아 자매님 배가 이렇게 임신한 것처럼 불러오더라고요. 처음으로 봤었어요.
한번은 성모님 얼굴이 이렇게 부어있었는데, 율리아 자매님 똑같이 부어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때 성모님의 고통을 똑같이 율리아 자매님이 겪고 있단 거를 확실하게 보여주셨고 그리고 제가 재속 3회 프란치스코 회원인데 유기서약 하러 갈 때 갑자기 장미향기가 나요. 율리아 자매님이 스치더라고요. 그래서 “아, 율리아 자매님도 3회 회원, 회원입니까? 어머니?” 그랬더니 더 짙게 나요. 저는 3회 회원인 줄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한참 세월이 흘러서 어떤 자매님이 재속 3회 같은 회원이었는데, 율리아 자매님도 회원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사실은 남편하고 오늘 감사드린다고 1달 전에 차표를 나란히 끊어놨거든요. 그런데 지금 병원에 있기 때문에 저 혼자 왔어요. 이번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5월 20일 즈음 밤 1시에 남편이 죽어가요. 허리가 오그라지고 온몸이 오그라지면서 빳빳해져서 막 숨이 꺼져가요.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 머리가 완전히 비워져 버려요. 그러는데 갑자기 성모님 피눈물 흘린 사진이 생각나요. 옛날에 어떤 농약 환자가 그 사진 갖고 기도했을 때 몸이 나아서 지금 건강하게 직장에 다니거든요.
그 생각이 나서 피눈물 흘린 사진을 꺼내서 남편 허리에 대고 제가 막 회개를 하면서 울었어요. 한 10분 정도 그렇게 울었는데, 갑자기 몸에서 열이 팔팔 끓었는데, 땀이 온몸으로 막 줄줄 흐르는 거 나 처음 봤어요. 줄줄 흘러서 3번을 옷을 갈아입히고 그래도 막 줄줄 흐르더라고요. 이제 허리가 펴지면서 어머니 사진이 다 젖어서 물이 흐를 정도로 됐어요. 그래서 그 사진 다 버린 줄 알았더니 아침에 그대로 번듯 돼있었어요.
남편이 아침에 겨우 나와서 일어나 병원에 입원하게 됐는데요. 물이 찼는데, 그 물이 그때 터졌으면 완전히 죽었대요. 그 위급을 성모님께서 막아주셨어요. 그때 율리아 자매님이 기도를 해 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날로 회복이 돼서 월요일날 퇴원을 하면서 편지를 써줬어요. 자기가 못 가는 대신 성모님께 아내를 지금까지 건강 계속 유지하게 해주셨다고 감사 편지를 주셨거든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까지 받은 많은 은총들을 앞으로 어떻게 갚아야 될지, 그리고 치유받고 관리한다는 게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 보속해야 되는지 그런 걸 생각할 때 고통을 생각하게 됐어요.
이제 어떤 고통이 와도 감사하게 되고 어떤 어려움도 두렵지가 않아요. 다 성모님께 봉헌하는 마음을 단련시켜주셨어요. 이 모든 영광을 어머니 성심을 통하여 주님께 드립니다.
율리아님 : 우리 자매님이 아까 출혈을 했다고 그랬는데, 출혈 그쳤다고 안 했거든요. 암도 좋아졌다고는 했어도 검사해서 치유받았다는 이야기를 안 했거든요. 검사를 했는데, 암이 깨끗이 없어졌답니다. 그래서 암이 깨끗이 치유됐다는 진단서를 성모님한테 보내주셨어요. 그리고 성모님한테 편지를 쓰라고 하니까 안 쓴다고 그랬더니 출혈이 됐는데 아, 그래서 다시 썼는데 출혈이 그쳐서 지금까지 한번도 출혈 안 했답니다.
그리고 아들은 아까 신학교에 갔다고 그랬죠? 그 아들은 성모님이 앞에 있는 이 사진을 갖다가 크게 복사를 해서 아들 방에 말없이 그냥 걸어 놓으셨대요. 그랬는데 그 아들이 기도 잘 안 하는 아들이었는데, 이렇게 가만히 내다봤나 봐요. 그런데 그 앞에서 촛불 켜고 기도를 했는데, 그 이튿날 당장에 고백성사를 봤대요. 그때부터 사제가 되겠다고 약속을 했고 지금 신학교를 갔습니다.(사제가 되심) 주님께 감사합시다.
“제가 깜짝 놀란 게 몸이 가볍고 잘 때 패드를 끼고 자는데 (피가) 하나도 없었어요.”
와 놀랍습니다~
나주성모님의 크신 사랑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최 말가리다자매님 영적 및 치유의 은총을 받게 되심을 축하드립니다~
운영진님 은총의 글 올려주심에 너무나도 감사드려요~
항상 영육간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주여 영광과 찬미를 영원히 받으소서~ 성모님 기쁨만 가득하소서~ 아멘! 알렐루야~ ♡♡♡
세 번째로 온 암이 깨끗이 없어졌습니다!
(죽어가는 남편에게 피눈물 성모님 사진을 댔더니!)
찬미 예수님! 경기도 안성 최 말가리다입니다. 제가 1993년 6월 1일 날 여기 와서 치유를 받았을 적에 생일이었는데, 오늘 96년도에는 첫 토요일이 됐어요. 횟수로는 4년이고 만 3년이 됐습니다. 우리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제가 치유를 받았습니다. 지금 가톨릭 대학교(신학대학교) 입학을 했거든요.
제가 증언하면서 그걸 빠뜨렸어요. 이번에 부활 때 왔었거든요. 성모님 피눈물 그치고 나서 눈이 충혈되었을 때 7살 때 여기 와서 여기 제단 위에까지 올라가서 성모님 눈을 이렇게 쳐다봤어요. 성모님이 울고 나서 눈물 닦은 중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저한테. 이번에 저한테 “엄마, 예수님을 만나려면 아래로 내려가서 만나야 됩니다. 저도 그렇게 노력합니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을 때 제가 성모님께 아들이 작은 사제, 작은 영혼이 되게 해달라고 늘 봉헌했거든요.
어쨌든 저 애가 겸손해지고 또 사제가 되면 나주 성모님을 더 많이 전파하겠다고. 아들이 나주 성모님상을 안고 사진을 찍은 게 있거든요. 그 사진에 성체가 나타났어요. 여기서 치유받은 기념으로 성모상을 저에게 줬는데, 그걸 안고 우리 아들이 사진을 찍었거든요. 그러면서 성모님을 좋아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 모든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해서 여기 나왔습니다.
저는 왼쪽 유방 종양으로 2번 수술했었고, 3번째 재발이 됐었어요. 자궁에 혹이 한 4.5cm 정도 됐는데, 한 2개월 동안 계속 하혈을 막 했었어요. 그때 암으로, 하혈로, 방을 이렇게 막 움직이고 막 기어 다니고 막 그랬거든요. 몸 전체가 합병증, 알레르기, 열, 두통으로 만신창이 될 정도로 힘들었고 가슴 종양은 몽우리였었는데, 2번째 그때까지 몽우리였었는데, 3번째 재발했을 때는 그 부위가 다 딱딱할 정도로 됐고 덩어리로 뭉쳐있었어요. 그 부위는 차고 팔이 저려오면서 왼쪽 (눈)이 안 보였었어요.
그때 안경을 쓰게 됐는데, 제 생활도 너무 어려웠고 암 치료를 받는다 하면 아이들을 가르칠 수도 없어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임종) 준비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그런데 하혈이 너무 많이 흐르니까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자궁만 수술하려고 6월 1일 날 빈센트 병원에 아빠(남편)랑 약속을 해놓고, 우리 본당에서 인솔하는 자매님이 나주를 간다고 연락이 왔었어요.
그래서 아빠(남편)한테 알리지도 않고 병원에 가지 않고 여기를 왔었어요. 그전에 2번 왔지만, 그냥 왔다가 갔었어요. 그런데 그때 회장님께서 성모님에 대한 말씀을 다 얘기를 해 주시는데 회개가 막 오더라고요. 그리고 율리아 자매님께서 지금 고통이 너무 심하시기 때문에 비디오방에 가서 비디오를 보면서 기다리시라고. 그래서 비디오를 보는데, 그 낙태아들 그런 거 내가 어떤 처녀를 2 번 유산하라고 알선해 주었어요. 그래서 가슴을 치면서 너무너무 울었어요.
많은 비디오를 보면서 회개를 하였고 또 율리아 자매님 고통 겪은 것, 그걸 보고 7시쯤에 그때 나오셨어요. 우리가 여기 12시인가 도착을 했지만, 율리아 자매님께서 계속 고통이 너무 많이 심하셨다고 7시에 나오셨는데, 성모님 메시지 말씀을 전하시면서 “여러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 자비의 빛이 여러분에게 비추고 있습니다.” 그랬을 때 제가 성모상을 봤거든요.
그때 그 흰빛, 붉은빛 두 줄기를 제가 봤어요. 그때 본 빛을 오늘도 똑같이 보여주셨어요. 치유받은 그달, 처음에 저 문에서 회장님하고 율리아 자매님 찬미 드리는 모습을 볼 때 성모님도 이렇게 보시는데 그 빛이 치유받을 때에 똑같이 보여주셨거든요. 그때 율리아 자매님이 우리 하나하나 이렇게 손을 얹어 주셨는데, 어쩜 이렇게 수술한 그 아픈 부위를 손을 탁 대면서 기도를 해주셔요. 그때 그 뜨거움이 온몸으로 다 가면서 갈 때까지 몸이 불덩어리가 됐어요. 옆에 앉은 자매님이 너무 뜨거워서 도저히 내 옆에 앉지 못하겠대요.
그래서 집에 가서 11시 반쯤에나 도착을 했는데, 찬물로 끼얹어도 이 몸이 식질 않아요. 그래서 그때 기도하면서 치유란 걸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 제가 죄투성이란 걸 느꼈어요. 잘못 살아오고 그 죄가 많은 걸 생각할 때 내일 아침에 고백성사라도 마지막 볼 수 있도록 그 기회만 달라고 기도하면서 잤는데 5시 10분엔가 깼거든요.
그런데 그때 여기서 맡았던 장미향기가 온 방안에 가득했어요. 제가 깜짝 놀란 게 몸이 가볍고 잘 때 패드를 끼고 자는데 (피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거울 보니까 알레르기도 다 사라지고 또 가슴도 부드러워지면서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어요. (유방암이 치유됨)
그다음 날 레지오를 하는데, 내가 5단까지 다 선창을 하니까 레지오 부단장님이 자꾸 힐끔힐끔 봐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주 가서 나 치유받은가 봐.” 그랬더니 편지를 써야 된대요. 그래서 내 죄가 또다시 적나라하게 보이게 될까 싶어서 아휴, 나 안 쓴다고. 그거 못하겠다고 그랬더니 “안된다. 영광을 돌려드려야 된다.”고 인솔자 자매님이 그러셔요.
그날부터 다시 막 추워지대요. 그래서 밤에 막 회개를 하면서 한번도 써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매님 보고 대신 써달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6월 30일 날 행사에 와서 증언을 잘 못했어요. 마음도 붕 뜬 데다가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4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첫 토요일을 지키게 해 주셨어요. 그동안 매일 아침에 회개의 은총을 달라고. 그것밖에 기도한 적이 없어요. 회개함으로써 하느님을 알 수 있더라고요. 너무 새롭고 항상 그 (사랑의) 메시지 속에서 생활이 봉헌되도록 나를 쇄신시켜주더라고요. 그리고 “율리아 자매님께서 지금 고통 중에 계십니다.” 하면 그대로 믿었죠. 제 눈으로 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95년도 6월 30일 날 아까 강론하신 신부님께서 낙태아를 얘기할 때 갑자기 율리아 자매님 배가 이렇게 임신한 것처럼 불러오더라고요. 처음으로 봤었어요.
한번은 성모님 얼굴이 이렇게 부어있었는데, 율리아 자매님 똑같이 부어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때 성모님의 고통을 똑같이 율리아 자매님이 겪고 있단 거를 확실하게 보여주셨고 그리고 제가 재속 3회 프란치스코 회원인데 유기서약 하러 갈 때 갑자기 장미향기가 나요. 율리아 자매님이 스치더라고요. 그래서 “아, 율리아 자매님도 3회 회원, 회원입니까? 어머니?” 그랬더니 더 짙게 나요. 저는 3회 회원인 줄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한참 세월이 흘러서 어떤 자매님이 재속 3회 같은 회원이었는데, 율리아 자매님도 회원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사실은 남편하고 오늘 감사드린다고 1달 전에 차표를 나란히 끊어놨거든요. 그런데 지금 병원에 있기 때문에 저 혼자 왔어요. 이번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5월 20일 즈음 밤 1시에 남편이 죽어가요. 허리가 오그라지고 온몸이 오그라지면서 빳빳해져서 막 숨이 꺼져가요.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 머리가 완전히 비워져 버려요. 그러는데 갑자기 성모님 피눈물 흘린 사진이 생각나요. 옛날에 어떤 농약 환자가 그 사진 갖고 기도했을 때 몸이 나아서 지금 건강하게 직장에 다니거든요.
그 생각이 나서 피눈물 흘린 사진을 꺼내서 남편 허리에 대고 제가 막 회개를 하면서 울었어요. 한 10분 정도 그렇게 울었는데, 갑자기 몸에서 열이 팔팔 끓었는데, 땀이 온몸으로 막 줄줄 흐르는 거 나 처음 봤어요. 줄줄 흘러서 3번을 옷을 갈아입히고 그래도 막 줄줄 흐르더라고요. 이제 허리가 펴지면서 어머니 사진이 다 젖어서 물이 흐를 정도로 됐어요. 그래서 그 사진 다 버린 줄 알았더니 아침에 그대로 번듯 돼있었어요.
남편이 아침에 겨우 나와서 일어나 병원에 입원하게 됐는데요. 물이 찼는데, 그 물이 그때 터졌으면 완전히 죽었대요. 그 위급을 성모님께서 막아주셨어요. 그때 율리아 자매님이 기도를 해 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날로 회복이 돼서 월요일날 퇴원을 하면서 편지를 써줬어요. 자기가 못 가는 대신 성모님께 아내를 지금까지 건강 계속 유지하게 해주셨다고 감사 편지를 주셨거든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까지 받은 많은 은총들을 앞으로 어떻게 갚아야 될지, 그리고 치유받고 관리한다는 게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 보속해야 되는지 그런 걸 생각할 때 고통을 생각하게 됐어요.
이제 어떤 고통이 와도 감사하게 되고 어떤 어려움도 두렵지가 않아요. 다 성모님께 봉헌하는 마음을 단련시켜주셨어요. 이 모든 영광을 어머니 성심을 통하여 주님께 드립니다.
율리아님 : 우리 자매님이 아까 출혈을 했다고 그랬는데, 출혈 그쳤다고 안 했거든요. 암도 좋아졌다고는 했어도 검사해서 치유받았다는 이야기를 안 했거든요. 검사를 했는데, 암이 깨끗이 없어졌답니다. 그래서 암이 깨끗이 치유됐다는 진단서를 성모님한테 보내주셨어요. 그리고 성모님한테 편지를 쓰라고 하니까 안 쓴다고 그랬더니 출혈이 됐는데 아, 그래서 다시 썼는데 출혈이 그쳐서 지금까지 한번도 출혈 안 했답니다.
그리고 아들은 아까 신학교에 갔다고 그랬죠? 그 아들은 성모님이 앞에 있는 이 사진을 갖다가 크게 복사를 해서 아들 방에 말없이 그냥 걸어 놓으셨대요. 그랬는데 그 아들이 기도 잘 안 하는 아들이었는데, 이렇게 가만히 내다봤나 봐요. 그런데 그 앞에서 촛불 켜고 기도를 했는데, 그 이튿날 당장에 고백성사를 봤대요. 그때부터 사제가 되겠다고 약속을 했고 지금 신학교를 갔습니다.(사제가 되심) 주님께 감사합시다.
- 1996년 6월 최 말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