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1. 할아버지를 업고서 버스를 타고 매일 통원 치료를...
수술 후 시력 측정 결과 할아버지가 되찾은 시력이 왼쪽은 0.7이었고 오른쪽은 0.2였다. 그래서 안경을 맞춰 드렸다. “아이고 아짐, 눈뜨고 한 번만이라도 아짐을 보고 죽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두 눈을 다 뜨고 아짐을 본다우. 다 아짐 덕이요.” 하면서 너무너무 기뻐하셨다. “아버지,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수술도 하느님께서 하게 해주셨어요.” 했다.
나는 내가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수술비를 신부님께서 내주신 것으로 말씀드리며 감추었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전부 아짐 덕분이요. 그 은혜를 어떻게 다 갚겠소.” 하시며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나는 “아이, 아버지 감사는 주님께만 드리셔요.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요.” 했다.
퇴원 뒤에도 봉 할아버지를 모시고 매일 통원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차편이 너무나 불편하였다. 그런데 통원 치료 첫날은 다행히 감사하게도 본당 주임 박 요한 신부님께서 봉고차로 태워다 주셔서 우리는 편안하게 갔다. 할아버지와 손을 꼭 잡고 한참 가다가 봉 안드레아 할아버지가 “아짐” 하고 부르셨다.
“예?” 할아버지는 나를 찬찬히 바라보시며 “아짐, 머리가 참 예쁜디 쬐끔만 더 짜르면 더 이쁘겠소.” 하셨다. 그 말에 나는 또 울고 말았다. 배움도 없고 가난 속에, 아픈 형님과 소박맞은 동생, 자신도 홀아비로 늙어가며 각박하게만 인생을 살아오시며 냇가에서 물고기 잡아다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셨었다.
그런데 눈까지 멀어, 어떻게 살아가셨는지 안타깝기만 했는데 배움도 없는 시골 노인이신 봉 할아버지가 천사같이 예쁘게 말을 하시니 너무너무 감격했다. 나는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예쁘게 말씀하신 것은 모두 하느님 은총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머리를 자를 때가 되었지만 할아버지 병수발 하느라고 머리 손질 한 번 제대로 하지를 못했다.
‘그런데 그 오랜 세월 맹인으로 사신 86세나 된 할아버지가 내 머리가 좀 긴지 짧은지 그것을 어떻게 아셨을까?’ 하고 생각하니 너무너무 고마워서, 또 ‘주님, 성모님 사랑으로 거듭나시더니 말씀도 저렇게 예쁘게 하시네.’ 하는 생각에 울고 만 것이다.
나는 차창 밖 풍경 속 지나가는 차를 가리키며 “아버지, 저 차는 무슨 색깔이에요?” “파란색 차요.” “저 차는요?” “검정색 차요.” “저 차는요?” “하얀색 차요.” 또, 빨간 벽돌집을 가리키며 “저것은 무슨 색?” “빨간색이요!” 지나가는 모든 차 등 만물의 색깔들을 하나도 틀리지 않게 모두 알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 내 눈에서는 또다시 기쁨의 눈물이 줄줄줄 흘러내렸다.
하느님께 또다시 감사를 아니 드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봉일동 할아버지는 86세에 안드레아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고, 같은 해에 눈까지 뜨게 되시어 그야말로 하루하루 기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본당 신부님이 봉고차로 데려다주신 첫날을 제외하고는, 터미널까지 할아버지를 업고 가서 버스를 타고, 버스에서 내려 다시 또 업고 가깝지 않은 먼 거리를 걸어서 홍안과에 다녔다.
내가 돈을 잘 벌었기에 택시를 타고 다닐 수도 있었지만 할아버지의 눈을 떠주신 예수님과 성모님께 무한히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의 승리를 위함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보속을 바치는 마음으로 편하게 택시 타고 다니는 셈치고 희생을 바치고자 한 것이다.
‘오! 나의 예수님! 이토록 자비를 베풀어주신 당신을 위해서 이 죄녀가 못할 것이 무엇이겠나이까! 부디 이 작고 작은 희생을 통하여 주님과 성모님 위로받으시고 할아버지 건강하게 해주시고 죄인들 회개하게 해주시며 찬미와 영광을 영원 무궁토록 받으소서!’
751. 할아버지를 업고서 버스를 타고 매일 통원 치료를...
수술 후 시력 측정 결과 할아버지가 되찾은 시력이 왼쪽은 0.7이었고 오른쪽은 0.2였다. 그래서 안경을 맞춰 드렸다. “아이고 아짐, 눈뜨고 한 번만이라도 아짐을 보고 죽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두 눈을 다 뜨고 아짐을 본다우. 다 아짐 덕이요.” 하면서 너무너무 기뻐하셨다. “아버지,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수술도 하느님께서 하게 해주셨어요.” 했다.
나는 내가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수술비를 신부님께서 내주신 것으로 말씀드리며 감추었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전부 아짐 덕분이요. 그 은혜를 어떻게 다 갚겠소.” 하시며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나는 “아이, 아버지 감사는 주님께만 드리셔요.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요.” 했다.
퇴원 뒤에도 봉 할아버지를 모시고 매일 통원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차편이 너무나 불편하였다. 그런데 통원 치료 첫날은 다행히 감사하게도 본당 주임 박 요한 신부님께서 봉고차로 태워다 주셔서 우리는 편안하게 갔다. 할아버지와 손을 꼭 잡고 한참 가다가 봉 안드레아 할아버지가 “아짐” 하고 부르셨다.
“예?” 할아버지는 나를 찬찬히 바라보시며 “아짐, 머리가 참 예쁜디 쬐끔만 더 짜르면 더 이쁘겠소.” 하셨다. 그 말에 나는 또 울고 말았다. 배움도 없고 가난 속에, 아픈 형님과 소박맞은 동생, 자신도 홀아비로 늙어가며 각박하게만 인생을 살아오시며 냇가에서 물고기 잡아다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셨었다.
그런데 눈까지 멀어, 어떻게 살아가셨는지 안타깝기만 했는데 배움도 없는 시골 노인이신 봉 할아버지가 천사같이 예쁘게 말을 하시니 너무너무 감격했다. 나는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예쁘게 말씀하신 것은 모두 하느님 은총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머리를 자를 때가 되었지만 할아버지 병수발 하느라고 머리 손질 한 번 제대로 하지를 못했다.
‘그런데 그 오랜 세월 맹인으로 사신 86세나 된 할아버지가 내 머리가 좀 긴지 짧은지 그것을 어떻게 아셨을까?’ 하고 생각하니 너무너무 고마워서, 또 ‘주님, 성모님 사랑으로 거듭나시더니 말씀도 저렇게 예쁘게 하시네.’ 하는 생각에 울고 만 것이다.
나는 차창 밖 풍경 속 지나가는 차를 가리키며 “아버지, 저 차는 무슨 색깔이에요?” “파란색 차요.” “저 차는요?” “검정색 차요.” “저 차는요?” “하얀색 차요.” 또, 빨간 벽돌집을 가리키며 “저것은 무슨 색?” “빨간색이요!” 지나가는 모든 차 등 만물의 색깔들을 하나도 틀리지 않게 모두 알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 내 눈에서는 또다시 기쁨의 눈물이 줄줄줄 흘러내렸다.
하느님께 또다시 감사를 아니 드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봉일동 할아버지는 86세에 안드레아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고, 같은 해에 눈까지 뜨게 되시어 그야말로 하루하루 기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본당 신부님이 봉고차로 데려다주신 첫날을 제외하고는, 터미널까지 할아버지를 업고 가서 버스를 타고, 버스에서 내려 다시 또 업고 가깝지 않은 먼 거리를 걸어서 홍안과에 다녔다.
내가 돈을 잘 벌었기에 택시를 타고 다닐 수도 있었지만 할아버지의 눈을 떠주신 예수님과 성모님께 무한히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의 승리를 위함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보속을 바치는 마음으로 편하게 택시 타고 다니는 셈치고 희생을 바치고자 한 것이다.
‘오! 나의 예수님! 이토록 자비를 베풀어주신 당신을 위해서 이 죄녀가 못할 것이 무엇이겠나이까! 부디 이 작고 작은 희생을 통하여 주님과 성모님 위로받으시고 할아버지 건강하게 해주시고 죄인들 회개하게 해주시며 찬미와 영광을 영원 무궁토록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