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말씀은 기도에 관한 것입니다. 산 위에 있었던 모세의 이야기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투에 참여하고 있었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들판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산 위에서 두 팔을 벌린 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두 팔을 벌리고 기도해 본 적 있으신가요? 팔을 뻗고 기도하고 계셔보셔요. 그 자세로 한 시간 동안 계셔 보셔요. 어렵습니다. 우리는 팔을 뻗은 채로 오래 기도하는 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의 팔을 지탱해 줄 동료들이 함께할 때만 팔을 뻗은 채 기도를 계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어떤 여인이 있었는데, 재판관은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기를 원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미루고, 또 미루고, 또 미루었습니다.
마침내 그 재판관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과부가 너무도 성가시게 구니 그 소원대로 판결해 주어야지.”라고요.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기도의 끈기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랫동안 기도해 오고 계신가요? 정말, 정말 오랫동안 말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지겹거나 포기한 적은 없으신가요? 주님을 찬미합시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 끈기 있게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저 역시 여러분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기도하기 위해 이 거룩한 나주 성모님 동산에 왔습니다.
저는 이곳 나주에서 머무는 동안 참 많이 기뻤습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동산에 올라 아름답게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쳤습니다. 특히 십자가의 길 12처, 13처, 14처에 도달했을 때, 저는 깊이 감동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주님, 이 거룩한 동산에서 조금 더 머물며 당신의 어머니와 함께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사제 생활 45년 만에 처음으로 십자가의 길을 주관하게 되었을 때, 돌이켜보니 저는 그동안 수많은 십자가의 길에 참여해 왔었습니다. 저는 성 비오 신부님 성지와 예루살렘, 즉 비아 크루치스(십자가의 길)에서도 기도를 바쳐봤습니다.
하지만 이곳 나주에서 십자가의 길을 할 때에는 정말 마음 깊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제가 성모님과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 또 성모님께서 저와 함께 동행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진하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12처, 그리고 제13처에 이르렀을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너무 큰 감동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지고, 성모님께서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품에 안으시는 그 순간에 저는 깊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때 성모님께서는 얼마나 큰 슬픔을 겪으셨을까요. 그리고 예수님을 무덤에 안치해야 했을 때는 더욱더 깊은 고통과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며 겪으신 그 고통과 눈물이 얼마나 크셨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이 거룩한 동산에서 우리는 눈물 흘리시는 나주 성모님을 떠올립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겪은 고통 때문에 성모님께서는 너무나 많이 눈물 흘리셨습니다.
어제는 많은 분들이 올라와 치유 증언을 나눠 주셨습니다. 와, 정말 아름다운 치유의 증언들이었습니다!
저는 아팠습니다. 그런데 나주를 방문하고, 기도하며 마마 쥴리아와의 만남 동안, 문득 제 몸의 많은 병들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 여러분이 치유되었을까요? 여러분이 믿음 안에서 이 거룩한 동산에 와서 성모님과 함께하시며 성모님의 눈물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이 오른쪽 사진인 눈물 흘리시는 성모님처럼, 성모님께서 처음으로 우셨을 때, 물론, 이미 알려진 일이지만 성모님의 눈에서 처음으로 눈물이 흘러나오셨습니다.
왜 성모님께서는 우실까요?
그분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 특히 영적, 도덕적, 육체적 고통 속에서 말입니다. 성모님께서 우리가 죄로 인해, 혹은 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을 보실 때 성모님은 우십니다. 그 눈물 속에서 성모님께서는 아드님께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 아들아, 나는 이 형제자매들, 곧 이들 모두를 사랑한다.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다오. 간청한다.”
그러면 성모님의 순종하는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거예요. “네, 어머니, 기억합니다. 우리가 가나에 있었을 때 포도주가 떨어졌고, 어머니께서 포도주로 바꾸어 달라고 간청하셨던 그때를. 아직 저의 때가 아니었지만, 어머니께서 청하였기에, 나는 그 결혼 잔치의 기쁨을 지키기 위해 신랑과 신부에게 포도주를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나주에서 치유받았다면, 눈물을 흘리신 성모님께 감사드리십시오. 집으로 돌아갈 때도, 우리의 고통과 병 속에 성모님께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가 아플 때 모든 탄식을 함께하신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것입니다. “성모님, 제가 몸이 좋지 않습니다. 제게 오시어서 저를 치유해 주세요.”
물론 제가 십자가의 길을 떠올릴 때, 성모님께서 제12처에 서 계시며 아드님께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셨고, 특히 예수님께서 이미 돌아가신 뒤 군인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피와 물이 예수님의 심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미 육체적으로 돌아가셨음을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기에 그 상처를 더 이상 느끼지 않으셨지만, 성모님은 살아 계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 십자가 아래 서 계셨고, 예수님의 옆구리가 창에 찔렸을 때, 우리에게 알려진 바와 같이 성모님의 성심도 함께 찔리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순간, 성모님께서도 피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라 상상하며 그렇게 믿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아드님께서 극도의 희생을 봉헌하는 중이셨기에 고통 속에서 울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또한 십자가의 길 제12처,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께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하셨고,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하셨을 때, 바로 이 말씀을 하고 계셨을 거예요. “어머니, 저의 이 제자들은 죄인들입니다. 그들은 많은 죄를 지을 것이며, 그로 인해 제가 십자가의 고통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그래서 주님께서는 요한을 가리키며 특별한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인이시여, 보십시오.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는 이런 뜻이었을 겁니다. “어머니시여, 사제들을 기억하소서, 저의 친애하는 사제들.” 어제 마마 쥴리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제들은 바로 ‘작은 예수님들’입니다.
우리 사제들은 모두 성모님의 아들이며, 그분께서는 단 한 명의 사제라도 잃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한 사제가 길을 잃을 때마다,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마치 예수님을 다시 잃은 듯 피눈물을 흘리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사제 아들 중 누구도 잃기를 원하지 않으시며, 그래서 저는 여기 쓰인 이 아름다운 (사랑의) 메시지를 사랑합니다. “사제들을 위하여 너희들이 희생제물이 되어라. 내가 도와주고 있다. 그러니 끝까지 보호하여라. 그들은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갈바리아 십자가 아래에서 성모님께서는 사제들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사제 아들들이 누구도 잃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나주 성모님동산에서 성모님께서는 피눈물을 흘리시는데, 그것은 성모님께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들이 당신을 위로해드리고, 사제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바치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사진은, 우리 모두의 치유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병이나 고통, 어떤 문제 속에 있을지라도 성모님께서는 눈물로 우리를 위로하시며, 우리가 그러한 고통이나 문제를 겪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성모님 피눈물 흘리신 39주년을 맞이하여 우리가 보는 두 번째 사진은 성모님께서 피눈물을 흘리신 이유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언제나 아름답게 희생을 봉헌하길 바란다.”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 안에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삶 속에서 어느 정도의 고통과 희생, 그리고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지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마마 쥴리아께서 말씀하시듯 때때로 우리에게 “내 탓”이라 고백하고, “아멘”으로 응답하며, “주님, 고통스럽고 고난을 겪어야 할지라도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성모님께서 피눈물 흘리시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마마 쥴리아께서는 낙태로 인한 대속 고통으로 인해서 배가 부풀어 오르십니다. 그리고 마마 쥴리아께서 우리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실 때에, 치유의 영이 우리에게 오시죠. 네, 여러분은 치유받으시겠지만, 그분께서는 대속고통을 받으십니다.
마마 쥴리아께서 저에게 “주교님, 사랑합니다. 저는 기꺼이 주교님을 위해 고통을 받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마 쥴리아께 말씀드렸어요. “제가 당신의 아들이 되길 원하시나요? 저는 무거운 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많기 때문이지요. 당신께서 (저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으실 겁니다.” 하지만 마마 쥴리아께서 “제가 주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괜찮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친애하는 부모님들, 어머니와 아버지들, 특별히 어머니들! 여러분들은 자녀가 아플 때, 자녀를 위해 가장 먼저 기꺼이 고통받으려고 하시지요? 여러분은 하느님께 “하느님, 제 아들, 제 딸을 데려가지 마십시오. 대신 저에게 고통을 주십시오. 제 아들만은 안 됩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아들이나 딸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하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곳 나주 성모님동산에 왔을까요?
예, 한편으로는 나주 성모님의 눈물로 우리가 치유받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피눈물을 흘리신 성모님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 이곳에 온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서 말입니다. “어머니 마리아여, 저 또한 기꺼이 당신의 십자가, 당신의 고통, 그리고 당신의 슬픔에 동참하며 마마 쥴리아처럼, 그리고 오상을 받으신 모든 분들처럼, 주님을 진실하고 온전히 사랑하여 기꺼이 고통받고자 하는 분들처럼 희생에 참여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통에 우리 자신을 일치시키고 피눈물 흘리신 성모님, 우리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기 위해 이 나주 성모님동산을 오릅니다. 마지막으로, 친애하는 친구들, 형제자매 여러분. 이곳 나주 성모님동산에는 또한 매우 아름다운 무언가가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성모님께서는 단지 눈물, 우리 인간의 눈물만을 흘리신 것이 아닙니다.
성모님께서는 단지 피눈물만 흘리신 것이 아니라, 향유도 흘려 주십니다. 향유는 성모님의 눈물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저는 그 향유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향기로운 기름은 성모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시기 위해 흘려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고통을 받을지라도 행복하여라!” 셈치고! 아, 여러분은 마마 쥴리아께서 박해받으실 때조차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아시지요. “주님, 감사합니다. 저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기에, 사랑을 위해 희생하고 있기에 행복합니다.” 그러기에 마마 쥴리아는 행복해하시지요.
저는 이곳의 수녀님들을 보는 것이 매우 행복하답니다. 왜냐하면 수녀님들은 항상 행복해하며, 항상 미소 짓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께서 많은 어려움들을 감당하고 있음을 알고 있어요. 바로 우리들이 이곳에서 은총 받고 기쁨을 느끼도록 해 주기 위해서이지요. 하지만 이곳 수녀님들은 항상 기쁨에 차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설령 고통을 겪고, 수치를 당하며,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미소를 잃지 말라. 내가 너희의 어머니이며, 너희와 항상 함께 있기 때문이다.”라고요.
집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나주의 성물들, 대부분은 묵주를 가지고 가며 이렇게 말하겠지요. “우리들은 비록 이곳 나주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지만, 나주와 나주의 성모님은 우리와 함께 가십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이미 나주의 묵주, 상본, 그 밖에도 나주를 기억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통을 겪거나 아픔을 견딜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웃고 행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엄마께서 나와 함께 계시며, 내가 고통을 겪더라도 엄마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항상 손을 잡아 주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멘!
이번 말씀은 기도에 관한 것입니다. 산 위에 있었던 모세의 이야기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투에 참여하고 있었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들판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산 위에서 두 팔을 벌린 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두 팔을 벌리고 기도해 본 적 있으신가요? 팔을 뻗고 기도하고 계셔보셔요. 그 자세로 한 시간 동안 계셔 보셔요. 어렵습니다. 우리는 팔을 뻗은 채로 오래 기도하는 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의 팔을 지탱해 줄 동료들이 함께할 때만 팔을 뻗은 채 기도를 계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어떤 여인이 있었는데, 재판관은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기를 원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미루고, 또 미루고, 또 미루었습니다.
마침내 그 재판관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과부가 너무도 성가시게 구니 그 소원대로 판결해 주어야지.”라고요.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기도의 끈기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랫동안 기도해 오고 계신가요? 정말, 정말 오랫동안 말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지겹거나 포기한 적은 없으신가요? 주님을 찬미합시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 끈기 있게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저 역시 여러분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기도하기 위해 이 거룩한 나주 성모님 동산에 왔습니다.
저는 이곳 나주에서 머무는 동안 참 많이 기뻤습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동산에 올라 아름답게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쳤습니다. 특히 십자가의 길 12처, 13처, 14처에 도달했을 때, 저는 깊이 감동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주님, 이 거룩한 동산에서 조금 더 머물며 당신의 어머니와 함께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사제 생활 45년 만에 처음으로 십자가의 길을 주관하게 되었을 때, 돌이켜보니 저는 그동안 수많은 십자가의 길에 참여해 왔었습니다. 저는 성 비오 신부님 성지와 예루살렘, 즉 비아 크루치스(십자가의 길)에서도 기도를 바쳐봤습니다.
하지만 이곳 나주에서 십자가의 길을 할 때에는 정말 마음 깊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제가 성모님과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 또 성모님께서 저와 함께 동행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진하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12처, 그리고 제13처에 이르렀을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너무 큰 감동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지고, 성모님께서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품에 안으시는 그 순간에 저는 깊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때 성모님께서는 얼마나 큰 슬픔을 겪으셨을까요. 그리고 예수님을 무덤에 안치해야 했을 때는 더욱더 깊은 고통과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며 겪으신 그 고통과 눈물이 얼마나 크셨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이 거룩한 동산에서 우리는 눈물 흘리시는 나주 성모님을 떠올립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겪은 고통 때문에 성모님께서는 너무나 많이 눈물 흘리셨습니다.
어제는 많은 분들이 올라와 치유 증언을 나눠 주셨습니다. 와, 정말 아름다운 치유의 증언들이었습니다!
저는 아팠습니다. 그런데 나주를 방문하고, 기도하며 마마 쥴리아와의 만남 동안, 문득 제 몸의 많은 병들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 여러분이 치유되었을까요? 여러분이 믿음 안에서 이 거룩한 동산에 와서 성모님과 함께하시며 성모님의 눈물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이 오른쪽 사진인 눈물 흘리시는 성모님처럼, 성모님께서 처음으로 우셨을 때, 물론, 이미 알려진 일이지만 성모님의 눈에서 처음으로 눈물이 흘러나오셨습니다.
왜 성모님께서는 우실까요?
그분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 특히 영적, 도덕적, 육체적 고통 속에서 말입니다. 성모님께서 우리가 죄로 인해, 혹은 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을 보실 때 성모님은 우십니다. 그 눈물 속에서 성모님께서는 아드님께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 아들아, 나는 이 형제자매들, 곧 이들 모두를 사랑한다.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다오. 간청한다.”
그러면 성모님의 순종하는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거예요. “네, 어머니, 기억합니다. 우리가 가나에 있었을 때 포도주가 떨어졌고, 어머니께서 포도주로 바꾸어 달라고 간청하셨던 그때를. 아직 저의 때가 아니었지만, 어머니께서 청하였기에, 나는 그 결혼 잔치의 기쁨을 지키기 위해 신랑과 신부에게 포도주를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나주에서 치유받았다면, 눈물을 흘리신 성모님께 감사드리십시오. 집으로 돌아갈 때도, 우리의 고통과 병 속에 성모님께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가 아플 때 모든 탄식을 함께하신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것입니다. “성모님, 제가 몸이 좋지 않습니다. 제게 오시어서 저를 치유해 주세요.”
물론 제가 십자가의 길을 떠올릴 때, 성모님께서 제12처에 서 계시며 아드님께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셨고, 특히 예수님께서 이미 돌아가신 뒤 군인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피와 물이 예수님의 심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미 육체적으로 돌아가셨음을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기에 그 상처를 더 이상 느끼지 않으셨지만, 성모님은 살아 계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 십자가 아래 서 계셨고, 예수님의 옆구리가 창에 찔렸을 때, 우리에게 알려진 바와 같이 성모님의 성심도 함께 찔리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순간, 성모님께서도 피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라 상상하며 그렇게 믿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아드님께서 극도의 희생을 봉헌하는 중이셨기에 고통 속에서 울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또한 십자가의 길 제12처,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께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하셨고,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하셨을 때, 바로 이 말씀을 하고 계셨을 거예요. “어머니, 저의 이 제자들은 죄인들입니다. 그들은 많은 죄를 지을 것이며, 그로 인해 제가 십자가의 고통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그래서 주님께서는 요한을 가리키며 특별한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인이시여, 보십시오.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는 이런 뜻이었을 겁니다. “어머니시여, 사제들을 기억하소서, 저의 친애하는 사제들.” 어제 마마 쥴리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제들은 바로 ‘작은 예수님들’입니다.
우리 사제들은 모두 성모님의 아들이며, 그분께서는 단 한 명의 사제라도 잃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한 사제가 길을 잃을 때마다,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마치 예수님을 다시 잃은 듯 피눈물을 흘리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사제 아들 중 누구도 잃기를 원하지 않으시며, 그래서 저는 여기 쓰인 이 아름다운 (사랑의) 메시지를 사랑합니다. “사제들을 위하여 너희들이 희생제물이 되어라. 내가 도와주고 있다. 그러니 끝까지 보호하여라. 그들은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갈바리아 십자가 아래에서 성모님께서는 사제들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사제 아들들이 누구도 잃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나주 성모님동산에서 성모님께서는 피눈물을 흘리시는데, 그것은 성모님께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들이 당신을 위로해드리고, 사제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바치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사진은, 우리 모두의 치유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병이나 고통, 어떤 문제 속에 있을지라도 성모님께서는 눈물로 우리를 위로하시며, 우리가 그러한 고통이나 문제를 겪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성모님 피눈물 흘리신 39주년을 맞이하여 우리가 보는 두 번째 사진은 성모님께서 피눈물을 흘리신 이유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언제나 아름답게 희생을 봉헌하길 바란다.”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 안에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삶 속에서 어느 정도의 고통과 희생, 그리고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지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마마 쥴리아께서 말씀하시듯 때때로 우리에게 “내 탓”이라 고백하고, “아멘”으로 응답하며, “주님, 고통스럽고 고난을 겪어야 할지라도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성모님께서 피눈물 흘리시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마마 쥴리아께서는 낙태로 인한 대속 고통으로 인해서 배가 부풀어 오르십니다. 그리고 마마 쥴리아께서 우리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실 때에, 치유의 영이 우리에게 오시죠. 네, 여러분은 치유받으시겠지만, 그분께서는 대속고통을 받으십니다.
마마 쥴리아께서 저에게 “주교님, 사랑합니다. 저는 기꺼이 주교님을 위해 고통을 받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마 쥴리아께 말씀드렸어요. “제가 당신의 아들이 되길 원하시나요? 저는 무거운 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많기 때문이지요. 당신께서 (저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으실 겁니다.” 하지만 마마 쥴리아께서 “제가 주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괜찮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친애하는 부모님들, 어머니와 아버지들, 특별히 어머니들! 여러분들은 자녀가 아플 때, 자녀를 위해 가장 먼저 기꺼이 고통받으려고 하시지요? 여러분은 하느님께 “하느님, 제 아들, 제 딸을 데려가지 마십시오. 대신 저에게 고통을 주십시오. 제 아들만은 안 됩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아들이나 딸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하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곳 나주 성모님동산에 왔을까요?
예, 한편으로는 나주 성모님의 눈물로 우리가 치유받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피눈물을 흘리신 성모님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 이곳에 온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서 말입니다. “어머니 마리아여, 저 또한 기꺼이 당신의 십자가, 당신의 고통, 그리고 당신의 슬픔에 동참하며 마마 쥴리아처럼, 그리고 오상을 받으신 모든 분들처럼, 주님을 진실하고 온전히 사랑하여 기꺼이 고통받고자 하는 분들처럼 희생에 참여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통에 우리 자신을 일치시키고 피눈물 흘리신 성모님, 우리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기 위해 이 나주 성모님동산을 오릅니다. 마지막으로, 친애하는 친구들, 형제자매 여러분. 이곳 나주 성모님동산에는 또한 매우 아름다운 무언가가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성모님께서는 단지 눈물, 우리 인간의 눈물만을 흘리신 것이 아닙니다.
성모님께서는 단지 피눈물만 흘리신 것이 아니라, 향유도 흘려 주십니다. 향유는 성모님의 눈물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저는 그 향유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향기로운 기름은 성모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시기 위해 흘려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고통을 받을지라도 행복하여라!” 셈치고! 아, 여러분은 마마 쥴리아께서 박해받으실 때조차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아시지요. “주님, 감사합니다. 저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기에, 사랑을 위해 희생하고 있기에 행복합니다.” 그러기에 마마 쥴리아는 행복해하시지요.
저는 이곳의 수녀님들을 보는 것이 매우 행복하답니다. 왜냐하면 수녀님들은 항상 행복해하며, 항상 미소 짓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께서 많은 어려움들을 감당하고 있음을 알고 있어요. 바로 우리들이 이곳에서 은총 받고 기쁨을 느끼도록 해 주기 위해서이지요. 하지만 이곳 수녀님들은 항상 기쁨에 차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설령 고통을 겪고, 수치를 당하며,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미소를 잃지 말라. 내가 너희의 어머니이며, 너희와 항상 함께 있기 때문이다.”라고요.
집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나주의 성물들, 대부분은 묵주를 가지고 가며 이렇게 말하겠지요. “우리들은 비록 이곳 나주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지만, 나주와 나주의 성모님은 우리와 함께 가십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이미 나주의 묵주, 상본, 그 밖에도 나주를 기억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통을 겪거나 아픔을 견딜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웃고 행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엄마께서 나와 함께 계시며, 내가 고통을 겪더라도 엄마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항상 손을 잡아 주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멘!
2025년 10월 19일
R 주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