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일은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날입니다. 엄마께서 삶 속에서 바쳐오신 기도가 바로 생활의 기도였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직접 알려주신 날이고, 또 하나는 성모님 동산에 기적의 샘물을 주신 날이기도 합니다. 이런 특별한 날에 제가 불림을 받았기에 이와 관련된 은총 증언을 하려고 합니다.
22년 전, 제가 호주에서 바로 나주에 왔을 때 먼저 성모님동산을 들렀었는데요. 저를 데리고 오신 분이 저보고 샤워장이 있다고 하면서 거기서 샤워를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는 샤워장 시설이 지금처럼 되어 있지 않고 십자가의 길 입구 쪽에 컨테이너로 있었는데 통에다 물을 받아서 바가지로 물을 끼얹는 그런 형식이었어요. 그런데 거기 들어가서 비누칠도 못 하고 “수건으로 닦지도 말아라.” 이렇게 하셔서 ‘무슨 그런 샤워가 있을까?’ 하면서 마지 못해 샤워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어요.
그러고 나서 그다음 주 9월 첫 토요일 성모님동산에 와서 제 의지로 샤워를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오늘 날짜였는데요. 제가 바가지로 물을 이렇게 끼얹는데 “왜 이제서야 왔니?” 하는 소리가 내면에서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고, 또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말인데 왜 이런 소리가 들리지? 혹시 내가 만들어내는 말인가?’ 하면서 그 소리를 부정했어요.
그런데 계속해서 “왜 이제서야 왔니? 왜 이제서야 왔니?” 하시면서 제가 샤워를 하지만 누군가가 바로 옆에서 저의 몸에 기적수를 끼얹어 주는 그런 느낌이 너무나 강하게 드는 거예요. 성경 속의 탕자처럼 스스로 이제 가출해서 세상 밖에 나가 고생을 엄청하고 모진 세상 풍파에 찌들어서 온갖 죄도 짓고 그러다가 이제 마지막으로 집을 생각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크게 꾸지람하실 줄 알았던 어머니께서 “왜 이제서야 왔니? 얼마나 기다렸는데.” 하는 그런, 정말 너무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는 거예요.
그 순간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예수님과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전혀 없었죠. 천주교 신자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나주에 대해서도 잘 몰랐으니까. 여기에 가면 치유를 받을 것 같은 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왔기 때문에 제 마음은 너무나 우울하고 한없이 무겁고 미래가 막막하여서 정말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그런데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나면서 너무나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세례도 받지 않았는데 그날 밤에 율리아 엄마께 글로리아라는 세례명을 받고 그다음 날 제가 아침에 일찍 성모님 계신 경당 안에 들어가니까 성모님께서 “글로리아, 글로리아!” 하면서 애타게 부르셨던 그런 경험이 있어요. 그 목소리하고 같았습니다. 그렇게 성모님께서는 저를 오랫동안 부르시면서 기다리셨는데 한 번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늦게서야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눈물로 꽉 차는 것 같고 성모님께 너무나 죄송하고 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제가 나주에서 봉사를 하다가 직장 생활 때문에 이제 봉사를 하지 못하게 되니까 주님, 성모님께 너무나 죄송했어요. ‘바쳐드릴 것도 없는데 주님, 성모님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때와 장소에 관련 없이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바칠 수 있는 생활의 기도가 생각이 났어요. 왜냐하면 제가 8월 27일 날 왔기 때문에 ‘성모님께서 그 특별한 날에 부르신 의미가 있을 거다.’ 생각하고 생활의 기도를 열심히 바쳐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생활의 기도 책을 항상 옆에 끼고 외우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몰랐던 것을 ‘어? 무슨 생활의 기도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책을 또 펼쳐서 보고 이러면서 거의 책을 달달 외우다시피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생활의 기도 바치는 그 수가 가속도가 붙는 거예요. 길을 가다가 이제 새가 날아가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생활의 기도를 바칩니다. 그런데 TV를 보거나 혹은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새가 보여요. 그러면 또 생활의 기도를 바쳐요.
또 책을 읽다가도 ‘새’라는 단어가 나오잖아요. 그러면 ‘주님! 저희들은 세속에 살고 있지만 언제나 삼구 전쟁의 속박에서 벗어나 주님 진리로부터 참 자유를 누리게 해 주소서.’ 하고 생활의 기도를 바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바치다 보니 한 동작에 많은 기도가 들어가 있고 또 금방 바친 기도를또 해야 되는 경우가 있어서 인간적인 생각으로 ‘조금 아까 바쳤는데 또 바쳐야 되나? 귀찮으니까 하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영적으로 생각하면 제가 안 하면 그냥 버려지는 기도잖아요.
버려지는 게 너무나 아까워서 도무지 안 하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제가 귀찮다고 생각할 때 누군가에게는 그 기도가 절실하게 필요할 수도 있고 제가 이렇게 살아 있는 동안에 끊임없이 생활의 기도를 바쳐서 천상의 보물 창고에 보화가 가득하면 마지막 날에 저 자신뿐만 아니고 가족들 그리고 제가 지향했던 사람들에게도 그 보물을 나눠줄 수 있으니까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이 생활의 기도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계속 쌓이고 쌓이면 생활의 기도를 바치는 당사자도 영성이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제가 지향한 사람에게도 그 은총이 전해져서 변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기 힘들었던 아버지를 지향에 두고 생활의 기도를 집중적으로 바치자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제가 아버지께 드릴 수 있었고, 또 전혀 그런 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신데 아버지께서 고맙다는 말도 저한테 해 주셨습니다.
저희 집에는 항상 불화와 원망과 미움이 가득해서 아무 일 없이 밥 한 끼 먹는 게 소원이었는데요. 이제는 저희 가족들이 다 서로 안부 전화도 하고 기분 좋게 가족 모임도 해서 맛있게 밥 한 끼 먹고 행복하게 헤어집니다. 이 모든 은총은 제가 잘해서 받은 게 아니고 엄마의 기도와 희생과 대속 고통 덕분이고 주님과 성모님께서 많은 사람들과 나누라고 주시는 선물임을 제가 정말 깊이 느끼기에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또 여기 계신 분들도 같은 은총을 받으실 수 있도록 알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해서 이 증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영광을 나주에서 발현하시고 현존하시는 주님과 성모님께 돌려드리며 모든 은총의 통로가 되신 율리아 엄마께도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8월 27일은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날입니다. 엄마께서 삶 속에서 바쳐오신 기도가 바로 생활의 기도였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직접 알려주신 날이고, 또 하나는 성모님 동산에 기적의 샘물을 주신 날이기도 합니다. 이런 특별한 날에 제가 불림을 받았기에 이와 관련된 은총 증언을 하려고 합니다.
22년 전, 제가 호주에서 바로 나주에 왔을 때 먼저 성모님동산을 들렀었는데요. 저를 데리고 오신 분이 저보고 샤워장이 있다고 하면서 거기서 샤워를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는 샤워장 시설이 지금처럼 되어 있지 않고 십자가의 길 입구 쪽에 컨테이너로 있었는데 통에다 물을 받아서 바가지로 물을 끼얹는 그런 형식이었어요. 그런데 거기 들어가서 비누칠도 못 하고 “수건으로 닦지도 말아라.” 이렇게 하셔서 ‘무슨 그런 샤워가 있을까?’ 하면서 마지 못해 샤워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어요.
그러고 나서 그다음 주 9월 첫 토요일 성모님동산에 와서 제 의지로 샤워를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오늘 날짜였는데요. 제가 바가지로 물을 이렇게 끼얹는데 “왜 이제서야 왔니?” 하는 소리가 내면에서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고, 또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말인데 왜 이런 소리가 들리지? 혹시 내가 만들어내는 말인가?’ 하면서 그 소리를 부정했어요.
그런데 계속해서 “왜 이제서야 왔니? 왜 이제서야 왔니?” 하시면서 제가 샤워를 하지만 누군가가 바로 옆에서 저의 몸에 기적수를 끼얹어 주는 그런 느낌이 너무나 강하게 드는 거예요. 성경 속의 탕자처럼 스스로 이제 가출해서 세상 밖에 나가 고생을 엄청하고 모진 세상 풍파에 찌들어서 온갖 죄도 짓고 그러다가 이제 마지막으로 집을 생각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크게 꾸지람하실 줄 알았던 어머니께서 “왜 이제서야 왔니? 얼마나 기다렸는데.” 하는 그런, 정말 너무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는 거예요.
그 순간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예수님과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전혀 없었죠. 천주교 신자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나주에 대해서도 잘 몰랐으니까. 여기에 가면 치유를 받을 것 같은 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왔기 때문에 제 마음은 너무나 우울하고 한없이 무겁고 미래가 막막하여서 정말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그런데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나면서 너무나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세례도 받지 않았는데 그날 밤에 율리아 엄마께 글로리아라는 세례명을 받고 그다음 날 제가 아침에 일찍 성모님 계신 경당 안에 들어가니까 성모님께서 “글로리아, 글로리아!” 하면서 애타게 부르셨던 그런 경험이 있어요. 그 목소리하고 같았습니다. 그렇게 성모님께서는 저를 오랫동안 부르시면서 기다리셨는데 한 번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늦게서야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눈물로 꽉 차는 것 같고 성모님께 너무나 죄송하고 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제가 나주에서 봉사를 하다가 직장 생활 때문에 이제 봉사를 하지 못하게 되니까 주님, 성모님께 너무나 죄송했어요. ‘바쳐드릴 것도 없는데 주님, 성모님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때와 장소에 관련 없이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바칠 수 있는 생활의 기도가 생각이 났어요. 왜냐하면 제가 8월 27일 날 왔기 때문에 ‘성모님께서 그 특별한 날에 부르신 의미가 있을 거다.’ 생각하고 생활의 기도를 열심히 바쳐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생활의 기도 책을 항상 옆에 끼고 외우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몰랐던 것을 ‘어? 무슨 생활의 기도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책을 또 펼쳐서 보고 이러면서 거의 책을 달달 외우다시피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생활의 기도 바치는 그 수가 가속도가 붙는 거예요. 길을 가다가 이제 새가 날아가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생활의 기도를 바칩니다. 그런데 TV를 보거나 혹은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새가 보여요. 그러면 또 생활의 기도를 바쳐요.
또 책을 읽다가도 ‘새’라는 단어가 나오잖아요. 그러면 ‘주님! 저희들은 세속에 살고 있지만 언제나 삼구 전쟁의 속박에서 벗어나 주님 진리로부터 참 자유를 누리게 해 주소서.’ 하고 생활의 기도를 바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바치다 보니 한 동작에 많은 기도가 들어가 있고 또 금방 바친 기도를또 해야 되는 경우가 있어서 인간적인 생각으로 ‘조금 아까 바쳤는데 또 바쳐야 되나? 귀찮으니까 하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영적으로 생각하면 제가 안 하면 그냥 버려지는 기도잖아요.
버려지는 게 너무나 아까워서 도무지 안 하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제가 귀찮다고 생각할 때 누군가에게는 그 기도가 절실하게 필요할 수도 있고 제가 이렇게 살아 있는 동안에 끊임없이 생활의 기도를 바쳐서 천상의 보물 창고에 보화가 가득하면 마지막 날에 저 자신뿐만 아니고 가족들 그리고 제가 지향했던 사람들에게도 그 보물을 나눠줄 수 있으니까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이 생활의 기도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계속 쌓이고 쌓이면 생활의 기도를 바치는 당사자도 영성이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제가 지향한 사람에게도 그 은총이 전해져서 변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기 힘들었던 아버지를 지향에 두고 생활의 기도를 집중적으로 바치자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을 제가 아버지께 드릴 수 있었고, 또 전혀 그런 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신데 아버지께서 고맙다는 말도 저한테 해 주셨습니다.
저희 집에는 항상 불화와 원망과 미움이 가득해서 아무 일 없이 밥 한 끼 먹는 게 소원이었는데요. 이제는 저희 가족들이 다 서로 안부 전화도 하고 기분 좋게 가족 모임도 해서 맛있게 밥 한 끼 먹고 행복하게 헤어집니다. 이 모든 은총은 제가 잘해서 받은 게 아니고 엄마의 기도와 희생과 대속 고통 덕분이고 주님과 성모님께서 많은 사람들과 나누라고 주시는 선물임을 제가 정말 깊이 느끼기에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또 여기 계신 분들도 같은 은총을 받으실 수 있도록 알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해서 이 증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영광을 나주에서 발현하시고 현존하시는 주님과 성모님께 돌려드리며 모든 은총의 통로가 되신 율리아 엄마께도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