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예비하신 삶」-471화. 시어머니의 친어머니이신 시외할머니 모셔오다

wlsgodqn
2023-06-25
조회수 1336


시어머니의 친어머니이신 시외할머니 모셔오다

나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위중한 상태였다. 출혈이 계속되던 그때 벌써 내 온몸에 암이 퍼져 말기 암으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데다 먹지도 못하는데 아문 것 같은 곳에서 다시 피고름이 나올 뿐 아니라 하혈까지 했으니….

 

대학병원에서 듣게 되었던 장이 썩은 것 아니냐는 의사들의 말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그때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하느님을 부르면서 마음을 다시 굳건히 했다. ‘오 하느님, 저 꼭 살아야 합니다. 제가 먹는 이 약을 신약으로 바꿔주시어 부디 제 병든 육신을 치유해주세요.

제가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불쌍한 우리 어머니와 아이들 때문에 죽을 수가 없어요. 딸로서, 엄마로서 역할을 해내게 해주시고 우리 가정을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이렇게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드리면, 전혀 움직일 수도 없던 내가 조금씩은 몸을 움직이며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을 조금씩 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 찾아오셨다. “어미야, 집에 있냐?” 나는 시어머니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하던 일을 멈추고 재빨리 마당으로 나갔다. “어머니, 오셨어요?” 시어머니는 마루로 가서 앉으셨다. 나는 ‘혹시 또 돈을 달라고 오신 것일까?’ 싶어 너무 긴장되었다. 다행히도 시어머니는 내게 돈 얘기는 하지 않고 다른 말씀을 하셨다.
 
“너, 광주 살 적에 모시고 살았던 외할머니 기억하냐?” “그럼요, 제가 어찌 할머니를 잊을 수가 있겠어요.” “외할머니가 올해로 95세이신디, 참말로 그 며느리인 올케 때문에 내가 속상해 죽겠다.” 하시더니 시어머니께서는 시외할머니께서 며느리의 학대 때문에 견디기 어려워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시어머니는 듣는 내내 내 마음이 아파오는 말씀을 이어가셨다. 시외할머니는 그 연세에 불도 때주지 않는 추운 방에서 겨울을 지내시며, 며느리가 외숙이 계실 때는 식사를 드리는데 외숙만 안 계시면 밥도 제대로 챙겨드리지 않아 식사도 잘 못 하시고 구박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가엾게도 할머니는 며느리의 구박에 도저히 견디지 못하여 큰딸(내 시어머니)네 집에도 계셨다가 큰손주 집에도 계셨다가 계속 이집 저집을 전전하셔야 했던 것이다. 나주에 있는 큰손주 집에 계실 때는, 손주며느리가 술 좋아하시는 시외할머니가 술 잡수시는 것도 싫어하여 못 드시게 했다.
 

그래서 내가 큰딸 하나 낳은 뒤부터 한 번씩, 없는 돈 쪼개어 아무도 모르게 시외할머니 위해 술과 안주를 숨겨 가지고 가서 가만히 내드리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시외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아가, 너무 고맙다, 고마워. 나를 이렇게 챙겨준 사람은 오직 너뿐이다.” 하셨다.
 
 

그러다 어쩌다 한 번씩 허리춤에서 꾸깃꾸깃한 돈을 꺼내어 나에게 주시려고 했다. 그러면 나는 안 받으려고 할머니와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하곤 했다. 할머니는 내가 안 받는다고 속상해하며 우시려고까지 하셨기에 할 수 없이 그 돈을 받아 더 보태어 술과 안주를 사다 드리곤 했다.


이것은 둘만 아는 소중한 추억이었다. 그리고 내가 광주 시댁에 들어가 살면서는 시외할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열여섯 대식구 살림살이 모든 일과를 마친 늦은 밤에는 할머니 방에 들어가서 말동무도 해드리고 안마도 해 드렸다. 할머니는 “너는 하늘에서 떨어졌냐? 땅에서 솟아났냐? 어찌 너같이 착한 것이 다 있다냐?
 
네 시어미 좋으려고 너같이 착한 것이 들어왔네.” 하시며 아이처럼 좋아하셨었다. 사실 시어머니는 광주에서 내가 시외할머니와 너무나 기쁘게 사랑하며 살았고, 할머니께서도 행복해하셨던 것을 알았기에, 내가 모셨으면 하고 오신 것이었다. 나는 배의 통증이 여전했고, 건강은 이미 다 망가진 듯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그렇지만 내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시외할머니가 학대당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내 상처는 겨우 조금씩 아물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알지는 못했지만, 그때 이미 말기 암으로 이미 죽어가고 있었기에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태였다. 거기다 시골 재래식 살림을 살면서 돌보아야 할 아이들이 넷에, 남편 뒷바라지까지 해야 했다.
 
그러나 홀대당하시는 할머니가 너무 불쌍해서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보고 싶은 아버지 모시는 셈 치고 모셔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시어머님께 “어머님, 할머니를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와주세요, 제가 모실게요.” 했다. 그러자 시어머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 그러면 내일 모시고 오마이.” 하셔서 “예, 어머니!” 했더니 바로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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