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서부터 항문, 발가락 사이까지 다 퍼져나온 것은?
고통을 그렇게도 잘 봉헌하는 나였지만, 이렇게는 살아갈 수가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 나는 할 수 없이 처음으로 바쁜 남편에게 부탁하였다. 나는 어머니와 남편의 부축을 받아 어렵게 영암 대성병원으로 갔다. 어머니와 남편에게 미안하여, 부축을 받으면서도 최대한 아픈 내색은 하지 않고 힘들지 않은 셈 치며 영암 대성병원에 도착했다.
진료받기 전 혈압을 재는데 50-40이 나와 간호사가 깜짝 놀랐다. 곧 진료실로 들어갔는데 익숙한 얼굴의 원장님이 나를 맞았다. 말할 힘도 없었지만, 나아야 하니 최대한 자세히 내 증상을 설명했다. “원장님, 제가 목이 편도선 부은 것처럼 완전히 붓고 거기에 무언가 좁쌀 같은 게 틈도 없이 돋아난 데다, 가만히 있어도 아려서 물조차 삼키기가 힘들어요.
음식을 전혀 먹을 수가 없고, 변도 볼 수가 없고, 발이 또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무좀인 것 같아서 무좀약을 쓰는데도 더 심해져만 가요.” 의사가 나를 진찰대 위에 눕히고 내 발을 자세히 관찰해보더니 탄식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큰 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해보아야겠습니다.”
원장과 의사는 나를 측은하게 바라만 보았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나의 증상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원장님, 잠깐만 더 들어주셔요. 제가 계속 변이 안 나오는데, 관장을 하려고 해도 항문이 띵띵 붓고 크게 튀어나와 너무 아픈 데다, 관장기가 전혀 들어가지를 않아요. 그래서 관장을 할 수가 없어요.” 원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소견서를 써 드릴 테니 광주 전대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세요.” “원장님, 저는 그곳으로는 갈 수가 없어요. 지난번에 그 병원에서 수술하다가 배 속에 거즈를 놔둔 채 꿰매 3개월 만에 거즈가 배를 뚫고 터져 나온 것 잘 아시잖아요. 상처가 아물지 않아 계속 피고름이 나서 여기서도 2개월 넘도록 치료받았잖아요.”
“그러니까 더욱 큰 병원으로 가셔야지요.” 나의 말이 전혀 통하지 않자 나는 더욱 초조해져 원장님을 붙들고 통사정하며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죄송해요. 저는 아이가 넷이나 되어요. 그때 급성맹장염 왔을 때도 빨리 수술해야 된다고 원장님이 말씀하셨잖아요. 기억나세요?” “네, 기억납니다.”
“저는 아이들이 넷이나 돼 시댁 가족들이 있는 광주에서 수술하고 도움받으려고 했었는데, 오히려 여러 가지로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여기에서 치료받으려고요. 치료해주셔요. 네? 원장님.” 내가 간절히 호소하자 원장은 큰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알았어요. 그러면 진찰이나 한번 해 봅시다.”
원장님은 일단 내게 입을 벌려보라고 해서 빛을 비추어 목 안을 들여다보았다. 원장님은 가늘게 눈을 뜨고 목 안을 관찰하다, “아...!” 소리를 내며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옆에 있던 다른 의사도 내 목을 보게 되었는데, 그 또한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원장님께 물었다. “으, 원장님, 저것들이 다 무엇인가요?”
그러나 원장님은 그의 질문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후 원장님은 나를 진찰대에 올려놓고 항문을 벌려보려고 했다. 역시나 항문이 벌려지지를 않아 무슨 주사인지 몰라도 주사 세 대를 놓고 벌려보려 해도 안 되었다. 또다시 두 대를 더 놓았다. 그래도 안 되어 또다시 두 대, 총 7번 주사를 놓고 나서야 겨우 항문이 아주 조금 열렸는지 의사가 급하게 어머니와 남편을 불렀다.
그런데 그 주사가 어찌나 아프던지, 그렇게 고통스럽고 아픈 주사는 세상에 다시는 없을 것 같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주사라면 어떤 주사라도 아주 잘 맞았다, 그런데 그때의 심정은 ‘어떤 수술을 하더라도, 혹은 불 속에서 살을 태우는 아픔이라 하여도 이 주사만큼 아프지는 않으리라.’ 생각될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항문밖에 까지 퍼져나온 암 덩어리에다 놓은 주사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아팠던 것이었다. 그래서 주사를 일곱 대를 맞았는데 맞을 때마다, 태어나 처음으로 그렇게 큰소리로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밖에서 기다리던 어머니와 남편은 그 소리를 듣고 놀라, 너무 안타까워하며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가슴이 타들어 갔다고 하셨다.
나는 지금껏 수많은 죽음의 경지에서 그토록 고통스러웠어도 단 한 번도 소리를 질러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절로 나오는 큰 신음소리에 나 또한 놀랐다. 치질이 크게 자리 잡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토록 아프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내게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목에서부터 항문, 발가락 사이까지 다 퍼져나온 것은?
고통을 그렇게도 잘 봉헌하는 나였지만, 이렇게는 살아갈 수가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 나는 할 수 없이 처음으로 바쁜 남편에게 부탁하였다. 나는 어머니와 남편의 부축을 받아 어렵게 영암 대성병원으로 갔다. 어머니와 남편에게 미안하여, 부축을 받으면서도 최대한 아픈 내색은 하지 않고 힘들지 않은 셈 치며 영암 대성병원에 도착했다.
진료받기 전 혈압을 재는데 50-40이 나와 간호사가 깜짝 놀랐다. 곧 진료실로 들어갔는데 익숙한 얼굴의 원장님이 나를 맞았다. 말할 힘도 없었지만, 나아야 하니 최대한 자세히 내 증상을 설명했다. “원장님, 제가 목이 편도선 부은 것처럼 완전히 붓고 거기에 무언가 좁쌀 같은 게 틈도 없이 돋아난 데다, 가만히 있어도 아려서 물조차 삼키기가 힘들어요.
음식을 전혀 먹을 수가 없고, 변도 볼 수가 없고, 발이 또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무좀인 것 같아서 무좀약을 쓰는데도 더 심해져만 가요.” 의사가 나를 진찰대 위에 눕히고 내 발을 자세히 관찰해보더니 탄식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큰 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해보아야겠습니다.”
원장과 의사는 나를 측은하게 바라만 보았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나의 증상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원장님, 잠깐만 더 들어주셔요. 제가 계속 변이 안 나오는데, 관장을 하려고 해도 항문이 띵띵 붓고 크게 튀어나와 너무 아픈 데다, 관장기가 전혀 들어가지를 않아요. 그래서 관장을 할 수가 없어요.” 원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소견서를 써 드릴 테니 광주 전대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세요.” “원장님, 저는 그곳으로는 갈 수가 없어요. 지난번에 그 병원에서 수술하다가 배 속에 거즈를 놔둔 채 꿰매 3개월 만에 거즈가 배를 뚫고 터져 나온 것 잘 아시잖아요. 상처가 아물지 않아 계속 피고름이 나서 여기서도 2개월 넘도록 치료받았잖아요.”
“그러니까 더욱 큰 병원으로 가셔야지요.” 나의 말이 전혀 통하지 않자 나는 더욱 초조해져 원장님을 붙들고 통사정하며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죄송해요. 저는 아이가 넷이나 되어요. 그때 급성맹장염 왔을 때도 빨리 수술해야 된다고 원장님이 말씀하셨잖아요. 기억나세요?” “네, 기억납니다.”
“저는 아이들이 넷이나 돼 시댁 가족들이 있는 광주에서 수술하고 도움받으려고 했었는데, 오히려 여러 가지로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여기에서 치료받으려고요. 치료해주셔요. 네? 원장님.” 내가 간절히 호소하자 원장은 큰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알았어요. 그러면 진찰이나 한번 해 봅시다.”
원장님은 일단 내게 입을 벌려보라고 해서 빛을 비추어 목 안을 들여다보았다. 원장님은 가늘게 눈을 뜨고 목 안을 관찰하다, “아...!” 소리를 내며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옆에 있던 다른 의사도 내 목을 보게 되었는데, 그 또한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원장님께 물었다. “으, 원장님, 저것들이 다 무엇인가요?”
그러나 원장님은 그의 질문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후 원장님은 나를 진찰대에 올려놓고 항문을 벌려보려고 했다. 역시나 항문이 벌려지지를 않아 무슨 주사인지 몰라도 주사 세 대를 놓고 벌려보려 해도 안 되었다. 또다시 두 대를 더 놓았다. 그래도 안 되어 또다시 두 대, 총 7번 주사를 놓고 나서야 겨우 항문이 아주 조금 열렸는지 의사가 급하게 어머니와 남편을 불렀다.
그런데 그 주사가 어찌나 아프던지, 그렇게 고통스럽고 아픈 주사는 세상에 다시는 없을 것 같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주사라면 어떤 주사라도 아주 잘 맞았다, 그런데 그때의 심정은 ‘어떤 수술을 하더라도, 혹은 불 속에서 살을 태우는 아픔이라 하여도 이 주사만큼 아프지는 않으리라.’ 생각될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항문밖에 까지 퍼져나온 암 덩어리에다 놓은 주사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아팠던 것이었다. 그래서 주사를 일곱 대를 맞았는데 맞을 때마다, 태어나 처음으로 그렇게 큰소리로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밖에서 기다리던 어머니와 남편은 그 소리를 듣고 놀라, 너무 안타까워하며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가슴이 타들어 갔다고 하셨다.
나는 지금껏 수많은 죽음의 경지에서 그토록 고통스러웠어도 단 한 번도 소리를 질러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절로 나오는 큰 신음소리에 나 또한 놀랐다. 치질이 크게 자리 잡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토록 아프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내게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