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484화. 아이와 함께 죽고자 거리로 나왔건만

wlsgodqn
2023-07-14
조회수 1116

 



아이와 함께 죽고자 거리로 나왔건만


셋째는 한창 말을 배우고 있었기에 말귀를 조금이라도 알아들었다. 나는 시어머니의 말에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더는 듣지 못하도록 얼른 아이 귀를 막았다. 그러나 잔인한 그 말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이내 죽을힘을 다해 살아보려는 내 의지마저 꺾어버리려는 듯 여린 내 마음 깊숙이 찌르며 파고들었다.

 

나는 아이를 꼭 끌어안으며, ‘그래. 아가야, 네가 못 나을 병이라면 차라리 엄마랑 함께 죽어버리자. 나도 병이 낫지도 못하니 더 이상 살아갈 힘도 없구나. 할머니가 우리를 저렇게 걸림돌로 생각하시는데 우리가 더 살아서 뭐하겠니?’ 나는 그토록 처절하게 살아오면서 어떠한 것도 셈 치고 봉헌해왔다.



어쩔 수 없이 시댁에 들어와 병원을 다니면서도 시댁 식구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으려고,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몸으로 밤잠도 못 자고 아이를 돌봤다. 밤에 아이가 울 때는 식구들이 깰까 봐 밖에 나가 업었다가 안았다가 하며 아이 울음소리가 방에 들리지 않도록 몸부림하면서 진땀까지 흘리며 최선을 다해 봉헌하던 나였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하신 말씀은 단지 아이에게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 들으라고 하신 말씀인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내 가슴 속 깊숙이 쓰라림이 매서운 파도처럼 나를 집어삼킬 듯 밀려왔다. 이제까지, 며느리인 내게는 그렇게 모진 말씀을 하셨어도 항상 사랑받은 셈 쳤기에 아름답게 봉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힘들어하는 어린아이와 함께 그토록 잔인한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면서 감내하기엔 너무나 아프고 힘들어, 날카로운 비수에 찔린 듯 아픈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있었기에 일어난 일이기에 내 탓으로 받아들이며 바로 시어머니께 용서를 청했다.

 

“어머니, 그동안 아이 때문에 제대로 주무시지도 못하신 거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린 뒤, 나를 보지도 않고 대답도 하지 않으시는 시어머니를 뒤로하고 짐을 챙겨 아이를 업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인적없는 조용한 거리.



시댁을 서둘러 나와 크게 한숨 들이쉬자, 서늘한 밤공기가 내 폐부 깊숙이 흘러들어와 아픈 마음에 몸부림하던 나를 깨우는 것 같았다. 막상 죽으려고 하니 어떻게 죽어야 할지도 몰랐다. 나는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추스르며, ‘그래, 윤홍선! 다시 한번 힘을 내보자. 해내자. 시댁에 간 내 탓이지. 내가 있었기에 일어난 내 탓이야.’

 

이렇게 생각하니 나의 여린 가슴을 휩싸던 쓰라림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목숨 다해 사랑하는 친정어머니와 아이들이 눈에 밟혀 차마 죽을 수는 없었다. 내가 어떤 희생을 치르며 지켜온 가정인가! 등에 업힌 가여운 셋째는 이 순간에도 울며 기침을 하고 있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셋째를 업고 한참을 터덜터덜 걸어서 광주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아침 5시가 되었다. 영암을 거쳐 진도로 가는 첫차를 타고 가다 영암에서 내렸다. 영암에서 또다시 군서 가는 차를 5시간 기다렸다가 타고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온몸에 진땀을 뻘뻘 흘린 채 힘이 완전히 다 소진되어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이를 업은 채 쓰러지고 말았다. 놀라신 친정어머니는 안타까이 우시며 기력이 다해 죽어가는 딸에게 얼른 정성껏 녹두죽을 쒀서 먹여주셨다. 어머니는 어찌 된 일인지 내게 묻지 않으셨지만, 아이를 업고 눈물범벅으로 녹초가 되어 돌아온 딸의 모습을 보고 아마 짐작하셨으리라.


 


다시 정신을 차린 나는 깊은 밤 중 도망치듯 시댁에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신세가 너무 처량하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기침하며 괴로워하는 셋째 아이가 너무 불쌍하여 어머니와 아이들을 꼭 끌어안은 채로 끝내 울고 말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시어머니께 사랑받은 셈 치고, 시댁에 간 내 탓으로 봉헌했다.


그리고 힘을 내어, 아이가 얼른 나을 수 있도록 다시 최선을 다해 아이를 돌보았다. 백일해는 백일 동안만 기침하는 게 아니었다. 백일해가 낫지 않고 오래되면 천식으로 발전한다는데 백일이 훨씬 넘도록 낫지 않으니 정말 천식으로까지 와버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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