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해에 걸린 셋째 아이
손에 화상을 입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셋째 아이가 백일해에 걸렸다. 군서에서 치료를 계속했지만 낫지를 않았다. 그래서 영암으로 가서 치료를 해봤는데도 낫기는커녕 오히려 기침이 더 심해졌다.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봐도 차도가 없어 광주에서 제일 잘한다는 박 소아과에서 병을 고쳐보고자, 아이들과 살림은 친정어머니께 맡기고 셋째만 데리고 광주 시댁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내가 조금만 시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친정어머니께 그 화살이 돌아가기에 시댁에서는 특히나 더 신경을 쓰고 조심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몸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 데리고 시댁에 간다는 것이 많이 망설여졌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시댁에 도착해 시어머니의 허락을 구하고자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어머님, 셋째가 백일해에 걸렸는데 도무지 기침이 낫질 않아요. 광주 박 소아과에 가보려 하는데 군서에서는 아이 데리고 다닐 수가 없어서 며칠만 여기서 머물면서 병원에 다녀도 될까요?” 못마땅하신 표정으로 나를 보시던 시어머님은 “그래라.” 하시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마음이 쓰였지만 ‘어미야, 너 몸도 안 좋은데 아이까지 아파서 더 고생하는구나.’ 하는 사랑의 말을 들은 셈 치고 봉헌했다. 나는 광주 시댁에서도 결코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시댁 살림을 도왔다. 매일 밤새도록 기침하는 아이를 돌보느라 잠 한숨 자지 못했고, 아침이 되면 일찍 부엌에 나가 밥을 지어 시댁 식구들 밥을 차려주었다.
그 후 설거지가 끝나면 시댁 식구들 빨래까지 다 한 뒤에야 한숨을 돌리고 병원에 가기를 반복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박 소아과에 매일 다니며 치료해도 별 효과가 없이 아이는 계속 기침을 했다. ‘그래도 일주일은 다녀봐야지 않겠나?’ 생각하면서 매일 치료를 하던 중, 5일째 밤이 되었다.
밤이 되면 아이 기침이 더 심해졌다. 나는 괴로워하는 아이가 너무 안타까워 울고, 아이는 기침이 너무 심해 아파 울었다. 나는 안 그래도 아픈 몸으로 기침하는 아이를 돌보느라 계속 잠까지 못 잤기에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시댁에서는 아기 울음소리, 기침 소리가 너무 듣기 싫고 밤에 잠도 자기 힘들다며 너무 성가셔하셨다.
나는 충분히 그러실 수 있다고 생각하여, 비록 시어머니의 친 손녀딸이기도 하지만, 아이를 데려온 내 탓으로 봉헌하며 불편함을 끼쳐 드린 것에 대해 용서를 청했다. “어머니, 아이 기침 때문에 잠도 잘 못 주무시도록 불편을 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빨리 낫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시어머니는 아이가 어떤지 한 번 물어보지 않으시고 계속 짜증스런 말씀들을 하셨다.
그러나 ‘아가, 너무 고생이 많구나. 아이들을 많이 키우다 보면 그럴 때도 있단다. 그러니 잠을 못 자도 잠잔 셈 치고 잘 봉헌하여라.’ 하시는 다정한 시어머니의 사랑의 말씀을 들은 셈 치고 봉헌했다. 나는 내 몸 하나 지탱할 힘도 없었지만, 잠자는 식구들에게 미안해서 아이가 울면 얼른 아이를 안았다가 업었다가 하며 계속 달래느라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 너머에서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시어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 정말, 사람이 안 되려면 여러 사람 힘들지 않게 차라리 일찍 죽어버리는 게 낫지.” 아이를 안고 다독이던 손이 멈추고, 일순간 내 몸이 바위처럼 굳어지는 듯했다. 나는 너무 놀랐으나 마음을 가다듬고 ‘내가 잘못 들었겠지?’하고 내 귀를 의심해봤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내 그런 노력마저도 산산이 부수는 말씀을 이어 하셨다. “정말 징그러워 죽겄네 그냥, 사람 잠도 못 자게 에이 참!”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힘이 풀리며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럴 수가...’ 숨이 턱 막히며 눈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백일해에 걸린 셋째 아이
손에 화상을 입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셋째 아이가 백일해에 걸렸다. 군서에서 치료를 계속했지만 낫지를 않았다. 그래서 영암으로 가서 치료를 해봤는데도 낫기는커녕 오히려 기침이 더 심해졌다.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봐도 차도가 없어 광주에서 제일 잘한다는 박 소아과에서 병을 고쳐보고자, 아이들과 살림은 친정어머니께 맡기고 셋째만 데리고 광주 시댁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내가 조금만 시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친정어머니께 그 화살이 돌아가기에 시댁에서는 특히나 더 신경을 쓰고 조심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몸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 데리고 시댁에 간다는 것이 많이 망설여졌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시댁에 도착해 시어머니의 허락을 구하고자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어머님, 셋째가 백일해에 걸렸는데 도무지 기침이 낫질 않아요. 광주 박 소아과에 가보려 하는데 군서에서는 아이 데리고 다닐 수가 없어서 며칠만 여기서 머물면서 병원에 다녀도 될까요?” 못마땅하신 표정으로 나를 보시던 시어머님은 “그래라.” 하시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마음이 쓰였지만 ‘어미야, 너 몸도 안 좋은데 아이까지 아파서 더 고생하는구나.’ 하는 사랑의 말을 들은 셈 치고 봉헌했다. 나는 광주 시댁에서도 결코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시댁 살림을 도왔다. 매일 밤새도록 기침하는 아이를 돌보느라 잠 한숨 자지 못했고, 아침이 되면 일찍 부엌에 나가 밥을 지어 시댁 식구들 밥을 차려주었다.
그 후 설거지가 끝나면 시댁 식구들 빨래까지 다 한 뒤에야 한숨을 돌리고 병원에 가기를 반복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박 소아과에 매일 다니며 치료해도 별 효과가 없이 아이는 계속 기침을 했다. ‘그래도 일주일은 다녀봐야지 않겠나?’ 생각하면서 매일 치료를 하던 중, 5일째 밤이 되었다.
밤이 되면 아이 기침이 더 심해졌다. 나는 괴로워하는 아이가 너무 안타까워 울고, 아이는 기침이 너무 심해 아파 울었다. 나는 안 그래도 아픈 몸으로 기침하는 아이를 돌보느라 계속 잠까지 못 잤기에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시댁에서는 아기 울음소리, 기침 소리가 너무 듣기 싫고 밤에 잠도 자기 힘들다며 너무 성가셔하셨다.
나는 충분히 그러실 수 있다고 생각하여, 비록 시어머니의 친 손녀딸이기도 하지만, 아이를 데려온 내 탓으로 봉헌하며 불편함을 끼쳐 드린 것에 대해 용서를 청했다. “어머니, 아이 기침 때문에 잠도 잘 못 주무시도록 불편을 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빨리 낫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시어머니는 아이가 어떤지 한 번 물어보지 않으시고 계속 짜증스런 말씀들을 하셨다.
그러나 ‘아가, 너무 고생이 많구나. 아이들을 많이 키우다 보면 그럴 때도 있단다. 그러니 잠을 못 자도 잠잔 셈 치고 잘 봉헌하여라.’ 하시는 다정한 시어머니의 사랑의 말씀을 들은 셈 치고 봉헌했다. 나는 내 몸 하나 지탱할 힘도 없었지만, 잠자는 식구들에게 미안해서 아이가 울면 얼른 아이를 안았다가 업었다가 하며 계속 달래느라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 너머에서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시어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 정말, 사람이 안 되려면 여러 사람 힘들지 않게 차라리 일찍 죽어버리는 게 낫지.” 아이를 안고 다독이던 손이 멈추고, 일순간 내 몸이 바위처럼 굳어지는 듯했다. 나는 너무 놀랐으나 마음을 가다듬고 ‘내가 잘못 들었겠지?’하고 내 귀를 의심해봤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내 그런 노력마저도 산산이 부수는 말씀을 이어 하셨다. “정말 징그러워 죽겄네 그냥, 사람 잠도 못 자게 에이 참!”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힘이 풀리며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럴 수가...’ 숨이 턱 막히며 눈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