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할머니와의 상봉을 그리며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으로부터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모시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연락을 받았다. 나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허망한 소식에 그 자리에 펄썩 주저앉고 말았다. “할머니... 할머니...! 흐흐흑... 이게 무슨 일인가요. 우리 같이 사랑을 나누며 오래도록 살기로 손가락 걸고 약속했잖아요.”
나는 엉엉 울고 말았다. ‘내 곁을 그렇게도 떠나기 싫어하신 할머니를 시외갓댁에 보내드린 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100세 넘도록 사실 것 같다던 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떠나 큰며느리 곁에서 겨우 15일 사시고 저세상으로 가셨다니! 당신의 집에 가셔서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리도 일찍 떠나셨을까? 하루만 더 기다리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외할머니께서 며느리의 집으로 들어가시자마자 15일 만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조금만 더 서둘렀더라면, 하루만 더 일찍 모시러 갔더라면!’ 모든 것이 내 탓으로 느껴져 한없이 눈물만 흘렀다.
우리 집에 계실 동안 그렇게도 행복해하셨던 할머니의 모습, 그리고 이사 소식을 듣고 나와 헤어지기 싫어 그토록 슬피 우셨던 얼굴이 떠올라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이것저것 다 준비해놓은 물건들이 주인을 잃은 채 쓸쓸하게만 보였다. 그리고 창고가 너무나 휑하게만 보였다. 내 마음 또한 텅 빈 듯 견딜 수 없이 시려왔다.
‘이런 창고라도 지어주실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도 가기 싫어하시던 시외할머니를 본가로 보내지 않았을 텐데...’ 너무나 안타까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엄마 곁을 어린아이가 그렇게까지 울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던 것과도 같이, 아니 어쩜 그보다 더 심하게 마음 아파하셨을 것이다.
파란만장했던 시외할머니의 생애를 생각하며 펑펑 울었다. 우리 집에 계실 때 그렇게 정정하고 건강하셨던 할머니가 그토록 빨리 가시다니! 우리 집에서 나와 함께 사랑을 나누며 조금 더 계셨으면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을, 시외할머니께서는 우리 집에 오시고 나서 꾸부정하시던 허리도 완전히 펴져 걸음도 힘있게 척척 잘 걸어 다니셨다.
살도 부쩍 오르시고 몸과 기운이 엄청나게 정정해지시자 시어머니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의 달라진 모습을 보며 깜짝깜짝 놀랐다. 하나같이들 “아이고, 이 할머니는 나이를 거꾸로 잡수시네, 그려. 새댁! 뭐 좋은 거 해 드린당가? 새댁 덕에 할머니는 백 세도 훨씬 넘게 사실 것이 틀림없네.”
“아니, 그래 까무잡잡하니 비실하시던 양반이 어째 저래 기운이 넘쳐서 얼굴에 윤이 반들반들하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셨대? 완전히 회춘하셨어, 회춘!” 하셨다. 나 또한 할머니께서 나날이 좋아지시는 모습을 보며 무척 기뻐하면서 할머니께서 오래 사시리라 생각했다.
‘나하고 사실 때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는데...’ 이런 생각들이 들자, 모든 것이 본가에 보내드린 내 탓으로 생각되어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파왔다. 그러나 세상을 떠나신 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니 좋은 곳으로 가시도록 기도할 따름이지 별다른 도리가 없지 않은가!
너무 가슴이 저리도록 메어와 그 아픈 몸으로도 돌아가신 시외할머니를 찾아 한달음에 달려갔다. 버스를 타고 할머니께 가는 길, 할머니를 업고 모셔드렸던 그때가 생각나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동안 여기서도, 저기서도, 그토록 홀대당하시는 시외할머니를
생각할 때면 너무 가엽고 또 보고 싶어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짠했었다.
고통받는 이들의 위로자이신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약자에게 더 큰 사랑을
보내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엄마의 마음과 같은것 같아요. 그런 위대하고 거룩한
사랑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은데 저는 너무나 저의 안위만을 생각하여 죄송하기만
합니다. 시외할머니의 죽음을 당면했던 엄마의 슬픈 심정이 느껴집니다. '내 탓'으로만
여기며 더 사랑하지 못해 눈물 흘리셨던 엄마의 마음을 정말 조금이라도 닮기를 청합니다.
아멘. 멀고도 먼 길이지만 5대 영성으로 더 열심히 사랑하며 살도로 노력하겠습니다. 아멘!
오늘도 소중한 일화에 무지무지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마음 써드리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wlsgodqn님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묵상 프로젝트 은총의 글 올려주심에 너무나도 감사드려요~
wlsgodqn님과 그 가정에 축복이 가득하시고 항상 영육간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8월 첫토 기도회에 꼭 뵈어요~
나주 순례 꾸준히 다니시고 앞으로도 모든 일 잘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거짓 공지문과 PD수첩과 TV 조선의 탐사보도 세븐거짓 방송등으로 마리아의 구원방주에서
내리는 일 없이 예수님과 성모님을 따라서 5대 영성으로 무장하여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어서 빨리 나주성모님 인준과 극심한 고통을 봉헌하시는 율리아 엄마의 빠른 회복과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께서는 율리아 엄마를 33세 로 만들어 주시어 세계 각처에서
메시지와 5대 영성 전파로 모든이가 마리아의 구원방주에 승선하도록 해주소서~
천국에서 계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전구해 주소서~
주여 영광과 찬미를 영원히 받으소서~ 성모님 기쁨만 가득하소서~ 아멘! 알렐루야~ ♡♡♡
나와 함께 하고자 그렇게도 우시던 할머니가 저세상으로!
시외할머니와의 상봉을 그리며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으로부터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모시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연락을 받았다. 나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허망한 소식에 그 자리에 펄썩 주저앉고 말았다. “할머니... 할머니...! 흐흐흑... 이게 무슨 일인가요. 우리 같이 사랑을 나누며 오래도록 살기로 손가락 걸고 약속했잖아요.”
나는 엉엉 울고 말았다. ‘내 곁을 그렇게도 떠나기 싫어하신 할머니를 시외갓댁에 보내드린 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100세 넘도록 사실 것 같다던 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떠나 큰며느리 곁에서 겨우 15일 사시고 저세상으로 가셨다니! 당신의 집에 가셔서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리도 일찍 떠나셨을까? 하루만 더 기다리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외할머니께서 며느리의 집으로 들어가시자마자 15일 만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조금만 더 서둘렀더라면, 하루만 더 일찍 모시러 갔더라면!’ 모든 것이 내 탓으로 느껴져 한없이 눈물만 흘렀다.
우리 집에 계실 동안 그렇게도 행복해하셨던 할머니의 모습, 그리고 이사 소식을 듣고 나와 헤어지기 싫어 그토록 슬피 우셨던 얼굴이 떠올라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이것저것 다 준비해놓은 물건들이 주인을 잃은 채 쓸쓸하게만 보였다. 그리고 창고가 너무나 휑하게만 보였다. 내 마음 또한 텅 빈 듯 견딜 수 없이 시려왔다.
‘이런 창고라도 지어주실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도 가기 싫어하시던 시외할머니를 본가로 보내지 않았을 텐데...’ 너무나 안타까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엄마 곁을 어린아이가 그렇게까지 울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던 것과도 같이, 아니 어쩜 그보다 더 심하게 마음 아파하셨을 것이다.
파란만장했던 시외할머니의 생애를 생각하며 펑펑 울었다. 우리 집에 계실 때 그렇게 정정하고 건강하셨던 할머니가 그토록 빨리 가시다니! 우리 집에서 나와 함께 사랑을 나누며 조금 더 계셨으면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을, 시외할머니께서는 우리 집에 오시고 나서 꾸부정하시던 허리도 완전히 펴져 걸음도 힘있게 척척 잘 걸어 다니셨다.
살도 부쩍 오르시고 몸과 기운이 엄청나게 정정해지시자 시어머니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의 달라진 모습을 보며 깜짝깜짝 놀랐다. 하나같이들 “아이고, 이 할머니는 나이를 거꾸로 잡수시네, 그려. 새댁! 뭐 좋은 거 해 드린당가? 새댁 덕에 할머니는 백 세도 훨씬 넘게 사실 것이 틀림없네.”
“아니, 그래 까무잡잡하니 비실하시던 양반이 어째 저래 기운이 넘쳐서 얼굴에 윤이 반들반들하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셨대? 완전히 회춘하셨어, 회춘!” 하셨다. 나 또한 할머니께서 나날이 좋아지시는 모습을 보며 무척 기뻐하면서 할머니께서 오래 사시리라 생각했다.
‘나하고 사실 때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는데...’ 이런 생각들이 들자, 모든 것이 본가에 보내드린 내 탓으로 생각되어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파왔다. 그러나 세상을 떠나신 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니 좋은 곳으로 가시도록 기도할 따름이지 별다른 도리가 없지 않은가!
너무 가슴이 저리도록 메어와 그 아픈 몸으로도 돌아가신 시외할머니를 찾아 한달음에 달려갔다. 버스를 타고 할머니께 가는 길, 할머니를 업고 모셔드렸던 그때가 생각나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