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술 때문에 불행했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시집을 와보니까 제 남편이 완전히 술 주독에 빠진 사람이었어요. 여자가 한 번 시집을 갔는데 나갈 수는 없고 예수님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때는 성모님도 잘 몰랐었는데 우연히 율리아 엄마의 낙태 보속 고통을 보고 너무나 제가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 큰 충격은 좋은 충격으로 받아들였고 ‘그래, 이 세상에 저런 분이 있을까? 남의 고통을 어떻게 저렇게 받아 내주지?’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났었어요.
저희 남편은 모든 것을 술 때문에 다 잃었어요. 가족을 지키지는 못할망정, 정말 있는 거 없는 거 다 날리고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나갔습니다. 그래서 아픈 시어머님과 동서하고 이렇게 여럿이 한 가족을 이루고살았는데 의지했던 우리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세상이 막 다 꺼진 것 같더라고요. 마리아 자매님이 “나주에 한번 가볼래?” 해서 “나 거기 꼭 가 볼게. 거기를 어떻게 알아?” 이랬더니 “나만 따라오면 갈 수가 있다.” 이러는 거예요.
고대한 끝에 며칠 안으로 후다닥 나주 순례를 하게 되었어요. 첫 날 성체를 영하는 순간 이 목에서부터 장미향기가 너무 진하게 나는 거예요. 그래서 성체에 대한 확실한 신심이 생겼어요. 그러고 나서 이제 율리아 엄마를 만났는데 만나는 순간 위에서부터 막 눈물이 흐르고 내 엄마도 그렇게 친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냥 느껴지는 거야. 막 뜨거워지고 눈물이 그냥 막 나요. 제가 눈물을 잘 안 흘리거든요. 그래서 “나는 죽어도 여기는 온다.” ‘내가 죽을 때까지 여기 순례 올 수 있도록 성모님 저를 도와주세요.’ 했어요.
제가 세 아이들을 키워야 되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해서든지 저는 일을 해야 됐거든요. 제가 직업이 목욕 관리사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 대학교 4학년이고 3학년이고 고등학교 2학년인데 학비 한 번 부족한 적 없고 애들이 내야 할 것 하루도 밀려 보지 않고 꼭꼭 맞춰 주셔가지고 애들도 거의 졸업단계에 다 왔습니다.
집을 잃고 노인회관에서 살았는데 그때는 태극기가 새마을기하고 두 개가 딱 붙어 있어요. 맨날 펄럭펄럭 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아이들이 “엄마, 태극기하고 새마을하고 이것만 좀 없었으면 좋았을 것인데.” 이래요. “야,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누가 태극기 휘날리는 집에 사냐? 우리나 되니까 큰 빽인줄 알아라!” 그랬거든요.
밖에 나간 신랑이 10년 만에 이제 저하고 연락이 되었어요. 우리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우리 애들 혼자 키우고 있는데 율리아 엄마 맨날 “용서하라. 용서하라.” 하는데 제가 어떻게 용서를 안 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저한테 주셔야지 제 힘으로는 절대로 못합니다, 내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데 용서를 해요. 그런데 하기는 할게요.’ 그랬거든요.
밖에 나간 신랑이 10년 만에 이제 저하고 연락이 되었어요.
우리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우리 애들 혼자 키우고 있는데
율리아 엄마 맨날 “용서하라. 용서하라.” 하는데 제가 어떻게
용서를 안 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저한테 주셔야지 제 힘으로는 절대로 못합니다, 내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데 용서를 해요. 그런데 하기는 할게요.’아멘!!!아멘!!!아멘!!!
눈믈없인 볼 수 없는 ..ㅠ.. 감동을 숟가락이 아니라 주걱으로 팍팍 퍼먹이는 글이네요 . 애~또 , 눈물 한번 훔치고 ...남자고 녀자고 그릇이 이 정도는 되야됩니다 . 아무리 많이배워도 즉 박사 즈그 5대조쯤이라해도 거의가 냄비수준이데에~에 . 어디서 우릴 보길 개밥에 도토리 취급을 하지만 우린 ? 맨날 펄럭펄럭 하는 태극기 , 새마을기 밑에서 살아요 ! ^-^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술 때문에 불행했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시집을 와보니까 제 남편이 완전히 술 주독에 빠진 사람이었어요. 여자가 한 번 시집을 갔는데 나갈 수는 없고 예수님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때는 성모님도 잘 몰랐었는데 우연히 율리아 엄마의 낙태 보속 고통을 보고 너무나 제가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 큰 충격은 좋은 충격으로 받아들였고 ‘그래, 이 세상에 저런 분이 있을까? 남의 고통을 어떻게 저렇게 받아 내주지?’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났었어요.
저희 남편은 모든 것을 술 때문에 다 잃었어요. 가족을 지키지는 못할망정, 정말 있는 거 없는 거 다 날리고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나갔습니다. 그래서 아픈 시어머님과 동서하고 이렇게 여럿이 한 가족을 이루고살았는데 의지했던 우리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세상이 막 다 꺼진 것 같더라고요. 마리아 자매님이 “나주에 한번 가볼래?” 해서 “나 거기 꼭 가 볼게. 거기를 어떻게 알아?” 이랬더니 “나만 따라오면 갈 수가 있다.” 이러는 거예요.
고대한 끝에 며칠 안으로 후다닥 나주 순례를 하게 되었어요. 첫 날 성체를 영하는 순간 이 목에서부터 장미향기가 너무 진하게 나는 거예요. 그래서 성체에 대한 확실한 신심이 생겼어요. 그러고 나서 이제 율리아 엄마를 만났는데 만나는 순간 위에서부터 막 눈물이 흐르고 내 엄마도 그렇게 친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냥 느껴지는 거야. 막 뜨거워지고 눈물이 그냥 막 나요. 제가 눈물을 잘 안 흘리거든요. 그래서 “나는 죽어도 여기는 온다.” ‘내가 죽을 때까지 여기 순례 올 수 있도록 성모님 저를 도와주세요.’ 했어요.
제가 세 아이들을 키워야 되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해서든지 저는 일을 해야 됐거든요. 제가 직업이 목욕 관리사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 대학교 4학년이고 3학년이고 고등학교 2학년인데 학비 한 번 부족한 적 없고 애들이 내야 할 것 하루도 밀려 보지 않고 꼭꼭 맞춰 주셔가지고 애들도 거의 졸업단계에 다 왔습니다.
집을 잃고 노인회관에서 살았는데 그때는 태극기가 새마을기하고 두 개가 딱 붙어 있어요. 맨날 펄럭펄럭 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아이들이 “엄마, 태극기하고 새마을하고 이것만 좀 없었으면 좋았을 것인데.” 이래요. “야,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누가 태극기 휘날리는 집에 사냐? 우리나 되니까 큰 빽인줄 알아라!” 그랬거든요.
밖에 나간 신랑이 10년 만에 이제 저하고 연락이 되었어요. 우리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우리 애들 혼자 키우고 있는데 율리아 엄마 맨날 “용서하라. 용서하라.” 하는데 제가 어떻게 용서를 안 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저한테 주셔야지 제 힘으로는 절대로 못합니다, 내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데 용서를 해요. 그런데 하기는 할게요.’ 그랬거든요.
2014년 11월 24일
김 아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