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지부 전혜원 릴리아나입니다.
엄마 친정 엄마가 조금씩 좀 치매가 오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
이제 동생이 분당에서 모시고 있는데 마침 남편 회사도 과천에 건물을 세워서
저희가 조금이라도 더 엄마를 좀 들여다 보기 위해서 동생이 살고 있는 집
앞동으로 이사를 했거든요.
2025년 성모님 눈물 흘리신 40주년 기념 기도회를 딱 끝나고,
6개월마다 그 유방 외과에 가서 검진을 하는데 유방암으로 이제 초기였어요.

성모님 눈물 40주년 다음날 예약 날짜가 7월 1일이었어요. 분당 서울대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죠. 저처럼 부분 절제를 한 사람들은 치료의 마지막이 방사선 치료예요.
제가 항암을 하게 되면 항암대로 하고 또 방사선은 방사선대로 해야 마무리가 되는데
제가 그때 좀 막막한게 동생이 수업이 있을 때는 제가 엄마를 모시고 가야 되거든요.
항암 치료 하게 되면 엄마를 어떻게 해 드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기도를 했어요.

은총 증언 보면 수술하기 전에 진짜 극적으로 그 암덩어리가 어디로 사라져서 수술 안 받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었잖아요. 저는 그걸 바란 게 아니라 제가 앞으로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이런 이 치료 과정에 얼마큼 아플지 괴로울지 정신적으로 힘들지 모든 게 다 두렵지만
나주 성지의 자유로운 순례 허용과 그리고 율리아 엄마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서
제가 그냥 부족하지만 아름답게 봉헌할 수 있게 해달라고만 기도를 드리고
혹시 그런 극적인 치유를 바란다면 그거는 주님 영광 드러내시라고
제가 또 만일 그렇게 해서 치유를 받으면 제가 그 내용을 영어로 다 번역해서
교황청의 대본 도배를 해야지 그 마음이었어요.

그 수술받는 것이 괴로움을 겪고 싶지 않아서 치유해 바란 게 아니고
그냥 주님 영광 드러내시라고 했는데 다 지나고 나서 생각을 해 보니까
초기였기 때문에 크기는 1센치 초기지만 항암 치료의 대상이 되어요.
요즘에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항암 치료를 했을 때 항암이 필요한 사람인가 아닌지까지
저위험군 고위험군 이렇게 점수가 나와요. 저는 15점 이제 항암은 일단하고 그리고 나서
이제 방사선 치료는 19번을 매일같이 병원에 가서 받았어요.
동네에 있는 그 유방 외과에는 선생님이 너무 잘 봐주니까 1년 치 예약이 이미 다 끝났고
저는 부천에서 이사를 갔기에 신규로 그 병원을 다녀야 되잖아요.
그 병원을 뚫기가 어렵고 신규 환자는 검진을 했을 때가 24년도 12월이었기 때문에
6개월 후면 때쯤에는 받았어야지 돼요. 병원에서 빠른 날짜가 7월 1일이래요.
제일 빠른 날짜가 7월 1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냥 제가 아멘으로 했어요.

성모님 눈물 40주년이 제일 중요하니까 그 행사에 집중해서 제가 맡은 봉사를 끝나고
이제 7월 1일에 가서 검사받을 생각을 했고 ‘너 그래도 안 죽어.’했어요.
그 방사선 치료도 그게 만만하지는 않거든요.
후유증도 있고 그리고 제가 걸린 이 암이 제 몸 안에 있는 여성 호르몬을 먹고 자라난 암이여서
재발률을 낮추기 위해서 5년 동안 제 몸 안에 있는 여성 호르몬을 완전히 씨를 말리는
항호르몬제 약을 5년 동안 매일 먹어야 되고 갱년기 증세가 더 심해진다는 거예요.

그 약의 설명서를 보면 부작용이 한 스무번 넘게 있어요. 골다공증 및 안면 홍조 등등 ..
이 약 선택의 여지가 없이 5년 동안 먹어야 돼요.
그래서 이것도 적응을 해도 지금 몸이 많이 안 좋아지고 막 배도 나오고 식단 관리해도 안 돼요.
몸이 그냥 다 엉망인 것 같은데 아름답게 이렇게 봉헌하고있어요.
1년마다 검진을 하고 MRI이니 뭐니 그렇게 해서 재발이 됐나 어디 전이가 생겼나
그거를 또 검진을 계속 받아야 돼요.그래서 7월 초에 이제 첫 검진입니다.
수술 이후에 가는 데 이제 무슨 CT를 찍을지 모릅니다.

수술을 하였고 다음은 올 9월 8일이 날짜죠.
성모님 생신 날짜 잡혀가지고 그래서 그냥 우연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고
그래도 그냥 감사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멘!
수원지부 전혜원 릴리아나입니다.
엄마 친정 엄마가 조금씩 좀 치매가 오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
이제 동생이 분당에서 모시고 있는데 마침 남편 회사도 과천에 건물을 세워서
저희가 조금이라도 더 엄마를 좀 들여다 보기 위해서 동생이 살고 있는 집
앞동으로 이사를 했거든요.
2025년 성모님 눈물 흘리신 40주년 기념 기도회를 딱 끝나고,
6개월마다 그 유방 외과에 가서 검진을 하는데 유방암으로 이제 초기였어요.
성모님 눈물 40주년 다음날 예약 날짜가 7월 1일이었어요. 분당 서울대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죠. 저처럼 부분 절제를 한 사람들은 치료의 마지막이 방사선 치료예요.
제가 항암을 하게 되면 항암대로 하고 또 방사선은 방사선대로 해야 마무리가 되는데
제가 그때 좀 막막한게 동생이 수업이 있을 때는 제가 엄마를 모시고 가야 되거든요.
항암 치료 하게 되면 엄마를 어떻게 해 드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기도를 했어요.
은총 증언 보면 수술하기 전에 진짜 극적으로 그 암덩어리가 어디로 사라져서 수술 안 받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었잖아요. 저는 그걸 바란 게 아니라 제가 앞으로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이런 이 치료 과정에 얼마큼 아플지 괴로울지 정신적으로 힘들지 모든 게 다 두렵지만
나주 성지의 자유로운 순례 허용과 그리고 율리아 엄마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서
제가 그냥 부족하지만 아름답게 봉헌할 수 있게 해달라고만 기도를 드리고
혹시 그런 극적인 치유를 바란다면 그거는 주님 영광 드러내시라고
제가 또 만일 그렇게 해서 치유를 받으면 제가 그 내용을 영어로 다 번역해서
교황청의 대본 도배를 해야지 그 마음이었어요.
그 수술받는 것이 괴로움을 겪고 싶지 않아서 치유해 바란 게 아니고
그냥 주님 영광 드러내시라고 했는데 다 지나고 나서 생각을 해 보니까
초기였기 때문에 크기는 1센치 초기지만 항암 치료의 대상이 되어요.
요즘에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항암 치료를 했을 때 항암이 필요한 사람인가 아닌지까지
저위험군 고위험군 이렇게 점수가 나와요. 저는 15점 이제 항암은 일단하고 그리고 나서
이제 방사선 치료는 19번을 매일같이 병원에 가서 받았어요.
동네에 있는 그 유방 외과에는 선생님이 너무 잘 봐주니까 1년 치 예약이 이미 다 끝났고
저는 부천에서 이사를 갔기에 신규로 그 병원을 다녀야 되잖아요.
그 병원을 뚫기가 어렵고 신규 환자는 검진을 했을 때가 24년도 12월이었기 때문에
6개월 후면 때쯤에는 받았어야지 돼요. 병원에서 빠른 날짜가 7월 1일이래요.
제일 빠른 날짜가 7월 1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냥 제가 아멘으로 했어요.

성모님 눈물 40주년이 제일 중요하니까 그 행사에 집중해서 제가 맡은 봉사를 끝나고
이제 7월 1일에 가서 검사받을 생각을 했고 ‘너 그래도 안 죽어.’했어요.
그 방사선 치료도 그게 만만하지는 않거든요.
후유증도 있고 그리고 제가 걸린 이 암이 제 몸 안에 있는 여성 호르몬을 먹고 자라난 암이여서
재발률을 낮추기 위해서 5년 동안 제 몸 안에 있는 여성 호르몬을 완전히 씨를 말리는
항호르몬제 약을 5년 동안 매일 먹어야 되고 갱년기 증세가 더 심해진다는 거예요.
그 약의 설명서를 보면 부작용이 한 스무번 넘게 있어요. 골다공증 및 안면 홍조 등등 ..
이 약 선택의 여지가 없이 5년 동안 먹어야 돼요.
그래서 이것도 적응을 해도 지금 몸이 많이 안 좋아지고 막 배도 나오고 식단 관리해도 안 돼요.
몸이 그냥 다 엉망인 것 같은데 아름답게 이렇게 봉헌하고있어요.
1년마다 검진을 하고 MRI이니 뭐니 그렇게 해서 재발이 됐나 어디 전이가 생겼나
그거를 또 검진을 계속 받아야 돼요.그래서 7월 초에 이제 첫 검진입니다.
수술 이후에 가는 데 이제 무슨 CT를 찍을지 모릅니다.
수술을 하였고 다음은 올 9월 8일이 날짜죠.
성모님 생신 날짜 잡혀가지고 그래서 그냥 우연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고
그래도 그냥 감사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