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희 가정에 넘치게 주신 은총을 여러분들께 전달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올해 1월부터 주신 은총이기 때문에 진짜 따끈따끈하고 나주의 은총이 넘쳐난다는 것을 너무나 느끼고 있고 성모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성당을 다녔습니다. 그러다 이제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저의 생각이 생기며 성당에 대해 불신하기도 하고 밖에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냉담도 하고 어머니가 아무리 성당을 가자고 하셔도 가지 않고 계속 밖으로 돌았던 것 같습니다.
한 번씩 어머니 성화에 이기지 못해 끌려다닌 성당, 그런 생활을 계속 해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는 비신자였는데 어머니의 권유로 성당에 입교를 하게 되었고 혼인 성사를 받고 아이를 가지게 되어 가정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육아를 하는데) 와이프가 폭력적인 성향과 우울증도 있고 집안을 어지른다든지 저희가 통제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을 때, 이거는 보통 일이 아니다 싶어 정신과에 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조울증 진단을 받았는데 이미 와이프는 저를 만나기 전, 20대 초부터 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였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처가 부모님들은 알고 계셨지만 이 일에 대해 외면하고 계셨기 때문에 저희 가정에 대해서 더 이상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도움을 주시려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저의 얕은 영성으로 인하여 누구의 도움도 없는 상태에서 이 가정을 꾸려갈 수 있을지 의심을 하면서 고뇌하고 ‘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이렇게 끌고 가다가는 우리 가정이 파탄이 날 수밖에 없겠다.’ 생각하여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의 불우한 처지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신앙이 없는 저에게는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이 하느님을 부정하게 되고 ‘내가 왜 성당을 가야 되는데?’ 이런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저의 신앙의 한계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와이프가 한 번씩 아이를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보여줬고 저희 어머니는 제가 신앙을 가지지 않고 세속적인 방탕한 생활을 하니까 “나주 함께 가자.”고. 그래야 네가 새로 살 수 있고, 네 앞의 앞길이 열릴 거라는 얘기해 주셨는데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가시는 걸 도저히 이해가 안 갔고 사기 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한테 다시는 그런 얘기하지 말라고 어머니도 아예 그런 데 얼씬하지 말라고 화를 내고 엄청난 반대를 했었습니다.
그러다 처에게도 어머니가 계속 초대하시면 어쩔 수 없이 한 번씩 나주에 왔었지만 둘 다 영성이 없었기 때문에 변화되는 것 없이 그냥 돌아가고 “봐! 똑같잖아! 하느님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어. 종교는 자유가 있다. 무슨 종교든 내 마음만 편하게 되면 되는데 엄마, 종교 강요하지 마라. 내 이래 이혼 만든 거, 다 하느님 아이가? 성당에서 혼인성사 했는데 애 돌도 안 돼 이혼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겠냐!”고 하면서 윽박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제가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정상적인 가정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왔습니다. 긴 이혼 생활 속에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려고 새로운 여자들도 만나 보았지만 저에게 맞는 짝이 나타나는 거는 진짜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제 나이 어느덧 지천명이 되고 딸아이도 제가 100일 때 데리고 왔지만 지금은 고3이 된 상태에서 또다시 전처가 조울증으로 감금 병동에 들어간다고 저에게 도움을 청해 왔습니다. ‘그래, 이제 좀 여유있는데 도와줘 볼까? 남도 해 주는데 그래도 아이의 친엄마인데 좀 도움을 줘 보자.’ 싶어서 병원에도 데리고 가고 감금 병동에 들어가야 될 때는 입원시키는 것도 같이 해 주고,
퇴원했을 때는 약 먹는 것도 도와주고 처갓집에 가서 도움을 주다가 생각지도 않게 둘째 아이가 갑자기 생기게 됐습니다. 와이프 나이가 40대 후반인데 산부인과 가니까 애 지우러 오셨냐고 묻더라고요. 그리고 와이프가 조울증 약 독한 거를 한참 쓰고 있을 때 임신을 했기 때문에 전에 의사한테 들었을 때 조울증 약을 먹으면 애한테 50% 이상 유전이 간다고 했었고, 약을 복용하고 있는 상태에서 임신을 한 거는 거의 애한테 그 약물이 들어간다고 봐야 되기 때문에 온전하지 못한 애가 나올 수 있는 확률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첫 번째 애 가졌을 때도 조울증 약을 먹으면서 저한테 얘기를 안 하고 생겼는데 그 애가 지금 멀쩡했기 때문에 ‘아, 이번도 멀쩡할 수 있지 않을까? 애를 지우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 생각이 있었습니다.
처에게 “네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잘했던 거 뭐니?” 그러니까 자기가 애 낳았던 거. 제대로 케어는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낳았던 거라고. 그런데 전처의 어머니는 여전히 반대하시더라고요. 첫째 때도 반대하셨지만 둘째 때도 지우라고 생떼를 다 쓰셨고.
“니는 이혼해서 남인데 내 딸 내가 보호자인데 내가 지우러 갈 거다.” 온갖 얘기를 하셨지만 제가 와이프를 설득했어요. “첫째 애가 우리가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듯이 지금 마지막으로 하느님이 우리한테 준 기회일 수도 있는데, 한번 해보자. 낳아보자. 첫째 애도 정상이었는데 정상으로 나올 수 있지 않겠니?” 했는데 애가 무럭무럭 커 주더라고요. 처갓집에서는 여전히 반대를 하고 저를 오지도 못하게 하는 상태였고.
일단은 다시 합가를 해야 되니까 합가 준비를 해야 되고, “야, 그동안 냉담하던 거 풀자.” 우리가 이혼한 것 때문에 냉담을 했었는데 지금 다시 이래 붙여놨는데 안 갈 이유가 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냉담을 풀고 성당을 다시 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초음파 찍으러 가보면 애가 너무 잘 움직이고 심장 소리도 크게 울리니까 너무 새롭고. 처부모님 쪽에서 앞전에도 조울증 때문에 딸한테 엄청 스트레스를 줬지만 이번에도 애를 가진다고 그러니까 엄청 스트레스를 줬는데 그로 인해 조울증이 8개월째 발병이 됐습니다.
첫째 임신해 있을 때는 조울증 발병이 안 됐거든요. 모유 수유하다가 3개월째 돼서 그게 터졌는데 지금 8개월 된 애가 뱃속에 있는 상황에서 조울증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터졌습니다. 처갓집에 어머니랑 있으면서 무슨 일이 터졌는지 폭력성도 나오고 집 안의 물건도 다 부러뜨리고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친엄마의 쌍욕을 막 하고 집에 모든 물건들은 다 쓰러져서 쓰레기 집처럼 돼 있고 어머니가 끝내는 감당이 안 되니까, 저보고 오라고 전화가 왔더라고요.
가서 보니까 얘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통제 불능 상태였고 안 되겠다 해서 그동안 한 번씩 다니던 정신과 병원에 갔더니 “임신 상태에서 왔기 때문에 진료를 못 해 주겠다. 이 약 쓰면 애한테 100% 가는데 애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애 죽으면 된다는 걸 쓰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닌데 지금 약을 쓸 수가 없다. 우리는 안 되니까 대학병원 가라.” 그러면서 진료 의뢰서를 써주더라고요.
그 의뢰서 가지고 경대, 영대, 대구에 있는 대학병원 다 돌았어요. 입원을 시켜야 되니까. 왜 그러냐면 처가 엄마나 친남동생이 집에 있는 거는 죽어도 싫다는 눈치가 저한테 확 왔습니다. 그런데 제 입장에서 애를 지운다는 거는 절벽 끝에 선 그런 상황. 8개월 동안 심장 소리를 듣다가 ‘얘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데 지금 병원에서는 다 얘 안 받아준대. 와이프는 손 묶여서 계속 끌려다니는데 방법이 없길래 친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니까 “야, 오늘이 나주 첫 토요일인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한번 가보자.”
지금 솔직히 받아주는 병원도 없고 자기 친부모도 받아주지 않겠다는 상황인데 갈 데가 없잖아요. ‘그래, 마지막 남은 동아줄이구나. 가자!’ 태워서 오는데 여러 가지 사고들이 있었어요. 휴게소 가서 안에 기물들 다 부숴놓고 난리 나는 일들이 있었지만, 여차여차해서 나주까지 왔습니다. 도착하니까 저녁 식사 시간이더라고요.
와이프를 데리고 식사를 하러 가니까 여전히 행패를 부려요. 지나가는 사람 브로치 뺏고, 식당 가서는 반찬들 손으로 다 헤치고, 다 뿌려놓고 ‘아, 도저히 감당이 안 되겠구나. 이대로 두면 다른 순례하시는 분들한테도 피해가 될 수 있겠다. 나주도 안 되는 가 보다.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이래 생각하고 다시 다 차로 돌아갔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여기에서 기도하시고 저와 제 딸과 전처는 차에 들어가서 앉아 있다가 “우리 다시 한번 들어가 볼까?” 처음에는 와이프가 “가기 싫다.” 그러더라고요.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 “야, 다시 한번 들어가 볼래?” 이러니까 “우리 그럴까?” “그래, 한번 다시 시도해 보자.” 이러면서 데리고 와서 성물 판매소 있는 TV 있는 데서 앉혀 놓고 참여하고 있는데 서서히 바뀌는 걸 느꼈어요.
두 손을 잡고 있어야 되는데 남에게 행패 부리던 애가 바뀌더라고요. 완전 정상으로 바뀐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까지 나아지더니 지부 순례하는 자리까지 들어와서 앉아 있었고 그날의 모든 행사를 마쳤고, 얘기하는 걸 딱 들었을 때 ‘아, 엄청 온화해지고 있다.’는 거를 느끼면서 엄청 기뻤습니다.
저는 엄청 사실적인 걸 따지는 사람이거든요. 토마처럼 옆구리에 손 넣어보고 봐야 믿는데 바로 옆에서 바뀌는 걸 봤기 때문에 저조차도 믿게끔 나주 성모님과 예수님은 저희한테 은총을 확! 주시더라고요. “느껴봐라! 어떤 곳인지 너희 한번 느껴봐!”
조울증이 발병되면 문제가 잠을 한숨도 안 자는 거예요. 수요일부터 잠을 한숨도 안 잤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잠 안 자는 공간이잖아요. 철야잖아요. 그런데 그날 잠 한숨도 안 잤지만 나주에서 돌아가는 길에 너무 편안하게 차 안에서 깊은 숙면에 빠지더라고요.
저는 이거를 언제 봤냐면 처음에 애 낳고 조울증 치료로 감금 병동에 한 달 동안 입원하면 얼이 빠져서 나와요. 약을 써서 어리한 상태로 나오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차 점차 회복이 되더라고요. 약물로 이미 완전히 가라앉혀 버렸기 때문에 폭력적인 건 없어요. 그러면서 통원 치료하고 약을 계속 먹으면서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나주에서는 1월 첫 토 한 방에 다 낫게 해 주셨어요. 딱 그 시간 (걸려서)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그 뒤에도 저희를 엄청 사랑하신다는 거를 느끼거든요. 저희가 이제 새로 재혼을 해야 되잖아요. 어머니랑 저랑 첫째 딸만 살던 집이었는데 이제 식구가 한 명 늘고 와이프가 들어와야 되니까 집을 찾으러 다니는데 원래 보던 것보다 리모델링도 다 됐는데 한 1,500만 원 싸게 하느님께서 저희한테 선물처럼 선사해 주시더라고요. 엄청 좋고. 저희 어머니가 “야, 너희 집 들어가서 살란다.” 할 정도의 크기로요. 원래 보려던 집에서 계약하기 직전에 그 집 딱! 보여주셔서 손해 안 보게끔 해 주셨어요.
그리고 3월달에 저희가 순례를 왔는데 외국 분들 오셨을 때, 율리아 어머니가 만남 해 주러 오셨더라고요. 그래 엄마를 딱 보고 나니까 ‘기도를 한번 청해보자.’ “저희 와이프가 조울증인데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고 만남 좀 부탁드리겠다.”고 얘기하니까 만남을 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엄청 사랑을 주시더라고요. ‘아, 출산 잘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첫째 낳았던 의사 선생님이 진짜 자상하시고 노산도 잘 보셨던 분이어서 ‘그 의사 선생님한테 둘째도 낳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 의사 선생님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 요새 젊은 사람들이 많이 가는 산부인과 검색해 거기 가보자.’ 이래서 갔는데 그 의사 선생님이 거기에 딱! 계신 거야. 그리고 그분이 그날 진료일도 아니었어요.
쉬는 날이었는데 간호사들 간식 챙겨준다고 들어왔다가 저희하고 마주친 거예요. 저희는 그분이 거기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어요. 그런데 눈 마주치자마자 “어?” 이러면서 서로 알아보게 됐고 그 의사분한테 출산을 맡길 수 있게 됐어요. 하루는 진료를 보러 갔는데 그 담당 의사 선생님이 안 계시고 다른 주치의가 계실 때가 있었어요.
진료를 보러 갔더니만 하시는 말이 “자연분만을 담당 선생님하고 얘기하셨던 것 같은데 지금 나이가 47살이고, 첫애 출산한 지가 18년이 지났는데 초음파로 보면 나이가 들어 뱃속에 석회가 가득하고 18년 전에 자연분만했으면 초산이나 다름없고, 지금 힘도 없을 시기인데 절대 자연분만 못 한다. 고생하지 말고 제왕절개 해라. 초음파상 보니까 심장에 물이 차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이러면서 저희한테 겁을 탁 주더라고요.
그런데 예정일 오기 전에 와이프가 친구 집에 놀러 갔었는데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니까 저한테 전화가 왔더라고요. 계속 진통을 하는데 신부님한테 강복받고 산부인과 들어갔을 때 다 퇴근했고 간호사가 처의 상태를 보니까 자궁이 90%가 열려서 저한테 서류 쓰라고 줬는데 쓰라 얘기할 틈도 없이 자기들은 바빠 죽는 거야. 이제 애가 나오기 직전이니까. 의사도 안 왔고. 산모 보고는 힘쓰지 말라 그러고.
의사 도착하고 30분, 40분 후 바로 아기 울음소리 터지면서 와이프도 고생한 거 없이 순산했습니다. 그 외에도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의 은총을 매일매일 너무 많이 받고 있어요.
저는 십몇 년을 돌아서 왔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바로 가는 게 좋잖아요. 딱 한 번에 바로 믿을 수 있으면 진짜 축복인 거니까 저희를 보면서 은총이 넘쳐난다는 걸 알듯이 사랑의 기적이 풍성히 넘치는 나주 성지가 성모님 눈물 흘리신 40주년에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은총을 모두 받게 될 수 있으리라 의심 없습니다.
저희 어머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저한테 “나주 가자, 가자.” 초대를 하시더라고요. 제일 가까운 사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초대를 해야 되겠죠. 내가 그만큼 아끼는 사람한테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초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주 성모님과 율리아 엄마께 감사드리며 이 모든 영광,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과 나주 성모님께 바칩니다. 아멘.
아내분과 딸과 함께 성모님 동산 비닐 성전에
계시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울며 몸부림치던 아내를 자상하게 달래는 모습이
인상 깊이 남아있는데, 순례 한 번으로 증세가
이렇게나 호전되다니 너무 놀랍고 감동적입니다. ㅠㅠ
주님 성모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자세한 은총 증언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제님의 가정에 주님과 성모님의 무한하신 축복과
사랑과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와~~~~
이 엄청난 나주성모님 사랑이 한 가정을 구해 주셨네요,,
그동안 얼마나 힘들고 마음고생 하셨을까? 싶네요.
조현병 정말 무서운 병인데 이렇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해 주시고 치유해 주신다는
그 마씀이 생생하게 남는 마음입니다..
가정성화 행복 가득히 누리시고 성가정 이루어 축복된 삶
이루세요!!
응원 합니다..
제일 가까운 사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초대를 해야 되겠죠. 내가 그만큼 아끼는 사람한테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초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주 성모님과 율리아 엄마께 감사드리며 이 모든 영광,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과 나주 성모님께 바칩니다.
아멘!!!아멘!!!아멘!!!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최근 저희 가정에 넘치게 주신 은총을 여러분들께 전달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올해 1월부터 주신 은총이기 때문에 진짜 따끈따끈하고 나주의 은총이 넘쳐난다는 것을 너무나 느끼고 있고 성모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성당을 다녔습니다. 그러다 이제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저의 생각이 생기며 성당에 대해 불신하기도 하고 밖에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냉담도 하고 어머니가 아무리 성당을 가자고 하셔도 가지 않고 계속 밖으로 돌았던 것 같습니다.
한 번씩 어머니 성화에 이기지 못해 끌려다닌 성당, 그런 생활을 계속 해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는 비신자였는데 어머니의 권유로 성당에 입교를 하게 되었고 혼인 성사를 받고 아이를 가지게 되어 가정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육아를 하는데) 와이프가 폭력적인 성향과 우울증도 있고 집안을 어지른다든지 저희가 통제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을 때, 이거는 보통 일이 아니다 싶어 정신과에 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조울증 진단을 받았는데 이미 와이프는 저를 만나기 전, 20대 초부터 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였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처가 부모님들은 알고 계셨지만 이 일에 대해 외면하고 계셨기 때문에 저희 가정에 대해서 더 이상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도움을 주시려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저의 얕은 영성으로 인하여 누구의 도움도 없는 상태에서 이 가정을 꾸려갈 수 있을지 의심을 하면서 고뇌하고 ‘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이렇게 끌고 가다가는 우리 가정이 파탄이 날 수밖에 없겠다.’ 생각하여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의 불우한 처지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신앙이 없는 저에게는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이 하느님을 부정하게 되고 ‘내가 왜 성당을 가야 되는데?’ 이런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저의 신앙의 한계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와이프가 한 번씩 아이를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보여줬고 저희 어머니는 제가 신앙을 가지지 않고 세속적인 방탕한 생활을 하니까 “나주 함께 가자.”고. 그래야 네가 새로 살 수 있고, 네 앞의 앞길이 열릴 거라는 얘기해 주셨는데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가시는 걸 도저히 이해가 안 갔고 사기 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한테 다시는 그런 얘기하지 말라고 어머니도 아예 그런 데 얼씬하지 말라고 화를 내고 엄청난 반대를 했었습니다.
그러다 처에게도 어머니가 계속 초대하시면 어쩔 수 없이 한 번씩 나주에 왔었지만 둘 다 영성이 없었기 때문에 변화되는 것 없이 그냥 돌아가고 “봐! 똑같잖아! 하느님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어. 종교는 자유가 있다. 무슨 종교든 내 마음만 편하게 되면 되는데 엄마, 종교 강요하지 마라. 내 이래 이혼 만든 거, 다 하느님 아이가? 성당에서 혼인성사 했는데 애 돌도 안 돼 이혼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겠냐!”고 하면서 윽박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제가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정상적인 가정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왔습니다. 긴 이혼 생활 속에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려고 새로운 여자들도 만나 보았지만 저에게 맞는 짝이 나타나는 거는 진짜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제 나이 어느덧 지천명이 되고 딸아이도 제가 100일 때 데리고 왔지만 지금은 고3이 된 상태에서 또다시 전처가 조울증으로 감금 병동에 들어간다고 저에게 도움을 청해 왔습니다. ‘그래, 이제 좀 여유있는데 도와줘 볼까? 남도 해 주는데 그래도 아이의 친엄마인데 좀 도움을 줘 보자.’ 싶어서 병원에도 데리고 가고 감금 병동에 들어가야 될 때는 입원시키는 것도 같이 해 주고,
퇴원했을 때는 약 먹는 것도 도와주고 처갓집에 가서 도움을 주다가 생각지도 않게 둘째 아이가 갑자기 생기게 됐습니다. 와이프 나이가 40대 후반인데 산부인과 가니까 애 지우러 오셨냐고 묻더라고요. 그리고 와이프가 조울증 약 독한 거를 한참 쓰고 있을 때 임신을 했기 때문에 전에 의사한테 들었을 때 조울증 약을 먹으면 애한테 50% 이상 유전이 간다고 했었고, 약을 복용하고 있는 상태에서 임신을 한 거는 거의 애한테 그 약물이 들어간다고 봐야 되기 때문에 온전하지 못한 애가 나올 수 있는 확률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첫 번째 애 가졌을 때도 조울증 약을 먹으면서 저한테 얘기를 안 하고 생겼는데 그 애가 지금 멀쩡했기 때문에 ‘아, 이번도 멀쩡할 수 있지 않을까? 애를 지우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 생각이 있었습니다.
처에게 “네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잘했던 거 뭐니?” 그러니까 자기가 애 낳았던 거. 제대로 케어는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낳았던 거라고. 그런데 전처의 어머니는 여전히 반대하시더라고요. 첫째 때도 반대하셨지만 둘째 때도 지우라고 생떼를 다 쓰셨고.
“니는 이혼해서 남인데 내 딸 내가 보호자인데 내가 지우러 갈 거다.” 온갖 얘기를 하셨지만 제가 와이프를 설득했어요. “첫째 애가 우리가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듯이 지금 마지막으로 하느님이 우리한테 준 기회일 수도 있는데, 한번 해보자. 낳아보자. 첫째 애도 정상이었는데 정상으로 나올 수 있지 않겠니?” 했는데 애가 무럭무럭 커 주더라고요. 처갓집에서는 여전히 반대를 하고 저를 오지도 못하게 하는 상태였고.
일단은 다시 합가를 해야 되니까 합가 준비를 해야 되고, “야, 그동안 냉담하던 거 풀자.” 우리가 이혼한 것 때문에 냉담을 했었는데 지금 다시 이래 붙여놨는데 안 갈 이유가 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냉담을 풀고 성당을 다시 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초음파 찍으러 가보면 애가 너무 잘 움직이고 심장 소리도 크게 울리니까 너무 새롭고. 처부모님 쪽에서 앞전에도 조울증 때문에 딸한테 엄청 스트레스를 줬지만 이번에도 애를 가진다고 그러니까 엄청 스트레스를 줬는데 그로 인해 조울증이 8개월째 발병이 됐습니다.
첫째 임신해 있을 때는 조울증 발병이 안 됐거든요. 모유 수유하다가 3개월째 돼서 그게 터졌는데 지금 8개월 된 애가 뱃속에 있는 상황에서 조울증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터졌습니다. 처갓집에 어머니랑 있으면서 무슨 일이 터졌는지 폭력성도 나오고 집 안의 물건도 다 부러뜨리고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친엄마의 쌍욕을 막 하고 집에 모든 물건들은 다 쓰러져서 쓰레기 집처럼 돼 있고 어머니가 끝내는 감당이 안 되니까, 저보고 오라고 전화가 왔더라고요.
가서 보니까 얘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통제 불능 상태였고 안 되겠다 해서 그동안 한 번씩 다니던 정신과 병원에 갔더니 “임신 상태에서 왔기 때문에 진료를 못 해 주겠다. 이 약 쓰면 애한테 100% 가는데 애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애 죽으면 된다는 걸 쓰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닌데 지금 약을 쓸 수가 없다. 우리는 안 되니까 대학병원 가라.” 그러면서 진료 의뢰서를 써주더라고요.
그 의뢰서 가지고 경대, 영대, 대구에 있는 대학병원 다 돌았어요. 입원을 시켜야 되니까. 왜 그러냐면 처가 엄마나 친남동생이 집에 있는 거는 죽어도 싫다는 눈치가 저한테 확 왔습니다. 그런데 제 입장에서 애를 지운다는 거는 절벽 끝에 선 그런 상황. 8개월 동안 심장 소리를 듣다가 ‘얘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데 지금 병원에서는 다 얘 안 받아준대. 와이프는 손 묶여서 계속 끌려다니는데 방법이 없길래 친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니까 “야, 오늘이 나주 첫 토요일인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한번 가보자.”
지금 솔직히 받아주는 병원도 없고 자기 친부모도 받아주지 않겠다는 상황인데 갈 데가 없잖아요. ‘그래, 마지막 남은 동아줄이구나. 가자!’ 태워서 오는데 여러 가지 사고들이 있었어요. 휴게소 가서 안에 기물들 다 부숴놓고 난리 나는 일들이 있었지만, 여차여차해서 나주까지 왔습니다. 도착하니까 저녁 식사 시간이더라고요.
와이프를 데리고 식사를 하러 가니까 여전히 행패를 부려요. 지나가는 사람 브로치 뺏고, 식당 가서는 반찬들 손으로 다 헤치고, 다 뿌려놓고 ‘아, 도저히 감당이 안 되겠구나. 이대로 두면 다른 순례하시는 분들한테도 피해가 될 수 있겠다. 나주도 안 되는 가 보다.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이래 생각하고 다시 다 차로 돌아갔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여기에서 기도하시고 저와 제 딸과 전처는 차에 들어가서 앉아 있다가 “우리 다시 한번 들어가 볼까?” 처음에는 와이프가 “가기 싫다.” 그러더라고요.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 “야, 다시 한번 들어가 볼래?” 이러니까 “우리 그럴까?” “그래, 한번 다시 시도해 보자.” 이러면서 데리고 와서 성물 판매소 있는 TV 있는 데서 앉혀 놓고 참여하고 있는데 서서히 바뀌는 걸 느꼈어요.
두 손을 잡고 있어야 되는데 남에게 행패 부리던 애가 바뀌더라고요. 완전 정상으로 바뀐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까지 나아지더니 지부 순례하는 자리까지 들어와서 앉아 있었고 그날의 모든 행사를 마쳤고, 얘기하는 걸 딱 들었을 때 ‘아, 엄청 온화해지고 있다.’는 거를 느끼면서 엄청 기뻤습니다.
저는 엄청 사실적인 걸 따지는 사람이거든요. 토마처럼 옆구리에 손 넣어보고 봐야 믿는데 바로 옆에서 바뀌는 걸 봤기 때문에 저조차도 믿게끔 나주 성모님과 예수님은 저희한테 은총을 확! 주시더라고요. “느껴봐라! 어떤 곳인지 너희 한번 느껴봐!”
조울증이 발병되면 문제가 잠을 한숨도 안 자는 거예요. 수요일부터 잠을 한숨도 안 잤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잠 안 자는 공간이잖아요. 철야잖아요. 그런데 그날 잠 한숨도 안 잤지만 나주에서 돌아가는 길에 너무 편안하게 차 안에서 깊은 숙면에 빠지더라고요.
저는 이거를 언제 봤냐면 처음에 애 낳고 조울증 치료로 감금 병동에 한 달 동안 입원하면 얼이 빠져서 나와요. 약을 써서 어리한 상태로 나오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차 점차 회복이 되더라고요. 약물로 이미 완전히 가라앉혀 버렸기 때문에 폭력적인 건 없어요. 그러면서 통원 치료하고 약을 계속 먹으면서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나주에서는 1월 첫 토 한 방에 다 낫게 해 주셨어요. 딱 그 시간 (걸려서)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그 뒤에도 저희를 엄청 사랑하신다는 거를 느끼거든요. 저희가 이제 새로 재혼을 해야 되잖아요. 어머니랑 저랑 첫째 딸만 살던 집이었는데 이제 식구가 한 명 늘고 와이프가 들어와야 되니까 집을 찾으러 다니는데 원래 보던 것보다 리모델링도 다 됐는데 한 1,500만 원 싸게 하느님께서 저희한테 선물처럼 선사해 주시더라고요. 엄청 좋고. 저희 어머니가 “야, 너희 집 들어가서 살란다.” 할 정도의 크기로요. 원래 보려던 집에서 계약하기 직전에 그 집 딱! 보여주셔서 손해 안 보게끔 해 주셨어요.
그리고 3월달에 저희가 순례를 왔는데 외국 분들 오셨을 때, 율리아 어머니가 만남 해 주러 오셨더라고요. 그래 엄마를 딱 보고 나니까 ‘기도를 한번 청해보자.’ “저희 와이프가 조울증인데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고 만남 좀 부탁드리겠다.”고 얘기하니까 만남을 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엄청 사랑을 주시더라고요. ‘아, 출산 잘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첫째 낳았던 의사 선생님이 진짜 자상하시고 노산도 잘 보셨던 분이어서 ‘그 의사 선생님한테 둘째도 낳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 의사 선생님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 요새 젊은 사람들이 많이 가는 산부인과 검색해 거기 가보자.’ 이래서 갔는데 그 의사 선생님이 거기에 딱! 계신 거야. 그리고 그분이 그날 진료일도 아니었어요.
쉬는 날이었는데 간호사들 간식 챙겨준다고 들어왔다가 저희하고 마주친 거예요. 저희는 그분이 거기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어요. 그런데 눈 마주치자마자 “어?” 이러면서 서로 알아보게 됐고 그 의사분한테 출산을 맡길 수 있게 됐어요. 하루는 진료를 보러 갔는데 그 담당 의사 선생님이 안 계시고 다른 주치의가 계실 때가 있었어요.
진료를 보러 갔더니만 하시는 말이 “자연분만을 담당 선생님하고 얘기하셨던 것 같은데 지금 나이가 47살이고, 첫애 출산한 지가 18년이 지났는데 초음파로 보면 나이가 들어 뱃속에 석회가 가득하고 18년 전에 자연분만했으면 초산이나 다름없고, 지금 힘도 없을 시기인데 절대 자연분만 못 한다. 고생하지 말고 제왕절개 해라. 초음파상 보니까 심장에 물이 차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이러면서 저희한테 겁을 탁 주더라고요.
그런데 예정일 오기 전에 와이프가 친구 집에 놀러 갔었는데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니까 저한테 전화가 왔더라고요. 계속 진통을 하는데 신부님한테 강복받고 산부인과 들어갔을 때 다 퇴근했고 간호사가 처의 상태를 보니까 자궁이 90%가 열려서 저한테 서류 쓰라고 줬는데 쓰라 얘기할 틈도 없이 자기들은 바빠 죽는 거야. 이제 애가 나오기 직전이니까. 의사도 안 왔고. 산모 보고는 힘쓰지 말라 그러고.
의사 도착하고 30분, 40분 후 바로 아기 울음소리 터지면서 와이프도 고생한 거 없이 순산했습니다. 그 외에도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의 은총을 매일매일 너무 많이 받고 있어요.
저는 십몇 년을 돌아서 왔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바로 가는 게 좋잖아요. 딱 한 번에 바로 믿을 수 있으면 진짜 축복인 거니까 저희를 보면서 은총이 넘쳐난다는 걸 알듯이 사랑의 기적이 풍성히 넘치는 나주 성지가 성모님 눈물 흘리신 40주년에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은총을 모두 받게 될 수 있으리라 의심 없습니다.
저희 어머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저한테 “나주 가자, 가자.” 초대를 하시더라고요. 제일 가까운 사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초대를 해야 되겠죠. 내가 그만큼 아끼는 사람한테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초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주 성모님과 율리아 엄마께 감사드리며 이 모든 영광,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과 나주 성모님께 바칩니다. 아멘.
2025년 5월 3일 김 세례자 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