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사랑의 메시지

율리아님 말씀 20232023년 9월 첫토 율리아님 말씀 "순교자 성월에 더욱 깨어 순교로 5대 영성 실천합시다!"

운영진
2023-09-10
조회수 2582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네, 반갑습니다. 예, 9월 순교 성월을 맞이했습니다. 우리 이제까지 살아가면서 정말 5대 영성이 잘 실천이 되었는지 오늘 한번 묵상해 봅시다. 우리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여러분, 생활의 기도도 잘 안되시죠? 제가 볼 때, 생활의 기도 잘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생활의 기도가 잘 안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들 어렸을 때부터 했던 것들 생활의 기도 안 했잖아요? 지금 기도하면 됩니다. 예, 늘 제가 지나간 것도 생활의 기도로 봉헌할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지만 그렇게 안 되는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옛날 것까지도 생활의 기도로 봉헌한다면 주님과 성모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ef999adadcf4e.png

 

그리고 우리 자신이 이제까지 얼마나 잘 살아왔는가? 우리는 순교의 마음으로 예수님과 성모님께 얼마나 나를 드렸는가? 한번 묵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조그마한 것에 불만하고, 조그마한 것에 분심하고, 조그마한 것에 용서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래요. 여기 계신 분들은 아니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 눈에 든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든 그 티만 꺼내주려고 합니다.


남의 눈에 든 티가 더 크게 보이거든요. 마음이 안 열려 있기 때문에 남의 잘못만 보이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님과 성모님 앞에 잘못된 것은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줘야 되는데 마음이 안 열려 있기 때문에 그게 아닌 것도 맨날 잘못하게 보입니다. 그건 바로 내가 한 번 그 사람을 나쁘게 보게 되면 선입견이 생기기 때문에 그런 사람 티만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여기 나주에는 살아계신 예수님과 성모님이 계시고 또 성령님, 천사들도 여기 함께 계십니다. 여기 김대건 성인 유해께서 계십니다. 그리고 나주에는 많은 성인 성녀들의 유해도 있지만 천상의 성인 성녀들까지도 나주에서 우리와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ee0e774e91527.png

 

여러분, 믿으십시오!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늘 말씀하시죠. 그래서 2006년도 9월 2일 첫 토요일날 많은 순례자들하고 또 신부님들하고 같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했어요. 또 갈바리아 예수님 앞에까지 갔을 때 독일에서 오신 신부님도 성혈을 받으시고 많은 순례자들이 성혈을 받았습니다. 그때도 9월 2일이 첫 토요일이었습니다.

 

오늘도 9월 2일 첫 토요일이죠? 그때 성모님께서 “예수님께서 죽음과 부활 사이를 통과하는 이 시각에 나와 함께 기도하자꾸나.” 하고 말씀하신 첫 토요일 날 이렇게 온 자녀들에게 “고맙구나.” 그러셨어요.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늘 고맙다고 하셔요.

 

그날 그렇게 많은 성혈을 내려주셨는데 그때 성혈 받으신 분들 계시죠? (예!) 많은 분들이 성혈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안 받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러나 그런 분들도 다 받으셨을 것입니다. 지금도 여러분에게 성혈 비를 내려주십니다.


2b605afd354b0.png


491719e092acd.png


그리고 지금도 그 메시지 말씀 연장 선상입니다. 그래서 에수님과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이날, 우리가 나주에서 함께 기도할 때 "극악무도한 죄인도 사랑하신 주님께서 이렇게 함께 기도하는 너희에게 얼마나 사랑을 쏟아주시겠느냐?" 하고 성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주님과 성모님께서 많은 사랑을 쏟아주실 것입니다.


지금 얼마나 세상이 어지럽습니까? 여러분들이 아는 것만 해도 어지러운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적인 세계는 정말 암흑입니다. 그러나 이곳 나주에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느님께서도 함께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이 함께 계시고 하느님이 함께 계시면 성인 성녀들이 없겠습니까? (있어요.) 천사들이 없겠습니까?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이 거룩한 성지에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느님의 진노의 잔이 내릴지라도 우리가 나주에서 함께 사랑과 정성을 다해서 기도한다면 하느님께서 진노의 잔 대신에 축복의 잔을 내리실 것입니다.


c9738cd0099d9.jpg


그래서 우리 모두,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정말 우리에게 오실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합시다. 제가 큰 그릇을 준비하라고 그랬잖아요. 그 이야기 늘 했죠?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아무리 은총을 많이 내려주셔도 작은 그릇을 준비하고 있으면 다 넘쳐버리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큰 그릇을 준비해야 돼요. 자, 우리 마음을 주님께 온전히 드립시다.


나의 마음 나의 생각 나의 삶의 모든 것 

어머니여 받으시어 주관하여 주소서 

 

나의 슬픔 나의 고통 나의 괴로운 모든 것 

어머니여 받으시어 주관하여 주소서 

 

나의 갈등 나의 고뇌 나의 괴로운 모든 것 

예수님께 맡기오니 치유하여 주소서 ~ 아멘

 

아멘! 예, 많은 사람들이 ‘5대 영성을 어떻게 실천해야 될까?’ 그렇게 많이들 생각하시는데요. 5대 영성 정말 쉽습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내 삶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드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우리가 산다면 우리는 마지막 날 연옥 거치지 않고 천국 갈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남의 잘못을 보고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나의 인간적인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단죄한다면 우리는 예수님께로부터 용서받기 힘들겠죠? 그런데 누가 그렇게 나를 미워하고 괴롭히더라도 사랑받은 셈 치고 그 사람을 용서하고 생활의 기도로 온전히 봉헌하면서 5대 영성을 실천할 때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다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그런 삶을 우리 함께 살도록 해요.


어렸을 때 저는 아주 부잣집에서 태어났잖아요? 여기 계신 분들은 다 아시죠? 그런데 3살 때부터 (궐련 말기 등) 저는 어른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을 제가 보고 따라서 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제가 예쁨 받고 아주 부잣집에서 그냥 밥 같은 거 안 먹이고 고급 음식을 저에게 먹였어요. 우리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이셨는데 저희 집은 가족은 많지 않아도 광주에서 굉장히 크고 아주 높은 집이었어요.


옛날에 돈 있는 사람들만 높은 집에서 살았대요. 그렇게 정말 행복하게 살다가 4살 때, 6.25가 일어났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중학교로 전출돼 가시게 됐는데 다른 선생이 아버지를 모함했어요. 지금은 다 (밝힐) 수 있지만, 그때는 막 6.25가 나고 그러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머리도 한 번 못 자른 사람들 많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가 항상 호주머니에 바리깡을 넣고 다니시면서 지나가는 거지까지 다 머리를 잘라 주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니고 반란군 머리 잘라줬다고 아버지를 이제 모함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피난을 나왔어요. 나중에 우리 아버지가 행방불명 되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버지를 모함을 했던 그 사람을 하나도 미워하지 않았어요.


78cf373609021.jpg

 

저희 집은 굉장히 부잣집으로, 돈도 엄청 많았어요. 그래서 큰 가방에다가 돈 가득 가지고 그렇게 피난을 나왔어요. 우리 어머니가 저 4살 때 딸을 또 낳으셨어요. 아기를 낳아서 아직 이레도 안 됐는데 피난을 나오게 됐어요. 여기 나주 봉황면이라고 있어요. 광주에서 거기까지 아기를 업고 걸어오시면서 피난 나오시는데 이렇게 피가 흘러 신발에 차면 신발을 털고 가다가 또 털고 그렇게 오셨어요.


d899cc90ca613.jpg


저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네 번째 아기 낳았을 때, 아기 낳은 지 17일 만에 시어머니가 쌀 팔아달라고 오셔서 리어카 끌고 계속 방앗간 몇 군데를 다니며 쌀을 팔았어요. 그때 저도 막 피를 줄줄 흘러 신발에 피가 차서 막 털고 다녔죠. 여러분, 어때요? 그런데 저는 시어머니가 하나도 밉지 않았어요.


그렇게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쌀 한 가마니(80kg)를 제가 혼자 그 차(버스)에 올렸어요. 저는 그때 굉장히 날씬했죠. 그랬는데 그 몸으로 8시간 동안 몇십 리를 피를 줄줄 흘리며 리어카 끌고 다녔어요. 그것도 아기 낳은 지 17일 만에! 그전에 제가 아기 낳을 때도 얼마나 다 죽어갔습니까?

 

그랬는데 마지막 넷째 아기 낳아서 이제 조리 잘하자고 친정어머니가 그러셨어요. 그런데 친정어머니가 우리 집에 계시다가 쌀 가지러 가는 그동안에 우리 시어머니는 당장에 쌀을 팔아달라고 오셔서 그렇게 된 거예요. 그러면 시어머니가 미울 수 있잖아요. 그런데 시어머니 사랑받은 셈 치고, 내가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하고 다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피를 줄줄 흘리며 혼자 쌀 한 가마니를 차(버스)에 올리면서도 ‘아이, 좀 도와주시지.’ 그런 생각 안 했어요. 그것도 다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하느님을 모를 때도 그것이 봉헌의 삶이고 시어머니가 안 도와줘도 시어머니가 도와준 셈 치고,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했던 모든 것들! 또 피 흘린 것도 내 탓이라고 모든 것을 내 탓으로 생각한 그것이 모두 5대 영성이었더라고요.


2024f8dbae735.jpg


하느님 모를 때도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해야 될까?’ 전혀 생각지도 않고 나왔습니다. 제가 간단하게 이야기할게요. 이 순교자 성월에 우리가 생활의 순교로 살아갑시다. 박해 시대 때는 목을 내놓고 죽음으로 순교했지만, 지금은 우리가 생활의 순교로 얼마든지 순교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기 싫은 일, 다른 사람이 할 일까지도 ‘그래, 내가 해 주자!’ 순교하는 마음으로 봉헌하고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생활의 순교예요. 그런데 ‘내가 전에 도와줬는데 자기는 나 안 도와주네?’ 이렇게 생각하면 그것은 이미 마귀가 좋아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외갓집에 갔어요. 제 이야기가 왔다 갔다 합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피를 줄줄 흘리시며 광주에서 나주 봉황면까지 피난 가셨는데 큰외갓집에서 안 받아주셨어요. 그래도 작은외갓집에서 받아주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무엇을 얼마나 감사해야 되는지! 그것도 중요합니다. 저는 지금도 그래요. 저를 조금만 도와준 사람이라면 저는 그 사람들 생각하면서 미사 봉헌합니다. 그리고 정말 저에게 그렇게 못되게 굴었어도 그 사람을 위해서 저는 기도합니다.


지금은 제가 많은 질병까지 와버렸기 때문에 그렇지마는 전에 하느님 모를 때도 ‘저 사람이 왜 저럴까?’ 그런 생각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잘 봉헌하고 5대 영성으로 살 때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기뻐하시며 당연히 도와주십니다.


f339b560a9cc5.png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가 장사하시면서 돈을 벌어 작은 외갓집에 돈과 소금까지 다 대주시면서 저를 맡기셨어요. 옛날에는 소금이 굉장히 비쌌대요. 이제 다 이야기하면 엄청 많으니까 간단간단하게 이야기할게요.

 

그리고 그때 저보다 한 살 덜 먹은 영자라는 애가 있어요. 그 애가 자기 집에서 같이 놀자고 우리 집에 왔어요. 그래서 그 집을 갔어요. 그 집 식구들은 가마니 짜고 있었고 영자하고 저하고 둘이 마당에서 놀고 있었어요. 그랬는데 작은외숙이 뒷짐을 지고 오시더라고요. 그래서 ‘어? 뭐 하러 오시는가?’ 그랬는데 “홍선아, 이리 와.” 그래서 보니까 펜치를 들고 계신 거예요.

 

매도 아니고 펜치를 들고 계시니까 무서웠는데 어린 제가 어쩌겠어요. 금방 외숙이 탁 잡아 가랑이에다 딱 이렇게 해서 입을 벌려 펜치로 쌩 어금니를 (강제로) 빼버렸어요. 그랬더니 살까지 다 떨어져 나왔는데 그 뺀 어금니를 지붕 위에다 탁 던지시고 까치야 뭐라 하고 가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저는 이제 살점까지 다 떨어져 막 피를 줄줄 흘리면서 저희 집으로 갔죠. 그래서 지금도 다 잘못 붙어 있어요. 이제 계속 피가 나오니까 지혈을 시켜줘야 되는데 우리 어머니는 이제 장사 나가셔서 나 혼자 방에서 있는데 걸레에다 피를 계속 뱉어내는 거예요.


그렇게 저녁 내 피를 흘리며 한잠도 못 자고 걸레를 빨아서 또 피를 뱉다가 그대로 쓰러져 버렸어요. 이제 혼수상태로 들어가 버린 거죠. 3일 만에 우리 어머니가 오셨는데 제가 어리니까 피를 얼마나 많이 흘려서 이미 저는 죽어버렸어요. 우리 어머니가 장사하고 돌아오셨는데 제가 죽어서 있는 거예요. 저는 누워서 피 이렇게 다 흘리다가 대소변 다 배설하고 죽은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는 제가 죽었다고 저를 붙들고 막 우셨어요.

 

그런데 그때 수염 달리신 할아버지가 나오셔서 제 엉덩이를 탁탁 두드리시면서 “이제 그만 일어나거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때 눈을 뚝 떴어요. 제가 그렇게 죽었었는데 하느님이 살려주신 거예요.


제가 숨이 붙어 있을 때는 피를 흘렸는데 숨이 딱 끊기니까 피도 안 흘린 거예요. 그래서 일어나서 보니까 피가 다 말라서 여기가 다 붙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그렇게 살아났는데 그래도 어머니는 장사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해서 작은외숙은 다 가져가신 돈도 안 주셨어요.

 

그때 이쪼할이라고. 여러분, 뭔 말인지 잘 모를 거예요. 나락 한 가마니를 빚내주면 다음에 두 가마니를 받아요. 그러니까 (이자가) 100%예요. 작은외숙이 그렇게 해준다고 어머니가 돈 버는 대로 다 가져가셨어요. 그랬는데 돈을 하나도 안 주셔요. 그러니까 어머니는 저를 혼자 놔둘 수는 없고, 장사를 그만할 수 없으니까 또 저에게 작은 외갓집 가 있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얼마나 무섭겠어요.

 

그러나 말은 못 하고 ‘그래, 어머니 사랑받은 셈 치자.’ 그 어린 것이 어머니 사랑받은 셈 치고 작은 외갓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작은 외갓집 가서 계속 일을 하는 거예요. 어느 날, 우리 작은이모님하고 어머니하고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는 거기서 자고 있었어요. 옆에서 이야기를 하시는데 우리 작은이모님이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셔요.

 

“내가 그 말만 안 했으면...” 너 안 맞았을 건데 그 소리예요. 그런데 제가 자고 있는데 우리 작은이모님이 “언니, 이제 그만 장사해도 홍선이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잖아. 신석(소재지)에 가게 하나 내서 그렇게 살아. 홍선이 얼마든지 대학까지 보낼 수 있잖아.” 그러니까 “아휴, 나도 그러고 싶은데 오빠가 돈을 줘야지 말이지.”

 

홍선이 맡기고 소금까지 내가 다 대줬는데 그러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제가 뭐든지 어렸을 때부터 엄청 잘했어요. 새끼도 꼬면 저는 이렇게 꽈요. 어른도 그렇게 못 꼬거든요. 그런데 저는 어떤 것을 하든지 ‘어떻게 하면 좀 잘해볼까?’ 그 연구를 하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그러니까 제 손은 어른보다 더 빨라요. 그런데 외사촌들이 자기들 일 안 해주면, 저를 막 때리거든요. 그리고 우리 외사촌 언니는 뭔 일 있으면 “느그 집 가. 이년아!” 그러거든요. 우리 집이 없으니까 저는 그 소리가 제일 힘든 거죠. 그래서 그 소리 안 들으려고 ‘그래. 내 탓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하면 된다.’ 하면서 노력했는데도 그렇게 맨날 저를 때려요.


그래서 이제 어머니하고 이모님하고 이야기한 소리를 들었는데 그다음 날 외사촌 언니가 또 “느그 집 가. 이년아.” 그러니까 “그래, 나 갈게. 우리 돈 줘.” 제가 그랬어요. 그때 동네에 100여 호 살았는데 우리 큰 외갓집, 작은 외갓집 것만 큰 기와집이었어요. 여기 방이 있고, 마루가 있고, 토방이 있고, 마당이 있어요.


그랬는데 작은외숙이 그 소리를 듣고 방에서 얼마나 제 귀뺨을 때리고 이 머리를 잡아 뙈기를 치는 거예요. 뙈기 치는 거 아세요? 옛날에 총 없으니까 짚으로 만들어 이렇게 돌려서 치면 “땅!” 소리가 나면 새들이 날아가거든요. 그런데 작은외숙이 말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뱀도 잡아 잡수시고 아주 힘세셔요.


그런 작은외숙이 저를 들어 이렇게 돌려서 발로 탁 차버리니까 마당 저쪽까지 떨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제가 거기서 못 일어난 거예요. 그런데 작은외숙한테 더 맞을까 봐 얼른 일어났어요. 그래서 제가 작은외숙에게 잘못했다고 했는데 우리 어머니가 오시자마자 우리 작은외숙모하고 우리 작은외숙하고 저 쬐깐한 년한테 뭐라고 말해서 우리 돈 주라고 하냐고 막 난리인 거예요. 이제 어머니는 그런 말 저한테 안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한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도


f534e806a510f.jpg

 

우리 작은외숙모는 애기씨가 안 했으면 어떻게 홍선이가 아냐고 막 그래서 우리 어머니 막 우시고, 제가 우리 어머니가 저한테 이야기 안 하시고 자다가 이모하고 이야기한 소리 들었다는 소리를 못 했어요. 그때 그냥 했어야 되는데.

 

저는 그때 작은외숙한테 맞아서 정신이 없이 다 죽어갔거든요. 그래서 이제 작은외숙 집에서 더 못 살고 어머니하고 또 다른 데로 이사를 갔어요. 거기서는 저 6살 때 혼자 놔두니까 밥을 해 놓고 어머니가 장사 나가시면 제가 밥을 안 먹어요. 왜냐하면 쥐도 많고 나가면 닭도 저를 막 쪼아대고 개가 저를 막 물어뜯으려고 하지. 그러니까 밖에도 못 나가고.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 우리 어머니가 돈을 좀 덜 벌더라도 제가 밥을 안 먹으면 돈이 좀 남겠더라고요. 그래서 그 어린 마음에 밥을 안 먹었어요. 그랬더니 우리 어머니가 “너 왜 밥 안 먹었냐?” 그러면 우리 어머니 마음이 아프실까 봐 “나 먹기 싫어서 안 먹었어.” 배고파도 먹기 싫어서 안 먹었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한번은 이제 우리 친척이 왔어요. 어머니가 안 계실 때 왔는데 밤에 저하고 같이 잤어요.

 

그런데 이불 속까지 쥐가 얼마나 들어와서 그분이 나를 꼭 안고 잤는데도 얼마나 큰 쥐가 들어와서 제가 못 잤거든요. 그러니까 그분이 우리 어머니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어머니한테 장사 그만하시면 안 되겠냐고 홍선이 혼자 절대 놔두면 안 된다고 그러시니까 이제 할 수 없이 또 작은 외갓집으로 가자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우리 어머니 힘드신데 외숙 무섭다는 소리를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안 했어요. 그래서 또 울며 겨자 먹기라 그러죠? ‘그래, 사랑받은 셈 치자.’ 하고 그렇게 작은외숙 집에 가서 시키는 일(청소, 아기 돌보기, 똥 걸레 빨기, 불 때기, 밥 짓기, 설거지, 새끼 꼬기, 꼴 베기 등) 다 했어요. 그리고 나중에 제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어머니하고 집을 지어서 나왔어요.


48fe0eb17a82e.jpg

 

이제 나가서 살면 괜찮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정도 있다가 학교 갔다 오면 작은외숙이 오라고 해서 그 집에서 그 일을 또 다 시키시는 거예요. 그래도 ‘왜 나를 일을 시키실까?’ 그런 생각 안 하고 최선을 다해서 일을 했어요. 그런데요, 우리 어머니가 이제 과방장이예요. 이웃 동네에까지 다 다니시면서 과방을 다 하셨어요.

 

그러니까 장사 나가시고 또 일이 있으면 동네에서도 일하시고 뭐 베도 잘 매시고 누에고치, 그것(실 뽑는 것)도 하시고. 못 하시는 것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돈을 엄청 버셨어요. 그래서 과방장이신데. 누에고치하면 번데기 나오잖아요. 그거 하면 냄새가 막 나니까 동네 애들이 다 모여요. 저는 그 자리를 피했어요. 시골에서 가난하니까 애들 먹으라고. 왜냐하면 ‘그래, 우리 어머니는 나 먹이고 싶으시겠지.’ 우리 어머니가 하시니까 내가 가면 주실 거잖아요? ‘그래, 내가 이 자리에 없으면 다른 애들이 더 먹겠다.’

 

그래서 저는 그 자리를 피해줬어요. 그랬더니 우리 어머니가 야단 안 하시고 오셔서 잘했다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우리 어머니가 아셔요. 그래서 애들 다 먹이고.

 

하루는 우리 어머니가 과방장을 하시는데 애들이 가난하니까 막 과방 옆에서 막 얻어먹으려고 해요. 저는 절대로 안 가요. 어렸을 때도 ‘아니, 내가 좀 안 먹고 먹은 셈 치면 되지. 저 애들을 그러더라도 나는 그냥 안 먹는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하시니까 내가 가면 주실 거잖아요? 그런데 안 가요. 저는 절대 안 가요.

 

그랬더니 한 번은 그 집에서 뭐 먹이려고 저를 데리러 왔는데 나는 안 간다고. 그러니까 다 끝마치고 나서 석작으로 음식이 하나 와 있어요. 옛날에 시골에서 결혼할 때 보면 세 석작 그렇게 보냈어요. 그랬는데 우리 집으로 한 석작을 가져온 거예요. 그 음식을 저 혼자 절대 안 먹어요. 제가 외갓집에서 그렇게 외사촌들한테 두들겨 맞았어도 저는 우리 어머니한테 “어머니, 이 음식 나눠 먹자.”고 그랬더니 우리 어머니 좋아하셔요. 막 혼자만 먹이려고 안 하셔요. 그래서 그걸 또 다 나눠 먹고 그랬어요.

 

저를 그렇게 때리고 그렇게 미워하고 그렇게 구박한 사람들인데 같이 먹으니까 그렇게 기쁜 거예요. 그 어린 나이에 아, 흐뭇한 거예요. 뭔 음식만 있으면 작은외숙 집 가서 같이 먹이고 그랬어요.

 

그리고 우리 작은외숙모가 저 일한다고 그 외사촌 언니하고 나하고 계를 넣어주셨어요. 그건 뭔 계냐면, 시집갈 때 이불 해 주는 거예요. 그랬는데 우리 언니는 그렇게 시집갔고. 이제 저 시집갈 때는 우리 작은외갓집에서 뭐 축의금 하나도 안 했어요. 그리고 내 몫으로 있는 계는 자기들이 타서 잡수고. 그래도 ‘왜 그럴까?’ 생각 안 했어요.

 

제가 이제 시집을 가서 미용실을 처음 했을 때도 그렇게 우리 시어머니가 결혼 빚 갚아주라고 당장에 찾아오셔서 미용실 급매로 내놨죠. 우리 신혼여행 안 가고 시댁에서 3일간 있다가 모든 뒤처리 다 해 놓고 왔는데 빚 갚아주라고 찾아오셨어요. 그래서 급매로 미용실을 내놨는데 3일 만에 또 오셨어요. 또 얼른 급급매로 내놔서 그 빚 갚고. 미용실 못 했어요.


c06c2aad47bad.jpg

 

그리고 그동안에 그렇게 시어머니 돈 드리고 살아가면서 제가 암이 걸렸잖아요. 영암 병원에 다녔는데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보라 했거든요. 그런데 시어머니 맨날 돈 달라고 하시니까 돈 드려서 돈이 없어요. 그래서 큰 병원에 못 가고 작은 병원만 다녔어요. 그래서 암이 항문까지 다 차버려 다 죽게 된 거예요. 그전에 갔을 때, 혈압이 50-40 나왔는데 마지막에 병원 갔을 때는 혈압이 아예 안 잡혀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많이 아파도 집에서는 그렇게 많이 아픈 내색을 전혀 안 하니까 식구들은 조금 아픈 줄만 알고 잘 모르죠. 그래서 한 번 율리오 씨하고 친정어머니하고 같이 병원에 갔었어요. 대변도 못 누고 이제 먹지도 못해요. 목도 암이 다 차버려 물도 안 넘어가요. 그래서 일단 대변을 봐야 무엇을 먹을 아니에요?

 

그런데 아무것도 못 먹고 물도 안 넘어가니까. 같이 병원에 가서 그 이야기하니까 “한번 검사를 한 번 해봅시다.” 그래요. 그래서 저를 엎어놓고 보는데. 그 의사가 전에부터 자기들끼리 암인 거 같다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큰 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도 해보고 하라고 했는데 못 갔거든요. 조직검사하라고 해도 저는 암 그런 거 생각도 못 했고요.

 

저는 시어머니 돈 때문에 매일매일 ‘어떻게 하면 시어머니를 어떻게 대 드릴까?’ 어떻게라도 돈 벌어서 조금이라도 시어머니 돈 드리다가 병원 한 번 못 갔어요. 대변을 못 보고 아무리 관장을 하려고 해도 들어가지도 않고. 그래서 병원에 가서 말했더니 그러면 엎어져 보라고 해서 엎어졌는데 항문을 벌려서 보려고 하는데 안 돼요. 그러니까는 주사를 막 놓는데 암 덩어리에다 주사를 놓는 것이 그렇게 아픈지 몰랐어요.

 

이제까지 주사를 그렇게 많이 맞았어도 세상에, 그렇게 아픈 주사는 처음 맞아 봤어요. 너무너무 아파서 그랬는데 3번까지 놔도 안 돼요. 그래서 주사를 7번 놔서 좀 이렇게 벌렸는데 암이 항문까지 다 차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보호자 들어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율리오 씨가 보이길래 제가 “으으으음~~~!” 말을 잘 못했거든요. 들어오지 말라고 하니까 율리오 씨는 얼른 나가요.

 

어머니는 보시고 “이거 치질인가요?” 그러더라고요. “치질 아닙니다.” 그랬는데 다시 한 번 저 혼자 병원에 갔어요. 아주 항문에 암이 이렇게 차버렸으니까 저 혼자 아주 걷지도 잘 못하는데 힘들게 병원에 가서 진통제라도 좀 주라고 사정을 했어요. 그랬더니 안 된다고 그러면서 집에 가서 맛있는 것이나 먹으라고 그랬어요. 그렇게 제가 사형선고를 받고 문을 열고 나오는데 거기 수간호사가 “원장님, 먹지도 못할 것인데 왜 맛있는 것이나 먹으라고 했어요?” 하니까 그러면 죽을 사람한테 뭐라고 하냐고. 그 이야기를 제가 다 들었거든요.

 

fd0355862a969.jpg


그래서 이제 다시 병원에 들어가서 “제가 얼마나 더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랬더니 원장님이 인명은 재천이라고. 그리고 손님 왔다고 그러면서 더 이상 이야기 안 하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집으로 돌아와서 임종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율리오 씨가 나주로 발령 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율리오 씨, 혹시라도 나주로 발령 나면 안 되니까 영암 소장님한테 여기서 계속 살겠다고 지금 말 좀 해 주세요.” 왜냐하면 아기들이 넷이나 되는데 이제 거기서는 땔 부엌에 살았거든요. 그 몸으로 물 길어다가 땔 부엌에서 다 했어요. 그랬는데 율리오 씨가 절대로 발령 안 난다고 그래요.

 

그런데 그다음 다음날, 거기 영암 본소 소장님한테 연락이 왔어요. “영전되어 축하한다.”고 그래서 “아니, 왜요?” 그랬더니 율리오 씨가 나주로 발령 났는데 운동해서 간 거 아니냐고. 그래서 절대 아니라고, 엊그제도 여기서 계속 살겠다 말했다고 그랬더니 그러면 빨리 알아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막 수소문해서 율리오 씨 찾아 나주로 발령 나버렸다고 빨리 가서 말해서 안 가도록 해 주라고 그랬는데 이미 발령 나서 안 되는 거예요. 발령 시기가 아닌데 나주 본소 소장님이 율리오 씨를 원래 미워하는 사람인데 율리오 씨가 그렇게 일을 잘하니까 마음에 들어서 나주로 데려온 거예요.

 

왜 미워했냐면요. 옛날에는 큰 굴비를 매일시장에 걸어놓고 팔았거든요. 그 나주 본소 소장님이 “아, 저 굴비 맛있겠다 만복아.” 그러니까 그거 사주라는 소리거든요. 그런데 “예.” 그러고 안 사줘 버렸어요. 그러니까 율리오 씨를 미워했어요. 그런데 율리오 씨가 어떤 시험도 항상 100점 맞아 버리니까 “이번에 시험 봐서 100점 못 맞으면 너는 이제 모가지다.” 그랬는데 거기서 또 혼자만 100점 맞아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대통령 시험은 없다냐?” 그 정도로 율리오 씨가 일을 잘하니까 나주로 데려온 거예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까 나주로 이사 올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그전에 우리 친정집, 우리 어머니하고 저하고 얼마나 힘들게 지은 집이 있어요. 그때 제가 4학년 때 집을 지었는데 저도 흙 퍼다가 담아서 하고, 황토 뺑 둘러서 토담집 만들면서 우리 어머니 하는 일을 제 손도 다 피가 날 정도로 저도 같이 해서 지은 집이거든요. 굉장히 방도 따뜻하고 방이 2개고, 부엌이 있고, 광마루도 있고. 아주 좋아요.

 

그래서 이제 그때 돈은 없고 애들 넷이나 돼서 나주에서 집을 얻을 수 없으니까 “그 집으로 들어가서 살자.” 그래서 우리 어머니도 “그거 좋은 방법이다.” 우리 애들 학교 다니니까 좀 멀긴 하지만 율리오 씨가 오토바이로 애들 학교 데려다주고 올 때는 걸어오더라도 그렇게 하자고 계획을 다 짜고 우리 어머니가 집 정리하고 청소하러 먼저 가셨어요.

 

그런데 집이 잿더미가 돼버린 거예요. 우리 작은외숙이 슬레이트 팔려고 슬레이트를 밤중에 뜯어서 팔았어요. 그다음에 작은외숙이 집을 보니까 너무 보기가 싫은 거예요. 그러니까 그 집을 밤중에 또 태워버린 거예요. 우리 짐이 거기가 다 들어있는데 그랬어요. 제가 정말 어렸을 때부터 쓴 일기들이 다 들어 있고 우리 아버지 유품들 거기에 다 들어 있어요. 너무 소중한 것들을 많이 있어요.

 

그 모든 것이 다 재가 돼버렸어요. 그래서 제 어렸을 때 사진도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는 그 모든 것을 보시고 넋 놓고 한참 우셨죠. 그런데 이제 제가 죽으면 어떡해요. 우리 율리오 씨는 재혼해서 살 것이고 우리 어머니는 거기서 사셔야 될 텐데. 그 집이 없어져 버린 거예요. 어머니도 우시고 저도 울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이제 빚이라도 내서 방을 얻어야지 어떡해요.


9dda4ecaf9ee2.jpg

 

그래서 나주로 방을 얻으러 다녔는데 주님이 또 다 인도해 주셨어요. 아이들이 많으니까 사람들이 아이들이 둘만 있다고 거짓말을 해서 이사 가버리라고 해요. 그런데 저는 거짓말을 못 하니까 그렇게 안 했어요. 처음에 방 보러 가면 누구든지 저에게 같이 살자고 안 한 사람이 없어요.


이제 어느 집에 갔는데 그 할머니가 “아~ 우리하고 같이 사세.” 그러더라고. “그런데요, 우리 아이들이 많아요.” 그랬더니 “아이, 아이들이 몇인데?” 그래서 “넷이나 돼요.” 그랬더니 “아, 괜찮아! 얼마 안 되구만! 새댁 애기들이면 스물이라도 좋아. 같이 살자.”고 그래서 그 집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랬는데 이제 우리 작은외숙이 집에 자주 오셨어요. 그래도 밉지 않아요.

 

작은외숙 오시면 밥 다 차려드리고 맛있는 것 해드리고 그랬어요. 그 뒤로 작은외숙이 돌아가시게 됐어요. 작은외숙 돌아가신다고 하니까 우리 어머니도 가시고 이모님들도 다 가시고 저도 갔죠. 작은외숙과 작은외숙모는 남묘호랑개교 믿고 있는데 거기 외사촌 동생 있어요. 그 동생이 또 제 돈을 많이 써버렸거든요. 작은외숙 집에서 아주 저를 너무너무 힘들게 했지만 작은외숙이 돌아가시려고 할 때 가서 제가 그 동생한테 말했어요.


“우리 천주교식으로 한 번 해보자.” 그랬더니 “아, 그러자!”고 그래요. 그 누나가 또 남묘호랑개교의 엄청 높은 사람이래요. 그런데 그렇게 하자고. 그랬는데 그렇게 “남묘호랑개교, 남묘호랑개교” 해도 작은외숙 계속 가래 뱉어내시고 소용없었는데 제가 기도를 하니까 작은외숙의 가래가 딱 멈췄어요. 그래서 제가 “외숙, 저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때문에 혹시라도 마음 상한 것이 있다면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저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대세를 드렸고 임종을 맞게 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외숙 위해서 또 미사 계속해 드렸고요. 제가 지금 한 이야기는 제 자랑이 아니고 “너의 삶을 전하라.” 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순교 성월이기 때문에 말씀드립니다. 어떤 누가 조금 잘못하더라도 우리는 용서하도록 합시다. 작은외숙이 그렇게 우리를 못 살게 하고 그 외숙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힘들었으니까 그 외숙 미울 수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 작은외숙모도 암 걸려서 돌아가셨는데, 저희들이 다 이렇게 돌봐드렸어요. 제가 그런 걸 생각하지 않고 “나는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주님께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자,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한다면 나를 알아주시는 분은 주님, 성모님이시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우리 작은외숙이 그렇게 우리 어머니를 괴롭게 했지만, 우리 어머니 한 번도 작은외숙에 대해서 나쁘게 말해보신 적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모두를 용서하고 모두를 사랑하고 마지막까지도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간다면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살면서 정말 조그마한 일로 분심 가고, 조그마한 일로 인간적인 생각으로 계산하고, 잣대로 재고 그러면 절대 천국 못 가요. 천국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낙타가 바늘귀로 뀌어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천국에 가기는 더 어렵다고 말씀하시는 것, 바로 우리 마음이 나쁜 친구들로 가득 차 있으면 우리는 정말 부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가난한 작은 영혼이 돼서 주님을 맞이하도록 합시다. 그래서 남은 한 생애 이제 기쁨과 사랑과 평화만이 가득한 부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합시다. 우리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 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잘못했더라도 이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그리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나는 그렇게 못 해.’ 하지 마시고 ‘나도 할 수 있어!’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아무리 잘한다 해도 정말 교만한 마음으로 하면 안 되고 정말 조그만 일을 할지라도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 주님, 성모님께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서 5대 영성 실천합시다. 온전히 봉헌합시다. 우리 봉헌하면 못 할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미운 짓을 해도 ‘아, 저 마귀 짓이다.’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며 우리 서로서로 사랑합시다. 우리는 만건곤한 분열의 마귀를 처단해야 됩니다. 그런데 같이 (동조)하면 마귀한테 같이 합세하는 것입니다. 우리 잘 봉헌합시다.


나 봉헌하겠네 너 봉헌하겠네 우리 봉헌하겠네 

나 봉헌하겠네 너 봉헌하겠네 우리 봉헌하겠네
주 말씀하시길 죄 사슬 끊겼네 우리 봉헌하겠네 알렐루야 

나 봉헌하겠네 너 봉헌하겠네 우리 봉헌하겠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한다면 마귀는 물러갑니다. 사랑은 세상을 들어 올릴 수 있죠. 그런데 교만은? 이 세상을 무너뜨릴 수 있죠. 우리 절대 교만하지 말고 작은 영혼으로서 살아간다면, 그리고 우리가 주님과 성모님을 따라서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함께 계시고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한 이곳에서 우리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를 수 있도록 기도한다면 우리 기도가 상달돼서 이 세상에 어떤 벌이 내려질지라도, 아무리 어떤 상황이 올지라도 이 세상에 내려질 징벌 대신에 축복의 잔이 내릴 것입니다.

 

cf90d5f4a61ad.png


우리가 이제까지 잘 못 살아왔던 것, 이 순교자 성월에 정말 깨어서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 매일 매 순간 5대 영성을 실천함으로써 천국을 누릴 수 있도록 합시다. 우리가 죽어서만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지상천국을 누리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다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아멘! 최선을 다합시다! 아멘!


ef9e9ec7b32fe.png

 

우리 예수님과 성모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사랑을 전할 때, 조수불급한 일이 닥칠지라도 우리를 반드시 구해내어 질풍경초처럼 세워주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과 성모님께 온전히 의탁하고 우리 새로 시작하도록 합시다. 아멘.


그리고 받은 은총을 우리가 관리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받은 은총 잘 관리합시다. 그리고 10월 첫 토요일 만날 때까지 매일 매 순간 우리 기도 중에 만납시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34 37

나주 성모님의 집 (경당)   전남 나주시 나주천 2길 12 (우. 58258) | 나주 성모님 동산   전남 나주시 다시면 신광로 425 

TEL  061-334-5003 | FAX  061-332-3372 | E-mail  najumary@najumary.or.kr | 사업자 등록번호  652-82-00210

COPYRIGHT ⓒ 2021 재단법인 마리아의 구원방주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