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765화.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따르고자 ‘작은 형제회’를 설립하다

wlsgodqn
2024-11-05
조회수 286

765.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따르고자 ‘작은 형제회’를 설립하다


나는 예비자 시절부터 성령 운동을 하며, 부유한 삶을 살다가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온전한 가난의 삶을 택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큰 사랑과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나병 환자에게 입 맞추고 끌어안으며 예수님을 향한 지극한 사랑을 보인 프란치스코 성인! 



예수님을 꼭 닮은 오상의 성흔을 받으신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과 가난의 정신은 나의 마음에 강한 울림을 주었고, 나는 성인을 무척 좋아하게 되어 그분이 살아온 삶을 따르고 싶었다. 그래서 86년도에 맹인 봉일동 할아버지를 세례받게 해드렸을 때도, 세례명을 ‘프란치스코’로 지어드리려고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너무 어려워하셨다. 나는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도 무척 좋아했기에 안드레아라고 지어드리기도 했다. 또한 봉 안드레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백일 탈상에 행려자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작은 예수님에게도 ‘방지거’라고 이름 지어줄 정도로 성인을 사랑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세운 수도회에는 1회 남자 프란치스코회, 2회 여자 프란치스코회인 글라라회, 3회 재속 3회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가 있다. 3회에서는 가정이 있어도 성인의 영성을 따라 살고 싶은 사람들이 함께 기도 공동체를 이루어 사부이신 성 프란치스코의 길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간다.



1981년, 나는 장부와 함께 광주에 있는 재속 프란치스코 3회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안타깝게도 나주에는 재속 3회가 없었기에 광주까지 다닌 것이다. ‘순종, 가난, 정결’의 회칙을 배우면서, 성인이 살아오신 작은 자의 사랑의 길이 너무너무 좋았다. 그래서 나는 나주에서도 공동체를 이루고 싶었다. 


“예수님, 프란치스코 성인이시여! 나주에도 성인의 얼을 따라 사랑을 나누는 일치의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기도하며 주님을 전하는 심부름꾼이 되고 싶어요. 부디 길을 열어주셔요.” 주님께 청하며 나주 본당에 ‘재속 3회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를 설립하고자 주임 신부님을 찾아갔다. 신부님은 기쁘게 허락해주셨다. 



그래서 광주 프란치스코회 회장님과 성령 봉사회 회장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분들도 기뻐하시며 바로 나주 본당에 내려오셔서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를 만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예전에 나주 본당에도 재속 3회가 있었는데, 없어진 지 오래되었기에 설립이 아닌 갱신을 했다. 


매주 광주에서 재속 3회 작은 형제회의 3~4명의 회장단이 내려와 가입을 희망하는 교육생들을 가르쳐주셨다. 나주까지 와주시는 회장단에 나는 너무나 감사했다. 한 번 그분들이 오실 때마다 나주 작은 형제회의 윤곽이 점점 더 갖춰지니, 성 프란치스코 사부에게 더욱 가까워진 듯한 마음에 나는 기쁘게 최선을 다했다. 



오실 때마다 드는 차비며 선물, 그리고 식사도 내가 다 대접했다.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게 모든 비용을 나 홀로 기쁘게 지불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항상 나주 본당과 교육생 전원의 이름으로 했다. 광주 회장단이 마지막 교육을 다 마치고 돌아가실 때 큰 타올을 좋은 것으로 골라 선물하면서 우리 모두의 작은 선물이라고 했다. 



새로 시작하는 회였기에 회장은 다수결로 남편 율리오씨가 선출되었다. 광주 회장단에서도 그리 정했다. 남편은 그 후로 계속 회장직을 했다. 처음 재속 3회가 생겼을 때 회원들은 너무나도 일치가 잘되었고 감사하게도 다들 나를 잘 따랐다. 부족하지만, 회장단은 처음에 나에게도 수련장직을 하라고 했다.



나는 미용실과 여러 활동으로 너무 바빴기에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정기적으로 교육을 시키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이를 섬기며 사부님을 따르고 싶었기에, 정말 죄송하지만 최선을 다해 작은 형제회 활동은 하겠으나 수련장만은 절대로 안 한다고 사양했다.


 

그렇게 나는 평단원으로 활동하며 사부이신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존경과 애정으로 형제들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 81년도에 나주에 작은 형제회를 시작한 후, 성모님 눈물 흘리신 뒤 수강아파트에 모실 때는 수련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에게 좀 맡아달라고 사정을 해서, 절대로 안 한다고 했지만 공동체를 위해 “그럼 새 수련장이 나올 때까지만 제가 대신 교육만 할게요.” 하며 ‘아멘’으로 수락했다. 그러나 내가 임시 수련장 대신으로 수련을 시킬 때, 너무나 바빠서 성당 가서 회원들을 가르칠 시간조차 없었다.

 

그래서 나주 본당 재속 3회 유기 서약자들을 내가 가르쳐야 했을 때, 순례자들이 많이 올 때는 교육생들을 수강아파트로 오도록 하여 순례자들도 돌보고, 짬짬이 교육생들도 가르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공동체를 이뤄나갔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나는 가난한 작은 자의 사랑의 길을 걸어온 사부이신 성 프란치스코의 길을 따라 걸으며, 그 길을 작은 형제들과 함께 걷는다고 생각하니 기쁨으로 가득 차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17 23

🎁새로나온 성물

나주 성모님의 집 (경당)   전남 나주시 나주천 2길 12 (우. 58258) | 나주 성모님 동산   전남 나주시 다시면 신광로 425 

TEL  061-334-5003 | FAX  061-332-3372 | E-mail  najumary@najumary.or.kr | 사업자 등록번호  652-82-00210

대표자  김만복| COPYRIGHT ⓒ 2021 재단법인 마리아의 구원방주회 ALL RIGHTS RESERVED

재단법인 마리아의 구원방주회

나주 성모님의 집 (경당) | 주소 : 전남 나주시 나주천 2길 12 (우. 58258)

나주 성모님 동산 | 주소 : 전남 나주시 다시면 신광로 425 

TEL : 061-334-5003 | FAX : 061-332-3372

사업자 등록번호  652-82-00210 | 대표자  김만복

COPYRIGHTⓒ 2021 마리아의 구원방주 MARY'S ARK OF SALV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