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0. 깁스한 다리로 가파른 다락을 미끄러지다시피 떨어져 내려오며
고통 중에 잠도 잘 이루지 못한 채 2층 다락방에 누워있었다. 그런데 새벽 5시경, 누군가 대문을 “쾅쾅쾅!” 두드리며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율리아 씨! 율리아 씨! 봉센 죽었어요! 봉센 죽었어!” 그 순간 나는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다리에 깁스를 했다는 것도 잊은 채 비좁은 다락방 계단을 순식간에 주르륵 미끄러지다시피 내려왔다. 깁스가 얼마나 두꺼운지, 너무 무거워서 나 혼자는 도저히 못 움직이고 누가 다리를 들어줘야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정작 엄지발가락은 깁스로 감싸지도 않고 나와 있는 상태였으니 잘 낫지 않아 통증이 심했다. 그리고 내가 지내던 다락방은 성인 남성도 힘들어할 정도로 계단이 너무너무 가팔랐다. 한 번에 이어진 것이 아니라 한번 오른 후, 몸을 돌려서 다시 올라가야 하는 계단이었다.
그러나 봉 할아버지의 부고가 들려온 그 순간, 그런 장애물들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기에 그렇게 떨어지다시피 내려온 것이다. 그간 내가 너무나 보고 싶던 할아버지 얼굴이 아른거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직은 안돼요. 아버지! 우리 같이 살기로 약속했잖아요!’
할아버지 댁으로 가는 1분 1초가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다. 목발을 짚고 절뚝이면서도 정신없이 봉 안드레아 할아버지 집으로 가서 보았더니 자리에 누워계신 할아버지는 미동도 없으셨다. “아버지!” 주저앉아 떨리는 손으로 할아버지에게 손을 대보니 이미 온기를 잃은 지 오래되어 싸늘하게 숨져 계신 것이 아닌가!
나는 통곡하며 할아버지를 어루만졌다. “아버지 딸이 왔어요... 딸이 왔어요... 눈을 떠보셔요.” 아무리 불러도 더 이상 할아버지는 내가 오면 보이셨던 그 웃음을 보이지 않으셨다. 내가 깁스만 풀면 새 신발과 새 옷을 사서 입혀 드리고, 병원에 모시고 가서 진찰해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다니….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 밀려왔다. 그날 나는 그렇게 싸늘하게 식어버린 할아버지의 시신을 붙들고 얼마나 통곡하며 울었는지….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할아버지는 내가 발을 다쳐서 못 오는 동안, 임종의 고통과 외로움 중에 내가 오기만을 얼마나 학수고대하며 기다리셨을까?
스스로 할아버지의 딸이라고 했으면서 임종도 못 지키다니... 또한 나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셨을까?’ 나는 너무 죄송스러워 내 가슴을 치면서 울고 또 울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나와 함께 살다 죽기를 그렇게도 원하셨기에 조만간에 방을 들여서 안집에 모시려고 했는데 조금만 더 기다리시지 무엇이 그리도 급하셨단 말인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회한에 나는 통곡을 금치 못하였다. 사람의 욕심은 한정이 없나 보다. 할아버지께서 눈뜨시고 단 하루만이라도 사신다면 원이 없겠다던 나였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눈뜨시고 5년을 더 사셨는데도 그동안 못다 해드린 사랑만이 생각나 한이 되고 후회가 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모든 것이 다 내 탓으로 생각되어, 다른 것은 잘 봉헌하면서도 할아버지의 죽음만은 봉헌이 잘되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너무 아파 쉴 사이 없이 이슬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혹시라도 할아버지가 나를 애타게 기다리다 나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셨다면 나 때문에 연옥 보속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원인 제공을 하였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작고 소식을 듣고 모여오신 동네 사람들이 대성통곡하는 나를 보고 함께 눈물지으며 말씀하셨다. “워따, 참말로 지어서는 못할 일이네. 암, 지어서는 못할 일이제. 아, 친아버지가 죽어도 저러지는 않겠네.”
“그뿐인가! 지금은 친자식들도 서로 유산을 더 받으려고 싸움 나는디, 새댁은 그렇게 효성을 다하고도 집을 준다고 봉센이 아무리 사정해도 안 받아부렀어. 세상에 그런 사람이 또 어디있당가이”. “그랑께 봉센이 ‘머리털을 뽑아서 신을 만들어 주어도 그 은공을 다 갚지 못한다’고 했제.”
“새댁, 아, 말년에 눈도 뜨고 호강도 하고, 또 살 만큼 살았으니 호상 아닌가? 그랑께 그만 우소.” 하면서 나를 달랬다. 그러나 나의 마음이 무너져 내려 할아버지의 죽음만큼은 셈치고 봉헌하기가 힘들었다. 그분들의 말씀은 내게 어떤 위로도 되지 않았다. 나는 예수님과 성모님을 간절히 부르며 기도하고 또 기도할 뿐이었다.
“예수님! 성모님! 당신 아들 봉 안드레아의 영혼을 받아주소서. 안드레아 할아버지가 천국으로 가실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고통이라도 기쁘게 받겠나이다. 부디 딸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이 죄녀를 용서해주시고 긍휼히 여기시어 할아버지의 영혼을 당신의 품으로 안아 천국으로 데려가 주소서...”
840. 깁스한 다리로 가파른 다락을 미끄러지다시피 떨어져 내려오며
고통 중에 잠도 잘 이루지 못한 채 2층 다락방에 누워있었다. 그런데 새벽 5시경, 누군가 대문을 “쾅쾅쾅!” 두드리며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율리아 씨! 율리아 씨! 봉센 죽었어요! 봉센 죽었어!” 그 순간 나는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다리에 깁스를 했다는 것도 잊은 채 비좁은 다락방 계단을 순식간에 주르륵 미끄러지다시피 내려왔다. 깁스가 얼마나 두꺼운지, 너무 무거워서 나 혼자는 도저히 못 움직이고 누가 다리를 들어줘야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정작 엄지발가락은 깁스로 감싸지도 않고 나와 있는 상태였으니 잘 낫지 않아 통증이 심했다. 그리고 내가 지내던 다락방은 성인 남성도 힘들어할 정도로 계단이 너무너무 가팔랐다. 한 번에 이어진 것이 아니라 한번 오른 후, 몸을 돌려서 다시 올라가야 하는 계단이었다.
그러나 봉 할아버지의 부고가 들려온 그 순간, 그런 장애물들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기에 그렇게 떨어지다시피 내려온 것이다. 그간 내가 너무나 보고 싶던 할아버지 얼굴이 아른거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직은 안돼요. 아버지! 우리 같이 살기로 약속했잖아요!’
할아버지 댁으로 가는 1분 1초가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다. 목발을 짚고 절뚝이면서도 정신없이 봉 안드레아 할아버지 집으로 가서 보았더니 자리에 누워계신 할아버지는 미동도 없으셨다. “아버지!” 주저앉아 떨리는 손으로 할아버지에게 손을 대보니 이미 온기를 잃은 지 오래되어 싸늘하게 숨져 계신 것이 아닌가!
나는 통곡하며 할아버지를 어루만졌다. “아버지 딸이 왔어요... 딸이 왔어요... 눈을 떠보셔요.” 아무리 불러도 더 이상 할아버지는 내가 오면 보이셨던 그 웃음을 보이지 않으셨다. 내가 깁스만 풀면 새 신발과 새 옷을 사서 입혀 드리고, 병원에 모시고 가서 진찰해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다니….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 밀려왔다. 그날 나는 그렇게 싸늘하게 식어버린 할아버지의 시신을 붙들고 얼마나 통곡하며 울었는지….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할아버지는 내가 발을 다쳐서 못 오는 동안, 임종의 고통과 외로움 중에 내가 오기만을 얼마나 학수고대하며 기다리셨을까?
스스로 할아버지의 딸이라고 했으면서 임종도 못 지키다니... 또한 나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셨을까?’ 나는 너무 죄송스러워 내 가슴을 치면서 울고 또 울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나와 함께 살다 죽기를 그렇게도 원하셨기에 조만간에 방을 들여서 안집에 모시려고 했는데 조금만 더 기다리시지 무엇이 그리도 급하셨단 말인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회한에 나는 통곡을 금치 못하였다. 사람의 욕심은 한정이 없나 보다. 할아버지께서 눈뜨시고 단 하루만이라도 사신다면 원이 없겠다던 나였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눈뜨시고 5년을 더 사셨는데도 그동안 못다 해드린 사랑만이 생각나 한이 되고 후회가 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모든 것이 다 내 탓으로 생각되어, 다른 것은 잘 봉헌하면서도 할아버지의 죽음만은 봉헌이 잘되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너무 아파 쉴 사이 없이 이슬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혹시라도 할아버지가 나를 애타게 기다리다 나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셨다면 나 때문에 연옥 보속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원인 제공을 하였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작고 소식을 듣고 모여오신 동네 사람들이 대성통곡하는 나를 보고 함께 눈물지으며 말씀하셨다. “워따, 참말로 지어서는 못할 일이네. 암, 지어서는 못할 일이제. 아, 친아버지가 죽어도 저러지는 않겠네.”
“그뿐인가! 지금은 친자식들도 서로 유산을 더 받으려고 싸움 나는디, 새댁은 그렇게 효성을 다하고도 집을 준다고 봉센이 아무리 사정해도 안 받아부렀어. 세상에 그런 사람이 또 어디있당가이”. “그랑께 봉센이 ‘머리털을 뽑아서 신을 만들어 주어도 그 은공을 다 갚지 못한다’고 했제.”
“새댁, 아, 말년에 눈도 뜨고 호강도 하고, 또 살 만큼 살았으니 호상 아닌가? 그랑께 그만 우소.” 하면서 나를 달랬다. 그러나 나의 마음이 무너져 내려 할아버지의 죽음만큼은 셈치고 봉헌하기가 힘들었다. 그분들의 말씀은 내게 어떤 위로도 되지 않았다. 나는 예수님과 성모님을 간절히 부르며 기도하고 또 기도할 뿐이었다.
“예수님! 성모님! 당신 아들 봉 안드레아의 영혼을 받아주소서. 안드레아 할아버지가 천국으로 가실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고통이라도 기쁘게 받겠나이다. 부디 딸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이 죄녀를 용서해주시고 긍휼히 여기시어 할아버지의 영혼을 당신의 품으로 안아 천국으로 데려가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