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2. 신자들은 나를 비난해도 할아버지는 세상을 다 얻었다며 기뻐하시니
할아버지는 눈을 떠서 새 삶을 살게 되셨지만, 이때부터 나에 대한 본당 신자들의 판단은 더욱 심해져 갔다. 할아버지 집은 연탄 아궁이가 없어 나무를 때야 하는데 소나무를 사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는 대부분 연탄을 땠기에 소나무를 파는 곳이 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골 여기저기에 부탁하여 한꺼번에 소나무를 많이 샀다. 양이 많으니 장부가 쉬는 주일 낮에 친정어머니, 장부 또 아이들까지 다 와서 나뭇단을 쌓고 있었다. 그런데 본당 신자들이 지나가며 그 모습을 보고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당가? 무슨 꿍꿍이속이 있겠지. 안 그러고서야 저런 거지와 다름없는 할아버지를 왜 도와주겄어?” 하며 수군거렸다.
한평생 수많은 사람들의 시기 질투를 받아왔지만, 함께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나누어야 할 성당 신자들이 불우이웃을 돕는 것도 판단하고 험담하니 나는 너무 놀라고 마음이 아프려고 했다. 하지만 바로 ‘우리는 못 돕지만 도와주니 참 고맙네.’ 하는 말을 들은 셈치고 봉헌하니 기쁠 수 있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몰이해를 당한다 해도 우리 주님이 계시니 내 마음은 풍요로웠다. 할아버지 세례 후 아직 시력을 되찾으시기 전, 우리 가족만 도와드리던 할아버지를 성당 신자들이 간혹 돕는 경우가 있었다. 할아버지께 생필품 같은 것을 기부하는데, 라면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라면을 드시지 않기에 그들에게 “나는 라면을 못 먹어요.” 하고 거절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신자들이 내게 와서 할아버지 흉을 보며 하는 말이 “아니 세상에, 없는 사람이 라면을 주면 라면을 먹고, 짬뽕을 주면 짬뽕을 먹고, 아무거나 주는 대로 먹을 것이지 가리데요이?”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그들이 너무 안타까워, 깨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생활의 기도를 바치며 그들이 마음 상하지 않도록 말해주었다.
“눈이 안 보이시는 할아버지가 라면을 끓이시는 것을 못 하실 수도 있고, 건강상 무슨 사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 잘 모르는데 함부로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모든 사람에겐 존중해야 할 인격이 있는데, 서로서로 인격을 존중해줘야 해요. 인격을 무시하는 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닐 거예요.” 했다.
높은 사람이건 낮은 사람이건 우리는 주님 안에서 평등한 한 자녀로, 서로를 존중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쉽사리 판단하고, 그리고 소외된 봉 할아버지에게 땔나무 드리는 것으로도 판단하는 그들의 모습에 마음이 무척 아팠다. 하지만 나는 ‘그래,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니 누가 뭐라고 한들 무슨 상관인가!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계시는 주님 앞에 부끄럽지만 않으면 됐다. 나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인정받거나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아 사람들의 눈에 띌까 봐 밤에만 다니지 않았는가? 그러나 많은 땔나무들을 쌓는 일은 밤에 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주일을 택하여 낮에 했던 것인데...
좋은 일을 할 때는 언제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마귀가 방해를 하니, 나를 심란하게 하려는 마귀 공격임이 분명하구나. 그래서 아무리 좋은 의도였을지라도 또다시 그들에게 죄를 지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니 모두 내 탓이다.’ 하고 받아들이니 오히려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그들이 나로 인해 죄짓지 않도록 더욱 숨어서 몰래 하자.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자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그들에게 분심을 주다니… 다음에는 밤에 조금씩 리어카로 실어다 드려야 되겠다.’라며 모든 것을 사랑받은 셈치고 주님께 온전히 봉헌했다.
나를 판단하고 험담한 그들의 마음을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채워주시기를 생활의 기도로 봉헌하며 나뭇단을 다 쌓아 놓고 나니, 할아버지가 “아이고, 이제 부자가 되었네. 눈도 뜨고 아짐을 볼 수 있고, 쌀도 있고 나무가 있으니 온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네!” 하며 너무너무 기뻐하셨다.
그때 할아버지의 표정은 마치 어린아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을 모두 소유하게 되었을 때와 같이 너무나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내가 불편하더라도 남을 기쁘게 해 주고 행복하게 해 주었을 때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거야.’
기뻐하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짓고 있는 내게 주님의 인자하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내 작은 아기야! 너는 늘 나와 일치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불편하더라도 이웃에게 베푸는 사랑의 감미로움 속에서 무한히 행복해할 수 있는 것이란다.”
752. 신자들은 나를 비난해도 할아버지는 세상을 다 얻었다며 기뻐하시니
할아버지는 눈을 떠서 새 삶을 살게 되셨지만, 이때부터 나에 대한 본당 신자들의 판단은 더욱 심해져 갔다. 할아버지 집은 연탄 아궁이가 없어 나무를 때야 하는데 소나무를 사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는 대부분 연탄을 땠기에 소나무를 파는 곳이 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골 여기저기에 부탁하여 한꺼번에 소나무를 많이 샀다. 양이 많으니 장부가 쉬는 주일 낮에 친정어머니, 장부 또 아이들까지 다 와서 나뭇단을 쌓고 있었다. 그런데 본당 신자들이 지나가며 그 모습을 보고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당가? 무슨 꿍꿍이속이 있겠지. 안 그러고서야 저런 거지와 다름없는 할아버지를 왜 도와주겄어?” 하며 수군거렸다.
한평생 수많은 사람들의 시기 질투를 받아왔지만, 함께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나누어야 할 성당 신자들이 불우이웃을 돕는 것도 판단하고 험담하니 나는 너무 놀라고 마음이 아프려고 했다. 하지만 바로 ‘우리는 못 돕지만 도와주니 참 고맙네.’ 하는 말을 들은 셈치고 봉헌하니 기쁠 수 있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몰이해를 당한다 해도 우리 주님이 계시니 내 마음은 풍요로웠다. 할아버지 세례 후 아직 시력을 되찾으시기 전, 우리 가족만 도와드리던 할아버지를 성당 신자들이 간혹 돕는 경우가 있었다. 할아버지께 생필품 같은 것을 기부하는데, 라면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라면을 드시지 않기에 그들에게 “나는 라면을 못 먹어요.” 하고 거절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신자들이 내게 와서 할아버지 흉을 보며 하는 말이 “아니 세상에, 없는 사람이 라면을 주면 라면을 먹고, 짬뽕을 주면 짬뽕을 먹고, 아무거나 주는 대로 먹을 것이지 가리데요이?”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그들이 너무 안타까워, 깨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생활의 기도를 바치며 그들이 마음 상하지 않도록 말해주었다.
“눈이 안 보이시는 할아버지가 라면을 끓이시는 것을 못 하실 수도 있고, 건강상 무슨 사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 잘 모르는데 함부로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모든 사람에겐 존중해야 할 인격이 있는데, 서로서로 인격을 존중해줘야 해요. 인격을 무시하는 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닐 거예요.” 했다.
높은 사람이건 낮은 사람이건 우리는 주님 안에서 평등한 한 자녀로, 서로를 존중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쉽사리 판단하고, 그리고 소외된 봉 할아버지에게 땔나무 드리는 것으로도 판단하는 그들의 모습에 마음이 무척 아팠다. 하지만 나는 ‘그래,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니 누가 뭐라고 한들 무슨 상관인가!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계시는 주님 앞에 부끄럽지만 않으면 됐다. 나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인정받거나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아 사람들의 눈에 띌까 봐 밤에만 다니지 않았는가? 그러나 많은 땔나무들을 쌓는 일은 밤에 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주일을 택하여 낮에 했던 것인데...
좋은 일을 할 때는 언제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마귀가 방해를 하니, 나를 심란하게 하려는 마귀 공격임이 분명하구나. 그래서 아무리 좋은 의도였을지라도 또다시 그들에게 죄를 지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니 모두 내 탓이다.’ 하고 받아들이니 오히려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그들이 나로 인해 죄짓지 않도록 더욱 숨어서 몰래 하자.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자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그들에게 분심을 주다니… 다음에는 밤에 조금씩 리어카로 실어다 드려야 되겠다.’라며 모든 것을 사랑받은 셈치고 주님께 온전히 봉헌했다.
나를 판단하고 험담한 그들의 마음을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채워주시기를 생활의 기도로 봉헌하며 나뭇단을 다 쌓아 놓고 나니, 할아버지가 “아이고, 이제 부자가 되었네. 눈도 뜨고 아짐을 볼 수 있고, 쌀도 있고 나무가 있으니 온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네!” 하며 너무너무 기뻐하셨다.
그때 할아버지의 표정은 마치 어린아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을 모두 소유하게 되었을 때와 같이 너무나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내가 불편하더라도 남을 기쁘게 해 주고 행복하게 해 주었을 때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거야.’
기뻐하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짓고 있는 내게 주님의 인자하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내 작은 아기야! 너는 늘 나와 일치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불편하더라도 이웃에게 베푸는 사랑의 감미로움 속에서 무한히 행복해할 수 있는 것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