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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프로젝트💗「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 503화. 아버지의 얼이 담긴 유품들까지 한 줌의 재로

wlsgodqn
2023-08-08
조회수 442




아버지의 얼이 담긴 유품들까지 한 줌의 재로


정든 추억들이 곳곳에 깃들어 있던 우리의 작은 집. 어머니와 나의 땀과 눈물, 그리고 사랑으로 지어져, 의지할 곳이라곤 서로뿐인 두 모녀의 정을 나누던 우리의 하나뿐인 소중한 보금자리. 어머니와 나의 땀과 혼이 담긴 우리 집이 그렇게 허무하게 하룻밤 사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질 줄이야!

 

한참을 울다 나는 불현듯 외쳤다. “어머니, 아버지의 가방은요?” 어머니는 애처로이 우시면서 “없어야. 아무것도 없어야.” 하셨다. 그 말씀에 나는 까무러칠 것 같은 슬픔이 몰려왔다. 우리집에는 외로운 우리 모녀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 간직되어 있었다. 6·25 때 할아버지는 나와 커다란 돈 가방을 함께 지게에 지고 피난 나오셨다.


 


그 큰 가방에 가득했던 고액권은 화폐개혁 때 어머니가 아버지를 찾아 헤매시느라 경황이 없어 바꾸지 못해 휴짓조각이 되고 말았다. 그 많은 돈을 작은외숙 집의 용마름과 큰외숙 집 두엄 속에 묻었다. 남은 일부는 아버지가 남겨 주신 그 가방 안에 넣어두었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흔적이기에 고이고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던 가방!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있던 아버지의 가방 안에는 돈보다 아니, 순금보다 훨씬 더 소중한 아버지의 유품들이 다 들어있었다. 그동안 어머니가 조상의 혼을 기리면서 그걸 지키고 계셨던 것이다.

 

그런데 작은외숙이 집을 불태우면서 집안에 고이 간직하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가치가 담겨 있는 그 가방도 함께 불에 타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명필로 소문났던 아버지가 손수 쓰신 붓글씨와 책들도 들어있었다. 자나 깨나 그리워 가슴 태우며 갈망하는 나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얼을 느낄 수 있었던 유일한 유품들!


 


아버지가 너무너무 그리울 때면 아버지의 흔적이 묻어있는 그 유품들을 가슴에 끌어안고 아주 희미하게 남아있는 아버지의 체취를 맡아보며, 아버지를 안은 셈 치면서 얼마나 울며 애타는 그리움을 달래곤 했던가!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전교 글씨쓰기 대회에서 1등을 하여 상으로 탄 큰 공책이 있었다.

 

그 공책에는 어려서부터 틈틈이 써온 내 일기와 사진 등이 있었다. 세상 어떤 가치로도 가늠할 수 없는 우리 모녀의 여러 가지 중요한 보물들이 하룻밤 사이에 싹 다 사라져버린 것이다. 안 그래도 가진 것 없는 우리 모녀의 유일한 재산이라 할 수 있는 소중했던 모든 것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작은외숙의 얼마 안 되는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렸다.


 


나의 물건들은 원래 없던 셈 치고, 있는 셈 치고 봉헌할 수 있었지만, 꿈에도 사무치게 그리운 내 아버지의 유품만은 없어졌어도 있는 셈 치기에는 완전히 역부족이었다. ‘오, 내 아버지! 떨려오도록 그리운 내 아버지의 얼굴 대신 늘 바라보며 어루만지던 아버지의 흔적들! 와락 얼굴을 파묻을 때면 희미하게 느껴지던 보고픈 아버지의 체취!

 

그토록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랬던 유일한 아버지의 유품들이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지다니! ‘아- 대체 작은외숙은 어머니와 나에게 언제쯤이나 고통을 주지 않으시려나?’ 가슴이 미어지는 이 아픔은 또 한 번 어머니와 나의 마음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청천 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이 소식에, 눈물은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 듯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오, 아버지! 제 고통의 끝은 어디일까요? 제가 죽으면 우리 어머니께서 갈 곳은 또 어디에 있을까요? 의지할 곳도 갈 곳도 없는 우리 모녀의 길잡이가 되어주소서.

 

제발 제가 치유 받아 우리 어머니의 가슴에 무덤이 되지 않게 해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해주시옵소서. 그리고 돈에 눈이 먼 작은 외숙을 부디 용서하소서.’ 어머니와 나의 추억뿐 아니라 그 집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작은 예수님과 작은 성모님이 행려자와 거지의 모습으로 나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 얼마나 많이 다녀갔던 장소였던가!


  


쉴 곳이 없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쉬도록 내어주었던 소중하고 따뜻한 추억이 듬뿍 담긴 나의 소중한 집! 그랬기에 죽음을 앞두고 그 집으로 이사를 하겠다는 큰 결심을 한 상황에서, 처음부터 집이 없었던 셈 치기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소중한 우리 집이 사라져 버렸으니 갈 곳 없는 우리는 또 어디로 어떻게 가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시한부인 나, 이대로 쓰러지지 않고 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또다시 일어나 나아가보리라. 우리 모녀에게 계속 고통만을 안겨주신 작은외숙으로부터 사랑받은 셈 치고 또다시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속으로 피 흘리는 아픔과 눈물을 머금고 이 모든 아픔을 최선을 다해 봉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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