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상 예수님 앞에서 울부짖다
나주로 이사와 새로운 집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후, 말기 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나는 아무런 치료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먹지도 못하고 겨우 조금 넘기면 토하기 일쑤였다. 물조차도 넘기기 힘들었지만, 친정어머니는 농사 때문에 시골에 가셨기에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몸을 움직여 집안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 배가 뒤틀리고 온몸이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잠시 누워있었다. 그때 작은외숙모가 방문하셨다. 화장품 대리점을 운영하던 외사촌 남동생 길영이의 밥을 해주시려고 나주에 와 계셨기 때문이다. 마침 길영이 집은 우리 이웃에 있어 나를 보러 오신 것이었다.
그런데 외숙모는 밤인데도 가지 않으시고 아파서 누워있는 나에게 녹두죽이라도 끓여주신다며 방으로 들어오셨다. 몸을 일으킬 수 없어 누워있는데, 외숙모는 아파서 몸부림치고 있는 나의 배를 어루만지며 “남묘호랑개교, 남묘호랑개교….” 하는 주문만 끝없이 반복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소리에 머리가 터질 듯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외숙모는 내가 어린 시절 그래도 나를 일 잘한다고 예뻐하셨던 분이기에 그만하시란 말도 못 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인 셈 치고 봉헌해도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외숙모는 나에게도 “아야, 이렇게 하면 네 병이 나을 수 있어야.” 하셨다.
그리고 그 주문을 소리 내어 외라고 하신 후 녹두죽 쒀주신다고 부엌으로 나가셨다. 그 소리가 너무 소름 끼치고 듣기 싫은데 나에게도 따라 외우라니? 그런데 외숙모가 돌아오시면 그 주문을 또 끝없이 외우실 것인데 나는 그 주문을 외우기는커녕, 그 소리를 더는 듣고 있을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죽어가는 그 와중에도 사력을 다해 벌떡 일어나 혼미해져 가는 정신과 가누기 힘든 몸을 이끌고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두운 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나는 발길 닿는 대로 걸어갔다. 의식마저 희미했지만, 한 발 한 발 내디딘 것은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그런데 내 비틀거리는 발길이 인도하여 도착한 곳은 차가운 철창문이 굳게 닫혀있는 성당이었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처럼 홀린 듯 도착한 성당! 얼른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당시에는 가로등도 없었기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묘한 이끌림에 나는 작은 문이 어디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여기저기를 더듬어보니 예상대로 작은 문이 있었다. 나는 철창살 사이로 손을 넣어 잠긴 문을 열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정적에 휩싸여 아무도 없는 어두운 성당. 감실을 밝히는 촛불만이 일렁이며 은은히 빛을 내며 주위를 비춰주고 있었다. 내 한 생애 그토록 부르짖어온 하느님의 집에 6년 만에야 다시 발을 내딛다니!
고동치는 심장 깊숙이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안도감이 포근히 나를 감싸 안으니, 내 영혼 깊숙이 갈무리되었던 설움이 물 밀듯 밀려들었다. 끝없는 폭풍우처럼 고통이 휘몰아쳤던 나의 삶! 그 오랜 세월, 그토록 나를 잘 아시는 하느님이 아니시던가! 아버지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나는 발가벗겨져 맨몸을 다 드러낸 갓난아기가 된 듯,
내 여린 가슴 깊은 곳 아무도 모르게 애써 숨겨둔 상처들조차 기억의 수면 위로 모두 떠올렸다. 너무나 사랑하여 내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자 했던 나의 한 생애! 되돌아오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울부짖으며 끊임없이 소리쳐 불렀던 나의 애절한 사랑, 헤아릴 수 없이 상처받아 피 흘리는 가슴을 겹겹이 싸매며 울며 지새운 밤들이 얼마였던가!
나의 여린 마음속 부서지고 부서진 모든 상처들을 예수님 앞에 고스란히 하나하나 다 펼쳐 놓았다. 그리곤 어둠 속 희미하게 보이는 십자가에 외로이 매달려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있는 힘을 다해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예수니임...! 예수님! 불쌍한 저를 당신 사랑의 품으로 빨리 데려가 주세요. 제발 빨리 데려가 주세요, 네?
당신께선 그 누구보다 저를 잘 아시잖아요. 제 한 생애, 설사 제가 불편하더라도 이웃이 화평하기만을 바라며 내어주었던 삶!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에게, 저는 굶주리고 죽어갈지라도 끝없이 도움과 사랑을 주려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면서 어떤 고통 중에도 죽음을 불사하면서 최선을 다해왔잖아요.
건강한 셈 치고 봉헌하면서 제 한 몸 희생하고, 사랑을 다해 노력해 왔어요. 제 이웃에게 오직 사랑을 주고자 몸부림하면서 내어주며 살아왔던 제 삶을 하느님께서는 아시잖아요. 어떤 모진 고통과 모욕으로 산산이 찢기는 듯 가혹한 편태를 받더라도 늘 사랑받은 셈 치고 기쁘게 봉헌했고,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토록 저를 힘들게 했던 많은 사람들마저도 단 한 번도 원망하거나 미워해 본 적 없이 절절히 사랑했습니다. 제가 바란 것은 그토록 수많은 어려움 중에서도 저 하나만을 위하여 수절하고 힘들게 살아오신 불쌍한 어머니의 여생을 편하게 모시고 싶은 간절한 소망,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을 위하여 잉꼬부부로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욕심 많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인가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불쌍한 사람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불쌍한 할머니들 모시고 살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 소망들을 이루지도 못한 채 이제는 제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사랑하는 모든 이의 걸림돌이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진정 당신이 저를 아신다면 살려주시든지, 당신 곁으로 데려가시든지 빨리 좀 해결해 주세요.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넘기기 어려운 제가 이제는 셈 치고 봉헌하면서 기쁘게 살아가기에는 너무 버겁답니다.” 하고 울부짖었다. 고요한 성당, 정적을 깨는 나의 높고 가느다란 외침만이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십자가상 예수님 앞에서 울부짖다
나주로 이사와 새로운 집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후, 말기 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나는 아무런 치료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먹지도 못하고 겨우 조금 넘기면 토하기 일쑤였다. 물조차도 넘기기 힘들었지만, 친정어머니는 농사 때문에 시골에 가셨기에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몸을 움직여 집안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 배가 뒤틀리고 온몸이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잠시 누워있었다. 그때 작은외숙모가 방문하셨다. 화장품 대리점을 운영하던 외사촌 남동생 길영이의 밥을 해주시려고 나주에 와 계셨기 때문이다. 마침 길영이 집은 우리 이웃에 있어 나를 보러 오신 것이었다.
그런데 외숙모는 밤인데도 가지 않으시고 아파서 누워있는 나에게 녹두죽이라도 끓여주신다며 방으로 들어오셨다. 몸을 일으킬 수 없어 누워있는데, 외숙모는 아파서 몸부림치고 있는 나의 배를 어루만지며 “남묘호랑개교, 남묘호랑개교….” 하는 주문만 끝없이 반복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소리에 머리가 터질 듯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외숙모는 내가 어린 시절 그래도 나를 일 잘한다고 예뻐하셨던 분이기에 그만하시란 말도 못 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인 셈 치고 봉헌해도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외숙모는 나에게도 “아야, 이렇게 하면 네 병이 나을 수 있어야.” 하셨다.
그리고 그 주문을 소리 내어 외라고 하신 후 녹두죽 쒀주신다고 부엌으로 나가셨다. 그 소리가 너무 소름 끼치고 듣기 싫은데 나에게도 따라 외우라니? 그런데 외숙모가 돌아오시면 그 주문을 또 끝없이 외우실 것인데 나는 그 주문을 외우기는커녕, 그 소리를 더는 듣고 있을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죽어가는 그 와중에도 사력을 다해 벌떡 일어나 혼미해져 가는 정신과 가누기 힘든 몸을 이끌고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두운 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나는 발길 닿는 대로 걸어갔다. 의식마저 희미했지만, 한 발 한 발 내디딘 것은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그런데 내 비틀거리는 발길이 인도하여 도착한 곳은 차가운 철창문이 굳게 닫혀있는 성당이었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처럼 홀린 듯 도착한 성당! 얼른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당시에는 가로등도 없었기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묘한 이끌림에 나는 작은 문이 어디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여기저기를 더듬어보니 예상대로 작은 문이 있었다. 나는 철창살 사이로 손을 넣어 잠긴 문을 열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정적에 휩싸여 아무도 없는 어두운 성당. 감실을 밝히는 촛불만이 일렁이며 은은히 빛을 내며 주위를 비춰주고 있었다. 내 한 생애 그토록 부르짖어온 하느님의 집에 6년 만에야 다시 발을 내딛다니!
고동치는 심장 깊숙이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안도감이 포근히 나를 감싸 안으니, 내 영혼 깊숙이 갈무리되었던 설움이 물 밀듯 밀려들었다. 끝없는 폭풍우처럼 고통이 휘몰아쳤던 나의 삶! 그 오랜 세월, 그토록 나를 잘 아시는 하느님이 아니시던가! 아버지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나는 발가벗겨져 맨몸을 다 드러낸 갓난아기가 된 듯,
내 여린 가슴 깊은 곳 아무도 모르게 애써 숨겨둔 상처들조차 기억의 수면 위로 모두 떠올렸다. 너무나 사랑하여 내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자 했던 나의 한 생애! 되돌아오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울부짖으며 끊임없이 소리쳐 불렀던 나의 애절한 사랑, 헤아릴 수 없이 상처받아 피 흘리는 가슴을 겹겹이 싸매며 울며 지새운 밤들이 얼마였던가!
나의 여린 마음속 부서지고 부서진 모든 상처들을 예수님 앞에 고스란히 하나하나 다 펼쳐 놓았다. 그리곤 어둠 속 희미하게 보이는 십자가에 외로이 매달려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있는 힘을 다해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예수니임...! 예수님! 불쌍한 저를 당신 사랑의 품으로 빨리 데려가 주세요. 제발 빨리 데려가 주세요, 네?
당신께선 그 누구보다 저를 잘 아시잖아요. 제 한 생애, 설사 제가 불편하더라도 이웃이 화평하기만을 바라며 내어주었던 삶!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에게, 저는 굶주리고 죽어갈지라도 끝없이 도움과 사랑을 주려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면서 어떤 고통 중에도 죽음을 불사하면서 최선을 다해왔잖아요.
건강한 셈 치고 봉헌하면서 제 한 몸 희생하고, 사랑을 다해 노력해 왔어요. 제 이웃에게 오직 사랑을 주고자 몸부림하면서 내어주며 살아왔던 제 삶을 하느님께서는 아시잖아요. 어떤 모진 고통과 모욕으로 산산이 찢기는 듯 가혹한 편태를 받더라도 늘 사랑받은 셈 치고 기쁘게 봉헌했고,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토록 저를 힘들게 했던 많은 사람들마저도 단 한 번도 원망하거나 미워해 본 적 없이 절절히 사랑했습니다. 제가 바란 것은 그토록 수많은 어려움 중에서도 저 하나만을 위하여 수절하고 힘들게 살아오신 불쌍한 어머니의 여생을 편하게 모시고 싶은 간절한 소망, 그리고 남편과 아이들을 위하여 잉꼬부부로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욕심 많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인가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불쌍한 사람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불쌍한 할머니들 모시고 살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 소망들을 이루지도 못한 채 이제는 제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사랑하는 모든 이의 걸림돌이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진정 당신이 저를 아신다면 살려주시든지, 당신 곁으로 데려가시든지 빨리 좀 해결해 주세요.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넘기기 어려운 제가 이제는 셈 치고 봉헌하면서 기쁘게 살아가기에는 너무 버겁답니다.” 하고 울부짖었다. 고요한 성당, 정적을 깨는 나의 높고 가느다란 외침만이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