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382화. 희망이 생겼다고 생각했으나...

wlsgodqn
2023-02-03
조회수 1480


 희망이 생겼다고 생각했으나... 

약과 음식 모두를 전혀 먹을 수 없으니, 나를 위해 고생하시는 어머니와 남편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친정어머니는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으시고 나를 살리기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다 하셨다. 나를 살릴 방법을 백방으로 알아보시던 어머니는 어느 날, 다도면 산골에 침을 잘 놓는다는 의원님이 계신다며 그곳에 가보자고 하셨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머니와 함께 두 아이를 데리고 힘겹게 그 의원을 찾아갔다. 산자락을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기와집 한 채가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연세가 좀 들어 보이시고 윤기가 흐르는 예쁜 수염을 길게 기른 의원님이 나를 맞아주셨다.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의원님께 내 아픈 곳을 말씀드렸다. 고개를 끄덕이시며 내 말을 다정하게 들어주시던 그 의원님은 엄청 큰 침을 꺼내셔서 내 몸 여러 곳에 놔주셨다. 나는 어느샌가 의식을 잃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보니 나는 침을 맞고 실신했다가 깨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그때 신기하게도 의원님이 “배가 고프지 않느냐?” 하고 물으셨다. 나는 “예, 배가 고프네요. 계속 먹기만 하면 토하고 전혀 배고픈 줄도 몰랐는데 오랜만에 배고픈 줄 알겠어요. 의원님 감사합니다.” 했다. 그러자 의원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시더니, 잠시 후 손수 김치에다 밥을 차려 상을 내오셨다.


‘어쩜 이렇게 자상하실까?’ 잃었던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다 먹었고 함께 간 아이들도 같이 먹었다. 밥에다가 반찬은 김치 하나뿐이었는데도 너무 맛이 있었다. 그 김치는 마치 처음 먹어보는 맛인 듯했다. 어머니는 함께 잡수시라고 하니 배가 안 고프다고 굳이 사양하시며 안 잡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에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그러셨다고 했다. 그 의원님께 다녀온 뒤로 나는 음식도 조금씩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내게도 이제 드디어 희망이 생겼다. 다시 의원님께 가서 빨리 침을 맞고 싶었으나 한 달 뒤에 오라고 하셨다. 기다리는 그 시간이 너무 길었지만 나는 기쁘게 한 달을 기다려 또 그 의원님한테 가서 침을 맞았다.
 
그날은 어머니께도 굳이 밥을 잡수시라고 하셔서 어머니와 아이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음식을 아주 잘하셨던 어머니께서도 “뭔 밥이 그렇게나 맛있다냐? 나 그렇게 맛있는 밥하고 김치는 처음 먹어봤다.” 하실 정도였다. 그렇게 그 의원님으로부터 총 세 번 침을 맞으면서 나는 ‘이제는 살아날 수 있다.’는 굳건한 희망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그동안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고, 어떤 곳에서도 전혀 낫지 못했는데... 어머니께서 병자인 나를 부축하고 잘 걷지도 못하는 어린아이들까지 데리고 교통편도 열악한 그 산골을 찾아가는 그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하지만 산속에서 그 의원님께 침을 맞고 오면서부터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밥도 조금씩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무엇을 마다하겠는가! 과연 이것이 얼마 만인가? 땅에 닿는 곳마다 몸이 굳어 계속 마사지해 줘야만 움직일 수 있던 나는, 이제 부축 없이도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인가! 내게도 이제는 드디어 살길이 열린 것이다.


애타게 또 한 달을 기다린 나는 희망에 부풀어 네 번째로 산골 의원을 찾아갔다. ‘아니, 이럴 수가! 이게 웬일인가!’ 의원님이 사시던 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집터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그곳이 맞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의원님이 계시던 집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모든 희망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눈앞이 캄캄해졌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어머니도 울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도 덩달아 함께 울었다. 의원님께 치료받으러 다니는 동안 우리는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느라 비록 힘은 들었지만, 그 힘듦도 모두 잊을 만큼 희망이 있었고 기쁨으로 가득 찼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희망마저도 물거품이 되어 아득해진 것 같았다. 울고 앉아 있는 나에게 어머니가 다가와 손을 내밀며 말씀하셨다. “애미야, 어서 일어나 아랫마을로 내려가 보자. 가서 어디로 이사 가셨는지 물어보고 그곳으로 찾아가 보자.”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서 ‘맞아, 내가 왜 이렇게 울고만 있지?’ 싶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어머니, 그러면 되겠네요.” 조금은 희망이 생겼다. 아랫마을로 내려와서 살펴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가버리고 대부분 빈 집들만 남아있었다. 누군가 지나가기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 의원님이 어디로 이사 가셨는지 물어보니 그곳에 의원님이 계시다는 것 자체도 모른다고 했다.

 
‘병원도 없는 그 시골 마을에서 그렇게 용한 의원님을 모르다니...?’ 전화도 없던 시절, 그렇게 암담할 데가 또 있을까? 하늘 아래 나의 희망의 끈은 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오, 내 아버지! 나는 이제 어찌하오리까?’
 
* 당시 다도면에는 나주댐 공사(1973년 4월부터 1976년 9월 사이)가 있어 수몰 지역이던 그 아랫동네 주민들은 보상을 받고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그런데 의원의 집은 수몰 지역인 아래쪽 마을과는 상관없이 산을 쭉 올라가면 나오는 깊은 산자락에 있었다. 당시 작은 영혼의 상태는 금방이라도 생명이 끊어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기에 하느님께서 직접 오셔서 살려주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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