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349화. 아이 젖을 떼고 시어머니 도와드리러 갔더니

wlsgodqn
2022-11-09
조회수 1353



 아이 젖을 떼고 시어머니 도와드리러 갔더니

나는 힘겹게 시댁에 도착하여 시어머니께 아이 젖을 뗐노라고 말씀드리며 “젖먹이 아이가 없을 때 어머니 좀 도와드리기 위해서 왔어요.” 하고 말씀드렸다. 시어머니는 퉁명스럽게 “왜 젖을 뗐냐?”라고 하셨다. 그래서 “두 달간 유두에 하얀 반점이 나더니 젖을 먹일 때마다 온몸이 빨려 들어가듯 너무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먹는 젖을 뗐다는 말이냐?” “예, 옆에서들 ‘아이에게 젖을 1년간 먹였으니 이제 영양가 없는 젖을 떼도 되겠다.’고 했습니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래서?” 하시는 시어머님의 말씀에 “모유는 1년이 넘으면 영양가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너무 아픈데 돈 때문에 병원도 갈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젖을 뗐습니다.”
 
시어머니가 또다시 퉁명스럽게 “그래서?” 하셔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냉소적인 추궁이 계속되자 슬슬 진땀이 나는 것 같았다. 나를 향해 차갑게 고정된 어머니의 시선에 몸이 굳어지는 듯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아이가 계속 젖을 먹으려고 하여서 할 수 없이 친정어머니가 ‘일주일간 데리고 갔다가 오겠다.’ 하셨어요. 그래서 애가 없는 동안 어머니 도와드리려고 왔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아니, 펄펄 나오는 젖을 어미가 아프다고 어떻게 뗄 수가 있단 말이냐? 너 참 대단하다?” 시어머니는 비꼬듯 말씀하시더니 갑자기 쌀을 내오셨다. “아나, 이 쌀을 불려서 절구질하여 떡 좀 해라.”하시며 던지듯 쌀을 내놓고 가셨다. 계속 시어머니 빚 갚고 이자까지 내며, 매번 요구하시는 돈 대느라고 정작 돈이 없던 나!


200원이면 살 수 있는 젖 짜는 유축기 하나를 못 사고 있을 때였다. 나는 젖을 뗀 지 3일이 되었는데 아이가 젖을 먹지 않으니 젖이 퉁퉁 불어 젖몸살과 유선염으로 왼쪽 어깨를 들 수조차 없었다. 친정어머니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내 고통을 홀로 어느 정도 짐작하시며 그동안 고생했다고 쉬게 해주시려 애를 쓰셨다.
 
젖먹이를 친정으로 데려가시면서 그 시간만이라도 편히 좀 쉬어서 몸을 회복하기만을 바라셨다. 어머니도 고생스럽고 힘겹게 사시면서도 딸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하시며 이번에도 나를 위해 희생하신 것이다. 그러나 시어머님은 심한 유선염에 젖몸살을 앓고 있는 나의 처지를 말씀드려도 오히려 며느리 사정을 들으시자마자 그 몸으로 절구질해서 떡을 하라며 즉석에서 쌀을 내주셨다.
 

사실 평상시엔 시댁에서도 떡 방앗간으로 쌀을 가지고 가서 떡가루를 빻아왔다. 그런데 이것은 아이 젖을 뗐다고 시어머니께서 주시는 일종의 벌이었다. 유선염에 젖은 퉁퉁 불어 젖몸살까지 왔으며 양쪽 겨드랑이에 가래톳(큰 멍울)이 선 데다가 여름이어서 가슴과 겨드랑이에는 땀띠까지 빈틈없이 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시어머니 말씀에 순종하여 절구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아픈 몸으로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이 너무 까마득하여 눈앞이 캄캄해지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랑했기에 아낌없이 도와드리고자 왔지만 절구질은 너무나도 뜻밖의 일이었다. 감히 생각도 못 해 본 이 암담한 상황에서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순간 머뭇거렸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안 할 거냐?” 하셨다. “예, 어머니 얼른 할게요.” 염증으로 찬 가슴은 팔이 조금만 스쳐도 눈물 나게 아려왔고 게다가 젖이 퉁퉁 불어 심한 젖몸살에 눈물은 절로 흘러내렸다. 양쪽 가슴을 천으로 꽁꽁 묶어놨는데 극심한 통증으로 왼쪽 어깨를 잘 들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절구질로 온 힘을 다해 팔을 쓴다는 건 내 상태로 봐서는 주리 트는 벌과도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진정 사랑하는 마음을 다해 나를 온전히 내어놓기로 했다. 나의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딸을 얼른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편하게 쉬는 셈치고 봉헌하며 쌀을 불려 절구질을 시작했다.
 
안 그래도 큰 가슴에 젖까지 불어 천근만근 무거움을 느꼈고 그 통증은 실로 표현할 길 없었다. 한 손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절굿대를 놓치지 않으려 꼭 쥔 양손에는 쥐가 나고 식은땀이 배어났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나는 죽을힘을 다해 절굿대를 들어 올려 내리쳤다.

 
쿵! 절굿대를 타고 성난 파도처럼 밀려 들어온 육중한 진동이 온전히 아픈 왼쪽 가슴을 직격으로 강타했다. 온몸이 그대로 부서져 내리는 듯했다. 이를 꽉 물었다. 다시 힘겹게 절구를 들어 올려 온몸으로 내리쳤다. 쾅! 가슴이 심장과 함께 터져버릴 것 같았다.
 
절구 속으로 전신이 다 딸려 나가 바수어지는 듯 아찔했다. 쿵-! 쾅-! 쿵…. 한 번, 한 번 절구질이 더해질 때마다 내 몸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꽁꽁 동여맨 가슴에서는 젖이 줄줄 흘러나왔다. 퉁퉁 불은 젖이 흘러내려 배를 적시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다리를 타고 신발까지 흘러내렸다.

 
이런 내 처지가 비참하게 느껴지려고 했지만, 얼른 사랑받은 셈치며 흘러내리는 젖을 닦아낼 새도 없이 절구질을 했다. 쿵! 쾅! 쿵! 쾅~ 7월 한여름, 바람 한 점 없는 쪽방 속 무더위에 부채도 없이 살았으면서 큰 가슴을 꼭꼭 묶기까지 했으니 땀띠는 또 얼마나 많이 났겠는가!
 
 
양쪽 겨드랑이에 가래톳이 서 있었으니 이 고통은 겪어보지 않고는 절대로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비명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앙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정신마저 아득해지는 듯했다. 울지 않으려 했지만 내 의지와는 달리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편하게 쉬는 셈치고 봉헌하기에는 너무 힘에 겨웠다. 그러나 ‘시어머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다면, 그리고 내가 이렇게 힘들어도 사랑을 다해 해드린 떡을 시댁 식구들이 맛있게 드실 수만 있다면야 내 팔이 끊어지더라도 하자.’하고 마음을 추슬렀다. 나는 극심한 고통을 봉헌하면서 다시 천천히 절구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온전히 내어놓으려 결심하며 모처럼 쉴 기회도 포기하고 발걸음을 한 내 사랑의 열정이었기에 또 한 번 나를 다 태워 희생으로 내어주리라고 결심했다. 숨을 깊이 들이쉬며 절굿대를 내리칠 때마다 ‘곱게 바수어져 가는 쌀가루처럼 나도 조금의 남김도 없이, 아낌없이 부수어주세요.’ 하고 기도하며 사랑받은 셈치고 봉헌하면서 절구질을 해나갔다.
 
절구질 소리에 감추어진 소리 없는 나의 비명은 비 오듯 쏟아지는 땀과 눈물 속에 뒤섞여 후두둑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어느덧 육신은 쇠진하여 ‘더는, 더 이상은 못할 것 같은데...’ 하며 한계를 느낄 때마다 또다시 사랑받은 셈치며 최선을 다해 사랑의 힘을 발휘해 냈다.
 
 
무언의 절규로 신음하던 내가 ‘기필코 맛있는 떡을 해드려 기쁨을 드리리라.’ 하고 사랑으로 다짐하던 그때 불현듯 시어머니가 방문을 팍 여시면서 내지르시는 고함소리는 또 한 번 여린 내 가슴을 후비는 비수가 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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