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힘겹게 시댁에 도착하여 시어머니께 아이 젖을 뗐노라고 말씀드리며 “젖먹이 아이가 없을 때 어머니 좀 도와드리기 위해서 왔어요.” 하고 말씀드렸다. 시어머니는 퉁명스럽게 “왜 젖을 뗐냐?”라고 하셨다. 그래서 “두 달간 유두에 하얀 반점이 나더니 젖을 먹일 때마다 온몸이 빨려 들어가듯 너무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먹는 젖을 뗐다는 말이냐?” “예, 옆에서들 ‘아이에게 젖을 1년간 먹였으니 이제 영양가 없는 젖을 떼도 되겠다.’고 했습니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래서?” 하시는 시어머님의 말씀에 “모유는 1년이 넘으면 영양가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너무 아픈데 돈 때문에 병원도 갈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젖을 뗐습니다.”
시어머니가 또다시 퉁명스럽게 “그래서?” 하셔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냉소적인 추궁이 계속되자 슬슬 진땀이 나는 것 같았다. 나를 향해 차갑게 고정된 어머니의 시선에 몸이 굳어지는 듯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아이가 계속 젖을 먹으려고 하여서 할 수 없이 친정어머니가 ‘일주일간 데리고 갔다가 오겠다.’ 하셨어요. 그래서 애가 없는 동안 어머니 도와드리려고 왔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아니, 펄펄 나오는 젖을 어미가 아프다고 어떻게 뗄 수가 있단 말이냐? 너 참 대단하다?” 시어머니는 비꼬듯 말씀하시더니 갑자기 쌀을 내오셨다. “아나, 이 쌀을 불려서 절구질하여 떡 좀 해라.”하시며 던지듯 쌀을 내놓고 가셨다. 계속 시어머니 빚 갚고 이자까지 내며, 매번 요구하시는 돈 대느라고 정작 돈이 없던 나!
200원이면 살 수 있는 젖 짜는 유축기 하나를 못 사고 있을 때였다. 나는 젖을 뗀 지 3일이 되었는데 아이가 젖을 먹지 않으니 젖이 퉁퉁 불어 젖몸살과 유선염으로 왼쪽 어깨를 들 수조차 없었다. 친정어머니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내 고통을 홀로 어느 정도 짐작하시며 그동안 고생했다고 쉬게 해주시려 애를 쓰셨다.
젖먹이를 친정으로 데려가시면서 그 시간만이라도 편히 좀 쉬어서 몸을 회복하기만을 바라셨다. 어머니도 고생스럽고 힘겹게 사시면서도 딸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하시며 이번에도 나를 위해 희생하신 것이다. 그러나 시어머님은 심한 유선염에 젖몸살을 앓고 있는 나의 처지를 말씀드려도 오히려 며느리 사정을 들으시자마자 그 몸으로 절구질해서 떡을 하라며 즉석에서 쌀을 내주셨다.
사실 평상시엔 시댁에서도 떡 방앗간으로 쌀을 가지고 가서 떡가루를 빻아왔다. 그런데 이것은 아이 젖을 뗐다고 시어머니께서 주시는 일종의 벌이었다. 유선염에 젖은 퉁퉁 불어 젖몸살까지 왔으며 양쪽 겨드랑이에 가래톳(큰 멍울)이 선 데다가 여름이어서 가슴과 겨드랑이에는 땀띠까지 빈틈없이 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시어머니 말씀에 순종하여 절구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아픈 몸으로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이 너무 까마득하여 눈앞이 캄캄해지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랑했기에 아낌없이 도와드리고자 왔지만 절구질은 너무나도 뜻밖의 일이었다. 감히 생각도 못 해 본 이 암담한 상황에서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순간 머뭇거렸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안 할 거냐?” 하셨다. “예, 어머니 얼른 할게요.” 염증으로 찬 가슴은 팔이 조금만 스쳐도 눈물 나게 아려왔고 게다가 젖이 퉁퉁 불어 심한 젖몸살에 눈물은 절로 흘러내렸다. 양쪽 가슴을 천으로 꽁꽁 묶어놨는데 극심한 통증으로 왼쪽 어깨를 잘 들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절구질로 온 힘을 다해 팔을 쓴다는 건 내 상태로 봐서는 주리 트는 벌과도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진정 사랑하는 마음을 다해 나를 온전히 내어놓기로 했다. 나의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딸을 얼른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편하게 쉬는 셈치고 봉헌하며 쌀을 불려 절구질을 시작했다.
안 그래도 큰 가슴에 젖까지 불어 천근만근 무거움을 느꼈고 그 통증은 실로 표현할 길 없었다. 한 손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절굿대를 놓치지 않으려 꼭 쥔 양손에는 쥐가 나고 식은땀이 배어났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나는 죽을힘을 다해 절굿대를 들어 올려 내리쳤다.
쿵! 절굿대를 타고 성난 파도처럼 밀려 들어온 육중한 진동이 온전히 아픈 왼쪽 가슴을 직격으로 강타했다. 온몸이 그대로 부서져 내리는 듯했다. 이를 꽉 물었다. 다시 힘겹게 절구를 들어 올려 온몸으로 내리쳤다. 쾅! 가슴이 심장과 함께 터져버릴 것 같았다.
절구 속으로 전신이 다 딸려 나가 바수어지는 듯 아찔했다. 쿵-! 쾅-! 쿵…. 한 번, 한 번 절구질이 더해질 때마다 내 몸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꽁꽁 동여맨 가슴에서는 젖이 줄줄 흘러나왔다. 퉁퉁 불은 젖이 흘러내려 배를 적시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다리를 타고 신발까지 흘러내렸다.
이런 내 처지가 비참하게 느껴지려고 했지만, 얼른 사랑받은 셈치며 흘러내리는 젖을 닦아낼 새도 없이 절구질을 했다. 쿵! 쾅! 쿵! 쾅~ 7월 한여름, 바람 한 점 없는 쪽방 속 무더위에 부채도 없이 살았으면서 큰 가슴을 꼭꼭 묶기까지 했으니 땀띠는 또 얼마나 많이 났겠는가!
양쪽 겨드랑이에 가래톳이 서 있었으니 이 고통은 겪어보지 않고는 절대로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비명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앙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정신마저 아득해지는 듯했다. 울지 않으려 했지만 내 의지와는 달리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편하게 쉬는 셈치고 봉헌하기에는 너무 힘에 겨웠다. 그러나 ‘시어머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다면, 그리고 내가 이렇게 힘들어도 사랑을 다해 해드린 떡을 시댁 식구들이 맛있게 드실 수만 있다면야 내 팔이 끊어지더라도 하자.’하고 마음을 추슬렀다. 나는 극심한 고통을 봉헌하면서 다시 천천히 절구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온전히 내어놓으려 결심하며 모처럼 쉴 기회도 포기하고 발걸음을 한 내 사랑의 열정이었기에 또 한 번 나를 다 태워 희생으로 내어주리라고 결심했다. 숨을 깊이 들이쉬며 절굿대를 내리칠 때마다 ‘곱게 바수어져 가는 쌀가루처럼 나도 조금의 남김도 없이, 아낌없이 부수어주세요.’ 하고 기도하며 사랑받은 셈치고 봉헌하면서 절구질을 해나갔다.
절구질 소리에 감추어진 소리 없는 나의 비명은 비 오듯 쏟아지는 땀과 눈물 속에 뒤섞여 후두둑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어느덧 육신은 쇠진하여 ‘더는, 더 이상은 못할 것 같은데...’ 하며 한계를 느낄 때마다 또다시 사랑받은 셈치며 최선을 다해 사랑의 힘을 발휘해 냈다.
무언의 절규로 신음하던 내가 ‘기필코 맛있는 떡을 해드려 기쁨을 드리리라.’ 하고 사랑으로 다짐하던 그때 불현듯 시어머니가 방문을 팍 여시면서 내지르시는 고함소리는 또 한 번 여린 내 가슴을 후비는 비수가 되는 듯했다.
나를 온전히 내어놓으려 결심하며 모처럼 쉴 기회도 포기하고 발걸음을 한 내 사랑의 열정이었기에 또 한 번
나를 다 태워 희생으로 내어주리라고 결심했다. 숨을 깊이 들이쉬며 절굿대를 내리칠 때마다 ‘곱게 바수어져
가는 쌀가루처럼 나도 조금의 남김도 없이, 아낌없이 부수어주세요.’ 하고 기도하며 사랑받은 셈치고 봉헌
하면서 절구질을 해나갔다.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을까요?
염증으로 꽉찬 가슴 그 고통들 뒤로하고 시어머님을 도와드리려 갔다가
모질게도 화내시고 야단하시는 시어머님 너무 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엄마의 모습 생각하면 정말 못할 것이 없는데 너무나 나약했던 제 모습을 보면서 사랑받은 셈 치고 노력을 많이
해야 됨을 느낍니다.새로 시작하고 노력 할게요.
나를 온전히 내어놓으려 결심하며 모처럼 쉴 기회도 포기하고 발걸음을 한 내 사랑의 열정이었기에
또 한 번 나를 다 태워 희생으로 내어주리라고 결심했다.
숨을 깊이 들이쉬며 절굿대를 내리칠 때마다
‘곱게 바수어져 가는 쌀가루처럼 나도 조금의 남김도 없이, 아낌없이 부수어주세요.’ 하고
기도하며 사랑받은 셈치고 봉헌하면서 절구질을 해나갔다.
절구질 소리에 감추어진 소리 없는 나의 비명은
비 오듯 쏟아지는 땀과 눈물 속에 뒤섞여 후두둑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어느덧 육신은 쇠진하여 ‘더는, 더 이상은 못할 것 같은데...’ 하며
한계를 느낄 때마다 또다시 사랑받은 셈치며 사랑의 힘을 발휘해 냈다.
이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어본 적도 없고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일입니다.
아무리 예비하신 삶이라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수 있었을까?
많은 생각과 안타까운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합니다.
엄마의 삶을 통해 완성하신 5대 영성이 놀랍기만하고
또 하느님께서 엄마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들 또한 경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부족하고 나약하고 더럽고 수많은 죄속에서 헤매며 살아온 저 자신을
엄마라는 거울에 비추어 반성하며 새롭게 시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신을 불태워 다른이들을 위해 온몸을
바치치는 희생이 무어라 말할수 없지만
인간적으로는 답답합니다..
퉁명한 시어머니의 말투는 너무 얄밉고
저럴수 있나 싶지만..
모든게 다 예비된 삶이었으니....
어찌 이 모든 희생을 바칠수 있는지!!
엄마!
이제는 저희들 위해 그 희생을 바치시니
너무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완전한 순명, 한마디 말도 없이 묵묵히 따르는 엄마의 완전한 순명에 감탄합니다.
저도 엄마의 그런 마음과 태도로 이웃을 대하고 싶습니다. 편하게 쉴 수 있었는데
절호의 기회를 마다하고 이렇게 시어머니에게 가서 모진 고통을 당하셨던 엄마...
온전히 내어놓고 시댁 식구들이 맛있게 드실 수만 있다면야 팔이 끊어지더라도 하자는
그 마음... 저도 그런 단순하고 깨끗한 순명을 하고 싶은데 이거는 이렇고 저거는 저렇다는
말이 자주 나오게 됩니다. 정말 어렵지만 그 가슴으로 절구질을 하던 엄마를 생각하며
그런 순명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청합니다. 주님, 부족한 저를 이끌어 주소서. 아멘.
💖진정 사랑하는 마음을 다해 나를 온전히 내어놓기로 했다.
💖시어머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다면, 그리고 내가 이렇게 힘들어도
사랑을 다해 해드린 떡을 시댁 식구들이 맛있게 드실 수만 있다면야 내 팔이 끊어지더라도 하자.’
💖한계를 느낄 때마다 또다시 사랑받은 셈치며 최선을 다해 사랑의 힘을 발휘해 냈다.
💖나를 온전히 내어놓으려 결심하며 모처럼 쉴 기회도 포기하고 발걸음을 한
내 사랑의 열정이었기에 또 한 번 나를 다 태워 희생으로 내어주리라고 결심했다.
💖 온전한 순명으로 하늘의 문을 열 수 있도록 새롭게 시작할게요.
저는 이것하라고하면 엉뚱한 것을 할 때가 있어요.ㅠㅠ
제 생각을 넣지 않고 아주 단순한 아기가 되어 시키는 그대로 아멘으로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온몸이 으스러지는 상황에서도 엄마의 모든 것, 뼛속까지 다 바치신 위대한 사랑을 보고 느낍니다.
엄마의 일화를 묵상하면 어떤 것을 불평할 수 있을까... 어떤 것을 해내지 못할까...제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 생각합니다.
5대 영성과 사랑으로 모든 것을 능히 극복해나가고 마귀로부터 승리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깁니다. 아멘.
너무나 부족해서 행동이 잘 따라주지 않을 때도 많지만
이웃을 위해 내 팔이 끊어지더라도 하자 하신 엄마처럼 사랑의 열정을 닮아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쓰도록 새롭게 시작하고 최선을 다할게요.
너무나 아름다운 일화입니다. 제가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ㅠㅠ 감사해용.
아멘!!!!!
엄마의 사랑의 힘 발휘...! 이 죄인... 정말 부끄럽습니다...
많이 반성되고 어떻게 엄마를 따라가야 하는지 느끼고 깨닫습니다!
천국가는 지름길- 5대 영성 가르쳐 주신 엄마ㅠㅠ! 엄마의 사랑과 양육, 희생과 고통이
헛되지 않도록 더욱 깨어서 5대 영성 무장 실천 분투노력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묵상프로젝트로 양육해주심에
예수님 성모님 엄마께 무한히 감사드려요..!!!
💝하느님의 거룩한 도성 나주 성지 !!!!!
💝나주에서 발현하시고 현존하시는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과 성모님
찬미와 감사와 영광과 흠숭을 세세에 영원히 영원히 받으시옵소서. 아멘!
💝하느님의 고굉지신, 빛나는 샛별,
영광의 자비의 사도이신 율리아님💖
지상에서 저희와 함께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
절구질 소리에 감추어진 소리 없는 나의 비명은
비 오듯 쏟아지는 땀과 눈물 속에 뒤섞여 후두둑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어느덧 육신은 쇠진하여
‘더는, 더 이상은 못할 것 같은데...’ 하며 한계를
느낄 때마다 또다시 사랑받은 셈치며 최선을 다해
사랑의 힘을 발휘해 냈다 아멘!!!아멘!!!아멘!!!
감사합니다!!!
엄마의 그 절구질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고 저희의 자아와 악습을 부수어주기 위해서
극심한 고통으로 소리 없는 비명을 비 오듯 쏟아지는 땀과 눈물 속에서 지르고 계실 엄마...
죽음의 한계를 넘어서서 저희를 위해 간신히 생명을 연장하고 또 연장하고 계실 엄마...
그런 엄마를 생각하며 생활 속에서 저 자신을 내려놓고 또 낮추고 비우도록 끊임없이 계속 노력할게요.
엄마의 그 절구질에 빻아지는 쌀가루처럼 저 자신을 온전히 엄마의 손길에 맡겨드릴게요.
주님, 성모님의 사랑 안에서 엄마께서 행하시는 사랑의 기적이 이뤄지도록...
저희를 위해 엄마의 삶을 예비해오신 주님의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벌이 아니라 고문이네요.
시어머니는 그 정도였는 줄은 모르셨겠죠.
젖이 줄줄 새서 발까지 흘러내린다니...
고통을 잘 견뎌내시는 엄마시니까 가능한 일이지..
누구도 못할 일 아닌가요...
정말로.. 왜 시댁에 가셔서.. 라는 말 밖에 안 나오지만
고통의 화덕에서 단련시키시기 위한 주님의 계획이라고 밖에는...
아이 젖을 떼고 시어머니 도와드리러 갔더니
나는 힘겹게 시댁에 도착하여 시어머니께 아이 젖을 뗐노라고 말씀드리며 “젖먹이 아이가 없을 때 어머니 좀 도와드리기 위해서 왔어요.” 하고 말씀드렸다. 시어머니는 퉁명스럽게 “왜 젖을 뗐냐?”라고 하셨다. 그래서 “두 달간 유두에 하얀 반점이 나더니 젖을 먹일 때마다 온몸이 빨려 들어가듯 너무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먹는 젖을 뗐다는 말이냐?” “예, 옆에서들 ‘아이에게 젖을 1년간 먹였으니 이제 영양가 없는 젖을 떼도 되겠다.’고 했습니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래서?” 하시는 시어머님의 말씀에 “모유는 1년이 넘으면 영양가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너무 아픈데 돈 때문에 병원도 갈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젖을 뗐습니다.”
시어머니가 또다시 퉁명스럽게 “그래서?” 하셔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냉소적인 추궁이 계속되자 슬슬 진땀이 나는 것 같았다. 나를 향해 차갑게 고정된 어머니의 시선에 몸이 굳어지는 듯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아이가 계속 젖을 먹으려고 하여서 할 수 없이 친정어머니가 ‘일주일간 데리고 갔다가 오겠다.’ 하셨어요. 그래서 애가 없는 동안 어머니 도와드리려고 왔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아니, 펄펄 나오는 젖을 어미가 아프다고 어떻게 뗄 수가 있단 말이냐? 너 참 대단하다?” 시어머니는 비꼬듯 말씀하시더니 갑자기 쌀을 내오셨다. “아나, 이 쌀을 불려서 절구질하여 떡 좀 해라.”하시며 던지듯 쌀을 내놓고 가셨다. 계속 시어머니 빚 갚고 이자까지 내며, 매번 요구하시는 돈 대느라고 정작 돈이 없던 나!
200원이면 살 수 있는 젖 짜는 유축기 하나를 못 사고 있을 때였다. 나는 젖을 뗀 지 3일이 되었는데 아이가 젖을 먹지 않으니 젖이 퉁퉁 불어 젖몸살과 유선염으로 왼쪽 어깨를 들 수조차 없었다. 친정어머니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내 고통을 홀로 어느 정도 짐작하시며 그동안 고생했다고 쉬게 해주시려 애를 쓰셨다.
젖먹이를 친정으로 데려가시면서 그 시간만이라도 편히 좀 쉬어서 몸을 회복하기만을 바라셨다. 어머니도 고생스럽고 힘겹게 사시면서도 딸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하시며 이번에도 나를 위해 희생하신 것이다. 그러나 시어머님은 심한 유선염에 젖몸살을 앓고 있는 나의 처지를 말씀드려도 오히려 며느리 사정을 들으시자마자 그 몸으로 절구질해서 떡을 하라며 즉석에서 쌀을 내주셨다.
사실 평상시엔 시댁에서도 떡 방앗간으로 쌀을 가지고 가서 떡가루를 빻아왔다. 그런데 이것은 아이 젖을 뗐다고 시어머니께서 주시는 일종의 벌이었다. 유선염에 젖은 퉁퉁 불어 젖몸살까지 왔으며 양쪽 겨드랑이에 가래톳(큰 멍울)이 선 데다가 여름이어서 가슴과 겨드랑이에는 땀띠까지 빈틈없이 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시어머니 말씀에 순종하여 절구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아픈 몸으로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이 너무 까마득하여 눈앞이 캄캄해지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랑했기에 아낌없이 도와드리고자 왔지만 절구질은 너무나도 뜻밖의 일이었다. 감히 생각도 못 해 본 이 암담한 상황에서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순간 머뭇거렸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안 할 거냐?” 하셨다. “예, 어머니 얼른 할게요.” 염증으로 찬 가슴은 팔이 조금만 스쳐도 눈물 나게 아려왔고 게다가 젖이 퉁퉁 불어 심한 젖몸살에 눈물은 절로 흘러내렸다. 양쪽 가슴을 천으로 꽁꽁 묶어놨는데 극심한 통증으로 왼쪽 어깨를 잘 들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절구질로 온 힘을 다해 팔을 쓴다는 건 내 상태로 봐서는 주리 트는 벌과도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진정 사랑하는 마음을 다해 나를 온전히 내어놓기로 했다. 나의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딸을 얼른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편하게 쉬는 셈치고 봉헌하며 쌀을 불려 절구질을 시작했다.
안 그래도 큰 가슴에 젖까지 불어 천근만근 무거움을 느꼈고 그 통증은 실로 표현할 길 없었다. 한 손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절굿대를 놓치지 않으려 꼭 쥔 양손에는 쥐가 나고 식은땀이 배어났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나는 죽을힘을 다해 절굿대를 들어 올려 내리쳤다.
쿵! 절굿대를 타고 성난 파도처럼 밀려 들어온 육중한 진동이 온전히 아픈 왼쪽 가슴을 직격으로 강타했다. 온몸이 그대로 부서져 내리는 듯했다. 이를 꽉 물었다. 다시 힘겹게 절구를 들어 올려 온몸으로 내리쳤다. 쾅! 가슴이 심장과 함께 터져버릴 것 같았다.
절구 속으로 전신이 다 딸려 나가 바수어지는 듯 아찔했다. 쿵-! 쾅-! 쿵…. 한 번, 한 번 절구질이 더해질 때마다 내 몸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꽁꽁 동여맨 가슴에서는 젖이 줄줄 흘러나왔다. 퉁퉁 불은 젖이 흘러내려 배를 적시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다리를 타고 신발까지 흘러내렸다.
이런 내 처지가 비참하게 느껴지려고 했지만, 얼른 사랑받은 셈치며 흘러내리는 젖을 닦아낼 새도 없이 절구질을 했다. 쿵! 쾅! 쿵! 쾅~ 7월 한여름, 바람 한 점 없는 쪽방 속 무더위에 부채도 없이 살았으면서 큰 가슴을 꼭꼭 묶기까지 했으니 땀띠는 또 얼마나 많이 났겠는가!
양쪽 겨드랑이에 가래톳이 서 있었으니 이 고통은 겪어보지 않고는 절대로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비명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앙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정신마저 아득해지는 듯했다. 울지 않으려 했지만 내 의지와는 달리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편하게 쉬는 셈치고 봉헌하기에는 너무 힘에 겨웠다. 그러나 ‘시어머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다면, 그리고 내가 이렇게 힘들어도 사랑을 다해 해드린 떡을 시댁 식구들이 맛있게 드실 수만 있다면야 내 팔이 끊어지더라도 하자.’하고 마음을 추슬렀다. 나는 극심한 고통을 봉헌하면서 다시 천천히 절구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온전히 내어놓으려 결심하며 모처럼 쉴 기회도 포기하고 발걸음을 한 내 사랑의 열정이었기에 또 한 번 나를 다 태워 희생으로 내어주리라고 결심했다. 숨을 깊이 들이쉬며 절굿대를 내리칠 때마다 ‘곱게 바수어져 가는 쌀가루처럼 나도 조금의 남김도 없이, 아낌없이 부수어주세요.’ 하고 기도하며 사랑받은 셈치고 봉헌하면서 절구질을 해나갔다.
절구질 소리에 감추어진 소리 없는 나의 비명은 비 오듯 쏟아지는 땀과 눈물 속에 뒤섞여 후두둑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어느덧 육신은 쇠진하여 ‘더는, 더 이상은 못할 것 같은데...’ 하며 한계를 느낄 때마다 또다시 사랑받은 셈치며 최선을 다해 사랑의 힘을 발휘해 냈다.
무언의 절규로 신음하던 내가 ‘기필코 맛있는 떡을 해드려 기쁨을 드리리라.’ 하고 사랑으로 다짐하던 그때 불현듯 시어머니가 방문을 팍 여시면서 내지르시는 고함소리는 또 한 번 여린 내 가슴을 후비는 비수가 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