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영상소뇌위축증으로 걷지 못하던 남편이 나주 순례 후 걷다!

운영진
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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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수원지부 조귀덕 카타리나입니다. 저는 저희 남편이 코로나 터지기 두 달 전부터 어지럼증이 있어서 이 병원 저 병원 이 과 저 과를 다니면서 검사를 받다가 소뇌위축증이라는 병명을 진단받게 되었습니다.

 

소뇌위축증은 소뇌가 운동 기관을 담당하는 곳인데 자기 몸을 마음대로 지탱을 할 수가 없어서 잘 넘어졌어요. 그 진단을 받는 순간 스카풀라를 제가 두 개를 목에 걸어주면서 이거는 절대로 샤워할 때도 빼지 말고 계속 차고 있어야 된다고 걸어줬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그 어지럼증이 심해져서 날마다 밥 먹고 일어나면서도 의자랑 같이 넘어져 버리고, 화장실 가서 손 씻으면서도 넘어지고, 걸어가면서도 넘어지고 신호등 건너가면서도 넘어지고 그냥 보는 앞에서 툭툭툭 넘어지는데 정말 그때마다 제 피가 마르고 제 심장이 조여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러다가 언젠가는 대형 사고를 치겠구나.’ 그러면서 항상 마음 졸이면서 살았는데 한 달 전에 소파에서 같이 앉아 있는데 워커를 잡고 일어서야 되는데 밀고 일어서서 그게 가속이 붙어서 TV 장식장에다가 턱을 탁 찧어 앞이빨이 3개가 뿌리만 조금 남기고 그 자리에서 끊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치과 치료를 받으면서 본을 다 떠놓고 의치를 하러 갈 날이 다가왔는데, 올해 4월 27일 날 대형 사고가 터졌어요. 눈썹 뼈가 함몰돼서 이렇게 움푹 파여버리고 콧등이 깨지고 코끝이 무너지고 갈비뼈가 4개가 부러져버리고 폐에 물이 차고 피가 고이고.

 

그래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서 대학병원에서 10일 동안 성형외과, 폐 센터에서 치료받고 집에를 모실 수가 없어서 제가 말을 했죠. “너무 미안하다. 집에를 같이 모실 수가 없어서 요양병원을 가야 되겠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더니 남편이 “아, 이제는 끝이구나. 슬퍼서 어떻게 사느냐. 외로워서 어떻게 사느냐.” 그러면서 대성통곡을 하는데 저도 같이 울었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요양병원 가기 전에 코로나가 있어 애들을 볼 수가 없어서 애들하고 같이 영상통화를 하는데 애들 이름을 부르면서 대성통곡을 하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는데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그래서 요양병원에 입원을 시켰는데 그날 요양병원 앞에서도 내 손을 잡고 또 대성통곡을 하는 거예요. 요양병원 모시기 전에 이빨 해 주려고 치과에 전화를 했더니 코 수술을 했기 때문에 코로 숨을 쉬어야 되는데 입으론 못 한다는 거예요.

 

이빨을 못 해 주고 요양병원에 모시는데 그게 너무너무 가슴이 아픈 거예요. 내 가슴이 찢어지고 미어지고 정말 자다 일어나서도 밥 먹다가도 ‘나는 이렇게 혼자 잘 먹고 있는데 우리 남편은 어떻게 먹고 있을까? 이빨이 없어서 간병인이 우리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정말, 정말 아무것도 없는 집 못 사는 집에 환자가 왔나 보다.’ 그렇게 생각할까 봐서 가슴이 너무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 미용실에 출근하면 손님들이 “남편은 어떻게 좀 좋아졌어?” 그 말만 해도 손님 앞에서 목놓아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습니다. 너무너무 힘들어서 ‘아, 이렇게 안 되겠다. 내가 집에다 모셔놓고 손을 묶어놓더라도...’ 왜냐하면 코 수술하고 이렇게 자꾸 정신은 말짱하니까 자꾸 내려오려고 그러니까 병원에서 묶어놓는 거예요.

 

이빨이 없으니까 ‘집에서 묶어놓더라도 내가 먹는 거라도 신경을 써서 내가 잘해 먹여야 되겠다.’ 해서 마음먹고 5일 만에 퇴원을 시켰어요.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간병인이 남자 기저귀 케어는 잘하기 힘들어해서 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정사정해 반찬은 내가 다 하고 목욕도 내가 다 시키고 대변도 내가 다 보게 할 테니까 와서 재활치료만 좀 하게끔 그렇게 해달라고 그렇게 왔죠.

 

간병사가 와서, 선생님이 오셔서 “환자치고 많이 먹는다.”고. “아니에요. 저희 남편은 장기는 건강하기 때문에 많이 먹어야 된다.”고 그래서 물도 많이 먹이고 밥도 많이 먹였어요. 그래서 대변을 먼저 출근하기 전에 보기 위해서 1시간 전에 밥을 먹이고. 제가 출근하려고 밥 먹고 있으면 꼭 대변본다고 넣고 있는데 그러면 빨리 가서 대변기를 내 처리하고 출근하고 나서 또 일하다 말고 또 물 한 잔 주기 위해서 기저귀 갈아주기 위해서 또 집에 와서 또 기저귀 갈고.

 

그러다 보면 또 이제 대변을 봐서는 방에다 던져놓고 발등이고 어디고 그냥 침대 여기저기 다 묻혀놓고 그냥 온몸에 다 묻혀놓고 자기가 나를 도와준다고. 그러면 정리하는 데 1시간 반 정도 걸리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또 샤워시키고 자꾸 그런 것이 반복되다 보니까 내 영혼은 병들어가고 내 얼굴은 악마로 변해갔어요.

 

‘내가 이래서 도저히 살 수가 없겠구나. 내가 처음 먹었던 마음하고 이게 도저히 마음이 되지가 않네.’ 그러는 순간 ‘아, 내가 여기를 좀 와야 되겠다.’ 저희 남편이랑 같이 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지부장님한테 얘기를 했는데 그 마음을 먹는 순간 저희 남편이 발발발 떨면서 그래도 워커를 어느 정도 끌고 다니는데 발바닥이 딱 방바닥이 붙어서 떼어지지가 않는 거예요.

 

간병 선생님한테 칼을 가져와서 자기 발을 잘라달라, 피를 내달라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래도 ‘아, 내가 가야 되겠다.’ 지부장님한테 “이렇게 남편이 움직이지 못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들것 얘기를 하고 그래서 들것을 구입하기 위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찾아 구입을 했는데 그 뒷날 발을 떼기 시작한 거예요. 꼼짝 않던 발이 6일 만에 떼어지더라고요.

 

부천에 사는 남동생이 새벽같이 와서 태워서 순례 버스에다 올려주고, 이제 내리는 것이 문제였어요. 여기 성모님 동산까지 오기 위해서 여기저기 막 섭외를 해서 간신히 한옥마을 이장님 섭외를 해서. 그분이 대기해서 모시고 오고, 또 내리면서 서울지부 젊은 형제님을 붙잡고 부탁을 해서 그분이 업어서 차에다 태워주고.

 

그렇게 해서 첫 순례 때는 와서 군대에서 세례 받았던걸, 사회 나와서는 한 번도 성당에 다니지 않았는데 여기 와서 고백성사 보고 수원지부 형제님이 업고 율리아 엄마 첫 만남을 했어요. 그러고 갔는데 그때부터 얼굴이 바뀌고 미소가 생기더라고요. 재가센터장님 오셔서 얼굴이 달라졌다고 미소가 생기고 얼굴이 편안해졌다고. 그러고 나서 이제 또 지부장님이 또 전화가 왔어요. “눈물 기념일이고 3일 동안 이렇게 했으면 어떻겠냐?”고 그런데 처음에는 제가 “어우, 못 가겠다.”고 이렇게 기저귀 케어에다가 이거 3일 동안 미용실을 비우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못 가겠다,”고 제가 그렇게 얘기했죠.

 

그런데 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해서 ‘저희 남편 영혼을 치유해 주기 위해서 내가 이 정도는 희생을 해야 되겠다.’ 싶어서 간다고 그랬죠. 그랬더니 지부장님 남편이 회사 사장님이신데 30년 넘게 회사를 다녔어도 그 말일에는 휴가를 낼 수가 없대요. 그런데 저희 남편을 위해서, 말일에 휴가를 내서 같이 오기로 했어요.

 

6월 30일 날 출발하는데 수원에 비가 엄청나게 많이 왔습니다. 정말 쏟아부었어요. 완전히 그냥 내리부어서. 휠체어를 타는데 다 젖고 또 이렇게 환자까지 같이하니까 보따리가 한 8개 되니까 그거 정리하는데도 비가 다 맞아버렸어요.

 

많이 오기 때문에 차가 밀리고 예상 시간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돼서. 경당에를 가고 싶었는데 갈까 말까 갈까 말까 그러다가 지부장님이 “그럼 한번 들렀다가 가보자.”고 그래서 경당에를 갔는데 이제 “휠체어 없이 한번 가보자.”고 휠체어 없이 간신히 몇 발짝 몇 발짝 떼어서 경당에를 들어가는 순간, 발이 조금 조금씩 가벼워지더니 너무 지체돼서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성모님, 저희 남편에게 걸을 수 있는 힘을 주세요. 다리에 힘을 주세요.’ 그 몇 마디밖에 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 말을 딱 하고 저희 남편을 일으켜 세워서 딱 도는데 저희 남편이 원래 오른쪽 발이 더 점 점 점 땅바닥에 닿아서 질질 끌거든요. 그런데 오른쪽으로 딱 턴을 하는데 다리를 한 번에 스텝이 엉키지 않고 탁 돌면서 성큼성큼 성큼성큼 걸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성전에를 왔죠. 와서 제가 화장실 간 사이에 연주하는 봉사자님이 저희 남편을 위해서 노래 한 곡 연주해 주겠다고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내가 오니까 지부장님이 우리 남편이 눈물을 그렁그렁하고 있다고. 그래서 나를 보더니 내 목을 껴안고 그냥 막 대성통곡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 이럴 때 십자가 길을 좀 했으면 좋겠다. ‘아~ 이거 이럴 때 십자가 길 하면 은총을 받겠는데 이렇게 내가 혼자 남편을 데리고 갈 수도 없고. 어우~ 십자가 길을 하고 싶다.’ 저도 지난날 처음 왔을 때 뭔 마음인지도 모르는데 여기 처음 와서 때 대성통곡을 했거든요.

 

그런데 저희 남편이 저를 껴안고 대성통곡을 하길래 ‘아~ 이거 이럴 때 십자가 길 하면 은총을 받겠는데 내가 이거 혼자 데리고 갈 수도 없고’ 그러면서 있는데 1처 이동할 때 지부장님이 다시 오셔서 “십자가 길 할 수 있냐.”고 “나 무조건 하겠다.” 그랬죠.

 

이제 둘이 부축해서 나갔는데 또 어떤 젊은 자매님이 허리띠 잡고 막 셋이서 부축을 해서 올라갔죠. 올라가니까 이제 발이 또 안 떼어지니까, 지부장님이 성수를 뿌리고 또 의자를 언제 가져와서 앉아가면서 12처에서 지부장님이 계단을 한번 올라가 봐야 된대요. 버스를 타고 순례를 하려면 올라가는 걸 한번 해봐야 된대요. 그래서 계단을 올라갔었죠. 그랬더니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가는 거예요.

 

평지에도 이렇게 스텝이 막 엉켜서 못 올라가는데. 그래서 또 내려올 때도 “계단을 한번 내려가 보자.”고 또 내려올 때도 아무 일 없이 이렇게 계단을 척척척 내려가고 또 십자가 예수님 발도 만지고 그렇게 하루 지나고, 또 이제 금요일 날은 경당에 오전에는 경당에 갔다가,

 

오후 2시 반 넘어서 또 한옥마을 이장님한테 부탁을 해서 이장님께서 휠체어로 동산까지 끌고 밀고 올라가서 십자가 발을 만지고 또 내려왔는데 제가 또 잠시 화장실 간 사이에 “한번 걸어보라.” 그랬나 봐요. 그런데 혼자 걸어서 (가기에는) 차가 이렇게 좀 높은 차거든요. 그런데 “혼자 타고 올라갔다.”고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집에 와서 쉬고 있는데. 또 지부장님 빨리 나오래요. 지금 저기 “형제님한테 부탁해서 여기 기적수 샤워하는데 아무도 없으니까, 빨리 와서 그때 와서 목욕을 하고 오라.”는 거예요.

 

수원팀이 또 이렇게 몸이 불편하신 분이 한 분 계시거든요. 둘이 가서 그분은 남탕에 들어가고 나는 또 여탕에 들어갔거든요. 기적수 샤워시키면서 ‘영혼 육신 치유해 달라.’고 기적수를 소뇌 있는 데다가 샤워기를 막 대고 이렇게 있었습니다.

 

그날 하루는 지나가고, 오늘 또 여기 와서 십자가 길을 하는데, 첫날은 셋이서 했거든요. 그래도 약간 스텝이 엉키고 막 성수를 뿌려가면서 성수를 먹여가면서 그렇게 힘들게 했는데 오늘은 정말 둘이서 했는데 너무너무 발이 스텝이 엉키지가 않았어요. 정상인들처럼 보폭을 같이 맞춰서 그렇게 내려왔습니다.

 

저희 남편이 7개월 만에 이 성모님 땅에서 발을 내딛고 걸음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주님 성모님께 영광 드리고 율리아 엄마께 감사드립니다.


2022년 7월 2일  조귀덕 카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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