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이 글이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성모님께는 위로가 되며 읽는
모두에게는 유익이 되어 사랑의 꽃을 피워 성령의 열매 맺게 해
주시고 참독한 고통 중에 계신 엄마께는 그 고통 이겨내실 힘을 주소서. 아멘.
찬미예수님! 찬미성모님!
대구지부 강정선 아가다 자매님의 은총입니다.
2020년도 코로나 때 설 명절을 쉬고 3월 달 즈음 아버님이 많이 아프셨거든요.
거의 누워 계셨어요. 코로나로 사람들을 차단을 시켰잖아요.
그래서 남편만 아버지를 들여다보게 하였고 저는 계속 기적수를 마시게 해 드리라 했어요.
기적수를 드신 후 누워 계시다가 일어나 다니시면서 회복이 좀 되셨거든요.
진짜 기적수 때문에 회복하셨는데 폐, 당뇨도 약간 있으니까 안 좋아지셨어요.
조금 있으니 아버님 돌아가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대세라도 좀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에 기도를 새벽 5시 경에
항상 일어나 간절한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10단을 바치고
선종기도를 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며 계속 기도를 했어요.
아버님은 요양원에 가시지 않으려 해서 집에 계속 계셨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남편은 매일 아버님을 살펴드리고 저도 매일 기도 드리고
주일에는 음식을 해드려도 몸이 점점 안 좋아지시니
음식을 잘 못 드실 정도가 되어 아버님 대세를 빨리 해야 되는데 ...
그곳은 농사철이니까 바빠 아버님께 말씀드릴 기회가 없는 거예요.
농번기 때는 아버님은 농사짓는 분이시니 힘이 없어도 억지로
나오셔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감독관이 되어 저희를 보고
"모를 심어라." 하시며 일을 다 시키시고 저희는 아버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시키는 대로 다 하니 우리를 보고는 너무 좋아 막 웃으시고 그랬어요.
조용한 날 대세 말씀을 드려야 된다는 생각에
남편이 아버님께 말씀드리니 알아서 하라고 허락을 하셨어요.
그때는 코로나 심할 때인데도 신부님이 저희들을 만나 주시면서
가족적인 분위기로 직접 대세를 주라 하시며 장례미사도
해 드릴 수 있다고 하셨어요.
대세 받으면 여기 사무실에 서류 내면 신부님도 기도를 해 주신다 하면서
허락을 받고 요셉으로 정했고 나주 성수로 말씀을 드리고 대세를 받으셨습니다.
6월 23일 오늘은 아버지께 같이 가봐야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함께 갔어요.
항상 낮에 오는 남편인데 저녁에 가니 "왜 이제 오노?" 하시곤..
저는 잠자리 봐 드리고 아버님 집에서 잤거든요.
근데 그다음 날 아침 6월 24일 새벽 3-4시쯤 돌아가신 걸로 추정하시더라고요.
우리가 있었기에 장례 미사도 바로 다 해 드릴 수 있었고 그것도 참 큰 은총인 것 같아요.
부모님을 위한 생미사를 나주에 15년 동안 봉헌했는데
코로나 시기에 대세와 장례미사와 장례식장도 손님이 많이 왔어도
그 많은 손님들 중에 단 한 명도 코로나에 걸린 분이 없었어요.
장례 후 1-2주? 그 성당에 다시 갔을 때는 타 성당 교우들 개방이 안 되고
장례미사도 없었어요. 저희가 대세와 장례미사를 할 수 있었던 것 모두가
나주에서 지속적 미사의 은총으로 대세를 드릴 수 있음이 너무나 큰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부족하였기에 저는 최선을 다해 아버님께 효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 봉헌란에 올렸고 시댁 가족들과 함께 지내면서 더 화목하게 되었던
이 모든 일들이 엄마의 기도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나주 성지에서의 미사와 기도 봉헌은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엄마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성모님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 돌려드립니다.
주님! 이 글이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성모님께는 위로가 되며 읽는
모두에게는 유익이 되어 사랑의 꽃을 피워 성령의 열매 맺게 해
주시고 참독한 고통 중에 계신 엄마께는 그 고통 이겨내실 힘을 주소서. 아멘.
찬미예수님! 찬미성모님!
대구지부 강정선 아가다 자매님의 은총입니다.
2020년도 코로나 때 설 명절을 쉬고 3월 달 즈음 아버님이 많이 아프셨거든요.
거의 누워 계셨어요. 코로나로 사람들을 차단을 시켰잖아요.
그래서 남편만 아버지를 들여다보게 하였고 저는 계속 기적수를 마시게 해 드리라 했어요.
기적수를 드신 후 누워 계시다가 일어나 다니시면서 회복이 좀 되셨거든요.
진짜 기적수 때문에 회복하셨는데 폐, 당뇨도 약간 있으니까 안 좋아지셨어요.
조금 있으니 아버님 돌아가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대세라도 좀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에 기도를 새벽 5시 경에
항상 일어나 간절한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10단을 바치고
선종기도를 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며 계속 기도를 했어요.
아버님은 요양원에 가시지 않으려 해서 집에 계속 계셨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남편은 매일 아버님을 살펴드리고 저도 매일 기도 드리고
주일에는 음식을 해드려도 몸이 점점 안 좋아지시니
음식을 잘 못 드실 정도가 되어 아버님 대세를 빨리 해야 되는데 ...
그곳은 농사철이니까 바빠 아버님께 말씀드릴 기회가 없는 거예요.
농번기 때는 아버님은 농사짓는 분이시니 힘이 없어도 억지로
나오셔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감독관이 되어 저희를 보고
"모를 심어라." 하시며 일을 다 시키시고 저희는 아버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시키는 대로 다 하니 우리를 보고는 너무 좋아 막 웃으시고 그랬어요.
조용한 날 대세 말씀을 드려야 된다는 생각에
남편이 아버님께 말씀드리니 알아서 하라고 허락을 하셨어요.
그때는 코로나 심할 때인데도 신부님이 저희들을 만나 주시면서
가족적인 분위기로 직접 대세를 주라 하시며 장례미사도
해 드릴 수 있다고 하셨어요.
대세 받으면 여기 사무실에 서류 내면 신부님도 기도를 해 주신다 하면서
허락을 받고 요셉으로 정했고 나주 성수로 말씀을 드리고 대세를 받으셨습니다.
6월 23일 오늘은 아버지께 같이 가봐야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함께 갔어요.
항상 낮에 오는 남편인데 저녁에 가니 "왜 이제 오노?" 하시곤..
저는 잠자리 봐 드리고 아버님 집에서 잤거든요.
근데 그다음 날 아침 6월 24일 새벽 3-4시쯤 돌아가신 걸로 추정하시더라고요.
우리가 있었기에 장례 미사도 바로 다 해 드릴 수 있었고 그것도 참 큰 은총인 것 같아요.
부모님을 위한 생미사를 나주에 15년 동안 봉헌했는데
코로나 시기에 대세와 장례미사와 장례식장도 손님이 많이 왔어도
그 많은 손님들 중에 단 한 명도 코로나에 걸린 분이 없었어요.
장례 후 1-2주? 그 성당에 다시 갔을 때는 타 성당 교우들 개방이 안 되고
장례미사도 없었어요. 저희가 대세와 장례미사를 할 수 있었던 것 모두가
나주에서 지속적 미사의 은총으로 대세를 드릴 수 있음이 너무나 큰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부족하였기에 저는 최선을 다해 아버님께 효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 봉헌란에 올렸고 시댁 가족들과 함께 지내면서 더 화목하게 되었던
이 모든 일들이 엄마의 기도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나주 성지에서의 미사와 기도 봉헌은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엄마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성모님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 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