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이 글이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성모님께는 위로가 되며 읽는
모두에게는 유익이 되어 사랑의 꽃을 피워 성령의 열매 맺게 해 주시고
엄마께는 극심한 고통 모두 다 이겨내실 힘 주시고 고통도 경감시켜 주소서. 아멘!
찬미예수님! 찬미성모님!
전주지부 차정희모니카님의 은총 증언입니다.
제가 나주를 다닌 지가 18년이 됐는데, 그 전, 18년~20년 전에 내가 나주를 왔었어요.
그러니까 처음에 눈물 흘릴 때 왔었어요.
그때 성당에서 성지순례라고 차량으로 몇 대를 왔어요.
와서 성모님 사진만 예쁘다고 하나 가지고 와서 우리 집 표구만 싹 해놓고 20년 동안 잃어버린 거예요.
잃어버리고 살다가 나주 성모님이 다른 성모님보다 예쁘고 좀 특이하잖아요.
예쁘다고 이제 그냥 그걸 보고 살았는데,
그 뒤로부터 이십 년이 지나고 나한테 굉장한 어려움이 닥쳐왔어요.
우리 친정 엄마가 “야, 나 지난달에 나주 갔다 왔다 나주 성모님 갔다 왔다.” 그러는 거예요.
귀가 탁 트여.
‘어? 나주 성모님? 옛날에 눈물 흘리고 피눈물을 흘렸는데, 지금도 흐르신가?'
'지금은 어떻게 되는가?' 전혀 이제 모르는 거에요.
“엄마, 거기 나도 가게. 그러면 거기에 대해 혹시 책자 같은 거 있어?”
메시지 책도 주고, 님 향한 사랑의 길 책도 주는데, 읽으니까 다 내 얘기네요.
그래서 “엄마, 나도 가, 나도 다음 달에 가.” 왔어요.
왔는데 막 경당에 갔더니 성모님의 향기를 엄청 내려주시더라고요.
나주를 다니기 시작한 게 그게 2007년도예요.
다니기 시작하는데 우리 신랑이 못마땅하게 여겨요.
'여기 가까운데 성당이 있는데, 뭔 미쳤다고 멀리까지 가고 날 새고' 그냥 막 그러는 거예요.
우리 신랑은 신자가 아닌데 “당신은 몰라요. 그런 비밀이 있어요.”
그랬는데 아이 피디 수첩이 그 해 나왔네요.
2007년 11월 14일 PD수첩, 그때부터 우리 신랑이 확 돌아서버린 거예요.
그래서 술을 잔뜩 먹고 와서 기적수, 그 세균이 득실거린다는 거 우리 식구 먹일 수 없다고 다 내버리고 난리를 피고 그때부터 이제 박해가 시작되는 거예요.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어요. 안돼요.
“신부님은 오지게 잘 알 거 아니냐?”
“그래도 나는 몇십 년 동안 성당을 다녔으니까 지금 교리랑 뭘 안다, 당신은 모르지 않냐? 내비둬라.” 그러면 “신부님들은 더 많이 알 거 아니냐?”
그 말은 맞지. “근데, 신부님이 다니지 말라는데 왜 다니냐?” 할 말이 없어요.
그래도 그 박해 속에서 18년을 지금 다닌 거예요. 지금도 뒤집어져요.
갔다만 오면 뒤집어져요.
그래갖고 이제 신랑이 말기 암이 걸렸어요.
내가 물론 기대는 아니었지만 ‘아, 올 것이 왔는가보다’ 생각을 한 거에요.
그러니까 난 이제 더 안타깝지. 치유 받은 사람들 많은데.(신랑이) 여기까지 오기도 왔어요.
내가 데리고 왔어요. 왔는데 밤새도록 밖에서 떨고 (성전) 여기를 안 들어와요.
여기 오는 게 쉬운 게 아니죠. 한겨울에 12월 8일 날 대축일 날 데리고 왔거든요.
그 전에 2012년도에 경당 때려 부신다고 언젠가 엄마가 한번 말씀 한번 했어요.
밤새도록 술 먹고 경당에서 난리 쳤었어요. 근데 안 바뀌어져요.
지금도 나주 얘기만 하면 나주 배 상자만 봐도 눈을 뒤집어 까. ‘나’자만 들어도 발딱 뒤집혀요.
근데 이제 그건 그렇고 신랑이 이제 말기 암에 이제 폐까지 전이돼서 코로나까지 와 갖고
올 것이 왔어요. 이제 다 바닥이야. 의사가 며칠을 못 산대요.
그래서 간병을 내가 하는 거에요. 병원이 우리 집 도로 건너에요. 가깝잖아.
나는 간병을 쓸 생각을 안 했어요.
그래서 소변은 소변줄 끼고 대변은 밤 12시고 1시고 나한테 전화해요. “어, 나 쌌어.”
그럼 가서 내가 대변 정리를 해줘. 걷지를 못하니까. 오늘은 당연히 못 오겠지, 대변 때문에.
“성모님, 나 가고 싶은데, 오늘은 못 가겠네요. 그동안에 안 빠졌는데.” 그랬더니
오늘 아침에 갔더니 뭐라고 하냐 하면 간호사들이 간병인을 쓰라고 한대요.
자기가 그렇게 말을 하는 거에요. ‘아 참! 간병인 쓰고 내가 나주 가면 되겠구나.’
이제 그 생각도 들면서 막 내가 속으로 환호를 짓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간병인 씁시다.”
왜그러냐면 어제까지 아들이 지금 8일간 간병을 했는데 어젯밤에 코로나 걸렸어요.
이것도 하느님 뜻이여. 아들이 입원하고 간병인이 없잖아요.
그것도 하느님 뜻이라니까요. 그래서 간병인 붙여놓고 난 여기 왔어요.
이게 기적 아니에요?
그래서 또 ‘하느님이 또 이렇게 또 선미를 해주시는구나.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일을 또 이렇게 해주시는구나!’ 오면서 그렇게 감사하면서 온 거에요.
물론 이 미약한 내가 여기 와서 뭐 얼마나 하고 내가 기도를 드리면 얼마나 드리겠소만은
그래도 예수님이 뭐라고 그랬어요? 니네들은 다 특별히 불렀다고 그랬어요.
부족하고 미약한 나를 어디다 쓰실지를 모르지만.
우리가 얼마나 영광된 사람이냐고요!
또 이렇게 또 간병인을 주게 하고 저를 이렇게 또 불러주시네요. 감사 감사.
근데, 3, 4일이면 가겠다고 했는데 계속 좋아지는 거에요.
그리고 우리 나주 부대들이 있잖아요. 우리 기도원 사람들이 계속 미사 넣고 막 하거든요.
지금 그 힘으로 살고 있어요. 내가 어떤 때는 그러지요. 믿지 않으니까
“당신, 내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기도하는 줄 알아?”
“그럼, 에이씨 뭔 기도!” 이렇게 난리가 나는 거야.
“그럼, 알았어, 죄송해요.” 그러고 말 안해요.
진짜 기도 힘으로 도와주는 거에요. 의사가 3일이면 죽는다고 했는데, 오늘 죽어야 맞거든요.
근데 우리는 왜 그 죽음이 대해서 그렇게 막 두렵지가 않은 거에요.
특히 여기들 다니면서, 굉장히 슬퍼해야 되는 일인데도 두렵지 않아요.
근데 이제 그렇게 바꾸어 주려해도 안 돼.
안 되니까 내가 나중에는 ‘예수님 저는 모르겠어요. 예수님, 알아서 해주세요. 아, 전 몰라요.’
나보고 무엇을 잘못하는지를 모른대요. 말이 통해야 말을 하지요.
묵주만 들고 기도만 하는 거에요.
‘살게 하던 죽던 그것도 예수님 뜻이니까 나는 몰라요.
그런데 지옥 가면 안 되니까 좀 마지막이라도 좀 회개하고 지옥은 안 가게 좀 해주세요.
마누라가 예수님 믿는다는데 신랑이 지옥 가면은...’
그런데 여기 올 때마다 그런 걸 많이 느껴요.
신랑이 아산병원 입원해 있는데, 이상하게 여기 올라가면 이게 좀 이렇게 바꿔진다든가,
뭐가 풀어진다든가 난 그거 진짜 많이 느껴요.
이번에는 못 가겠구나, 어쩔 수 없구나. 그랬는데 갑자기 퇴원을 한다든가 또 어쩐다든가
암튼 뭐가 이렇게 변화가 되고.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아는 뜻이 아니고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몰라요.
그냥 기도하고 아멘 하는 수 밖에 없어요. 맡기고 해요. 내 힘으로는 안 돼요.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자녀들아!
내일을 기약할 수 없으니 정의에 타는 불꽃의 재앙을 면할 수 있도록
나를 안다고 하는 너희들만이라도 깨어서 기도하여라.
작은 영혼들이 드리는 기도 소리가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를 때
하느님의 정의에 타는 불꽃의 재앙을 면하게 될 것이라고 내가 누차 말했건만
불림받은 내 자녀들까지도 깨어있지 못하니 내 마음 슬픔을 금할 길이 없구나.
어서 서둘러 나를 안다고 하는 너희들만이라도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없애버리고 똑똑한 자들의 식견을 물리치리라.’ 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작은 영혼이 되어 파스카의 신비
즉 죽음과 부활이라는 위대한 구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분의 영광에 도달하여라.
(1999년 12월 21일 성모님 말씀)
이제 정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우리의 남은 한 생애를
온전히 주님과 성모님께 맡겨드리고 일거수일투족도 맡겨드리면
예수님께서 다 해주실 것입니다.
이제까지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딱 지나고 보니까 예수님께서 다 해주셨더라고요.
근데 예수님을 외면하면 매도 주셔요.
그 때는 얼른 알아차리고 천천히 일어나지 마시고
오뚝이처럼 빨리 “파딱”하고 일어나서 주님 성모님께 달아들어야 해요.
(2012년 5월 16일 율리아님 말씀)
주님! 이 글이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성모님께는 위로가 되며 읽는
모두에게는 유익이 되어 사랑의 꽃을 피워 성령의 열매 맺게 해 주시고
엄마께는 극심한 고통 모두 다 이겨내실 힘 주시고 고통도 경감시켜 주소서. 아멘!
찬미예수님! 찬미성모님!
전주지부 차정희모니카님의 은총 증언입니다.
제가 나주를 다닌 지가 18년이 됐는데, 그 전, 18년~20년 전에 내가 나주를 왔었어요.
그러니까 처음에 눈물 흘릴 때 왔었어요.
그때 성당에서 성지순례라고 차량으로 몇 대를 왔어요.
와서 성모님 사진만 예쁘다고 하나 가지고 와서 우리 집 표구만 싹 해놓고 20년 동안 잃어버린 거예요.
잃어버리고 살다가 나주 성모님이 다른 성모님보다 예쁘고 좀 특이하잖아요.
예쁘다고 이제 그냥 그걸 보고 살았는데,
그 뒤로부터 이십 년이 지나고 나한테 굉장한 어려움이 닥쳐왔어요.
우리 친정 엄마가 “야, 나 지난달에 나주 갔다 왔다 나주 성모님 갔다 왔다.” 그러는 거예요.
귀가 탁 트여.
‘어? 나주 성모님? 옛날에 눈물 흘리고 피눈물을 흘렸는데, 지금도 흐르신가?'
'지금은 어떻게 되는가?' 전혀 이제 모르는 거에요.
“엄마, 거기 나도 가게. 그러면 거기에 대해 혹시 책자 같은 거 있어?”
메시지 책도 주고, 님 향한 사랑의 길 책도 주는데, 읽으니까 다 내 얘기네요.
그래서 “엄마, 나도 가, 나도 다음 달에 가.” 왔어요.
왔는데 막 경당에 갔더니 성모님의 향기를 엄청 내려주시더라고요.
나주를 다니기 시작한 게 그게 2007년도예요.
다니기 시작하는데 우리 신랑이 못마땅하게 여겨요.
'여기 가까운데 성당이 있는데, 뭔 미쳤다고 멀리까지 가고 날 새고' 그냥 막 그러는 거예요.
우리 신랑은 신자가 아닌데 “당신은 몰라요. 그런 비밀이 있어요.”
그랬는데 아이 피디 수첩이 그 해 나왔네요.
2007년 11월 14일 PD수첩, 그때부터 우리 신랑이 확 돌아서버린 거예요.
그래서 술을 잔뜩 먹고 와서 기적수, 그 세균이 득실거린다는 거 우리 식구 먹일 수 없다고 다 내버리고 난리를 피고 그때부터 이제 박해가 시작되는 거예요.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어요. 안돼요.
“신부님은 오지게 잘 알 거 아니냐?”
“그래도 나는 몇십 년 동안 성당을 다녔으니까 지금 교리랑 뭘 안다, 당신은 모르지 않냐? 내비둬라.” 그러면 “신부님들은 더 많이 알 거 아니냐?”
그 말은 맞지. “근데, 신부님이 다니지 말라는데 왜 다니냐?” 할 말이 없어요.
그래도 그 박해 속에서 18년을 지금 다닌 거예요. 지금도 뒤집어져요.
갔다만 오면 뒤집어져요.
그래갖고 이제 신랑이 말기 암이 걸렸어요.
내가 물론 기대는 아니었지만 ‘아, 올 것이 왔는가보다’ 생각을 한 거에요.
그러니까 난 이제 더 안타깝지. 치유 받은 사람들 많은데.(신랑이) 여기까지 오기도 왔어요.
내가 데리고 왔어요. 왔는데 밤새도록 밖에서 떨고 (성전) 여기를 안 들어와요.
여기 오는 게 쉬운 게 아니죠. 한겨울에 12월 8일 날 대축일 날 데리고 왔거든요.
그 전에 2012년도에 경당 때려 부신다고 언젠가 엄마가 한번 말씀 한번 했어요.
밤새도록 술 먹고 경당에서 난리 쳤었어요. 근데 안 바뀌어져요.
지금도 나주 얘기만 하면 나주 배 상자만 봐도 눈을 뒤집어 까. ‘나’자만 들어도 발딱 뒤집혀요.
근데 이제 그건 그렇고 신랑이 이제 말기 암에 이제 폐까지 전이돼서 코로나까지 와 갖고
올 것이 왔어요. 이제 다 바닥이야. 의사가 며칠을 못 산대요.
그래서 간병을 내가 하는 거에요. 병원이 우리 집 도로 건너에요. 가깝잖아.
나는 간병을 쓸 생각을 안 했어요.
그래서 소변은 소변줄 끼고 대변은 밤 12시고 1시고 나한테 전화해요. “어, 나 쌌어.”
그럼 가서 내가 대변 정리를 해줘. 걷지를 못하니까. 오늘은 당연히 못 오겠지, 대변 때문에.
“성모님, 나 가고 싶은데, 오늘은 못 가겠네요. 그동안에 안 빠졌는데.” 그랬더니
오늘 아침에 갔더니 뭐라고 하냐 하면 간호사들이 간병인을 쓰라고 한대요.
자기가 그렇게 말을 하는 거에요. ‘아 참! 간병인 쓰고 내가 나주 가면 되겠구나.’
이제 그 생각도 들면서 막 내가 속으로 환호를 짓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간병인 씁시다.”
왜그러냐면 어제까지 아들이 지금 8일간 간병을 했는데 어젯밤에 코로나 걸렸어요.
이것도 하느님 뜻이여. 아들이 입원하고 간병인이 없잖아요.
그것도 하느님 뜻이라니까요. 그래서 간병인 붙여놓고 난 여기 왔어요.
이게 기적 아니에요?
그래서 또 ‘하느님이 또 이렇게 또 선미를 해주시는구나.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일을 또 이렇게 해주시는구나!’ 오면서 그렇게 감사하면서 온 거에요.
물론 이 미약한 내가 여기 와서 뭐 얼마나 하고 내가 기도를 드리면 얼마나 드리겠소만은
그래도 예수님이 뭐라고 그랬어요? 니네들은 다 특별히 불렀다고 그랬어요.
부족하고 미약한 나를 어디다 쓰실지를 모르지만.
우리가 얼마나 영광된 사람이냐고요!
또 이렇게 또 간병인을 주게 하고 저를 이렇게 또 불러주시네요. 감사 감사.
근데, 3, 4일이면 가겠다고 했는데 계속 좋아지는 거에요.
그리고 우리 나주 부대들이 있잖아요. 우리 기도원 사람들이 계속 미사 넣고 막 하거든요.
지금 그 힘으로 살고 있어요. 내가 어떤 때는 그러지요. 믿지 않으니까
“당신, 내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기도하는 줄 알아?”
“그럼, 에이씨 뭔 기도!” 이렇게 난리가 나는 거야.
“그럼, 알았어, 죄송해요.” 그러고 말 안해요.
진짜 기도 힘으로 도와주는 거에요. 의사가 3일이면 죽는다고 했는데, 오늘 죽어야 맞거든요.
근데 우리는 왜 그 죽음이 대해서 그렇게 막 두렵지가 않은 거에요.
특히 여기들 다니면서, 굉장히 슬퍼해야 되는 일인데도 두렵지 않아요.
근데 이제 그렇게 바꾸어 주려해도 안 돼.
안 되니까 내가 나중에는 ‘예수님 저는 모르겠어요. 예수님, 알아서 해주세요. 아, 전 몰라요.’
나보고 무엇을 잘못하는지를 모른대요. 말이 통해야 말을 하지요.
묵주만 들고 기도만 하는 거에요.
‘살게 하던 죽던 그것도 예수님 뜻이니까 나는 몰라요.
그런데 지옥 가면 안 되니까 좀 마지막이라도 좀 회개하고 지옥은 안 가게 좀 해주세요.
마누라가 예수님 믿는다는데 신랑이 지옥 가면은...’
그런데 여기 올 때마다 그런 걸 많이 느껴요.
신랑이 아산병원 입원해 있는데, 이상하게 여기 올라가면 이게 좀 이렇게 바꿔진다든가,
뭐가 풀어진다든가 난 그거 진짜 많이 느껴요.
이번에는 못 가겠구나, 어쩔 수 없구나. 그랬는데 갑자기 퇴원을 한다든가 또 어쩐다든가
암튼 뭐가 이렇게 변화가 되고.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아는 뜻이 아니고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몰라요.
그냥 기도하고 아멘 하는 수 밖에 없어요. 맡기고 해요. 내 힘으로는 안 돼요.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자녀들아!
내일을 기약할 수 없으니 정의에 타는 불꽃의 재앙을 면할 수 있도록
나를 안다고 하는 너희들만이라도 깨어서 기도하여라.
작은 영혼들이 드리는 기도 소리가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를 때
하느님의 정의에 타는 불꽃의 재앙을 면하게 될 것이라고 내가 누차 말했건만
불림받은 내 자녀들까지도 깨어있지 못하니 내 마음 슬픔을 금할 길이 없구나.
어서 서둘러 나를 안다고 하는 너희들만이라도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없애버리고 똑똑한 자들의 식견을 물리치리라.’ 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작은 영혼이 되어 파스카의 신비
즉 죽음과 부활이라는 위대한 구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분의 영광에 도달하여라.
(1999년 12월 21일 성모님 말씀)
이제 정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우리의 남은 한 생애를
온전히 주님과 성모님께 맡겨드리고 일거수일투족도 맡겨드리면
예수님께서 다 해주실 것입니다.
이제까지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딱 지나고 보니까 예수님께서 다 해주셨더라고요.
근데 예수님을 외면하면 매도 주셔요.
그 때는 얼른 알아차리고 천천히 일어나지 마시고
오뚝이처럼 빨리 “파딱”하고 일어나서 주님 성모님께 달아들어야 해요.
(2012년 5월 16일 율리아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