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아님 말씀 20232023년 4월 1일 첫 토요일 율리아님 말씀 "용서와 관용 앞에서 성폭행범의 완전한 부활"

운영진
2023-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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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반갑습니다.

제가 어제 저녁에도 계속 기침을 하면서 목이 너무너무 아파서 오늘 기침하신 분하고 목 아프신 분 치유받으실 것입니다. 제가 여기 나오기 전에 밤 7시부터 9시 좀 넘을 때까지 엄청 사랑을 많이 받고 왔습니다. 제가 사랑을 많이 받았으니까 여러분이 그렇게 억울한 누명 같은 거 당하신 분들, 오늘 치유 많이 되겠습니다.


마귀는 정말 제가 말씀을 전해야 되니까 말씀을 전하지 못하도록 저를 쓰러뜨리려고 그 사람을 통해서 한 것이니까 저는 사랑받은 셈 치겠습니다. 그리고 봉헌하겠습니다. 그전에 제가 여기 허벅지 종기 같은 거 지금까지 있어요. 그래서 오늘 또 여러분들 나쁜 거 다 짜내주시라고 기계 가지고 또 짰어요. 그래서 이거 하나하나도 순례자 여러분들 위해서 다 봉헌했습니다.


 

여러분들의 나쁜 악습, 보이지 않는 저 속에서 깊이 뿌리박혀 있는 그 나쁜 악습까지도 다 빼주라고 여러분들을 위해서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늦게 제가 씻고 했어도 오늘 또 씻으면서 저는 이 행사 때면 항상 생활의 기도를 하면서 머리를 잘라요.

 

생활의 기도를 하면서 안 자르면 제가 여러분들의 나쁜 건 다 잘라낼 수가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저는 항상 머리 자르고. 그리고 이제 씻습니다. 그래서 자를 때 여러분들의 나쁜 거 하나하나 잘라주시라고 생활의 기도를 하고, 그리고 씻으면서 여러분의 영혼 육신의 나쁜 거 다 씻어주시라고 또 생활의 기도를 하고.


또 닦으면서 우리의 젖어 있는 나쁜 악습들도 다 닦아주시라고 생활의 기도를 하면서 닦고, 또 옷을 입으면서 여러분들에게 새 옷으로 단장해 주시라고 성령께서 여러분들에게 오늘 성령의 옷을 입혀주시라고 생활의 기도를 하면서 그렇게 입고 나왔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암흑과도 같은 세상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5대 영성을 통해서 천국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5대 영성 지키기가 그렇게 힘들죠? 저는 힘든 줄 몰랐어요. 그랬는데 옆에 이렇게 사람들 보면 상당히 힘든 것 같아요. 생활의 기도, 정말 그 기본적인 것 같은 것도 생활의 기도가 안 되니까 다 삐뚤어지고 다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까지 잘 못했더라도 오늘부터 새로 시작합시다. 정말 우리가 그 5대 영성을 통해서 천국 갈 수 있는데 그 길이 어렵지만 천국 가는 길은 넓은 길이 아닙니다. 내 자아로 인해서, 자아가 강해서 하느님을 못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아를 버리고 정말 나주에서 발현하시고 현존하신 주님과 성모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메시지 말씀 우리가 따라간다면 반드시 천국을 갑니다.


아무리 질풍노도와 같은 성난 물결이 우리를 휩쓸어가려고 해도, 마지막 날 어떤 천재지변이 일어난다 해도 예수님과 성모님을 따르는 우리는 반드시 구해 주실 것입니다. 믿습니다. 믿으십시오! 그래서 설사 이 세상이 불바다가 되고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된다 할지라도 5대 영성을 실천하는 우리는 반드시 지켜주시고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보증합니다. 5대 영성만 실천하고 따라간다면요. 저는 무조건 여기 온다 해서 천국 간다고 안 합니다. 나주에서 외치는 5대 영성, 우리가 실천한다면 반드시 천국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조그만 고통에도 엄청 못 견뎌 하잖아요? 그런데 사랑받은 셈치고 봉헌해야 됩니다.

 

제가 받은 고통을 조금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이건 주님께서 “너의 삶을 전하여라.”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가만히 생각해보면 죽을 고비 고비를 그렇게 많이 넘겼습니다. 33번도 더 넘겼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순간마다 저를 구해 주셨는데 바로 그때는 주님께서 구해 주신 줄 몰랐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6살 때 작은 외숙이 놀고 있는 저한테 갑자기 와서 “홍선아 이리 와봐라.” 그래서 갔는데 뻰찌를 뒤로 딱 들고 와서 생니(어금니)를 뽑아 살점까지 다 뜯어져 나가 지금도 이게 잘못됐어요. 그때 어머니도 안 계셨는데 그렇게 피를 많이 흘리고 3일간을 쓰러져서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3일 후에 어머니 오셔서 살아났어요. 어머니가 오셨을 때 막 우시면서 “너 왜? 어째 그랬냐?” 그러니까 작은 외숙이 뻰찌로 뺐다고 안 했어요. 넘어져서 다쳤다고 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인도를 해 주셨는데 정말 죽을 고비 고비 많았습니다.


이제 제가 성폭행당할 뻔 했던 거 오늘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하려고 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어쨌냐면요. 우리 넷째 아이를 낳고 4개월 때 그동안에 엄청 계속 힘들었어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우리 다섯째 시아제 고등고시에 합격할 때까지만이라도 농사지어서 보태신다고 농사를 짓고 계셨기 때문에 그 힘든 몸으로 우리 아이들 넷을 다 돌보고 생활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넷째 아이 잠자는 동안에 빨래를 하러 가야 되는데, 우리 셋째 아이가 두 살 됐는데, 호기심 많고 그러니까 놔두고 가면 또 아기 어떻게 잘못 해볼까 봐서 그때 수도도 없어요. 그래서 펌프 사용해야 됐고 그것도 우리 집에 없고 물 길어다 사용했고, 아궁이에 불 때서 모든 음식을 해 먹을 때였어요.

 

지금 우리 얼마나 살기 좋아요. 전화기는 뭐 애들까지도 국민학교 지금 입학만 해도 핸드폰을 줘요. 그런데 그때는 가정에도 전화 있는 집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연락하기도 힘들어요. 그런데 셋째 애를 데리고 빨래를 개천으로 하러 다녀요.


지금은 개천에서 빨래할 수 없게 됐는데 옛날에는 계속 물이 흘러가서 개천에서 빨래했거든요. 그런데 저는 무슨 빨래를 했을지 모르니 개천에서 안 했어요. 옛날에는 뭐 생리대도 지금처럼 그렇게 뭐 일회용으로 나온 것도 아니고 천으로 썼으니까 생리대를 빨았을 수도 있는데 그 밑에서 우리 가족들 빨래를 하기 싫어서 저수지 안에 들어가서 빨래를 해서 집에서 헹궜어요.


그럴 정도로 제가 그러니까 옛날에 “뭐 새댁은 ‘금 나오겄네, 은 나오겄네.’ 해도 맨날 아프기만 한다.”고 그랬는데 거기서 이제 제일 위에로 올라갔어요. 아주 폭포 있는 데로 올라가서 빨래를 하는데 셋째 애를 옆에다 앉혀놓고 빨래를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저도 이제 빨래한다고 하다가 빨래를 놓쳐 그 밑으로 떠내려가니까 잡으라고 해서 “안돼!” 그랬는데 벌써 그냥 물살이 세서 아이가 그 폭포로 떨어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내가 거기에 이제 뛰어내려. 아이, 그것이 모성애인가 봐요.


 

저는 옛날에 완도에서 그 엄청 깊은 데 들어가서 빠져서 죽을 뻔했잖아요. 그 뒤로 물을 무서워하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그 밑에 폭포로 제가 뛰어내렸어요. 회오리처럼 이렇게 막 되는데 막 표현을 잘 못하겠는데 거기서 어떻게 건져서 제 몸도 안 좋잖아요. 왜냐면 우리 시어머니가 17일 만에 쌀을 한 가마니 팔아달라고 (사달라고). 영암 군서라고 시골이에요. 거기까지 오셨어요. 광주 식구들, 자식들 많은데도.


그래서 셋째 낳을 때 그렇게 피를 어마어마하게 그렇게 많이 쏟고도 정말 영양제 한 대도 못 맞고 정말 몇 달간을 제가 힘도 못 쓰고 그랬어요. 정말 내 안에 있는 피가 다 쏟아진 것 같아요. 그렇게 피가 많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피를 많이 쏟고 3개월 7일 동안 계속 1분에서 2분 간격으로 진통을 하는데도 아기를 못 낳는 거예요.


이제 친정어머니가 광주 병원에 가서 낳으라고 예정일 한 달 전부터 그렇게 진통이 돼서 낳을 날이 달이 지나고도 보름이 됐는데 그래서 광주로 보냈어요. 산부인과에 가니까 이제 큰일 나겠다고 당장에 유도분만 안 하면 안 된다고 해서 이제 준비가 안 됐으니까 준비하고 오겠다고. 제가 얼마나 바보인지 그것이 잘한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저를 그렇게 단련을 시키신 것 같아요.


시어머니한테 허락받고 온다고 갔더니 시어머니가 얼마나 호령을 하시고 “사람은 시와 때가 있는 것인데 어떻게 유도 분만하느냐.” 당장 내려가서 낳으라고. 그래서 여러분, 어때요? 아기 낳은 거 보셨죠? 못 보신 분도 있겠지만 아기 낳은 거 제일 힘들다고 그러잖아요. 저는 아기 낳은 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어요.


아기 낳을 때는 진통하면서 힘만 꼭 주면 저는 아기 넷이나 낳아도 한 번도 소리 한 번 해본 적이 없어요. 큰딸은 양수 터진 지 일주일 만에 낳았어요. 그러면 살 수가 없대요. 엄마도 아이도. 그런데 일주일만에 양수 없이 낳으면서도 제가 소리 한 번 안 했어요.


남편 밖에서 있고 막 친정어머니가 들어오라고 해서 절대로 안 된다고. 제가 셋째 낳을 때도 그렇게 피를 그렇게 많이 흘리고도 사위 부르니까 절대로 안 된다고. 그랬는데 거기서 피를 얼마나 쏟아지서 못 움직이니까 떠메서 다른 쪽으로 놓으려고. 그런데 어머니 혼자 못 하시니까. 그때 이제 제가 거의 정신을 잃었어요.


 

그래서 남편 들어오면 안 된다고 나는 그런 거 절대 보이기 싫거든요. “안 돼. 안 돼.” 하는데 소리도 안 나오고 손도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율리오 씨가 들어와 둘이 떠메서 놓았는데 이미 저는 그때 이제 혼수상태로 들어가 버린 거예요. 그렇게 또 살아났고. 제가 그랬어도 저는 아기 낳은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니까요. 그러니까 병원에서 간호사가 “아니, 아기 낳은 거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그러더라고.

 

그런데 시어머니가 “아, 유도 분만 하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데.” 그 이야기 제가 들어버렸어요. 안 들었어야 되는데. 그래서 돈을 맨날 저한테 가지러 오시니까 그 돈 거기다 조금이라도 덜 쓰게 하시려고 그러신 거예요. 제가 미용실 했을 때도요. 그때 제가 4백만 원 갖고 시작했어요.


그랬는데 미용실 한 지 그렇게 1년 좀 넘어서 1,300만 원을 달라고 또 오셨어요. 그러니까 우리 작은 이모님이 그때 옆에 계시다가 “오메, 뭔 일이라냐? 어쩔래?” “해드려야지, 어째.” 그러더래요, 제가. 그래서 그걸 보고 아주 정말 기겁을 하셨대요. 그때 1,300만 원이면 얼마나 큰데.

우리는 세상에 2~3백 원 하는 유축기 하나를 못 사요. 시어머니가 맨날 돈 가지러 오시니까. 남편은 그것도 몰라요. 가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것도 잘 모르고. 그래도 저는 남편의 사랑받은 셈 치고 ‘남편 얼마나 힘들까?’ 하고 남편한테 한마디도 안 했어요.

제가 이제 말이 왔다 갔다 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 아기를 이제 건져 놓고 빨래를 하지도 못하고 내가 이제 겨우 기어서 나왔어요. 우리 시어머니가 아기 낳은지 17일 만에 우리 어머니는 쌀 떨어졌다고 친정으로 쌀 가지러 가셨는데, 시어머니는 광주에서 거기까지 쌀을 한 가마니 팔아달라고 (사달라고) 했어요.

 

우리 친정어머니는 “절대 밖에도 나오지 마라.” 그러고 “물도 절대 손대지 마라. 나 얼른 쌀만 갖고 올게. 가만히 있어라.” 그러고 가셨는데 우리 시어머니는 쌀 팔아달라고. 그래서 어떡해요. 해야지. 안 그러면 또 “홀엄씨 딸, 뭐 애비 없는 자식.” 뭐 그런 소리 안 들으려고. 우리 친정어머니 욕 안 먹게 하려고 눈물을 머금고 제가 가는 거예요.

 

이제 리어카를 빌려서 방앗간에 가야 돼요. 지금이야 돈 있으면 쉽게 살 수 있는데 여러분들 지금은 얼마나 살기 좋은지 몰라요. 그 방앗간으로 갔더니 없어요. 장갑도 없는데 리어카 쇠가 이렇게 있잖아요. 찬물 손대지 말라는데 쇠를 잡아서 그렇게 2시간 동안을 왔다 갔다 계속했어요.


 

내일 찧는다고 해서 “어머니 내일 찧는다고 하네요. 지금 하나도 없어서 하루 주무시고 내일 갖고 가시는 게...” 절대 안 된대요. 이제 시어머니가 막 야단하셨거든요. “광주 식구들은 그럼 굶으란 말이냐!”고. 가서 밥 해 줘야 되는데 얼른 사 갖고 오라고. 딴 데 가서 얼른 사오라고 그래서 또 갔어요. 그래서 그날 8시간 넘게 제가 다녔어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아기 낳은 것이 문제겠어요. 아기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요. 그래서 거기서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거기도 또 없어요. 그래서 또 거기서 또 물어물어 다른 동네 거기까지 갔어요. 거기도 없어요. 그런데 거기도 없어서 또 갔는데 거기도 없어요. 내일 오면 준대요, 거기도.

 

그래서 내일 식사 해 잡수셔야 되니까 우선 조금이라도 있으면 드리고 또 팔아서 보내려고. “여기는 이제 방아 곧 내일 찧으시면 되니까 밥해 잡수실 거 있으면, 조금이라도 좀 주시면 안 되냐?”고 사정 사정을 했어요. 거기서 이제 다른 데로 갈려면 또 다른 동네로 가야 돼요. 더이상은 제가 걸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렇게 사정을 했더니 주인아줌마가 나와요.

 

그 주인아줌마가. “아이, 용산이 댁이 그거 가져가려면 아직 안 가져갔으니께 그놈 얼른 주고도 거기는 찧어서 주자.”고 그래요. 새댁이 너무나 딱하다고. 그걸 가지고 오는데 정말 한 발 한 발이 너무 힘든데 자궁에서 피가 흘러내린 거예요. 아직 아물지도 않아서. 안 그래도 건강도 안 좋은 데다가. 그래서 계속 가는데 어떻게 쓰러지려고 그러는데 그걸 어떻게 해서 집에까지 갔어요.

 

지금 같으면 전화가 있으니까 “차 정류장으로 나오세요.” 하면 될 것인데 그걸 못하니까 거기다가 쌀을 놔둘 수도 없고. 그때 막 사람들 가난하니까 막 가져가 버리거든요. 그래서 그걸 끌고 집에까지 가서 다시 시어머니 모시고 그 쌀 80kg 한 가마니를 아기 낳은 지 17일 된 제가 혼자 올렸어요. 아무도 도와준 사람이 없어요. 혼자 끌고 가는데도 시어머니도 그냥 따라오시기만 하고.

 

저는 피가 계속 나니까 계속 가면서 피를 이렇게 털어냈거든요. 피가 흐르고 흐르고 하니까 털어내고 또 털어내고 그랬는데 시어머니가 보면 또 이제 어떤 좋은 이야기 안 하시니까 그래서 이렇게 이렇게 털고 이렇게 이렇게 털고 그렇게 털고 그렇게 와서. 아기 낳으면 그렇게 무거운 거 들면 안 되잖아요. 80kg를 들어서 그 차에다 실어드렸어요.

 

그리고 오다가 도저히 못 하고 쓰러져서 전 정신을 놓았어요. 그런데 얼마나 지났는지 누가 막 깨워요. 그래서 보니까 어떤 할아버지예요. 어디로 가는데 이렇게 쓰러져서 그렇게 있냐고. 그러고 보니까 이제 제게 피가 막 묻어있잖아요. 리어카는 이렇게 끌고 가다 제가 쓰러지니까 뒤로 넘어지고. 저는 또 머리도 다쳐서 그렇게 쓰러져서 있는데. 그런 저를 이제 집이 어디냐고 그래서 그 구림이라고 있어요.


도갑사 가는 구림에서 제일 마지막 동네거든요. 구림 2구인가 그런다고 그랬더니 그럼 앞장서라고 그러다가 제가 막 이제 비틀비틀 못 걸으니까 리어카에다 태워주셨어요. 리어카까지 태우고 그 할아버지가 집에까지 데려다 주셨어요.


제가 내려서 정말 감사하다고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다고. 거기서 정중하게 인사를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일어나서 보니까 할아버지가 없어져 버렸어요. 그때는 하느님이신지도 몰랐어요. 그랬는데 항상 제가 고통은 더 견딜 수 없도록 고통을 허락하셨는데 죽을 때쯤은 항상 살려주셨어요.


제가 집으로 갔는데 아기는 8시간 이상 젖을 못 먹었으니까 자지러지게 울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얼른 가서 젖이나 우유를 줄 수도 없어요. 방앗간에 세 군데나 가서 몸은 추운데도 벌벌벌벌 떨면서 땀은 막 비 오듯이 쏟고 그랬는데. 그 몸으로 아기 젖을 줄 수가 없어요.


시골에는 목욕탕도 없고, 샘도 없고 부엌에도 흙 부엌이니까 이제 다 터진 데서 이렇게 사람 안 보이게 저녁에만 목욕을 하는데 그때는 그때 거의 밤이 돼버렸어. 6시인가, 7시가 돼버렸어요. 어둑어둑하니까 이제 뒤에 가서 씻으려고 옷을 벗었는데 그대로 저는 쓰러져 버렸어요.

 

얼마나 지났는지 막 울음소리가 나고 막 흔들어 깨워요. 그래서 일어나서 보니까 완전히 빨가벗은 채로 쓰러져있었어요. 우리 어머니가 쌀 가지고 오셔서 우리 큰딸하고 어머니가 울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한테 다른 말 안 하시고 “시어머니 오셨다 가셨냐?” 우시면서 그래요. 그랬다고 짐작은 하셨겠죠. 계속 그렇게 살았으니까 제가 말 한마디 안 해도. 아까 들으셨죠? 시어머니 그렇게 하셔도 “느그 시어머니 어째 그런다냐?” 단 한 마디 돌아가실 때까지도 안 하고 그렇게 돌아가셨어요. 너무 감사해요.


 

그런데 이제 옷은 못 입히시고 저 떠메지도 못 하니까 이렇게 덮어 놓으신 거예요. 일어나서 보니까 빨가벗고 있는 데서 아기가 젖을 먹고 있어요. 우리 어머니가 아기가 너무 자지러지게 우니까 데려다가 아기 젖 먹여서 그렇게 놔두고 울고 계시더라고요. 거기서 어떻게 정신을 차려서 우리 어머니가 옷을 입혀주시고 데리고 들어가셨어요.

 

아기 우유 하나만 먹이더라도요. 뭐 보온병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지금 사람들 얼마나 정말 편하게 사는지 몰라요. 그 전에 시골에서 불 때서 그 우유 한 번 끓여 먹으라도 불 때서 그렇게 끓여 먹었거든요. 그러니까 그 힘든 몸으로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렇게 해서 이제 씻으면서 그 모든 것도 시어머니 사랑받은 셈 치고. 시어머니 모든 거 깨끗이 씻어주시라고 봉헌했습니다. 또 잘못된 생각도 있을 것이고 나쁜 거 다 씻어주시라고요. 다른 며느리들한테는 다 잘해줬어요. 집도 얻어주고 다 하셨는데 저만 그랬어요. 다른 자식들한테는 고도 내다 주고 뭣도 내다 주고 그런데 율리오 씨는 큰아들이어도 한 번도 그렇게 해 준 적이 없거든요.


시어머니는 그렇게 일본에서 율리오 씨 낳았는데 동경에서 한 달간을 아파서가 아니라 율리오 씨 낳고 한 달간 입원해서 그렇게 아주 호화롭게 그렇게 사신 분이에요. 그런데도 그거는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잖아요. 하느님께서 사랑하지 않으셨으면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시겠어요. 그래서 제가 그 시어머니 사랑받은 셈 치고 다 죽어가면서도 그랬다고요. 그래서 우리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살자고요. (아멘!) 아셨죠?


 

그래서 제가 몸도 안 좋았는데 우리 딸이 빠져 폭포에서 건져낸 그 뒤로 제가 너무너무 배가 아파 꼼짝을 못 한 거예요. 막 죽을 것 같이 아파요. 그래서 이제 병원에 갔는데 급성 맹장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이제 영암병원으로 갔어요. 그랬더니 거기서도 급성 맹장염이라고 당장에 수술해야 된대요.

 

그런데 애들이 넷이나 되는데 어떻게 수술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막 사정을 했어요. 복막염 될 수 있다고 해서 복막염 안 되게 어떻게든지 좀 치료를 해 주라고 애들이 지금 젖 먹는 아기도 있고 제가 수술할 수가 없다고 3일 동안 치료했는데 하나도 안 나아요.


그러니까 수술해야 된다고 그래서 그러면 수술할 바에는 광주로 가겠다고 대학병원으로 갔어요. 왜냐면 광주에는 시댁 식구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시댁 도움을 좀 받을까 하고 갔어요. 우리 젖먹이 애도 데리고 가고 어머니랑 그렇게 갔죠.


우리 어머니는 애들 둘 데리고 또 셋째 데리고 넷째 업고 아픈 저를 데리고 와서 옛날에 뭐 돈이 없으니까 걷고 버스 타고 또 걷고 대학병원 가서 대학병원은 얼마나 입원하기도 힘들어요. 한 번도 그렇게 병원에 가보신 적도 없는 어머니가 그렇게 애들 업고 데리고 막 그렇게 다니셨는데 몇 시간 걸려서 입원을 시켰는데 하루 종일 걸렸죠. 입원실이 없으니까 1인실로 이제 갔어요.

 

다인실 나오면 준다고 그랬는데 율리오 씨 그다음 날 왔는가? 그래서 수술 안 하니까 또 다 내려가셨어요. 나는 그렇게 아픈데 젖먹이 아이를 놔두고 이제 젖을 먹으니까 우리 어머니가 데려가실 순 없잖아요. 그러니까 젖먹이라고 놔두고 가셨어요.


그랬는데 저는 아파서 물도 못 먹고 거기서는 금식시키고 애는 배가 고파서 내 배 위로 왔다 갔다가 젖을 물고. 그런데 거기서 계속 검사만 하다가 3일 만에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그 아기를 데리고 이제 제가 검사를 다 한 거예요. 걷지도 잘 못 한 사람이 혼자 있으니까 물을 뜨러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간호사한테 우리 아기 물 먹이려고 물 좀 떠다 주라니까 “그것도 못 가져가요?” 그러고 가버리고.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3일 동안을 아기 물도 못 먹이고 계속 울고. 끝까지 간호사도 안 도와줬어요. 물 한 번을 안 떠다 줬어요. 나 물 한 모금도 못 먹는 것은 괜찮은데 아이도 한 모금도 못 먹었어요.

 

젖은 이제 그동안에 조금씩 나오니까 그거 억지로 빨고. 그런데 물 한 모금도 못 먹는데 무슨 젖이 나오겠어요. 그래서 3일 만에 뭐 자궁외 임신, 자궁뼈 골반염, 외과에서는 급성 맹장염이 다. 또 내과에서는 열병이라고 그랬는데 수술도 안 하고 그대로 놔둬 버려요. 또 이제 며칠이 갔어요. 그랬는데 아무리 하소해도 소용없어요.

 

그래서 이제 아기 혼자 놔두고 침대에 떨어질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아기 놔두고 기어서 저는 말 한마디도 못 해요. 글씨도 못 써요. 그래서 겨우 엎어져서 기어가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어떻겠는지. 그래서 외과에로 갔어요. 내가 이렇게 무릎으로도 못 기고 엎어져서 기어갔어요. 간호사도 절대 안 도와줘요. 아무리 하소해도.

 

그렇게 기어가니까 외과에서 의사가 보더니 깜짝 놀라서 “아니, 지금까지 수술을 안 했어요?” 그래서 안 했다고 말 못 하니까 했더니 이 의사가 너무 놀라서 당장에 수술하자고 그러는데 이제 수술하려면 동의서가 있어야 되잖아요.

 

누구 아는 사람 있냐고, 남편 어디가 있냐고. 얼른 올 수 있냐고 그래서 못 온다고 했더니 그러면 가까운 데 누구 아는 사람 있냐고 있다고 그랬더니 말을 해보래요. 말 못 해요. 글을 써보라고 해요. 글 하나도 못 써요. 그 정도 돼버렸어요,

 

제가 이제 어떻게든지 말을 해보라고 해서 검찰청을 이야기하려 그런데 “엄? 업?” 막 다른 저기 해서 얼마나 힘들게 ‘검’을 했어요. ‘찰’ 하려는데 ‘찰’ 이것도 이제 “찰” 그러니까 그걸 이제 자기들끼리 계속해보는데 그것도 얼마나 하다가 마지막에 “찰?” 그래서 “그러면 검찰청?” 그래서 ‘청’은 아주 쉽게 했어요.

 

이름도 김, 만. 이렇게 하느라고 그것도 굉장히 힘들게 해서 그 이름을 알아서 그 의사가 검찰청으로 전화해서 혹시 검찰청에 이런 분 있냐고 그래서 이제 시동생이 받으니까 “윤홍선씨 혹시 아냐.”고 “아 저희 형순데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에 수술해야 되니까 바로 와서 저 사인 좀 해 주라.”고 그래서 왔어요. 그러니까 이제 시동생이 형님한테 전화했겠죠.

 

제가 이제 수술하러 들어갔어요. 그때 이제 모두 우리 큰이모님 오셨는데 우리 어머니는 이제 (병실에서) 아기 업고 그렇게 오셨더라고요. 그런데 바로 오셔서 그런 상황은 전혀 모르니까 뭐 병원 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우리 어머니도 누구 병원에 가본 적도 없으니까 그걸 몰라요. 제가 그때 수술하러 들어갈 때 그동안에 대변도 못 봤는데 갑자기 대변이 막 마려운 거예요.


전신 마취하려면 관장도 하고 다 이렇게 하잖아요. 그런데 관장은커녕 대변이 마려워 “으음~!” 막 했어도 간호사가 신경도 안 써요. 이제 수술실에서 기다려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제 수술하다가 잘못됐나 봐요. 제가 수술하는데 얼마쯤 걸린다고 했는데 그 시간에 누가 이렇게 시체가 나온 거예요. (시트) 덮어쓰고.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가 기다리시다가 ‘이제 딸 죽었구나.’ 하고 거기서 쓰러져 버리신 거예요. 그 뒤로 이제 제가 수술을 3시간을 했어요. 그랬는데 이제 이렇게 그때 한 15명쯤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보니까 그 의사가 안 보여요. 예수님이셨나 봐요. 그렇게 한 사람이 없어요.

 

그 의사가 깜짝 놀라서 이제까지 그렇게 안 하고 있었냐고 그러고 막 했는데 그렇게 했으면 그분이 오실 거잖아요. 그런데 그분이 없어요. 그때는 몰랐죠.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까 그분이 예수님이셨나 봐요. 인솔만 해 주시고 그렇게 이제 가셨나 봐요. 그래서 이제 수술하고 나왔는데 수술하고 나와서는 이제 더 아픈 거예요. 여기가 막 너무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젖을 또 먹여보려고 하니까 이제 전신 마취하면 젖을 못 먹인대요. 그때서 아무 준비도 없이 우리 어머니가 우유 먹일 준비를 해서 그러면 얼마나 힘들어요. 그걸 준비해서 이제 우유를 먹이기로 하고 또 애들 학교 보내야되고 그러니까 친정 어머니는 셋째 데리고 또 가셨다가 매일 그렇게 다니셨어요.


열흘이죠. 3일 검사하고 그 뒤로 일주일 입원을 했었는데 우리 어머니가 영암까지 차 타고 밤에 가셔서 또 군서 가는 차 타고 또 걸어가셔서 이제 애들 밥 먹이고 애들 학교 보내고 아침에. 그리고 또 올라오셔서 저 봐주시고. 계속 그래요. 우리 어머니 너무너무 고생하셨어요. 그래서 이제 저는 아기 젖을 안 먹이니까 제가 못 먹어도 젖은 부른 거예요.


그래서 기저귀로 가슴을 꽉 묶었어요. 그때 여름이에요, 땀띠가 땀띠가 아주 다 나서 유축기 하나도 못 사니까. 유축기 뭐 얼마 안 했어요. 그때 2~3백 원 했어요. 그랬는데 그 유축기 하나도 못 사고 그냥 저절로 줄어들기를 기다린 거죠. 그래서 제가 이제 병원에 있는데 막 기지도 못해요.


간호사가 와서 막 때리고 막 별짓을 다 했어요. 그래서 막 침대에다 눕혀놓고 막 눕혔다 놨다, 눕혔다 놨다. 의사가 가스 나오게 해야 된다고 그래서 간호사가 막 등짝을 얼마나 두드렸는가 몰라요.

 

그런데 아무도 없는데 또 2인실이 나왔다고 해서 그 돈 때문에. 세상에 움직이지도 못한 내가 짐 갖고 혼자 기어서 아이 데리고 2인실로 갔어요. 내가 기어 다니고 뭐 이렇게 물만 먹어도 다 토하는 거예요. ‘아, 이 가스가 나와야 내가 살겠다.’ 싶어서. 얼마나 힘을 써서 막 이렇게 왔다 갔다 침대로 그래서 힘을 썼더니 3일 만에 겨우 쬐~끔 ‘슉’ 이렇게. 이렇게만 나왔어요.

 

그런데 그 암 환자가 일어나지도 앉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그 가스 소리에 벌떡 일어나서 걸어버렸어요. 걷기는커녕 일어나지도 못한 사람이. 저를 위해서 그렇게 막 위로해 주고 막 하니까 주님이 그렇게 해 주셨나 봐. 일어나지 못한 사람이 바로 걸어버렸어요.


그래서 화장실에 가면 조금씩 물만 아주 조금씩 그렇게 나오고 했는데 간호사가 얼마나 차고 때리고. 그 옆에 암 환자가 있었어요. 왜 그렇게 때리냐고 왜 그렇게 차냐고 막 하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닌 맹장 하나 잠깐 떼어낸 것을 갖고 저렇게 엄살을 부린 사람 세상천지에 처음 봤다는 거예요. 간호사한테 얼마나 두들겨 맞고 막 멍이 들도록 맞았어요.

 

그랬는데 저는 화장실에 가도 그러고 아주 계속 토하고만 있는 거예요. 뭘 먹어도 토해요. 수박즙을 또 해 줘서 수박즙을 먹어도 토해요. 계속 너무 안타까우니까 옆에 아줌마가 보신탕을 한번 먹어보라고.

 

못 먹는다고 그러니까 서숙 미음을 먹으면 속이 좀 풀리고 저기 한다고 좀 누구한테 해다 주라고 해서 우리 둘째 동서가 왔길래 “아, 서숙 미음이 좋다네. 나 아무것도 못 먹으니까.” 내가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를 못 하거든요. 그런데 처음으로 아쉬운 소리 했어요. “좀 해다 주면 안 될까?” 그랬더니 “시어머니한테 말할게요.” 그러고 갔는데 안 왔어요.


그래서 서숙 미음도 못 먹어봤는데 그 아줌마가, 그러니까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 심정을 알잖아요. 보신탕을 먹으라고 하도 해서 아이, 눈 찔끔 감고 딱 삼켰는데 안 토한 거예요. 그래서 그때 이제 보신탕을 시어머니가 해다 주시면서 삯도 다 받아가시고 차비도 다 받으시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열흘 만에 집에 와서도 못 먹어요. 우리 시골 할머니가 개 한 마리를 잡아서 고를 내오셨는데 먹었다 하면 토해요. 이제 개도 안 맞아. 그 아줌마 있을 때만 먹었어요. 그 아줌마가 나 있을 때 그렇게 서서 걸어 버리더니 나도 그 아줌마가 사랑으로 그러니까 그때만 먹은 거예요.


그래서 계속 토만 하고 집에 와서 3개월간을 못 먹고 토했어요. 배꼽 밑으로 열 바늘 꿰맸거든요. 그랬는데 세 바늘 꿰맨 데서 뭐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보니까는 막 곪은 것 같아요. 이제 3개월 될 때 애들은 자고. 큰딸은 계속 내 옆에 있었어요.


내가 어쩔 때 눈물이 날 때 보면, “엄마 울었지? 아빠가 안 들어오시니까 울지. 내가 아빠 대신까지 잘 할게.” 해서 “아니야, 아니야, 지금 눈에 뭐 들어가서 그랬어.” 그랬는데 그때도 안 자고 있어요. 그러다가 12시 넘어서 집에 뭐 소독도 아무것도 없죠. 화장지로 해서 고름을 짜보려고 그것을 이렇게 잡아당겼더니 계속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딸이 “엄마! 엄마! 창자 나와! 그만해! 그만해!” 얼마나 울면서 나도 울고 ‘진짜 창자가 나온가 보다.’ 그런데 이러고 나오니까 계속 뺀 거예요. 막 이렇게 꾸불꾸불 이렇게 생겼으니까 창자가 나온 것 같았어요. 그런데도 나오니까 계속 뺐어요. 그런데 긴 걸 그렇게 계속 뺀 거예요.


빼고 또 빼고 또 빼고 피고름이 계속 묻어서 나와 그걸 빼냈어요. 세상에 그 수술할 때 이 거즈를 넣고 해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물 한 모금도 못 먹었죠. 다 토하고만 있고. 그랬는데 그 이튿날 아침에 이제 율리오 씨가 옷 입으러 들어왔어요. 그래서 이렇게 이게 나왔다고 그랬더니 놀라서 “뭐 거즈가 나왔는갑네. 병원에 한 번 가봐.” 그러고 바쁘다고 직장에 가버리더라고요.

그래서 ‘그래, 남편 사랑받은 셈 치고.’ 제가 어떻게 가요. 우리 어머니도 그때 안 계셨는데 그래서 제가 기어가다시피 해서 막 이렇게 짚고 가로수 잡고 벽 잡고 막 그렇게 갔어요. 이것이 뭐냐고 이렇게 보여줬더니 아니, 그게 뭐냐고 그래서 아니, 이것이 뱃속에서 나왔다고 그랬더니 깜짝 놀라서 이분이 “아니 어떻게!” 너무 놀라서 아니 맹장 수술했다고 이제 다 이야기했거든요.

 

그전에 저를 알아요. 그전에도 그렇게 그 병원 갔으니까. “아니, 어떻게 이 거즈를 놔두고 3개월을 있었단 말이오. 이건 기적입니다. 이건 죽습니다.” 왜냐면요. 창자가 그냥 이렇게 반듯하게 안 있잖아요. 반듯하게 있으면 여기 묻었으면 2개만 거즈가 묻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여기 오글오글 돼 있잖아요. 거기가 거즈가 다 있어 버렸으니까 그 창자가 다 이제 염증이 생기고 곪아 터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랬는데 거기서 안 된다고 광주 수술한 병원으로 가라고 이건 분명히 의료사고니까 신청하면 의료사고로 보상받을 수 있고 거기서 그냥 치료해 줄 수 있다고 그런데 ‘내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잘못했다.’


내가 있었기 때문에 내 탓으로 받아들이고 사랑받은 셈 치고 그리고 그들이 정말 잘못했지만, 왜냐면 맹장은 금방 떼어요. 3시간까지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3시간 했다 그랬더니 보라고 그 사람들 내과에서, 외과에서 또 산부인과에서 15명이나 들어와서 인턴, 레지던트 다 들어왔으니까 그 사람들이 다 공부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산부인과에서는 외과 것, 외과에서는 산부인과 것 공부하느라고 급하니까 거즈 그렇게 빼지도 않고 그냥 꿰매버린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니까 이제 퍼즐이 맞춰져 가는 거예요. ‘아, 이랬으니 내가 물 한 모금도.’ 어디로 창자로 해서 나와야 되는데 어디로 나가겠어요. 그래서 이제 계속 병원에 다녔죠. 그런데 이제 그 병원은 제가 갈 수가 없죠.


제가 어떻게 가겠어요. 누구 도움받아서 가겠어요. 그래서 제가 혼자 매일 그 병원 다녔는데, 계속 소독하고 이렇게 거즈로 붙여주고 그러면 집에 와서 그런 몸으로 제가 살림을 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힘들다 해도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애들 데리고 그렇게 제가 다 했어요. 어머니는 계속 다섯째 시아제 고등고시에 합격할 때까지만이라도 도움 주시려고 농사지어서 그렇게 또 오셨다가 가시고 그러셨는데 그때 농사철이거든요.

 

그랬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다녔는데 도저히 거기서 안 돼요. 그래서 영암병원으로 갔어요. 터미널 가서 영암까지 가서 영암에서 내려서 그 병원 가니까 깜짝 놀라서 영암병원에서 아니 어떻게 이렇게 치료를 하냐고 싱을 박아서 속에서부터 이렇게 나와야 되는데 그러더라고요.

 

거기서도 상당히 오랫동안 했어도 못 났는 거예요. 한 몇 달이 지나버렸죠. 그래서 도저히 안 나으니까 내 탓으로 받아들이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봉헌했어요. ‘간호사들도 의사들도 자기들의 유익이 되었으면 그것으로 됐다.’ 하고 봉헌하고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했습니다.

 

아까 제가 성폭행당할 뻔 한 이야기 한다고 했는데 많이 돌아가 버렸네요. 죄송합니다. 그때 제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물만 먹어도 토하면서 집에서 그렇게 누워있었어요. 넷째 팔에다가 안고 이렇게 누워 있었는데 누가 “계세요?” 그러고 문을 두드려요. 제가 막 너무 힘드니까 얼른 대답도 못 해요.

 

그래서 이렇게 보니까 남자 직원이 왔어요. 그 남자 직원이 좀 잘생겼어요. “사모님, 접니다. 소장님이 심부름 보내서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앉았는데 뒤로 돌아가요. 그래서 ‘왜 뒤로 가지?’ 이러고 보려고 했더니 그 순간에 저를 꽉 안은 거예요. “사모님, 저는 사모님 처음 본 순간부터 너무너무 사모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를 이제 성폭행하려고 했죠.


그래서 밀쳐버리고 제발 이러지 말라고 난 병자라고 그랬는데 세상에 이제 앞에 와서 제 입술에 자기 입술을 대려는 거예요. 그래서 꽉 물어버리려고 그랬어요. 내가 옛날에도 물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오려고 해서 이렇게 했더니 얼른 또 잘 비키더라고요. 옛날에 그 선수 같은 사람도 그렇게 입술 콱 물어서 피가 줄줄 나고 쓰러져 버렸는데 그냥 피했어. 그래서 다리를 제가 꼰다고 했잖아요.

 

오른 다리를 왼쪽으로 해서 딱 꼬아버리면 절대 못 풀어요. 저는 이제까지 제가 힘도 세고 뭐든지 한 번 보면 다 했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잘해서 그런 줄 알았더니 주님께서 다 해 주셨어요. 그래도 다리를 꼬았는데 그걸 풀어서 하려고 계속 한 시간 이상을 했어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그 힘 없고 그동안에 몇 달 동안 못 먹었어요.


그랬으면 여러분 어때요? 그런데 하려면 할 수 있다니까요. 여러분, 해보세요. 절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땀을 줄줄줄, 젊은 장정이 아주 그렇게 나를 그렇게 하는데 결코 풀지 못했어요. 한 시간 이상 됐는데 그때 딱 이제 포기를 하더라고요.


 

제 앞에 무릎을 탁 꿇고, “사모님, 용서해 주십시오. 사모님을 만나서 저는 정말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이제까지는 여자는 닭대가리고 여자는 엔조이 상대라고 생각했대요. 그랬는데 그 뒤로 하는 말이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이제까지 자기가 유부녀고, 처녀고, 누구건 간에, 또 결혼식장에 가서 그 신부가 예쁘면 그 신랑하고 아직 첫날밤 이루기 전에 반드시 아궁이에 불을 땐대요. 아궁이에 불을 땐다고 하대요? 그 소리도 처음 들었어요, 아궁이에 불 때버린대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대요.

 

결혼을 한 사람도 그런대요. 어떤 (기회를) 봐서라도 그렇게 다 했대요. “그런데 세상에 사모님 같으신 분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계신다는 거, 정말 그 정조를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힘없고 병자이신 사모님이 이렇게 강하시다니 너무나 놀랍습니다. 사모님 걸어 다니는 모습도...” 그때 제가 날씬했잖아요.

 

그래서 엄청 좋은 말 많이 해가면서 이제까지 사모님같이 아름다우신 분 세상에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처음 보는 순간부터 완전히 반해버렸대요. 그래서 “거기서 오늘부로 졸업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또 좋은 이야기 많이 해 줬죠.


 

“아, 그래요. 용서할 테니까.” 저도 온몸에 땀이 다 났죠. 그걸 이제 견뎌내야 되니까. 몸도 다 멍이 들고요. 그런데 그 남자가 완전히 새사람이 됐어요. 그래서 그동안에 얼마나 많은 여자를 범했을 것이며 “그런데 이제 졸업하겠습니다.”

 

세상에 여자들은 모두가 그동안에 처음에 이렇게 범할 때 아궁이에 불 땔 때는 처음에 싫어하지만 조금만 때면 금세 달아올라서 그렇게 다 즐긴대요, 같이. 그랬대요. 그런데 세상에 참 사모님 같으신 분이 이 세상에 존재하신다는 거 그것만 가지고도 이제는 여자는 닭대가리라고 생각 안 하겠다고.

 

“정말 존경합니다.” 정말 정말 이제까지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던 그런 저기를 사모님한테 본다면서 새로 시작하겠대요. “저도 이제 새로 시작해서 결혼도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결혼할 필요가 없었대요. 여자 아무나 자기 마음에 들면 다 아궁이에 불 땔 수 있었으니까. 그랬는데 이제 졸업하겠대요. 그러고는 인사하고 나갔거든요.

 

제가 그것도 제 탓으로. 왜냐면 내가 날씬했고 얼굴 좀 안 예쁘지 않았고 그건 내 탓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때 한번 얼굴 안 예쁜 사람들 그것도 감사하라고 했잖아요. 얼굴도 그렇게 형편없이 못생겼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고 날씬하지 않고 뚱뚱, 그래서 제가 뚱뚱하게 해 주라고 이렇게 뚱뚱해졌잖아요.

 

그때 이제 제가 아기 옆에를 갈 수가 없어요. 그런 몸으로. 그래서 밖에 나가서 그때는 이제 낮이니까 목욕하기가 참 힘들죠. 그런데도 어떡해요. 안 씻고 들어갈 수가 없으니까 사람들 없는가 이렇게 봐서 얼른 다 옷 다 벗어버리고 그 사람의 체취 닿은 건 방에서 저기 한 것도 전부 다 타월을 갖다가 땀 닦고 막 했기 때문에 그 타월도 제가 버렸어요.


나쁜 거 싹. 저 사람의 음란 마귀도 다 버려주라고 우리가 생활의 기도를 계속 해야 되잖아요. 5대 영성 실천해야 되니까. 저는 그때 주님 그렇게 많이 알지도 못했고 그런데 하느님만 그렇게 부르고 살았었고 씻으면서 그 사람 영혼 육신도 다 씻어주시라고 마음까지도 다 씻어주시라고 생활의 기도를 했어요.


 

그리고 그 사람한테 당한 사람들 엄청 많잖아요. 자기가 마음에 든 사람은 다 아궁이에 불 땠으니까. 그렇게 당한 사람들 상처까지도 다 씻어주시라고 그렇게 생활의 기도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그 일을 그만 이제 졸업하겠다고 했으니까 제가 그렇게 안 당했으니까 그렇게 힘들고 힘쓰고 했기에 제 몸은 이제 완전 만신창이가 돼서 일어설 수도 없었지만, 그런 몸으로 이제 불 때서 아기 우유를 먹이고 그랬지만 그러면서도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너무 흐뭇했습니다. 그 사람이 음란죄에서 완전히 이제 탈피한 거잖아요. 졸업했잖아요. 그러면 여러분, 어때요? 그 사람은 아주 선의적으로 공무원으로서 아주 잘생기고 그런 사람이 성폭행범이라고 그 어느 누가 알겠습니까?


성폭행범이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저의 희생과 보속고통을 통해서 그렇게 새로운 사람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쁩니까! 그래서 그 사람을 미워할 수가 없어요. 오히려 하느님께 감사하고. 우리가 늘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가 마르지 않는 부활의 삶을 살도록 합시다.

 

그래서 그 사람이 자기는 그렇게 아궁이에 얼마든지 불 땔 수 있으니까 절대 결혼을 안 한다고 했는데 몇 달 후에 결혼하게 됐어요. 그날 저녁에 율리오 씨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아이, 주형이 아빠. 아니, 생선가게에 고양이를 보내면 어떡하냐.”고 그러니까 “뭣이? 왜?”

 

그래서 아니, 남자 직원을 그렇게 보내면 어떡하냐고. 나 성폭행 당하려다가 안 당하려고 혼났다고 그러면서 그 이야기를 다 해 줬어요. 저는 다 이야기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여기 꽈버렸더니 못 풀대?” 그랬더니 무덤덤하게 “그랬어?”

 

나를 믿어준 건 좋지만, “아이, 고놈 왜 그랬을까?” 그 말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데 그러더라고요. 어떤 남자가 그럴까요. 그러더니 몇달 후에 이제 결혼한다고 나한테 거기 같이 가자고 그래요. 아니, 내가 거길 왜 가냐고 그랬더니 “아니, 당신이 결혼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 준 은인이니까 당신이 가면 기뻐하지 않을까?”

 

그런데 저는 그 사람 얼굴 보고 싶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저 보고 한편으로는 무안할 수도 있겠고 한편으로는 “사모님 덕분에 제가 이렇게 결혼 생활해서 이렇게 잘 살랍니다.” 그렇게 할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저는 안 갔어요.

 

여러분, 어때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다고요.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제가 못 먹고 몇 달 동안이에요. 6개월도 넘었어요. 그랬는데 먹지도 못하고 정말 그렇게 힘없는 내가 어떻게 그 장정을 이겨낼 수 있겠어요? 그런데 할 수 있다는 그 믿음과 신념! 그러면서 저는 하느님을 계속 불렀어요.

 

하느님을 계속 부르면서 “저는 이겨 나갈 수 있어요. 하느님이 같이 저를 도와주세요.” 그렇게 여러분 하느님 계속 부르세요. 저는 그런 일이 많았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고통 중에 있으면서도 이겨냈습니다. 그래서 그때도 예수님께서 해 주셨죠. 이제까지 모든 것을 제가 했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 다 해 주셨죠.


 

그래서 제가 그렇게 시어머니 쌀 팔아 드리려다가 아주 다리도 뚱뚱 붓고 8시간 이상 앞에 찬 쇠를 끌고 다녔으니까 손도 잘 못 쓰고 그랬는데 주님께서 저를 치유해 주실 때, 그때서야 치유받았어요. 그걸 또 시어머니 한 번도 원망해 본 적 없어요. ‘그래, 내가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것이지. 시어머니에게 사랑받는 셈 치고.’ 그렇게 했고. 모든 것을 셈 치고 한다면 우리는 누구도 다 용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사순절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죠? 이제 오늘 성지 주일인데 이제 일주일 후면 우리 부활합니다. 예수님 부활하실 때 우리 모두 부활합시다. 우리는 항상 5대 영성으로 깨어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깨어서 정말 남은 사순절 잘 보내고 성주간 또 잘 보내고 우리 모두 함께 예수님 부활하실 때 우리 부활하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어떤 고난 중에서라도 우리는 할 수 있다. 예수님과 함께 갈 수 있다. 성모님과 함께 갈 수 있다. 저는 그때 하느님을 제대로 못 믿었을 때예요. 그래도 그렇게 저는 하느님을 부르면서 그렇게 모든 것을 이겨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지무지 사랑합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느님과 주님과 성모님께 돌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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