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442화. 한마디의 말 때문에

wlsgodqn
2023-05-24
조회수 1068


한마디의 말 때문에

나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회복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도, 의사와 간호사들은 환자인 내가 고통을 호소해도, 나의 고통에 대해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은 채 무시하며 날이 갈수록 나를 더 심하게 대했다. “어우, 징하다 정말. 엄살 좀 제발 고만하세요! 아기도 아닌 어른이 뭐가 그렇게 겁이 많아요, 네?”


또 다른 간호사가 들어 오더니 “아니, 아줌마. 아무것도 아닌 겨우 맹장 수술하나 한 것을 가지고 뭐가 그렇게 아프다고 지금까지 일어나지도 못해요? 웬 엄살이 이렇게 심해요?” 하였다. 간호사들은 그런 심한 말을 서슴없이 하며 정신을 차릴 수 없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나를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치며 윽박지르곤 하였다.


환자를 돌보아야 하는 의무가 있는 그들이 하는 행동은 약해진 내 몸과 마음에 더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간호사들이 그럴 때마다 나는 얼른 “아주머니, 얼마나 힘드세요. 회복이 더뎌 많이 힘드시지요?” 하고 사랑으로 말해 준 셈 치고 봉헌했다. 나는 네 명의 아이를 너무나 힘들게 낳았지만, 그때마다 안간힘을 쓰면서도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들을 낳으니 독하다는 말도 들었고, 나에게 고통을 잘 참는다 말들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고통을 잘 견디는 내가, 수술 후 이상할 만큼 배 속도 당기면서 점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파 죽을 지경이 되어가고 있던 것이다. 간호사들에게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였지만, 완전히 쇠약하여 마음까지 힘든 나의 마음을 비수처럼 찌른 것은 단지 간호사들의 심한 말들뿐만은 아니었다.



수술한 지 얼마 안 되어 시어머님이 오셨다. 시어머님의 싸늘한 표정에 불안함이 엄습했다. 그래서 몸을 가눌 수 없이 힘든데도 누워있을 수가 없어 겨우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런데 시어머님은 오시자마자 대뜸 냉랭한 목소리로 “우리가 너한테 오느라고 택시비만도 얼마나 들어가는지 아냐?”라고 하셔서 나는 깜짝 놀랐다.

 

차비가 20원밖에 안 하던 시절, 시어머니께서 그렇게 택시비가 많이 들었다고 말씀하실 만큼 시댁에서 많이 찾아오질 않았다. 그때까지 병문안이라고는 시동생들이 단 한 번 형수 문병 왔다고 다녀가면서, 내가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을 때 병실 구석진 곳에서 술을 먹고 간 것이 다였다.

그러나 나는 시동생들이 형수가 아프다고 사랑으로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었다. 사실이 어떻든 나는 아픈 내 탓이라고 봉헌하며 화가 나신 시어머니께 “어머니 죄송해요, 제가 건강하지 못하여 고생하시게 해서 맘 상하셨다면 용서해주세요...” 하고 얼른 용서를 청하면서도 옆의 환자 보기가 민망했다.

그래서 ‘차라리 안 오시면 옆의 사람 분심이라도 안 들 텐데….’ 하는 생각이 잠시 들려다가, 얼른 시어머니께서 “어미야, 힘든 수술 받느라고 고생이 많았구나. 조리 잘하여라.”하고 다정하게 사랑으로 말씀해 주신 셈 치고 봉헌했다. 시어머니는 오셔서 그 말씀만을 남기시고는 바로 가셨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보고 있던 자궁암 수술환자가 오히려 더 열을 내며 “아니, 무슨 저런 시어머니가 다 있대요? 누가 그렇게 오지도 않더구만, 손주는 보지도 않고, 죽도록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한 환자한테 그깟 몇 푼 되지도 않는 택시비 타령이래요?” 하였다. 나는 너무 힘들었지만 애써 웃어 손사래까지 쳐 보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아녜요, 우리 시어머니 너무 좋으신 분이에요. 여기 오시기 전에 다른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러시나 봐요.” 그랬더니 그녀는 “아이고, 얼굴도 이쁜 사람이 착하기도 해라.”하고 웃었다. 나는 계속 먹을 수조차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물만 조금 먹어도 토하며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루에도 화장실을 수십 번씩 왔다 갔다 해야 했지만, 입원해서부터 대변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한 번 토할 때마다 온몸의 장기가 다 빠져나올 것 같이 구역질을 해대니 얼마나 기진맥진하는지... 먹은 것이 없으니 더더욱 지쳐 탈진해갔다. 항상 옆에서 나를 안쓰럽게 지켜보던 그 환자가 말했다.
 
“새댁, 수술 후 소화가 잘 안될 때는 속을 가라앉히고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서숙(좁쌀) 미음이 좋더라구. 좀 해다 달라고 해서 그것 좀 먹어봐. 응?” 그런데 그때 손아래 동서가 왔다. 나를 위해서는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누구에게 부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내가, 고생하는 어머니와 네 아이들을 위해서 반드시 살아야 하니 동서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동서, 내가 계속 아무것도 못 먹고 토하고만 있는데…. 서숙 미음이 좋다고 하는데 혹시 그것 좀 해다 줄 수 있을까?” 하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동서는 “시어머니한테 말씀드릴게요.” 하고는 금방 떠났다. 나는 계속 토하고만 있으니 너무 힘들어 ‘혹시나?’ 하고 기다렸으나 동서는 그 뒤 한 번도 오지 않았고, 결국 서숙 미음도 먹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래, 서숙 미음을 못 먹었지만 내게 친형제가 있어서 사랑과 정성을 다해 쑤어다 준 서숙 미음을 맛있게 먹은 셈 치자.’ 생각하면서 섭섭해하지 않고 봉헌하였다. 시어머니가 “이제 들어와서 지내라.” 하신 뒤, 열여섯이나 되는 대식구가 사는 시댁에 들어가 그토록 온몸을 다 살라 죽음을 불사하며 그 많은 일을 하면서도 내 모든 사랑을 다 바쳐 살았었다.

 
시댁에 들어가 살기 전, 결혼 직후부터도 나는 시동생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내 입에 있는 것이라도 내어주고 싶었다. 시어머니 돈 대드리느라 돈이 없는데도 시동생들이 원하는 것은 패물을 팔거나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마련해 줬었다. 나는 먹지 못해도 배불리 먹은 셈 치고 봉헌하며 그들에게 무엇 하나라도 더 주고 나면 얼마나 기뻤었는지!
 

 
시댁을 위해서라면 아까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그렇게 주고 또 주어도 더 주지 못해 아쉬웠다. 내가 업어주고 안아주며 그토록 이뻐했던 막내 두 시동생들! 그 시동생들 역시 나를 너무나 잘 따르며 셋째 시동생은 나를 '누나'라고 부르며 군대에 가서도 "나, 누나가 담아준 김치 먹고 싶어."라고도 하지 않았던가!
 

시동생들과의 우애 있던 시절은 한바탕 꿈과도 같이 아련해지고 있었다. 내가 바라는 건 서로 우애하고 사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형제간 없이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기에, 모두가 다 반대했지만 더는 외롭지 않기 위하여 시아버지가 계시고 형제가 많은 집을 선택해 결혼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많은 대가족을 위해 내 몸이 부서져라 아낌없이 나를 헌신해 왔다. ‘목숨을 불사하고 바쳐온 내 사랑이 과연 이것이었나?’ 쓰라리고 아픈 가슴을 잠시 부여잡았지만, 시어머니와 시동생들 모두에게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니 그래도 견딜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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