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모르고 자고있는 남편을 보니 편안해서 좋아 보였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대책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으니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한없이 허탈하고 막막했다. 밤을 지새우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다. ‘그래, 이제 남은 생애를 나 하나만을 위하여 희생해 오신 불쌍한 어머니를 모시고 내가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 살아보자.
이제까지는 어머니가 나를 위하여 희생하셨지만, 이제는 내가 어머니를 위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하여 희생할 차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지난밤에 썼던 유서는 찢어버리고 다른 내용의 글을 써두었다. ‘주형이 아빠! 미안해요. 우리는 여기까지인가 봐요.’ 마음속으로 그이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 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어머니는 눈치가 아주 빠르신 분이라 나는 태연한 척하며 기회를 봐서 말씀드리려고 했다. 그러나 친정어머니께서는 나를 보자마자 이상한 낌새를 느끼시고는 “어떻게 왔느냐?” 하고 채근하셨다. 그래서 얼른 “김 서방이 수원으로 출장을 가서 그동안 여기에서 좀 있으려고 왔어요.” 했다.
“그래?” 어머니는 내가 어려서부터 그렇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내 말을 믿으신 듯했다. 죽음의 강을 건넜다 돌아온 나는 더 이상 이 버거운 결혼 생활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결정을 내려야 하겠는데 어머니 눈치만 보며 속절없는 시간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속은 타고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큰딸이 “텔레비전 보고 싶어.”라고 하였다. 당시 100여 호가 사는 외가 동네에서 텔레비전을 가지고 있는 집이 딱 한 집 있었다. 밤이 되자 어머니께서는 그 집에 함께 가자고 하셨다. 계속 갈등으로 고민하던 차에 답답했던 나는 두 아이들을 데리고 얼떨결에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그 집은 전에 남편을 자신의 사위로 삼으려고 애썼던 외재당숙의 집이었다. 그 동네에 처음으로 텔레비전이 들어왔을 때라 외재당숙모님들과 동네 아줌마들이 많이 와계셨다. 그런데 어머니 재종 동생인 그 외재당숙이 나를 보자마자 대뜸 기다렸다는 듯 책망하는 투로 말씀하셨다. “김 서방 단속 좀 잘해라.”
“왜 그러셔요?” “남자들이 잘생기면 여자들이 따르는 법이다. 남자들이란 그럴 수가 있는데 호주머니가 가벼워질 수 있어서 말해준다. 지도소에서 소장하고 나하고 둘이 있는데 어떤 여자의 편지가 김 서방한테 왔더라. 그래서 편지를 뜯어보니 토요일에 용다방에서 만나자고 해서 소장하고 둘이 비밀리에 그 편지를 찢어서 태워버렸다.”
나는 흠칫 놀랐지만 더 말씀이 나오시지 않도록 태연스럽게 “예. 외재당숙, 저 그 일 잘 알고 있어요.” 했다. 그런데도 그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생각해 주는 듯 교묘하게 몰아가며 여러 말을 하셨다. 내 결혼 생활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었다. 옆에 계시던 외재당숙모님들과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거기에는 전에 나에게 돈 많은 집에 시집가라고 끈질기게 설득하셨던 분들이 함께 계셨다. 끝까지 그이를 선택했던 내게 화가 나신 여러 어르신들은 두고 보자며 내 선택의 결과를 지켜보고 계셨던 터였다. 그래서 더 부끄럽고 어디론가 숨고만 싶었다. 잉꼬부부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야 말겠노라고 다짐했던 나의 소중한 꿈...
그때 내 소신을 자신했던 나 자신이 초라해 견딜 수 없었다. 고작 텔레비전 때문에 따라나선 것이 너무 후회되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눈물을 머금고 외재당숙에게 “그 아가씨는 제 친구예요, 제가 김 서방에게 부탁했어요. 친구가 일하는 데 가서 좀 도와주라고요. 그날 저도 김 서방과 함께 만나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나요? 나쁜 눈으로 보면 모두가 나쁜 거예요. 검은 눈으로 보면 검게 보이고, 맑은 눈으로 보면 맑게 보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했다.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으려 둘러댔지만, 눈물이 나와 더는 그 자리에 있기가 어려웠다. 비참한 심경이 혹시라도 새어나가지 않도록 나는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외재당숙은 진흥회 회장으로서 내 남편을 사위 삼으려고 애쓰다가 성사가 안 되었기에 그 앙금이 남아 나를 더 안 좋아하신 분이었다. 그 딸 역시 그이를 너무 좋아하여 그이와 결혼하고자 얼마나 애썼던가! 그런데 나를 보자 마음에 두었던 사람을 사위로 삼지 못한 데 대한 생각이 났는지도 모른다.
지성인으로서 정말로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그런 방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물지 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듯한 이 상황으로 인해 내 마음은 또 한 번 아픔을 겪어야 했다. 견딜 수 없이 가슴이 쓰라렸지만,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이 모든 것들을 사랑받은 셈치고 집으로 왔다.
"나쁜 눈으로 보면 모두가 나쁜 거예요.
검은 눈으로 보면 검게 보이고, 맑은 눈으로 보면 맑게 보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엄마의 눈처럼 예쁘고 아름답게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모든 것을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신 엄마를 따라가도록 새롭게 시작할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이 모든 것들을 사랑받은 셈치고 집으로 왔다.”
wlsgodqn님 은총의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묵상 프로젝트 글 올려주심에 너무나도 감사드려요~
wlsgodqn님과 그 가정에 축복이 가득하시고 항상 영육간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3월 첫토 기도회에 꼭 뵈어요~
나주 순례 꾸준히 다니시고 앞으로도 모든 일 잘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거짓 공지문과 PD수첩과 TV 조선의 탐사보도 세븐거짓 방송등으로 마리아의 구원방주에서
내리는 일 없이 예수님과 성모님을 따라서 5대 영성으로 무장하여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어서 빨리 나주성모님 인준과 극심한 고통을 봉헌하시는 율리아 엄마의 빠른 회복과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께서는 율리아 엄마를 33세 로 만들어 주시어 세계 각처에서
메시지와 5대 영성 전파로 모든이가 마리아의 구원방주에 승선하도록 해주소서~
천국에서 계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나주성모님 인준을 위하여 전구해 주소서~
주여 영광과 찬미를 영원히 받으소서~ 성모님 기쁨만 가득하소서~ 아멘! 알렐루야~ ♡♡♡
지성인으로서 정말로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그런 방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물지 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듯한 이 상황으로 인해
내 마음은 또 한 번 아픔을 겪어야 했다. 견딜 수 없이 가슴이 쓰라렸지만,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이 모든 것들을 사랑받은 셈치고 집으로 왔다.아멘!!!
불쌍한 내 어머니를 위하여 내 생을 바치고자 결심을 하고
세상모르고 자고있는 남편을 보니 편안해서 좋아 보였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대책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으니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한없이 허탈하고 막막했다. 밤을 지새우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다. ‘그래, 이제 남은 생애를 나 하나만을 위하여 희생해 오신 불쌍한 어머니를 모시고 내가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 살아보자.
이제까지는 어머니가 나를 위하여 희생하셨지만, 이제는 내가 어머니를 위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하여 희생할 차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지난밤에 썼던 유서는 찢어버리고 다른 내용의 글을 써두었다. ‘주형이 아빠! 미안해요. 우리는 여기까지인가 봐요.’ 마음속으로 그이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 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어머니는 눈치가 아주 빠르신 분이라 나는 태연한 척하며 기회를 봐서 말씀드리려고 했다. 그러나 친정어머니께서는 나를 보자마자 이상한 낌새를 느끼시고는 “어떻게 왔느냐?” 하고 채근하셨다. 그래서 얼른 “김 서방이 수원으로 출장을 가서 그동안 여기에서 좀 있으려고 왔어요.” 했다.
“그래?” 어머니는 내가 어려서부터 그렇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내 말을 믿으신 듯했다. 죽음의 강을 건넜다 돌아온 나는 더 이상 이 버거운 결혼 생활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결정을 내려야 하겠는데 어머니 눈치만 보며 속절없는 시간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속은 타고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큰딸이 “텔레비전 보고 싶어.”라고 하였다. 당시 100여 호가 사는 외가 동네에서 텔레비전을 가지고 있는 집이 딱 한 집 있었다. 밤이 되자 어머니께서는 그 집에 함께 가자고 하셨다. 계속 갈등으로 고민하던 차에 답답했던 나는 두 아이들을 데리고 얼떨결에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그 집은 전에 남편을 자신의 사위로 삼으려고 애썼던 외재당숙의 집이었다. 그 동네에 처음으로 텔레비전이 들어왔을 때라 외재당숙모님들과 동네 아줌마들이 많이 와계셨다. 그런데 어머니 재종 동생인 그 외재당숙이 나를 보자마자 대뜸 기다렸다는 듯 책망하는 투로 말씀하셨다. “김 서방 단속 좀 잘해라.”
“왜 그러셔요?” “남자들이 잘생기면 여자들이 따르는 법이다. 남자들이란 그럴 수가 있는데 호주머니가 가벼워질 수 있어서 말해준다. 지도소에서 소장하고 나하고 둘이 있는데 어떤 여자의 편지가 김 서방한테 왔더라. 그래서 편지를 뜯어보니 토요일에 용다방에서 만나자고 해서 소장하고 둘이 비밀리에 그 편지를 찢어서 태워버렸다.”
나는 흠칫 놀랐지만 더 말씀이 나오시지 않도록 태연스럽게 “예. 외재당숙, 저 그 일 잘 알고 있어요.” 했다. 그런데도 그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생각해 주는 듯 교묘하게 몰아가며 여러 말을 하셨다. 내 결혼 생활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었다. 옆에 계시던 외재당숙모님들과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거기에는 전에 나에게 돈 많은 집에 시집가라고 끈질기게 설득하셨던 분들이 함께 계셨다. 끝까지 그이를 선택했던 내게 화가 나신 여러 어르신들은 두고 보자며 내 선택의 결과를 지켜보고 계셨던 터였다. 그래서 더 부끄럽고 어디론가 숨고만 싶었다. 잉꼬부부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야 말겠노라고 다짐했던 나의 소중한 꿈...
그때 내 소신을 자신했던 나 자신이 초라해 견딜 수 없었다. 고작 텔레비전 때문에 따라나선 것이 너무 후회되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눈물을 머금고 외재당숙에게 “그 아가씨는 제 친구예요, 제가 김 서방에게 부탁했어요. 친구가 일하는 데 가서 좀 도와주라고요. 그날 저도 김 서방과 함께 만나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나요? 나쁜 눈으로 보면 모두가 나쁜 거예요. 검은 눈으로 보면 검게 보이고, 맑은 눈으로 보면 맑게 보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했다.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으려 둘러댔지만, 눈물이 나와 더는 그 자리에 있기가 어려웠다. 비참한 심경이 혹시라도 새어나가지 않도록 나는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외재당숙은 진흥회 회장으로서 내 남편을 사위 삼으려고 애쓰다가 성사가 안 되었기에 그 앙금이 남아 나를 더 안 좋아하신 분이었다. 그 딸 역시 그이를 너무 좋아하여 그이와 결혼하고자 얼마나 애썼던가! 그런데 나를 보자 마음에 두었던 사람을 사위로 삼지 못한 데 대한 생각이 났는지도 모른다.
지성인으로서 정말로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그런 방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물지 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듯한 이 상황으로 인해 내 마음은 또 한 번 아픔을 겪어야 했다. 견딜 수 없이 가슴이 쓰라렸지만,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이 모든 것들을 사랑받은 셈치고 집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