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의원님께 치료를 받은 후 죽음의 고비는 겨우 넘겼지만 건강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그런 데다 시댁 어른들을 따라 억지로 다녀온 점집에서의 충격으로 마음까지 착잡했다. 하지만 나는 가족들에게만큼은 사랑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었기에, 건강한 몸으로 사랑받은 셈치며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모든 의무와 도리를 다하며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이는 갑자기 의형 집에 함께 가서 하룻밤 묵고 오자고 하였다. 고통이 심해 자리에 앉고 일어서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 내가 내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잔다는 것은 정말이지 무리였다. 의형 집에 갈 때마다 밥은 그이 형수를 도와 같이 차렸지만, 뒷정리와 설거지, 청소 등은 내가 다 도맡아왔기 때문이다.
늘 남편의 말에 순종하고 따라주는 나였지만, 이날만은 정말 가서 그 일들을 다 해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조심스레 말했다. “당신 혼자 갔다 오시면 안 될까요?” 하는 말레 그이는 퉁명스레 “아이, 같이 가지.” 했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냈지만 그이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기에 바로 “그럼 그렇게 해요.” 하고 건강한 셈치며 외출할 채비를 했다.
‘빛이 강할수록 그 그림자도 짙다고 했던가? 그이 앞에서 만큼은 미소를 지어 보지만, 뜨거운 햇살 뒤편에 감추어진 그늘을 그이는 과연 짐작이라도 할까? 나에게 따르는 숱한 사연들을 말하지 않았기에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그이만이라도 내 마음을 알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잠시 스쳤다.
그러나 바로 마음을 바꾸어 사랑받은 셈치고, 그이가 내 마음을 다 이해해준 셈치고 봉헌했다. 내가 결혼해서 온몸이 부서지도록 남편과 시집에 베푼 모든 사랑은 누가 알아주길 바라며 베푼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할 도리를 다했으니 그것만으로 만족하려고 내 마음을 다 비웠지 않는가!
미소라는 베일 속에 감추어진 나의 아픔과, 속으로 피흘리는 눈물의 속사정들을 그이는 전혀 몰라본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나는 다정한 배려를 받은 셈치고 봉헌했다. 그렇게 아픈 몸으로 아이들까지 데리고 남의 집에서 지내고 잠을 잔다는 것은 정말 큰 희생이 아닐 수가 없었다. 조금만 움직이려고 해도 온 힘을 다 짜내야 했기에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고통을 감추기 위해 나는 피나는 노력을 했다. 힘든 그 모든 일들을 집에서 편히 쉰 셈치고 봉헌하며 내색하지 않고 어떻게든 다 해냈다. 다음 날 아침, 그 힘든 몸을 이끌고 넓은 마당을 다 쓸고,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할 때였다. 가족들은 모두 다 안방에 있었다. 부엌과 바로 붙어있는 안방에서 의형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만복아! 아파서 비실거리는 저런 마누라 얼른 내보내 버려라. 내가 처녀 장가보내 줄게. 응?”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설마?’ 나는 그대로 얼어붙은 채 숨죽이며 곧이어 나올 남편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침묵만이 흘렀다. 그러자 의형은 더 목청을 더 높였다. “여자가 혼자 옹호받고 커서 저 모양이지.”
머리가 핑 돌고 현기증이 나서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바로 문밖에서 내가 다 듣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 하는 말은 내가 들으라고 일부러 하는 말 같았다. 그런데 남편의 침묵은 무언의 동의처럼 느껴져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홀어미 딸 소리를 듣지 않게 하시려고 평생을 수절하며 나를 엄하게 키우신 내 어머니까지 욕되게 하는 그 말에 보이지 않는 피눈물이 흘렀다.
그때 의형의 고등학생 딸까지 비수를 꽂았다. “저렇게 아픈 딸을 왜 시집보냈을까? 나라면 시집 안 갔지.” 의형은 기다렸다는 듯 또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야.” 나는 마치 그들 앞에서 벌거벗은 채 서 있는 것 같았다. 그이는 그런 말을 듣고도 침묵만을 지켰다. ‘설마 그럼 당신도?’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시댁 어르신들이 나를 쫓아내기 위해 점집에 끌고 간 지가 엊그제인데... 겨우 마음을 추슬러 사랑받은 셈치고 다시 시작해 보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나에게 친척도 아닌 이곳에 와서 또다시 그런 말을 듣게 하다니! 더구나 아내를 향한 비방에 변호는 못 해주더라도 한마디의 말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이의 모습에 이 세상에서 홀로 남겨진 듯했다.
무심코 뱉었을 그들의 말은 간신히 막아둔 둑을 툭 터트리는 방아쇠가 된 기분이었다. 깊은 심연 속에 묻어두었던 지난날의 아픔들이 소용돌이치며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비참함으로 쓰린 가슴을 달래며 사랑의 말을 들은 셈치고 봉헌했다. 그러나 곧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아 더는 그 자리에 있기가 어려웠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그 방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가방을 챙겨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남편에게 “저 먼저 갈게요.” 하고 그 집을 나오는데 뒤따라 나온 그이가 나를 붙잡았다. 마지막으로 처녀 장가를 보내준다는 말에도 침묵했던 그이의 마음을 확실하게 확인해 보고 싶어 뒤따라 나온 남편에게 애써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제 내가 죽더라도 당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이제 건강한 처녀에게 장가갈 수 있으니 안심이에요. 당신은 참 좋은 형님을 두셨네요. 그리고 광주 어머님도 건강한 며느리를 원하셨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정말로 잘되었어요. 이제 나만 없으면 되겠네요.”
남편은 “여보오!~ 당신은 농담으로 한 말 가지고 뭘 그래?” 하고 오히려 나를 타박했다.” “그 말이 농담이라고요?” 씁쓸한 미소 너머로 표현할 길 없는 허탈함이 밀려왔다. 어찌 그것이 농담일 수 있겠는가! 저 심연 속에서 끓어오르는 슬픔으로 참아왔던 이슬방울이 쏟아져 내렸다. 건강하고 평범하게 지내는 사람에겐 농담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치며 죽을 힘을 다해 버텨내고 있는 나에게 그것은 결코 농담일 수 없었다. 무심코 하는 한마디의 말! 그것은 고난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아픔과 상처를 주며 영혼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 단순하게 그냥 “아니야.”라는 말 한마디를 기대했건만, 농담이라니?
돌에 맞은 개구리는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데, 돌을 던지는 아이들은 장난이라고 말하는 격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사랑받은 셈치고 찢기고 피멍 든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오, 아버지 하느님,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힘없이 쓰러지려는 이 딸을 제발 일으켜 세워주소서.’ 멈추지 않는 이슬방울은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아멘 세상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다고 하지만 자기 부인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사는지 조금만 신경써도 알텐데.... '미소라는 베일 속에 감추어진 나의 아픔과, 속으로 피흘리는 눈물의 속사정들을 그이는 전혀 몰라본다'
착한건지, 무능한 건지 도무지 남편을 이해할 수 없다. 더군다나 아이가 둘씩 있는데 처녀 장가라니 의형제라고 말할 수 없는 고약한 사람이다. 설령 남편이 부인에 대한 불만이 있어 가정이 파탄 직전이라도 어찌 이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 같으면 이럴때 어찌 대체했을가? 나는 가만 있지 않았을 거다 남편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으형제를 박살 냈을 것이다. 율리아 엄마의 셈치고, 봉헌하는 5대 영성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처녀 장가보내줄 테니 아픈 마누라 내보내 버려.”
산골 의원님께 치료를 받은 후 죽음의 고비는 겨우 넘겼지만 건강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그런 데다 시댁 어른들을 따라 억지로 다녀온 점집에서의 충격으로 마음까지 착잡했다. 하지만 나는 가족들에게만큼은 사랑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었기에, 건강한 몸으로 사랑받은 셈치며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모든 의무와 도리를 다하며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이는 갑자기 의형 집에 함께 가서 하룻밤 묵고 오자고 하였다. 고통이 심해 자리에 앉고 일어서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 내가 내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잔다는 것은 정말이지 무리였다. 의형 집에 갈 때마다 밥은 그이 형수를 도와 같이 차렸지만, 뒷정리와 설거지, 청소 등은 내가 다 도맡아왔기 때문이다.
늘 남편의 말에 순종하고 따라주는 나였지만, 이날만은 정말 가서 그 일들을 다 해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조심스레 말했다. “당신 혼자 갔다 오시면 안 될까요?” 하는 말레 그이는 퉁명스레 “아이, 같이 가지.” 했다. 나는 어렵게 말을 꺼냈지만 그이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기에 바로 “그럼 그렇게 해요.” 하고 건강한 셈치며 외출할 채비를 했다.
‘빛이 강할수록 그 그림자도 짙다고 했던가? 그이 앞에서 만큼은 미소를 지어 보지만, 뜨거운 햇살 뒤편에 감추어진 그늘을 그이는 과연 짐작이라도 할까? 나에게 따르는 숱한 사연들을 말하지 않았기에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그이만이라도 내 마음을 알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잠시 스쳤다.
그러나 바로 마음을 바꾸어 사랑받은 셈치고, 그이가 내 마음을 다 이해해준 셈치고 봉헌했다. 내가 결혼해서 온몸이 부서지도록 남편과 시집에 베푼 모든 사랑은 누가 알아주길 바라며 베푼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할 도리를 다했으니 그것만으로 만족하려고 내 마음을 다 비웠지 않는가!
미소라는 베일 속에 감추어진 나의 아픔과, 속으로 피흘리는 눈물의 속사정들을 그이는 전혀 몰라본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나는 다정한 배려를 받은 셈치고 봉헌했다. 그렇게 아픈 몸으로 아이들까지 데리고 남의 집에서 지내고 잠을 잔다는 것은 정말 큰 희생이 아닐 수가 없었다. 조금만 움직이려고 해도 온 힘을 다 짜내야 했기에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고통을 감추기 위해 나는 피나는 노력을 했다. 힘든 그 모든 일들을 집에서 편히 쉰 셈치고 봉헌하며 내색하지 않고 어떻게든 다 해냈다. 다음 날 아침, 그 힘든 몸을 이끌고 넓은 마당을 다 쓸고,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할 때였다. 가족들은 모두 다 안방에 있었다. 부엌과 바로 붙어있는 안방에서 의형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만복아! 아파서 비실거리는 저런 마누라 얼른 내보내 버려라. 내가 처녀 장가보내 줄게. 응?”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설마?’ 나는 그대로 얼어붙은 채 숨죽이며 곧이어 나올 남편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침묵만이 흘렀다. 그러자 의형은 더 목청을 더 높였다. “여자가 혼자 옹호받고 커서 저 모양이지.”
머리가 핑 돌고 현기증이 나서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바로 문밖에서 내가 다 듣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 하는 말은 내가 들으라고 일부러 하는 말 같았다. 그런데 남편의 침묵은 무언의 동의처럼 느껴져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홀어미 딸 소리를 듣지 않게 하시려고 평생을 수절하며 나를 엄하게 키우신 내 어머니까지 욕되게 하는 그 말에 보이지 않는 피눈물이 흘렀다.
그때 의형의 고등학생 딸까지 비수를 꽂았다. “저렇게 아픈 딸을 왜 시집보냈을까? 나라면 시집 안 갔지.” 의형은 기다렸다는 듯 또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야.” 나는 마치 그들 앞에서 벌거벗은 채 서 있는 것 같았다. 그이는 그런 말을 듣고도 침묵만을 지켰다. ‘설마 그럼 당신도?’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시댁 어르신들이 나를 쫓아내기 위해 점집에 끌고 간 지가 엊그제인데... 겨우 마음을 추슬러 사랑받은 셈치고 다시 시작해 보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나에게 친척도 아닌 이곳에 와서 또다시 그런 말을 듣게 하다니! 더구나 아내를 향한 비방에 변호는 못 해주더라도 한마디의 말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이의 모습에 이 세상에서 홀로 남겨진 듯했다.
무심코 뱉었을 그들의 말은 간신히 막아둔 둑을 툭 터트리는 방아쇠가 된 기분이었다. 깊은 심연 속에 묻어두었던 지난날의 아픔들이 소용돌이치며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비참함으로 쓰린 가슴을 달래며 사랑의 말을 들은 셈치고 봉헌했다. 그러나 곧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아 더는 그 자리에 있기가 어려웠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그 방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가방을 챙겨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남편에게 “저 먼저 갈게요.” 하고 그 집을 나오는데 뒤따라 나온 그이가 나를 붙잡았다. 마지막으로 처녀 장가를 보내준다는 말에도 침묵했던 그이의 마음을 확실하게 확인해 보고 싶어 뒤따라 나온 남편에게 애써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제 내가 죽더라도 당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이제 건강한 처녀에게 장가갈 수 있으니 안심이에요. 당신은 참 좋은 형님을 두셨네요. 그리고 광주 어머님도 건강한 며느리를 원하셨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정말로 잘되었어요. 이제 나만 없으면 되겠네요.”
남편은 “여보오!~ 당신은 농담으로 한 말 가지고 뭘 그래?” 하고 오히려 나를 타박했다.” “그 말이 농담이라고요?” 씁쓸한 미소 너머로 표현할 길 없는 허탈함이 밀려왔다. 어찌 그것이 농담일 수 있겠는가! 저 심연 속에서 끓어오르는 슬픔으로 참아왔던 이슬방울이 쏟아져 내렸다. 건강하고 평범하게 지내는 사람에겐 농담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치며 죽을 힘을 다해 버텨내고 있는 나에게 그것은 결코 농담일 수 없었다. 무심코 하는 한마디의 말! 그것은 고난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아픔과 상처를 주며 영혼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 단순하게 그냥 “아니야.”라는 말 한마디를 기대했건만, 농담이라니?
돌에 맞은 개구리는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데, 돌을 던지는 아이들은 장난이라고 말하는 격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사랑받은 셈치고 찢기고 피멍 든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오, 아버지 하느님,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힘없이 쓰러지려는 이 딸을 제발 일으켜 세워주소서.’ 멈추지 않는 이슬방울은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