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에게 예쁜 옷을 사입히고 싶었지만 형편이 어려워서 마음대로 많은 옷을 사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외출복은 사입히고, 폐품을 이용하여 예쁜 옷을 손수 만들어 아이들에게 입히곤 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소중한 내 아이들에게 남의 아이들이 입던 옷은 절대로 입히고 싶지 않았다.
돈이 없어 뜨개실을 살 수 없으니 입지 않을 헌 스웨터들을 모아 먼저 깨끗이 세탁했다. 그다음, 연탄불 위에 주전자를 올리고 물을 부어 끓도록 놔둔 후, 세탁한 스웨터를 한 올 한 올 분리해서 털실을 풀었다. 그리고 끓을 때 넣으면 델 수 있기 때문에 물이 끓기 전에 뚜껑을 열고 털실을 주전자 안의 물이 닿지 않도록 넣어 주둥이로 빼준다.
뚜껑으로 눌러 주면서 꼬불꼬불한 실을 주둥이로 서서히 잡아당기면 뜨거운 김에 실이 다 펴졌다. 헌 스웨터가 새 뜨개실이 되는 것이다. 나는 실을 정성껏 펴면서 이렇게 염원했다. ‘라면보다 더 꼬불거리는 이 실들이 뜨거운 김에 펴지는 것처럼 사람들의 구부러지고 옥죄인 마음까지도 이렇게 곧게 펴지게 해주세요.’ 그러면 꼬불꼬불 심하게 오그라졌던 털실도 어느새 새것처럼 말끔하고 곧게 펴졌다.
그럴 때면 내가 봉헌한 사람들의 옥죄이고 뒤틀린 마음까지 다 펴진 것처럼 너무너무 기뻤다. 그렇게 만든 털실로 편물 하면서 배웠던 기술을 살려 예쁜 옷을 만들었다. 한 코 한 코 지나갈 때마다 아이뿐만 아니라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았다. 그러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엄마표 스웨터가 탄생했다.
이렇게 폐품 활용으로 예쁜 옷을 아이들에게 입힐 수 있게 되면 참 흐뭇했다. 그러던 어느 날, 광주 시댁에 갔을 때 양복점을 하는 넷째 시동생에게 물었다. “삼촌, 양복점 하면서 자투리 천들이 많이 나오나요?” “예, 형수님. 많이 나오지요.”
“그것들을 쓸 데가 있나요?” “아니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버려요.” “그럼 그 버릴 천들을 나 줄 수 있어요?” “그럼요. 가지고 올게요.” 시동생은 천들을 모아서 나에게 주었다. 가져온 조각 천들을 살펴보니 겨울에 사용하는 두껍고 값비싼 고급 양털 조각 같은 것들도 꽤 많이 있었다.
나는 양장을 배워보지 않았지만 그것을 한 장 한 장 펴서 조각을 잘 맞춰 예술 감각을 발휘했다. 그때는 하느님을 잘 몰랐을 때라, 한 장 한 장 맞추어 꿰매면서 ‘하느님, 부처님, 용왕님.’하고 다 속으로 부르면서 염원했다.
‘저 비록 돈이 없어, 버려질 천들을 모아 옷을 만들고 있지만, 제 간절한 바람만은 꼭 들어주셔요. 이렇게 천이 다른 것처럼 우리 인간도 모두가 다릅니다. 함께 살아가야 할 가족들이나 만나는 모두가 서로 다 다를지라도 이렇게 모여 하나로 일치를 이루면 좋겠어요.’
나는 좋은 옷감으로 만든 셈 치고 조끼와 코트를 만들었는데 아주 근사한 코트가 탄생했다. 그렇게 만든 코트를 큰딸에게 입혀 밖에 나가니 “세상에 이런 좋은 옷이 어디 있었어? 어디서 산 거야?” 하며 보는 사람마다 다 감탄하고 부러워했다.
당시 외제라고 하면 다들 좋아하니까 실제 월남에 다녀왔던 우리 둘째 시동생을 떠올리며 “시동생이 월남 갔다 오면서 사다 줬어요.”하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러면 그렇지. 이런 좋은 옷이 한국에 있을 리가 없지!” 하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인정해주니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순간 가슴 한 켠에 묻어두었던 꿈이 떠올랐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되고팠던 법관. 나는 비록 그 꿈을 이룰 수 없을지라도 공부를 잘했던 다섯째 시동생만큼은 꼭 서울대 법학과에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뒷바라지는 내가 다 할 테니 돈 걱정은 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다섯째 시동생뿐만 아니라 그 밑의 두 시동생들 대학 등록금이나 학자금도 융자를 받아 납부하고 그 이자와 원금까지도 매월 갚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매번 시어머니 돈 대드리랴, 시부모님 빚보증 서신 것 갚으랴, 시부모님 빚 갚으랴, 나는 단 한 순간도 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더 희생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다섯째 시동생은 꼭 법관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시동생이 훌륭한 법관이 되어 힘없고 돈 없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내가 아무리 고생한다 해도 더할 나위 없이 값진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코트를 만들어본 일을 계기로 나는 새로운 부업에 도전했다.
고급 자개를 만들고 나오는 폐자개들을 아주 싼값으로 사다가 골동품 자개에 붙이는 장식을 만들어 근사한 작품으로 재탄생 시키는 일이었다. 나는 그 작업을 즐겨 하기 시작했다. 골동품 자개 일은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한 아주 고된 작업이었지만 예술성이 높고, 작품이 정교하면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남들은 똑같은 폐품 자개도 쓰기 좋은 것만을 골라서 만들고 버렸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가루가 된 것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종이에 풀을 발라 그 위에 모양을 내며 자개 가루를 잘 뿌려 은하수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놓으니 골동품 자개를 사 가는 분들이 보고 너무 아름답다고 다들 놀랐다.
처음 접하신 분은 내 작품을 다른 이들 작품의 3배 이상의 돈을 쳐 주면서 “많이만 만들어 줘요. 그리고 그 작품은 나한테만 주기에요?” 하고 부탁했다. 그렇게 내 작품은 그들이 비싸게 값을 매겼어도 없어서 구매를 못 하는 작품이 되었다. 원하는 수량이 너무 많아 밤을 새워서 해도 그 많은 수요를 다 해낼 수가 없었다.
수요량 자체가 많기도 했지만 우량아였던 세 살 된 둘째 아이가 자개의 잔 조각을 밟아 행여라도 발을 찔리게 될까 봐 그 큰 아이를 업고 일하다 보니 능률이 오르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버려질 수밖에 없는 폐품 자개들이 모두가 감탄하고 원하는 멋진 작품으로 탄생했다.
버려질 물건을 멋진 새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이 기쁨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나는 긍지를 가지게 되어 “나는 할 수 있다.”하고 속으로 외치며 순간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밤새도록 숙이고 일했던 목과 허리와 욱신거리는 다리 통증까지도 싹 가실 정도로 흐뭇하고 뿌듯하여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지곤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여러모로 폐품 이용을 굉장히 잘해서 상을 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스물두 살에 출전했던 4-H 경진대회 연시도 그랬다. 그 또한 폐품의 재탄생이었다. 즉 명주실을 뽑을 수 없는 옥견(쌍고치)을 이용해 직면 만들기를 한 폐품 활용의 한 가지였던 것이다.
물에 소다를 섞어 쌍고치를 넣어 끓인 뒤 꺼내어 양 엄지와 검지로 늘려 보드라운 명주솜을 만들어내는 작품인데 도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 나는 타올 한 장조차도 사서 쓰지 못했지만 남편이 직장에서 선물 받은 것들을 활용하면서 갖고 싶은 예쁜 타올을 쓴 셈치고 봉헌하니 기쁠 수가 있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수건으로 쓰기도 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아이들 옷을 꾸며 수를 놓아 작품을 만들어내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청승맞게 보일 수도 있지만, 바로 그 폐품 이용이야말로 한 영혼도 버려지지 않길 바라시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아니었던가!
내가 죽음에서 살아나 다시 미용을 시작하여 전국 경연 대회에서 최우수 금상까지 타고 돈을 벌 때도 그랬다. 그 당시 양동시장에서 매월 1일 날이면 다 팔리지 않는 옷들을 헐값에 내놓았다. 나는 그날을 기다려 백화점에서 좋은 옷을 산 셈치고 천 원, 이천 원에 위아래 옷을 사 입었다.
그뿐인가! 코트도 삼천 원짜리를 사 입어도 사람들은 몇만 원 주고 맞춰 입은 옷이라고 생각했다. 그것 또한 늘 폐품을 이용하는 마음으로 했는데 주위 사람 모두에게는 최고의 옷으로 보인 것이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그 좋은 옷을 어디서 맞췄어?”라고 물으면 “충장로에서 맞췄어.”하고 말했는데 “그러면 그렇지. 어쩐지 잘 나왔더라!” 했다.
이렇게 나는 팔리지 못한 옷들을 싼값에 사 입으면서 나머지 돈으로 어려운 이들을 남모르게 돕는 애긍을 해왔다. 나는 어려서부터 모든 것을 그냥 버리지 않았다. 남들이 쉽게 버리는 것들조차도 남김없이 모두 재활용하며 살아왔다.
그 어느 한 가지도 버리지 않고 모든 것이 쓰여지길 바랐던 간절한 마음. 그래서 버려질 것이 새롭게 다시 쓰이며 아름다운 작품이 되기까지 하는 것은 비할 데 없는 큰 기쁨이기에 폐품 이용을 그렇게 좋아했던 것이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니 내 삶은 어린 시절부터 그 어떤 것도 버려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애써왔던 시간의 연속이었으니 이 또한 단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예비하심이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편집자 주:
작은 영혼이 어릴 때부터 생활 속에서 실천해 왔던 버려질 폐품의 활용은 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쓰레기로 버려질 것들을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쓰일 물건과 음식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은 그것들의 고유한 쓰임새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부활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주에 발현하신 예수님과 성모님은 세상의 모든 자녀가 율리아님처럼 작은영혼이 되어 천국에 오르기를 바라신다. 작은 영혼이 버려질 폐품들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유용한 물건들로 만들었던 것은 지옥의 맨 끝자락까지 끌려갈 영혼들까지 구원하고자 하신 예수님과 성모님의 원대하신 계획이셨으리라.
예수님과 성모님은 작은영혼 율리아님의 고통과 사랑과 실천적 삶을 통해 연옥도 거치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는 5대 영성을 완성하셨으니 폐품 재활용을 통한 부활은, 숨겨진 영혼들의 쓰레기들을 예수님과 성모님의 불타오르는 성심의 불로 태워 모두를 부활시키고자 하신 주님과 성모님의 구원 계획과 심오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던 것이리라 묵상해본다.
물건을 재활용하고 버려질 음식을 버리지 않고 재탄생하여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일은 정말 뜻깊고 보람차고 기쁜 일인것 같아요~
정말 그 기쁨과 환희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요..
단 한 영혼이라도 버려지길 원하지 않으시고 회개하고 치유받아 구원받길 원하시는
하느님의 원의를 채워드리는 삶을 미리 살아오셨네요~!
물건이 새로운 작품으로 태어나면 그렇게 기쁠진데, 하느님께서는 죄인이 회개하여 돌아오면
얼마나 기쁘실지 감히 실감하고 느끼게 됩니다.
너무도 소중한 체험과 일화들을 기억해내어 상세히 기술해 주심에 너무 감사드려요. 아멘~!
정말 엄마는 못하는게 없으셨네요! 아무리 폐품 활용을 한다고 해도
예술적 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는지
넘 놀랍습니다! 사진으로만 봐도 참 아름다운데 실제로는 얼마나 근사한 작품이었을까요!
아가 옷도 너무너무~~~~~ 예쁘고... 자개 작품도 너무 멋집니다!👍👍👍
저는 엄마의 삶이 시련과 셈치고의 연속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것도 이미 너무 엄청난데...
이렇게 폐품 활용하시며 버려지지 않도록 노력을 하신
시간의 연속이기도 하셨군요. 엄마의 삶은 정말 위대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엄마 한 분이 다 겪어내오셨다는 것도 너무 놀라워요!
그리고 '생활의 기도' 이 단어만 모르셨지 이미 생활의 기도를
실천해오셨던 엄마! 저도 더욱 마음을 활짝 열고... 생활의 기도
지금보다 더욱 자주 실천하는 영혼 될게요! 그 어떤 것도 버려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애써오셨던 엄마의 삶을 따라서 이 부족한 죄인도 더욱 노력해볼게요!
무지무지 사랑해요~!🥰🥰🥰
감히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걸 우리는 보고 또 배우고 읽히고
있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울 뿐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철저하게 노력하며 살아 오셨는지 갈수록
놀랍고 엄마삶이 무한정 이라는걸 이렇게 보고있는 우리들..
제가 제일 잘한것이 나주성모님을 알고 엄마를 알았다는것..
세상에서 제일 복되고 남들이 알수없는 복을 차지했지요..
엄마만 보면 어디에서 나는 힘인지 기쁨이 솟아 오릅니다..
엄마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함께해 주세요~~!!
무지무지 사랑합니다💖💖💖
나주에 발현하신 예수님과 성모님은 세상의 모든 자녀가
율리아님처럼 작은영혼이 되어 천국에 오르기를 바라신다.
작은 영혼이 버려질 폐품들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유용한 물건들로 만들었던 것은 지옥의 맨 끝자락까지 끌려갈
영혼들까지 구원하고자 하신 예수님과 성모님의 원대하신 계획
이셨으리라. 아멘!!!아멘!!!아멘!!! 감사합니다
나주에 발현하신 예수님과 성모님은 세상의 모든 자녀가 율리아님처럼 작은영혼이 되어 천국에 오르기를
바라신다. 작은 영혼이 버려질 폐품들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유용한 물건들로 만들었던 것은
지옥의 맨 끝자락까지 끌려갈 영혼들까지 구원하고자 하신 예수님과 성모님의 원대하신 계획이셨으리라.
예수님과 성모님은 작은영혼 율리아님의 고통과 사랑과 실천적 삶을 통해 연옥도 거치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는 5대 영성을 완성하셨으니 폐품 재활용을 통한 부활은, 숨겨진 영혼들의 쓰레기들을
예수님과 성모님의 불타오르는 성심의 불로 태워 모두를 부활시키고자 하신 주님과 성모님의 구원 계획과
심오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던 것이리라 묵상해본다..아멘!!!
과거에는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졌던 경험이
없었기에 연구하고 노력하여 멋진 결과물을 내는 요즘 일화들이 참 좋아요.
이번 일화에서 엄마께서 부활시키셨던 멋진 작품들에 감탄했습니다. 남들은 쉽게 버리고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들을 그냥 넘기지 않고 그 어느 한 가지도 버리지 않고 쓰여지길 바랐던
간절한 마음이 남들이 보기에도 정말 멋진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일화를 보면서
아니, 어떻게 그렇게 모든 일을 다 하면서 자투리 천으로 아이들 옷을 만들어 입히고 수를 놓고
골동품 자개까지 만들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없고 할 일이 많으면 타협할 만도 한데 뭐 하나
버려지지 않으면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엄마는 노력과 희생으로 매 순간을 값지게 채워나가는 것 같습니다.
무엇하나 보잘 것 없이 여기지 않는 마음이 이웃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발전되는
것 같습니다. 저의 삶도 그렇게 변화되길 기도합니다. 이웃도 물건도 더 소중하게 생각하며
영혼 구원을 위해 엄마처럼 힘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멘!
폐품을 활용해 재탄생한 멋진 작품들
우리 아이들에게 예쁜 옷을 사입히고 싶었지만 형편이 어려워서 마음대로 많은 옷을 사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외출복은 사입히고, 폐품을 이용하여 예쁜 옷을 손수 만들어 아이들에게 입히곤 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소중한 내 아이들에게 남의 아이들이 입던 옷은 절대로 입히고 싶지 않았다.
돈이 없어 뜨개실을 살 수 없으니 입지 않을 헌 스웨터들을 모아 먼저 깨끗이 세탁했다. 그다음, 연탄불 위에 주전자를 올리고 물을 부어 끓도록 놔둔 후, 세탁한 스웨터를 한 올 한 올 분리해서 털실을 풀었다. 그리고 끓을 때 넣으면 델 수 있기 때문에 물이 끓기 전에 뚜껑을 열고 털실을 주전자 안의 물이 닿지 않도록 넣어 주둥이로 빼준다.
뚜껑으로 눌러 주면서 꼬불꼬불한 실을 주둥이로 서서히 잡아당기면 뜨거운 김에 실이 다 펴졌다. 헌 스웨터가 새 뜨개실이 되는 것이다. 나는 실을 정성껏 펴면서 이렇게 염원했다. ‘라면보다 더 꼬불거리는 이 실들이 뜨거운 김에 펴지는 것처럼 사람들의 구부러지고 옥죄인 마음까지도 이렇게 곧게 펴지게 해주세요.’ 그러면 꼬불꼬불 심하게 오그라졌던 털실도 어느새 새것처럼 말끔하고 곧게 펴졌다.
그럴 때면 내가 봉헌한 사람들의 옥죄이고 뒤틀린 마음까지 다 펴진 것처럼 너무너무 기뻤다. 그렇게 만든 털실로 편물 하면서 배웠던 기술을 살려 예쁜 옷을 만들었다. 한 코 한 코 지나갈 때마다 아이뿐만 아니라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았다. 그러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엄마표 스웨터가 탄생했다.
이렇게 폐품 활용으로 예쁜 옷을 아이들에게 입힐 수 있게 되면 참 흐뭇했다. 그러던 어느 날, 광주 시댁에 갔을 때 양복점을 하는 넷째 시동생에게 물었다. “삼촌, 양복점 하면서 자투리 천들이 많이 나오나요?” “예, 형수님. 많이 나오지요.”
“그것들을 쓸 데가 있나요?” “아니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버려요.” “그럼 그 버릴 천들을 나 줄 수 있어요?” “그럼요. 가지고 올게요.” 시동생은 천들을 모아서 나에게 주었다. 가져온 조각 천들을 살펴보니 겨울에 사용하는 두껍고 값비싼 고급 양털 조각 같은 것들도 꽤 많이 있었다.
나는 양장을 배워보지 않았지만 그것을 한 장 한 장 펴서 조각을 잘 맞춰 예술 감각을 발휘했다. 그때는 하느님을 잘 몰랐을 때라, 한 장 한 장 맞추어 꿰매면서 ‘하느님, 부처님, 용왕님.’하고 다 속으로 부르면서 염원했다.
‘저 비록 돈이 없어, 버려질 천들을 모아 옷을 만들고 있지만, 제 간절한 바람만은 꼭 들어주셔요. 이렇게 천이 다른 것처럼 우리 인간도 모두가 다릅니다. 함께 살아가야 할 가족들이나 만나는 모두가 서로 다 다를지라도 이렇게 모여 하나로 일치를 이루면 좋겠어요.’
나는 좋은 옷감으로 만든 셈 치고 조끼와 코트를 만들었는데 아주 근사한 코트가 탄생했다. 그렇게 만든 코트를 큰딸에게 입혀 밖에 나가니 “세상에 이런 좋은 옷이 어디 있었어? 어디서 산 거야?” 하며 보는 사람마다 다 감탄하고 부러워했다.
당시 외제라고 하면 다들 좋아하니까 실제 월남에 다녀왔던 우리 둘째 시동생을 떠올리며 “시동생이 월남 갔다 오면서 사다 줬어요.”하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러면 그렇지. 이런 좋은 옷이 한국에 있을 리가 없지!” 하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인정해주니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순간 가슴 한 켠에 묻어두었던 꿈이 떠올랐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되고팠던 법관. 나는 비록 그 꿈을 이룰 수 없을지라도 공부를 잘했던 다섯째 시동생만큼은 꼭 서울대 법학과에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뒷바라지는 내가 다 할 테니 돈 걱정은 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다섯째 시동생뿐만 아니라 그 밑의 두 시동생들 대학 등록금이나 학자금도 융자를 받아 납부하고 그 이자와 원금까지도 매월 갚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매번 시어머니 돈 대드리랴, 시부모님 빚보증 서신 것 갚으랴, 시부모님 빚 갚으랴, 나는 단 한 순간도 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더 희생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다섯째 시동생은 꼭 법관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시동생이 훌륭한 법관이 되어 힘없고 돈 없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내가 아무리 고생한다 해도 더할 나위 없이 값진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코트를 만들어본 일을 계기로 나는 새로운 부업에 도전했다.
고급 자개를 만들고 나오는 폐자개들을 아주 싼값으로 사다가 골동품 자개에 붙이는 장식을 만들어 근사한 작품으로 재탄생 시키는 일이었다. 나는 그 작업을 즐겨 하기 시작했다. 골동품 자개 일은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한 아주 고된 작업이었지만 예술성이 높고, 작품이 정교하면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남들은 똑같은 폐품 자개도 쓰기 좋은 것만을 골라서 만들고 버렸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가루가 된 것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종이에 풀을 발라 그 위에 모양을 내며 자개 가루를 잘 뿌려 은하수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놓으니 골동품 자개를 사 가는 분들이 보고 너무 아름답다고 다들 놀랐다.
처음 접하신 분은 내 작품을 다른 이들 작품의 3배 이상의 돈을 쳐 주면서 “많이만 만들어 줘요. 그리고 그 작품은 나한테만 주기에요?” 하고 부탁했다. 그렇게 내 작품은 그들이 비싸게 값을 매겼어도 없어서 구매를 못 하는 작품이 되었다. 원하는 수량이 너무 많아 밤을 새워서 해도 그 많은 수요를 다 해낼 수가 없었다.
수요량 자체가 많기도 했지만 우량아였던 세 살 된 둘째 아이가 자개의 잔 조각을 밟아 행여라도 발을 찔리게 될까 봐 그 큰 아이를 업고 일하다 보니 능률이 오르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버려질 수밖에 없는 폐품 자개들이 모두가 감탄하고 원하는 멋진 작품으로 탄생했다.
버려질 물건을 멋진 새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이 기쁨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나는 긍지를 가지게 되어 “나는 할 수 있다.”하고 속으로 외치며 순간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밤새도록 숙이고 일했던 목과 허리와 욱신거리는 다리 통증까지도 싹 가실 정도로 흐뭇하고 뿌듯하여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지곤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여러모로 폐품 이용을 굉장히 잘해서 상을 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스물두 살에 출전했던 4-H 경진대회 연시도 그랬다. 그 또한 폐품의 재탄생이었다. 즉 명주실을 뽑을 수 없는 옥견(쌍고치)을 이용해 직면 만들기를 한 폐품 활용의 한 가지였던 것이다.
물에 소다를 섞어 쌍고치를 넣어 끓인 뒤 꺼내어 양 엄지와 검지로 늘려 보드라운 명주솜을 만들어내는 작품인데 도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 나는 타올 한 장조차도 사서 쓰지 못했지만 남편이 직장에서 선물 받은 것들을 활용하면서 갖고 싶은 예쁜 타올을 쓴 셈치고 봉헌하니 기쁠 수가 있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수건으로 쓰기도 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아이들 옷을 꾸며 수를 놓아 작품을 만들어내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청승맞게 보일 수도 있지만, 바로 그 폐품 이용이야말로 한 영혼도 버려지지 않길 바라시는 주님과 성모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아니었던가!
내가 죽음에서 살아나 다시 미용을 시작하여 전국 경연 대회에서 최우수 금상까지 타고 돈을 벌 때도 그랬다. 그 당시 양동시장에서 매월 1일 날이면 다 팔리지 않는 옷들을 헐값에 내놓았다. 나는 그날을 기다려 백화점에서 좋은 옷을 산 셈치고 천 원, 이천 원에 위아래 옷을 사 입었다.
그뿐인가! 코트도 삼천 원짜리를 사 입어도 사람들은 몇만 원 주고 맞춰 입은 옷이라고 생각했다. 그것 또한 늘 폐품을 이용하는 마음으로 했는데 주위 사람 모두에게는 최고의 옷으로 보인 것이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그 좋은 옷을 어디서 맞췄어?”라고 물으면 “충장로에서 맞췄어.”하고 말했는데 “그러면 그렇지. 어쩐지 잘 나왔더라!” 했다.
이렇게 나는 팔리지 못한 옷들을 싼값에 사 입으면서 나머지 돈으로 어려운 이들을 남모르게 돕는 애긍을 해왔다. 나는 어려서부터 모든 것을 그냥 버리지 않았다. 남들이 쉽게 버리는 것들조차도 남김없이 모두 재활용하며 살아왔다.
그 어느 한 가지도 버리지 않고 모든 것이 쓰여지길 바랐던 간절한 마음. 그래서 버려질 것이 새롭게 다시 쓰이며 아름다운 작품이 되기까지 하는 것은 비할 데 없는 큰 기쁨이기에 폐품 이용을 그렇게 좋아했던 것이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니 내 삶은 어린 시절부터 그 어떤 것도 버려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애써왔던 시간의 연속이었으니 이 또한 단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예비하심이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편집자 주:
작은 영혼이 어릴 때부터 생활 속에서 실천해 왔던 버려질 폐품의 활용은 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쓰레기로 버려질 것들을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쓰일 물건과 음식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은 그것들의 고유한 쓰임새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부활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주에 발현하신 예수님과 성모님은 세상의 모든 자녀가 율리아님처럼 작은영혼이 되어 천국에 오르기를 바라신다. 작은 영혼이 버려질 폐품들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유용한 물건들로 만들었던 것은 지옥의 맨 끝자락까지 끌려갈 영혼들까지 구원하고자 하신 예수님과 성모님의 원대하신 계획이셨으리라.
예수님과 성모님은 작은영혼 율리아님의 고통과 사랑과 실천적 삶을 통해 연옥도 거치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는 5대 영성을 완성하셨으니 폐품 재활용을 통한 부활은, 숨겨진 영혼들의 쓰레기들을 예수님과 성모님의 불타오르는 성심의 불로 태워 모두를 부활시키고자 하신 주님과 성모님의 구원 계획과 심오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던 것이리라 묵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