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이 글이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성모님께는 위로가 되며 읽는
모두에게는 사랑의 꽃을 피워 성령의 열매 맺게 해 주시고
엄마께는 힘이 되게 하소서. 아멘!!!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인천 지부 이보순 실비아님 은총 증언입니다.
지난날 일들이 율리아 엄마의 말씀들을 통하여
회개하게 되는 은총을 주셨습니다.
언젠가 아버지 집에 갔는데 “큰 딸아! 하룻밤만 더 자고 가면 안 되겠냐?”
그래서 “아버지 나 월차 내고 와서 안 돼요. 가야 돼요.” 그랬어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하룻밤만 더 자라.” 자꾸 그러더라고요.
근데 그걸 거절을 하고 왔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근데 그게 두고두고 후회가 되고 두고두고 원망이 되니까
아버지 안고 한 번 ‘사랑해요.’ 소리도 한 번도 못 한 게
너무나 후회되더라고요.
하룻밤만 더 잤으면 아버지가 저한테 무슨 말씀을 했을텐데
못 들은 게 후회가 되고 아버지도
저한테 하고 싶은 말 못 한 것이 마음 아프실 테고
그래서 아버지를 위해서 이제 기도를 한다고 하는데도
그게 잘 안 될 때가 많아요.
부모님이 계신 분은 한 번쯤은 안으면서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한 번만이라도 하시면 저처럼 나중에 후회는 안 할것 같아요.
그렇게 못한 것이 너무 후회될 줄은 정말로 몰랐어요.
40년 즈음? 저는 계모 밑에서 크다가 7살 때 오촌들 집 가서
‘고구마를 캐와라’ 시키는 대로 남의 고구마를 꼭 캐 갖고 와요.
시켜서 케온 고구마지만 나중에 생각나서 고백성사를 보았어요.
결혼 후 애들 키우면서 말 안 듣고 할 때 때려도 야단친다 생각했지
구타라고 생각을 하지도 않았어요.
어느날 ‘일어나서 기도하라.’ 느낌을 받고 묵주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 생각이 나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이제 애 둘 만나면 사과하렵니다. 제가 어릴 때 상처도 많이 받고
매를 안 맞으면 잠을 못 잘 정도로 그렇게 매를 많이 맞았어요.
그러면서 부모님을 원망하고 친구도 원망을 많이 하고 ...
제 삶에 너무 힘들고 고달퍼서 죽으려고도 많이 애썼는데 죽음 직전에 가면
하느님을 안 믿었는데 나도 모르게 하느님을 찾더라고요.
물에 빠져서 허덕거리다가도 어디 뒹굴어서도 넘어져서 물속에 들어가서도
엄마 아버지 찾고 이렇게 살았는데...
모진 제 삶은 방에서 자면 마루 있고, 어떤 날은 마당에 있고
어떤 날은 행길가에 있고, 어떤 날은 뱀이 많이 나오는 곳에 있고
계모가 나를 죽이려 했지만 하느님 도움으로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결국 못살고 오촌들 집에 가서 사는데
호미든 낫이든 몽둥이든 뭐든 때리면 맞았고 밭을 매다 두들겨 맞고
추워서 보면 이불을 다 가져가 떨었던 어린 시절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몇십 년이 흘렸지만 오촌들 자식은 다 공부를 가르쳤지만 저는 안 가르쳤어요.
나물, 다슬기 잡아 팔아도 용돈을 한 번을 안 줘도 원망 안 했어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고 그렇게 살아야 되나 보다 하고 이렇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이제 오촌들 집에 더 살면 안 될 거 같아 열일곱 살 때
도망을 나와 두 번이나 다시 잡혀 매 맞고 세 번째는 아버지 집 있는
40리 길 걸어가서 오촌집에 가라고 하지 말기를 당부했어요.
결혼 후에도 못 배웠으니 구박해도 그러려니 하고 살았어요.
그러다 나주 순례를 다닐 때
어느 날 율리아 자매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용서를 해라. 용서를 해라” 그랬는데 저하고 율리아님하고 눈이 마주쳤어요.
그후 어린 날 상처들 율리아님 말씀으로 더 치유받아 마음도 편해집니다.
저도 변화되어서 나주 다녀오면
남편이 먼저 하는 말이 "율리아 자매님 오늘도 나오셨어” '네 나왔어요.'
그 두 번째 하는 말은 저 보고 ‘잘 갔다 왔어?’ 이게 두 번째 인사예요.
남편 사도 요한도 나주로 불러주시길 기도 부탁드리며
상처 많은 저를 치유해 주신 엄마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것 주님과 성모님께 영광 돌려드립니다.
주님! 이 글이 주님께는 영광이 되고 성모님께는 위로가 되며 읽는
모두에게는 사랑의 꽃을 피워 성령의 열매 맺게 해 주시고
엄마께는 힘이 되게 하소서. 아멘!!!
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인천 지부 이보순 실비아님 은총 증언입니다.
지난날 일들이 율리아 엄마의 말씀들을 통하여
회개하게 되는 은총을 주셨습니다.
언젠가 아버지 집에 갔는데 “큰 딸아! 하룻밤만 더 자고 가면 안 되겠냐?”
그래서 “아버지 나 월차 내고 와서 안 돼요. 가야 돼요.” 그랬어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하룻밤만 더 자라.” 자꾸 그러더라고요.
근데 그걸 거절을 하고 왔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근데 그게 두고두고 후회가 되고 두고두고 원망이 되니까
아버지 안고 한 번 ‘사랑해요.’ 소리도 한 번도 못 한 게
너무나 후회되더라고요.
하룻밤만 더 잤으면 아버지가 저한테 무슨 말씀을 했을텐데
못 들은 게 후회가 되고 아버지도
저한테 하고 싶은 말 못 한 것이 마음 아프실 테고
그래서 아버지를 위해서 이제 기도를 한다고 하는데도
그게 잘 안 될 때가 많아요.
부모님이 계신 분은 한 번쯤은 안으면서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한 번만이라도 하시면 저처럼 나중에 후회는 안 할것 같아요.
그렇게 못한 것이 너무 후회될 줄은 정말로 몰랐어요.
40년 즈음? 저는 계모 밑에서 크다가 7살 때 오촌들 집 가서
‘고구마를 캐와라’ 시키는 대로 남의 고구마를 꼭 캐 갖고 와요.
시켜서 케온 고구마지만 나중에 생각나서 고백성사를 보았어요.
결혼 후 애들 키우면서 말 안 듣고 할 때 때려도 야단친다 생각했지
구타라고 생각을 하지도 않았어요.
어느날 ‘일어나서 기도하라.’ 느낌을 받고 묵주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 생각이 나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이제 애 둘 만나면 사과하렵니다. 제가 어릴 때 상처도 많이 받고
매를 안 맞으면 잠을 못 잘 정도로 그렇게 매를 많이 맞았어요.
그러면서 부모님을 원망하고 친구도 원망을 많이 하고 ...
제 삶에 너무 힘들고 고달퍼서 죽으려고도 많이 애썼는데 죽음 직전에 가면
하느님을 안 믿었는데 나도 모르게 하느님을 찾더라고요.
물에 빠져서 허덕거리다가도 어디 뒹굴어서도 넘어져서 물속에 들어가서도
엄마 아버지 찾고 이렇게 살았는데...
모진 제 삶은 방에서 자면 마루 있고, 어떤 날은 마당에 있고
어떤 날은 행길가에 있고, 어떤 날은 뱀이 많이 나오는 곳에 있고
계모가 나를 죽이려 했지만 하느님 도움으로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결국 못살고 오촌들 집에 가서 사는데
호미든 낫이든 몽둥이든 뭐든 때리면 맞았고 밭을 매다 두들겨 맞고
추워서 보면 이불을 다 가져가 떨었던 어린 시절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몇십 년이 흘렸지만 오촌들 자식은 다 공부를 가르쳤지만 저는 안 가르쳤어요.
나물, 다슬기 잡아 팔아도 용돈을 한 번을 안 줘도 원망 안 했어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고 그렇게 살아야 되나 보다 하고 이렇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이제 오촌들 집에 더 살면 안 될 거 같아 열일곱 살 때
도망을 나와 두 번이나 다시 잡혀 매 맞고 세 번째는 아버지 집 있는
40리 길 걸어가서 오촌집에 가라고 하지 말기를 당부했어요.
결혼 후에도 못 배웠으니 구박해도 그러려니 하고 살았어요.
그러다 나주 순례를 다닐 때
어느 날 율리아 자매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용서를 해라. 용서를 해라” 그랬는데 저하고 율리아님하고 눈이 마주쳤어요.
그후 어린 날 상처들 율리아님 말씀으로 더 치유받아 마음도 편해집니다.
저도 변화되어서 나주 다녀오면
남편이 먼저 하는 말이 "율리아 자매님 오늘도 나오셨어” '네 나왔어요.'
그 두 번째 하는 말은 저 보고 ‘잘 갔다 왔어?’ 이게 두 번째 인사예요.
남편 사도 요한도 나주로 불러주시길 기도 부탁드리며
상처 많은 저를 치유해 주신 엄마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것 주님과 성모님께 영광 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