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하러 가는데 대변이 마려워도
친절한 의사는 서둘러 내 의식이 돌아오도록 조치했고, 나는 양팔에 링거를 꽂고 수술실로 실려 들어갔다. 갑자기 대변이 마려워졌는데 다른 사람의 수술이 지연되어 수술실에서 꽤 오랫동안 대변이 마려운 채 기다리게 되었다. 숨이 멎을 듯한 고통으로 가물가물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사랑하는 나의 아이가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배가 고파 울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찢기는 아픔이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음속으로 ‘하느님! 젖도 못 먹고 울고 있는 가여운 내 아이 부디 지켜주셔요.’ 하면서 울부짖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홀로 차가운 수술실에 누워 기다리고 있자니, 한평생 나를 키우느라 고생하고 계신 나의 어머니와 집에서 엄마와 떨어져 있어야만 하는 어린아이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이내 힘없이 감고 있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대변이 금방이라도 나올 듯 마려워도 꼼짝도 못 한 채 그대로 기다려야 하는 그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나는 병원에 입원한 뒤 검사 때문에 계속 금식하느라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기에, 대변이 나오지를 않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수술 직전 갑자기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대변이 보고 싶어진 것이다. 너무 급해도 완전히 기력이 쇠잔해 말조차 할 수 없는 내가, 간호사들에게 “으으으...” 하면서 잘 움직일 수 없는 어깨와 손으로 배와 항문 쪽을 가리키며 연신 호소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나를 보고서도 모르는 척하며 외면해 버렸다.
보통, 수술할 때는 관장을 해서 배 안의 변을 다 빼내는데, 관장은 시키지 못하더라도 나오려고 하는 대변까지 보지 못 하게 하다니…. 결국 끝까지 대변을 보게 해주지 않은 채 전신마취를 하여 수술이 시작되려고 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나에게 계속해서 일어났다.
전신마취를 하고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데 산부인과, 외과에서 나온 의사와 인턴, 레지던트들이 무려 15명가량이나 나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데 시동생을 불러줬던 친절한 외과 의사는 보이지 않고, 나이가 지긋한 산부인과 과장인듯한 분이 “내가 보여요?” 하고 묻는 말에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려다가 바로 정신을 잃었다.
글을 쓰면서야 깨닫게 되었는데 내가 검찰청에 있는 시동생을 부를 수 있도록 도와준 그 의사는 바로 예수님이셨다고 생각된다. 이틀간이나 계속된 여러 정밀검사에 병명이 네 가지나 나올 정도로 이미 내 몸 여기저기에서 여러 증상들이 나타나며 망가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급박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죽어가는 나를 살리시고자 예수님께서 의사의 모습으로 오셔서, 말도 못 하는 나의 입 모양을 보면서 시동생에게 직접 연락까지 해주고 빠르게 수술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셨을 것이리라. 병원을 수없이 다녀봤지만 그런 것은 주로 간호사들이 하는 일이기에 의사가 그렇게까지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당시 그 의사가 아니었으면 죽었을 수도 있었다 싶어 너무 고마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수술 후에도 그 의사를 찾아보았지만, 병원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껏 한 생을 되돌아볼 때 주님께서는 내가 더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처절한 고통을 철저히 허락해오셨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이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친히 누군가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꼭 나를 살려내셨다. 나를 단련시켜 도구로 쓰시고자 고통은 허락하셨지만, 부족하고 초라한 이 죄인을 외면치 않으시고 내 곁에서 언제나 함께하시며 구해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수술하러 가는데 대변이 마려워도
친절한 의사는 서둘러 내 의식이 돌아오도록 조치했고, 나는 양팔에 링거를 꽂고 수술실로 실려 들어갔다. 갑자기 대변이 마려워졌는데 다른 사람의 수술이 지연되어 수술실에서 꽤 오랫동안 대변이 마려운 채 기다리게 되었다. 숨이 멎을 듯한 고통으로 가물가물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사랑하는 나의 아이가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배가 고파 울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찢기는 아픔이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음속으로 ‘하느님! 젖도 못 먹고 울고 있는 가여운 내 아이 부디 지켜주셔요.’ 하면서 울부짖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홀로 차가운 수술실에 누워 기다리고 있자니, 한평생 나를 키우느라 고생하고 계신 나의 어머니와 집에서 엄마와 떨어져 있어야만 하는 어린아이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이내 힘없이 감고 있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대변이 금방이라도 나올 듯 마려워도 꼼짝도 못 한 채 그대로 기다려야 하는 그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나는 병원에 입원한 뒤 검사 때문에 계속 금식하느라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기에, 대변이 나오지를 않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수술 직전 갑자기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대변이 보고 싶어진 것이다. 너무 급해도 완전히 기력이 쇠잔해 말조차 할 수 없는 내가, 간호사들에게 “으으으...” 하면서 잘 움직일 수 없는 어깨와 손으로 배와 항문 쪽을 가리키며 연신 호소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나를 보고서도 모르는 척하며 외면해 버렸다.
보통, 수술할 때는 관장을 해서 배 안의 변을 다 빼내는데, 관장은 시키지 못하더라도 나오려고 하는 대변까지 보지 못 하게 하다니…. 결국 끝까지 대변을 보게 해주지 않은 채 전신마취를 하여 수술이 시작되려고 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나에게 계속해서 일어났다.
전신마취를 하고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데 산부인과, 외과에서 나온 의사와 인턴, 레지던트들이 무려 15명가량이나 나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데 시동생을 불러줬던 친절한 외과 의사는 보이지 않고, 나이가 지긋한 산부인과 과장인듯한 분이 “내가 보여요?” 하고 묻는 말에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려다가 바로 정신을 잃었다.
글을 쓰면서야 깨닫게 되었는데 내가 검찰청에 있는 시동생을 부를 수 있도록 도와준 그 의사는 바로 예수님이셨다고 생각된다. 이틀간이나 계속된 여러 정밀검사에 병명이 네 가지나 나올 정도로 이미 내 몸 여기저기에서 여러 증상들이 나타나며 망가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급박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죽어가는 나를 살리시고자 예수님께서 의사의 모습으로 오셔서, 말도 못 하는 나의 입 모양을 보면서 시동생에게 직접 연락까지 해주고 빠르게 수술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셨을 것이리라. 병원을 수없이 다녀봤지만 그런 것은 주로 간호사들이 하는 일이기에 의사가 그렇게까지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당시 그 의사가 아니었으면 죽었을 수도 있었다 싶어 너무 고마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수술 후에도 그 의사를 찾아보았지만, 병원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껏 한 생을 되돌아볼 때 주님께서는 내가 더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처절한 고통을 철저히 허락해오셨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이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친히 누군가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꼭 나를 살려내셨다. 나를 단련시켜 도구로 쓰시고자 고통은 허락하셨지만, 부족하고 초라한 이 죄인을 외면치 않으시고 내 곁에서 언제나 함께하시며 구해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