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내 딸을 꼭 좀 살려주시오!
친정어머니가 데려간 한의원은 병원도 없던 그 시골에서 모두가 의지하는 종합병원 같은 곳이었다. 원장님이 나를 진맥하더니 “힘들기는 하겠지만, 어쩌면 일주일 정도 기다리면 낳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였다. 그 말에 진통을 하면서 또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어머니가 또다시 나를 한의원에 데려가셨다. 그런데 진맥하던 원장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음... 이거 큰일 났네. 산모가 아예 힘이 없어 아기가 나오지 못하겠는데요. 이제는 아기 낳기가 어렵게 되었어요.”라며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산모와 아기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의미였다.
다급해진 어머니는 원장님을 붙들고 “여보시오, 우리 딸을 꼭 좀 살려주시오!” 하고 울부짖으며 매달리셨다. 그러나 이미 손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원장은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이제 큰 병원에 가서 유도분만이라도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어서 큰 병원으로 가보시오.” 했다.
하지만 군서면은 물론이고 영암 읍내에도 산부인과조차 없었다. 나는 이제 더 버틸 힘도 없었다. 없는 살림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3개월 이상 계속 진통을 겪었으니 무슨 힘이 남아 있었겠는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경지까지 다다르며 어렵게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머니는 죽어가는 딸을 살리기 위해 또다시 한의원 원장을 붙잡고 울면서 통사정하셨다. “여보시오, 딸이 죽어가고 있잖소. 어떤 방법이라도 좀 써주시오!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내 딸을 꼭 좀 살려주시오! 제발….” 하며 애원하셨다. 원장은 “쯧쯧, 산모가 이렇게 되었는데, 나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대학병원으로 가보시는 게 딸과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 어서 가보세요.” 하고 일어섰다. 그 당시는 119도 없을 때였다. 어머니는 일어나 나가려고 하는 원장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막 우시면서 너무나 간절하게 통사정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나의 애끓는 마음도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이보시오, 의원님! 지금 병원에 갈 상황이 아니지 않소, 이 몸으로 어떻게 광주 대학병원까지 갈 수 있겠소. 어서 무슨 방법이라도 좀 써주시오. 그리고 병원에 가지 못할 사정이 있다오. 그러니 죽어가는 내 딸을 어떻게든 살려서 아기를 낳게 해주시오.” 어머니는 계속 우시면서 원장을 붙들고 애원하셨다.
그는 “그럼 혹시!….”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원장은 “혹시 용약을 먹으면 아기를 낳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자 어머니는 “돈을 얼마든지 드릴 테니 얼른 지어주시오. 어서 빨리요!” 하고 재촉하셨다. 한의사는 용약이라는 한약 일곱 첩을 지어주면서 말했다.
“하도 사정이 딱해서 지어드리기는 합니다만 이 약 먹고 아기를 낳는다는 장담은 못 하겠습니다. 일단 한번 먹여보세요.” 어머니는 나를 끌다시피 하여 다급히 집으로 돌아와, 지극 정성으로 약을 달여 내게 먹여주셨다.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내 딸을 꼭 좀 살려주시오!
친정어머니가 데려간 한의원은 병원도 없던 그 시골에서 모두가 의지하는 종합병원 같은 곳이었다. 원장님이 나를 진맥하더니 “힘들기는 하겠지만, 어쩌면 일주일 정도 기다리면 낳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였다. 그 말에 진통을 하면서 또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어머니가 또다시 나를 한의원에 데려가셨다. 그런데 진맥하던 원장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음... 이거 큰일 났네. 산모가 아예 힘이 없어 아기가 나오지 못하겠는데요. 이제는 아기 낳기가 어렵게 되었어요.”라며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산모와 아기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의미였다.
다급해진 어머니는 원장님을 붙들고 “여보시오, 우리 딸을 꼭 좀 살려주시오!” 하고 울부짖으며 매달리셨다. 그러나 이미 손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원장은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이제 큰 병원에 가서 유도분만이라도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어서 큰 병원으로 가보시오.” 했다.
하지만 군서면은 물론이고 영암 읍내에도 산부인과조차 없었다. 나는 이제 더 버틸 힘도 없었다. 없는 살림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3개월 이상 계속 진통을 겪었으니 무슨 힘이 남아 있었겠는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경지까지 다다르며 어렵게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머니는 죽어가는 딸을 살리기 위해 또다시 한의원 원장을 붙잡고 울면서 통사정하셨다. “여보시오, 딸이 죽어가고 있잖소. 어떤 방법이라도 좀 써주시오!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내 딸을 꼭 좀 살려주시오! 제발….” 하며 애원하셨다. 원장은 “쯧쯧, 산모가 이렇게 되었는데, 나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대학병원으로 가보시는 게 딸과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 어서 가보세요.” 하고 일어섰다. 그 당시는 119도 없을 때였다. 어머니는 일어나 나가려고 하는 원장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막 우시면서 너무나 간절하게 통사정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나의 애끓는 마음도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이보시오, 의원님! 지금 병원에 갈 상황이 아니지 않소, 이 몸으로 어떻게 광주 대학병원까지 갈 수 있겠소. 어서 무슨 방법이라도 좀 써주시오. 그리고 병원에 가지 못할 사정이 있다오. 그러니 죽어가는 내 딸을 어떻게든 살려서 아기를 낳게 해주시오.” 어머니는 계속 우시면서 원장을 붙들고 애원하셨다.
그는 “그럼 혹시!….”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원장은 “혹시 용약을 먹으면 아기를 낳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자 어머니는 “돈을 얼마든지 드릴 테니 얼른 지어주시오. 어서 빨리요!” 하고 재촉하셨다. 한의사는 용약이라는 한약 일곱 첩을 지어주면서 말했다.
“하도 사정이 딱해서 지어드리기는 합니다만 이 약 먹고 아기를 낳는다는 장담은 못 하겠습니다. 일단 한번 먹여보세요.” 어머니는 나를 끌다시피 하여 다급히 집으로 돌아와, 지극 정성으로 약을 달여 내게 먹여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