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5. 성체를 모시지 못한 냉담과도 같은 이틀간
성체 예수님을 통해 매일 매일 힘을 얻는 나의 삶! 그래서 세례를 받기 전 예비자 때부터 성체 예수님을 모시길 얼마나 갈망했던가!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매일 미사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영세 후 매일 매일 모시는 성체는 내 영혼의 촉촉한 단비로, 기쁨의 샘이 되어오셨다.
성체 예수님과 하나 될 때마다 나는 얼마나 기쁜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친정어머니를 사정없이 밀쳐, 다치신 친정어머니께서 꼼짝 못 하고 누워계시니 마음이 너무나 아파 시어머니가 제대로 봉헌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미사에 참여해도 도저히 성체를 모실 수 없었다.
성체를 못 모신 단 이틀이 20년도 넘는 길고 긴 세월 같았다. 나의 가슴은 활활 타오르는 듯했고, 성당을 다니다 안 다니는 것만이 냉담자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시어머니께서 하신 일을 온전히 봉헌하지 못해 성체 예수님을 모시지 못한 것이야말로 냉담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그때는 사순절이었다.
‘예수님, 죄송해요. 더욱 깨어 예수님의 고통을 느끼고 동참해야 할 이 사순 시기에, 성체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는 저를 용서해주세요.’ 이는 필시 나를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어놓기 위한 마귀의 공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틀째 성체를 모시지 못하게 되자 영적으로 너무 배가 고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성체를 모시지 못함이 이렇게 큰 고통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이제는 성체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께서 내게 힘을 주시고 나의 삶을 주관해주심을 더욱 깊이 느꼈다. 예수님이 아니시면 나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새롭게 시작하고자 주님께 간곡히 청했다.
“예수님! 한 생을 저를 위해 희생하신 친정어머니 덕분에 저는 수 없는 죽을 위기에서 살아났고, 갖은 고난 중에도 친정어머니가 모든 것을 다 해주시어 시댁을 도울 수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친정어머니를 크게 다치게 하신 시어머니를 제가 지금 제대로 봉헌하지 못해 성체를 모시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어머니를 은인으로 생각하고 고해성사를 보고 새롭게 시작할게요. 성체 안에 살아계신 당신을 모시고 당신의 사랑의 힘으로 시어머니를 더욱 사랑할게요. 부족한 죄인인 저를 용서해주세요. 네?” 나는 고해성사를 보고 성체 예수님을 모시기 위하여 새벽부터 일어나서 준비했다.
고해성사를 볼 때면, 항상 먼저 깨끗이 목욕한 후 성경을 펼쳐 주님의 뜻을 찾으며 말씀을 읽고 통회의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정장을 단정히 차려입었다. 고해성사 중 신부님 뒤에 계신 예수님의 현존을 이미 나에게 체험시켜 주셨기에 가장 귀하신 분을 만나는 마음으로 예의를 갖춘 것이다.
이날은 진남색 투피스 정장 차림을 한 뒤 나주 성당을 찾았더니 신부님께서 출타 중이셨다. 영적으로 목말라 견딜 수가 없었던 나는 신부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성체를 못 모신 이틀간의 냉담이 20년, 아니 천년만년이나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곳에서라도 성사를 보기 위하여 가장 가까운 노안 성당으로 갔는데 거기도 신부님이 안 계셨다. 나주에서 그다음 가까운 송정리로 갔다. 송정리에는 두 성당이 있었다. 먼저 원동성당에 계신 장옥석 부주교님을 찾았으나 출타 중이셨다. 그래서 곧바로 신동 성당을 찾았는데 그 성당의 신부님도 역시 출타 중이셨다.
어떻게 이리 단 한 곳도 신부님들이 안 계신지 놀랍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름답게 봉헌하고,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찾아 헤매는 발걸음의 수만큼 영혼들을 구원해주시라고 생활의 기도로 봉헌드렸다. 나는 그날은 어떤 일이 있어도 고해성사를 보고 성체를 모셔야 되겠다는 열망뿐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고해성사를 보기 위하여 광주행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에 몸을 실은 나는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 기도하면서 주님께 시어머니를 온전히 봉헌하고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기를 간절히 청했다.
645. 성체를 모시지 못한 냉담과도 같은 이틀간
성체 예수님을 통해 매일 매일 힘을 얻는 나의 삶! 그래서 세례를 받기 전 예비자 때부터 성체 예수님을 모시길 얼마나 갈망했던가!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매일 미사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영세 후 매일 매일 모시는 성체는 내 영혼의 촉촉한 단비로, 기쁨의 샘이 되어오셨다.
성체 예수님과 하나 될 때마다 나는 얼마나 기쁜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친정어머니를 사정없이 밀쳐, 다치신 친정어머니께서 꼼짝 못 하고 누워계시니 마음이 너무나 아파 시어머니가 제대로 봉헌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미사에 참여해도 도저히 성체를 모실 수 없었다.
성체를 못 모신 단 이틀이 20년도 넘는 길고 긴 세월 같았다. 나의 가슴은 활활 타오르는 듯했고, 성당을 다니다 안 다니는 것만이 냉담자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시어머니께서 하신 일을 온전히 봉헌하지 못해 성체 예수님을 모시지 못한 것이야말로 냉담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그때는 사순절이었다.
‘예수님, 죄송해요. 더욱 깨어 예수님의 고통을 느끼고 동참해야 할 이 사순 시기에, 성체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는 저를 용서해주세요.’ 이는 필시 나를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어놓기 위한 마귀의 공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틀째 성체를 모시지 못하게 되자 영적으로 너무 배가 고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성체를 모시지 못함이 이렇게 큰 고통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이제는 성체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께서 내게 힘을 주시고 나의 삶을 주관해주심을 더욱 깊이 느꼈다. 예수님이 아니시면 나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새롭게 시작하고자 주님께 간곡히 청했다.
“예수님! 한 생을 저를 위해 희생하신 친정어머니 덕분에 저는 수 없는 죽을 위기에서 살아났고, 갖은 고난 중에도 친정어머니가 모든 것을 다 해주시어 시댁을 도울 수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친정어머니를 크게 다치게 하신 시어머니를 제가 지금 제대로 봉헌하지 못해 성체를 모시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어머니를 은인으로 생각하고 고해성사를 보고 새롭게 시작할게요. 성체 안에 살아계신 당신을 모시고 당신의 사랑의 힘으로 시어머니를 더욱 사랑할게요. 부족한 죄인인 저를 용서해주세요. 네?” 나는 고해성사를 보고 성체 예수님을 모시기 위하여 새벽부터 일어나서 준비했다.
고해성사를 볼 때면, 항상 먼저 깨끗이 목욕한 후 성경을 펼쳐 주님의 뜻을 찾으며 말씀을 읽고 통회의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정장을 단정히 차려입었다. 고해성사 중 신부님 뒤에 계신 예수님의 현존을 이미 나에게 체험시켜 주셨기에 가장 귀하신 분을 만나는 마음으로 예의를 갖춘 것이다.
이날은 진남색 투피스 정장 차림을 한 뒤 나주 성당을 찾았더니 신부님께서 출타 중이셨다. 영적으로 목말라 견딜 수가 없었던 나는 신부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성체를 못 모신 이틀간의 냉담이 20년, 아니 천년만년이나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곳에서라도 성사를 보기 위하여 가장 가까운 노안 성당으로 갔는데 거기도 신부님이 안 계셨다. 나주에서 그다음 가까운 송정리로 갔다. 송정리에는 두 성당이 있었다. 먼저 원동성당에 계신 장옥석 부주교님을 찾았으나 출타 중이셨다. 그래서 곧바로 신동 성당을 찾았는데 그 성당의 신부님도 역시 출타 중이셨다.
어떻게 이리 단 한 곳도 신부님들이 안 계신지 놀랍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름답게 봉헌하고,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찾아 헤매는 발걸음의 수만큼 영혼들을 구원해주시라고 생활의 기도로 봉헌드렸다. 나는 그날은 어떤 일이 있어도 고해성사를 보고 성체를 모셔야 되겠다는 열망뿐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고해성사를 보기 위하여 광주행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에 몸을 실은 나는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 기도하면서 주님께 시어머니를 온전히 봉헌하고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기를 간절히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