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아님 말씀 20232023년 5월 6일 율리아님 말씀 "구속주이신 예수님의 약속!"

운영진
20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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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찬미 성모님! 반갑습니다.

지금 열기가 대단한데요. 성령의 열기로 여러분 모두 영혼 육신 치유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어제부터 비 많이 왔죠? 그런데 어제부터 비 올 때 어쩌셨어요? 여러분, 생활의 기도 하셨죠?


매 순간 모든 것을 생활의 기도 바치라고 했잖아요. 하셨어요? 안 하신 분들 많죠? 괜찮아요. 지금 시작하면 됩니다. 비 와서 내일 순례 갈 때 괜찮으려나?’ 그렇게 걱정하셨어요? 걱정만 하면 안 되죠. 현천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라 할지라도 비폭징류하는 자비의 물줄기로 바꿔주시라고. 기도하면 됩니다. 오늘 오전까지 비 온다 그랬는데 어제는 오지 말라고 안 하고 ‘오늘 오전에 나주는 비 오지 말게 해 주세요.’


그래도 꼭 와야 된다면 여러분들이 비 한 방울 맞더라도 비폭징류하는 자비의 물줄기로 바꿔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구속주이신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태중에서부터 이제까지 수많은 상처를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태중에서부터 무슨 상처를 받았을까?’ 알지 못하잖아요. 예수님과 성모님께서는 여러분이 온전히 다 내놓았을 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런 상처까지도 치유해 주십니다.


성격이 고약하신 분들도 있죠? 그런데 태중에서부터 상처가 많아서 그래요. 그래서 막 화내고 그러면 ‘아, 저 사람 왜 저래?’ 하지 마시고 ‘아, 참 저분은 태중에서부터 상처가 참 많으신 분이구나.’ 하고 우리가 기도해 줘야 됩니다. 맞죠? 우리 이제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아까 영상 속에서 그 어린 사람이 저를 갖다가 이렇게 확 던져버리니까, 생각해 보세요. 양쪽에 뚜껑이 4개가 있잖아요. 그 1개도 터져 나갈 수가 없어요. 맞습니까? (네!) 한번 해볼까요? (아니요!) 안 해도 아시겠어요? 예, 그거는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저의 삶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동안에 살아오면서 저는 아주 부잣집에서 태어났고 4살 때까지는 아주 완전히 귀염둥이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4살 때 제가 6.25를 만났는데 그때부터 이제 불행이 시작됐죠. 사람이 언제 어쩔 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이 또 언제 죽을지도 몰라요. 주님께서 우리를 언제 데려가실지 몰라요. 아까 인천 지부장님 친구가 죽었다 그랬잖아요. 지금 젊은 사람들도 그렇게 많이 죽어요.


언제 주님께서 우리를 데려가실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어있어야 됩니다. 주님과 성모님께서 나주에 발현하시고 현존하셔서 옛 예언자들도 제왕들도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고, 듣고 싶어도 듣지 못했던 그 모든 것을 이곳 나주 성지에서 이제까지 보게 해 주시고 듣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지금 여기저기서 “나는 이런 이런 말씀을 들었다.” 이렇게 그런 일들이 엄청 많습니다. 그런데 그걸 조심해야 돼요. 우리는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주신 메시지 말씀만 따라가면 됩니다. 내가 무슨 말씀을 받았던지, 내가 이런 말씀을 받았다 해서 천국 간 거 아니고 내가 이런 일을 한다 해서 천국 간 거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얼마나 예수님과 성모님의 뜻을 잘 따르고 5대 영성을 잘 묵상하는지. 그런데 5대 영성을 묵상만 하면 안 되잖아요. 5대 영성을 얼마나 실천했는지 그러면 생명나무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서 마지막 심판 때도 생명나무의 열매를 보고, 또 저울도 달아봅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보면 금방 연옥으로 갈 사람인지, 지옥으로 갈 사람인지, 천국으로 갈 사람인지 그거 세어보지 않아도 압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말씀을 받아서 천국 간 거 아니고, 잘 배워서 천국 간 것도 아니고, 예뻐서 천국 간 것도 아니고 내가 실천해야 됩니다.

 

내가 여러분 앞에 이렇게 앉아있지만 제가 잘나서 여기 앉아있는 거 아니에요. 저는 부족한 죄인일 뿐입니다. 그러나 죽음에서 살리셔서 어렸을 때부터 예비를 하셨다고 그러니까 저는 믿습니다. 예수님 말씀, 성모님 말씀 그대로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주신 말씀을 인간적으로 계산하고 인간적으로 재서 ‘아, 저 말씀은 아닌 것 같다.’ ‘아, 이 말씀은 맞은 것 같다.’ 이건 완전히 예수님과 성모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예수님과 성모님을 믿고 따라가면 됩니다.

 

여기를 뭐 하러 옵니까?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부르셔서 우리가 부르심에 아멘으로 응답했고 또 성모님께서 첫 토요일을 함께하자고 “고통과 부활 사이 통과하는 이 시각에 함께 기도하자꾸나.” 하셔서 우리가 모여서 기도하잖아요. 그래서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하시는 말씀 따라서 우리가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 날 천국 가야 되잖아요.



남을 해코지하고 남을 그렇게 미워하고 여기 와서 그러면 되겠습니까? 안 그렇죠?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를 데려가실 시간이 언제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아주 잘살고 있을 때 데려가시면 천국 가겠지만, 그러지 않을 때는 연옥도 갈 수 있고 다른 곳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되잖아요.


셋째 낳을 때 제가 그렇게 많은 출혈을. 우리 수녀들도 모르고 수사들도 모르겠지만, 아니, 신부님들도 모르시겠지만. 아기 낳아보신 분만 알죠? 아기 아빠들도 모르죠.


여러분들, 아기 날 때 진통이 어때요? 진통을 3개월 7일간 하고 5월 4일 3개월 8일 만에 제가 셋째를 낳으면서 정말 많은 피를 쏟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피가 나올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 많은 피를 흘리고도 제가 링거 하나도 맞지 못하고 그 여름에도 저쪽 방에서 선풍기만 틀어도 “헉! 헉!” 숨을 못 쉬고 이러고 있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우리 친정어머니가 조리를 하면 치유가 될 수 있다고 그래서 넷째를 이제 낳았어요. 막둥이 낳고 17일 만에 17일 만에, 아직 세이레도 안 갔잖아요. 그랬는데 우리 친정어머니가 쌀이 떨어지니까 친정으로 쌀 가지러 가는 그 시간에 “절대로 밖에도 나오지 말고 찬물에 절대 손대지 마라.” “금방 갔다 올게.” 그렇게 당부를 하고 가셨는데 시어머니가 바로 오셨어요. 쌀 사달라고.

 

그래서 어떡해요. 저는 이제 한 번도 시어머니 말에 거역한 적이 없으니까. 리어카를 빌려서 방앗간으로 쌀을 사러 갔는데 거기에 쌀이 없어요. 내일 찧는다고 내일 가져가라고 그래서 이제 집으로 왔어요. “어머니 하룻저녁 주무시고 내일 가져가시면 안 되겠어요?” 안 된대요. 광주 식구들은 그러면 굶으란 말이냐고. 그래서 또 갔어요.

 

그 리어카는 쇠예요, 앞에 쇠 잡고. 8시간에서 9시간 정도 제가 걸어서 갔는데. 그 동네는 거기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더 먼 데 갔는데 거기도 내일 찧는다는 거예요. 또 다른 데 물어 물어서 갔는데 거기도 또 내일 찧는다는 거예요. 이것은 바로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이에요.

그렇게 이제까지 정말 죽음보다도 더한 그런 고통을 수없이 겪어 왔습니다. 그랬는데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는지, 정말 제가 생각해도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지금까지 가능케 하셨습니다. 그랬는데 거기서 이제 쌀을 사와서 지난번에 제가 말씀드렸죠.



아기 낳은 지 17일 만에 80kg짜리 쌀을 버스에 혼자 올렸어요. 그리고 오다가 쓰러져서 혼수상태에 들어갔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오셔서 저를 리어카에 싣고 집에 데려다 주셨잖아요. 그래서 이제 감사하다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일어나서 보니까 그 할아버지가 없어져 버렸잖아요. 하느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여러 번 나타나셨어요. 그랬는데 하느님께서 3번 정도 그렇게 나타나셨어요. 그때는 하느님이셨습니다. 저를 그렇게 살리셨어요. 그러고나서 이제 아기 젖을 먹여야 하는데 제가 젖을 먹일 수가 없어요. 시간을 완전히 재지 못했기 때문에 모르는데, 8시간에서 9시간 방앗간 세 군데나 다녔기 때문에. 그래서 땀도 얼마나 흘렸기 때문에.

 

씻고 아기 젖을 시어머니가 얼마큼 돈을 가져가셨냐면 상상도 못 해요. 제가 미용실 막 시작했을 때도 천 3백만 원을 달라고 하셨어요. 그때 백만 원이면 집 한 채를 샀어요. 우리 작은 이모님 여기 오셨어요. 그러니까 우리 작은 이모님이 “아야, 천 3백만 원 어쩔래?” “드려야지. 어째.” 내가 그러더라고. “어떻게 너는 그럴 수 있냐?”고. 천 3백만 원을 해드렸어요.


저는 어떤 방법이든지 다 해드렸어요. 이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라고요, 진짜. 그랬는데 단 한 번도 시어머니한테 못 하겠다는 소리를 해본 적이 없어요. 그렇게 죽어가면서 먹지 못하고. 우리 큰아들도 기억하고 있는데 우리 장부 그렇게 월급 받지, 저 그렇게 돈을 한 달에 순수익 2백만 원씩 그렇게 벌어도 아이들 용돈을 제대로 못 줬어요.


남들이 볼 때는 우리 애들 부자잖아요. 그렇지만 우리 시어머니가 맨날 돈을 가져가시니까 애들 용돈을 줄 수가 없고. 저도 미용실 하면서도 많이 굶었어요. 우리 어머니가 계실 때는 김밥 싸서 막 이렇게 먹여주고 그러면 먹고 그렇게 살았어요.


그랬는데 그때 쌀 사드리고 그때부터 제가 치유받기 전까지는 계속 다리가 아팠습니다. 한 번도 이 발바닥이 안 뜨거워 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남편한테는 한 번도 이야기해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손은 그 옛날에 장갑 있어요? 시어머니 맨날 돈 해드리느라고 세상에 제가 수술할 때도 이 젖이 이렇게 불어서 있는데 2~3백 원하는 유축기 하나도 못 샀어요. 그러고 장갑이 없이 그렇게 쇠 리어카를 손으로 바로 했잖아요. 그래서 계속 손은 뜨겁고, 발 뜨겁고, 아주 막 발 동동 굴리고 그렇게 있다가도 남편이 오면 전혀 그런 내색 안 하고 웃어 보이고 그러니까 남편은 전혀 몰라요.

그래서 제가 막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데 그전에 33번 샘 판 데 있잖아요. 밖에 거기 할머니가 오셨어요. 너무 반가워서 둘이 이제 막 껴안고 막 울었어요. 그 며느리가 아기 낳기 3일 전에 저를 쫓아냈잖아요. 그래서 아기를 제가 한 달 뒤에 낳았으니까 그래도 시간이 좀 갔죠. 제가 집을 알려드리지도 않았는데 오셨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오셨냐고 그랬더니 “아, 지도소에 가서 집을 알아봤지.”


“아, 자네가 담아준 그 물김치 나는 평생 못 잊을 것 같다.”고 그러면서 “그리고 자네가 김치 담아서 밥해 준 거 너무너무 그렇게 생각났다.”고 너무너무 맛있게 먹었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제가 이제 얼른 나가서 밥을 해드리고.


그런데 제가 그렇게 아기 임신해서도 부엌에 나무를 해다 땠다니까요.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 고통스러워도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하느님 사랑으로 느껴보세요. 제가 임신해서도 시어머니 맨날 오셔서 돈 달라고 하니까 돈 해드리고 돈이 없으니까 나무 부엌 집도 좋은 집을 얻을 수가 없어요. 연탄아궁이 집도 얻을 수가 없어요. 시어머니 해드리느라고 돈이 없으니까.

그래서 갈퀴나무 해다 아궁이에 불 때고 또 소나무, 아기 낳으면 이제 나무 하러 못 가니까 나무를 이제 먼 데서 사 왔잖아요. 그랬는데 그 할머니 오셔서 “아, 그렇게 그동안에 자네가 그렇게 33번이나 샘에 들어갔다 나왔다 해서 나온 그 샘물 먹을 때마다 자네 생각난다.”고 하면서 동네 사람들도 그 물 많이 먹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래서 “할머니, 지금 며느리는 좀 어떠세요?”




그랬더니 “아이고.” 그러셔서 “아니, 지금도 힘들게 해요?” 그러니까는 아이 이제 좀 안 좋으시더라고. 그래서 “아. 지금도 힘들게 하는군요.” 그리고 많이 아픈 줄 알았어요. 그래서 아프냐고 그랬더니 “죽었다네.” 그래서 “아니 왜 어떻게 죽어요?” 아기 낳기 3일 전에 그렇게 저를 쫓아냈잖아요. 그랬는데 그날도 들어오지도 않았대요. 나를 쫓아내려고 그랬지. 왜냐하면 전화 올 때마다 내가 새댁한테 좋게 해주느라고 좋게 말해줬잖아요.


남편 도박하고 그런다고 그래서 좋은 이야기 다 했는데 “아이 뭐 당신은 그런 거 안 겪어봐서 모르죠!” 그래서 “아니 나도 다 겪어봤다.”고 그러니까 “우리 남편은 월급에까지 손댄단 말이에요!” 그래서 “아니, 나도 그렇게 해봤다.”고 하면서 이야기했는데도 할머니 힘들게 해서 할머니가 너무너무 우셔요. 그래서 제가 할머니 그렇게 안 바꿔주려고 계속. 그랬더니 쫓아낸 거예요.


 

아주 며느리가 남편한테 그렇게 심하게 하니까 남편이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자매님들은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정말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줘야 돼요.


집이 휴식처가 돼야 한다고요. 그런데 오면 맨날 잔소리나 하고 그러면 집에 안 들어오고 싶겠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자연히 밖에서 얼른 들어오지도 못하고 화투도 치고 그런 거예요. 그랬는데 계속 내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그랬더니 그 앙심으로 저를 쫓아냈거든요.


그랬는데 그때 들어오지도 않고 나중에 들어와서 남편하고 시어머니 앞에서 쥐약 작은 거 있잖아요. 그것 가지고 쥐약 먹고 죽어버린다고 막 겁주려고 그랬어요.


이렇게 입에 먹는다고 막 하니까 시어머니가 얼른 그걸 뺏었대요. 그랬는데 그때 그게 이제 살짝 떨어지면서 입에 좀 들어갔는데 막 나 살려주라고 “나 살려라.” 그러니까 그때는 119도 없었잖아요.


차로 이제 영암으로 데리고 가서 위세척까지 다 했대요. 그랬는데 죽어버렸대요. 그래서 의사도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대요. 왜냐면 그렇게 소량을 먹은 데다가 위세척까지 다 했는데 죽을 수가 없대요. 그랬는데 이상하다고 병원에서도. 그러니까 정말 우리가 착하게 살아야 되고 그 새댁이 삼십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일찍 죽었잖아요.

나보다 더 젊었으니까 나도 그때 30대였는데. 제가 서른아홉에 막둥이를 낳았으니까 그 여자는 훨씬 젊었어요. 그러니까 30대에 죽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이든지 잘 봉헌해야 돼요.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뭘 원하십니까? 우리가 5대 영성으로 정말 천국을 누리길 원하시잖아요. 나주에서 뭘 원해요. 5대 영성으로 우리가 천국 가자고 여기서 외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 여러분 앞에 이렇게 있지만, 저 여러분보다 훨씬 못해요. 저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앉아서 기도하시고.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그런데 계속 어제도 오늘도 마약성 진통제 계속 먹고 있어요. 신약도 또 먹고, 치통도 또 양쪽이 다 그래서 너무너무 아파서 병원을 가봤더니 저는 하는 것마다 그렇게 이제 좀 뭐가 안 좋아요.


저는 전에 시어머니 돈 대드리느라고 치과를 한 번 못 갔어요. 그리고 저는 임신해서도 거의 밥을 잘 못 먹었어요. 먹기 싫어서가 아니라 양식이 없어서. 우리 친정어머니는 계속해서 그렇게 쌀 갖다주시면 시어머니 드리고. 남의 소작까지 다 해서 오셨어요. 그러면 시어머니 다 드리고 제가 영암에서 살 때도 임신해서 우리 어머니가 가져오시니까 광주 시댁까지 애들 데리고 시댁 가져다주느라고 거기서 이고 터미널까지 걸어가느라고 또 유산이 돼버렸어요.

 

이런 식으로까지 제가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지 몰라요. 지금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아요. 그러고 샘 속에 들어가라고 해도 못 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는 일단 “하면 한다. 할 수 있다!” 저는 그렇게 살았어요. 제 모토가 그것입니다. “할 수 있다!” 저는 불가능이 없었어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살았어요. 여러분, 우리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로 생각하고 삽시다. 그럼 할 수 있어요! 저 할 수 있었잖아요.


 

그렇게 못 먹고 그렇게 연약한 몸으로 다 해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지켜주셨더라고요. 하느님을 그때는 몰랐지만 지켜주셨어요. 왜냐면 그렇게 못 먹고 했으면 다리도 말랑말랑해야 되잖아요. 우리 친구들이 같이 만져봤는데 제 여기 허벅지 맞아요? 장딴지. 그렇게 못 먹고 살았어도 제일 통통한 거예요. 딴딴해. 그때는 다 말랑해요.


잘 먹고 사는 애들인데 다 말랑해서 아, 탄탄한 것이 안 좋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것이 정말 그렇게 못 먹었어도 주님께서 근육을 키워주셨고 어렸을 때도 제가 이제까지, 지금은 안 해봤어요. 제가 할 때까지는 팔씨름도 져본 적이 없다니까요. 그리고 90kg까지 이렇게 지고 다녔고 그렇게 “할 수 있다!” 하고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다 해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형 선고를 받고 암이 온몸에 항문까지, 발가락까지 다. 그런 이야기는 누구한테 아직까지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저는 항문에까지 발가락 사이까지 다 퍼져 나왔어요. 그러도록 암인 줄 몰랐습니다. 돈이 없어서 병원을 안 가봤으니까.

 

다섯째, 여섯째 시아제 또 대학교까지, 또 여덟째 막내 시누가 이제 대학교 가고 그러니까 하나는 계속 매달 대주고 우리가 다 대주는데 시어머니가 갑자기 오셔서 세상에 “20만 원 보냈다.” 그러면 20만 원 어떻게 해드려야 돼. “10만 원 보냈다.”


월급 몇만 원밖에 안 될 때. 또 해드려요. 그래서 내가 병원도 못 간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병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암 걸려서도 먹을 수가 없어요. 암이 항문까지 다 차버렸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대변을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수술할 수가 없어요, 대변 못 보면 여기 뚫어서 하잖아요. 인공항문을 한다고요. 그런데 그것도 못 해요. 왜냐면 혈압은 50~40 나갔으니까.

 

그렇게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저를 하느님께서 살리셨어요. 그랬는데 또 시어머니가 또 돈 달라고 오셨어요. 아, 그때는 기쁜 거예요. ‘이제는 드릴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다.’ 제가 아멘으로 응답하고 주님께서 살려주셔서 살아났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제 미용을 할 수 있으니까 미용실 해서 시어머니 해드리려고 ‘이제는 내가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이제 할 수 있다.’ 시어머니하고 친정어머니 오시라 해서 두 분한테 이제 말씀드렸어요. 두 분이 좀 도와주시라고. 애를 데리고 혼자 미용실을 할 수가 없잖아요. 왜냐면 그때 시동생들이 3명이 대학교를 갔어요.


그걸 제가 다 댔어요. 암 걸려서도. 어떻게든지 했어요. 우리 친정어머니 지금 생각하니까요. 진짜 너무너무 고생하셨어요. 그걸 율리오 씨가 다 해야 되는데 율리오 씨가 안 했어요. 내가 말 안 했으니까. 율리오 씨 나쁜 사람 아니에요. 내가 말 안 했으니까.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시동생 사법고시에 합격할 때까지만 농사짓겠다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아파 있어도 나를 도와주지 못하신 거예요. 시댁에 도와준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내가 죽어가도, 내가 기어다녀도. 배로 기어다녔어요. 수술하고 나서 거즈가 들어있을 때 그 터져 나와서 걷지도 못하고, 낫지도 못하고 광주 수술한 병원에도 못 가고 시골 병원만 다녔어요.


그때도 우리 친정어머니가 “그 시아제 합격할 때까지 농사짓겠다.” 하셔서 못 도와주셨는데 이제 내가 나았으니까 할 수 있다고 그래서 좀 도와주시라 그랬어요. “어머니가 농사지으실 때는 시어머니가 좀 와서 도와주시고 또 안 그러면 어머니가 하시고.”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한번은 이제 어머니가 농사지으러 가셨어요. 그래서 시어머니가 오셨어요.


 

이제 친정어머니는 하루 만에 못 오시죠. 그때 제가 완전히 토사곽란이 나서 아기도 못 보고 뭐 싼 집 다니니까 화장실도 뭐 저리 밖으로 나가야 되잖아요.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배가 아파서 막 정신을 못 차리고 미용실 할 때 그랬는데 낮이 됐는데 나는 이제 안 먹어도 돼. 그런데 시어머니가 애들 낮도 안 챙겨주시고 그러신 거예요. 그래서 셋째한테 “할머니 어디 가셨냐?” 그랬더니 할머니 안집에 아기 목욕시키고 있대요. 저녁때까지도 안 오셔요.


안집 새댁이 아기를 낳었어요. 안집 가서 해 준 거예요. 그래서 가실 때는 우리 애들도 안 보고 그냥 가방만 갖고 쒹~ 가셔버렸어요. 그래서 제가 막 기어가고 그렇게 애들 먹이고 그랬거든요. 그랬는데 그 이튿날 새댁이 그래요.

 

“어머, 세상에 얼마나 시어머니 잘 둬서 좋겠다.”고 그래서 “왜요?” 그랬더니 “아우, 세상에 나 아기 낳았다고 아기 목욕 다 시켜주고 아주 녹두죽까지 다 써주고...” 아주 그 집에서 일 다 해 주신 거예요. 우리 아기들은 손도 안 대고 그 안집 아기들만 해 주시고 그 안집 시어머니도 계시거든요. 그런데 그러고 가셔버렸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요. 시어머니가 애들 밥 먹이고 씻기고 다 해준 셈 쳤죠.

 

그래서 이 셈 치고 5대 영성이 그래서 좋은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 그동안에도 아주 수많은 일들이 있었어도 한 번도 시어머니를 원망해 본 적 없잖아요. 제가 우리 이모님들 여기 오셨는데 좀 흉봐야 되겠다. 내가 이모님들한테 뭔 이야기도 안 했어요. 그랬는데 두 이모님들 다 큰 며느리로 시집가셨어요.

 

내가 큰 며느리로 가게 되니까 두 분 다 반대를 하셨거든요. 너무 고생하셨으니까. 그런데 “시어머니가 뭐라 해도 이렇게 가만히 당하지만 말고” 왜냐면 제 성격을 아시니까 “시어머니가 뭐라 그러면 가만히 그냥 당하지만 말아라. 말을 할 때는 해야 된다.” 그래요. 그런데 한번은 우리 시아제가 합격을 해서 연수원에 있었나 봐요. 합격한 줄 알죠.

 

합격했을 때도 바로 쫓아오셔서 “아파트 얻어주라.”고 그러더라고요. 우리는 진짜 돈 없어서 집도 못 얻고 있는데 그래도 율리오 씨는 아무도 말도 안 해요. 그래서 내가 율리오 씨를 이렇게 했어요. 그랬더니 “어머니, 만오는 어떻게 지가 할 거예요.” 생전 처음으로 하는 소리예요. 내가 찔러도 가만히 있길래 이렇게 또 봤지. 아니, 서울 아파트를 어떻게 얻어줘요. 이제까지 가르친 것도 아주 정말, 죽을 둥 살 둥 죽기 직전까지 갔는데 진짜 이번에 합격 못 하면 이제 나는 죽을 것 같아.

 

왜냐면 암이 다 퍼져서 언제 죽을지를 모르는데 우리 애들은 어떻게 살 것이며 나는 죽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파트 사주자고 하시더라고요. 다 아파트 사준다고. 그 뒤로도 이제 엄청난 일들이 많아요. 양력 1월 1일, 설날 갔어요. 직장들이 있으니까, 서울에서 그 시아제랑 다 내려왔어요.

 

떡국을 다 차려 먹고 그 전에 율리오 씨 고모 딸이야. 나보고 “만오, 연수원이 있는지 아는가?” 그래서 “아니, 지금 연수원에 있어요?” 난 그런 건 잘 모르죠. 그랬더니 “그것도 모르는가? 한 식구가 돼서 그것도 모르는가?” 사람들 있는데 막 질책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그때 좀 창피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처음, 만나서 내가 “아, 삼촌. 우리는 돈을 떠나서, 돈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 정말 우애하고 삽시다. 그래서 삼촌이 어디 연수원을 갔으면 ‘지금 연수원에 있습니다.’ 나한테는 못하더라도 형님 직장에는 전화 있으니까 형님한테는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남한테 들으면 좀 그러니까 무슨 일 있으면 형님한테 전화하세요.”

 

그랬더니 시어머니가 “저년 봐라! 저년 봐라! 만복아, 저년 봐라!” 그러고 그 상을 완전히 엎어 버리신 거예요. 딱 저는 그 말만 했어요. 시어머니 말에 내가 대꾸한 것도 아니고 시동생한테 “그리고 우리 우애하고 삽시다.” 그 말 한마디 했는데 “저년 봐라! 느그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저년이 저렇게 나를 무시하고 있다.”고 얼마나 그래서 온갖 모진 소리를 다 하시는데 율리오 씨 가만히 있는 거예요.

 

우리 딸은 나를 안고 울고 있고. 어떤 말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거기서 이제 밖에 쫓겨 나가서 계속 울고 있으니까 우리 큰딸이 “엄마, 엄마.”하고 계속 울고 있는데 방에서 말이 들리더라고요.

 

얼마나 있다가. 우리 율리오 씨 막냇동생이 “엄마, 언니 잘못한 거 없어. 엄마가 잘못한 거요. 그런 소리 할 수 있는데 왜 그리 상을 엎고 그렇게 막 언니 욕하고 그래.” 그러니까 “아, 그랬냐?” 그러시더라고요. 그러고는 그 말만 들었죠.

 

우리 시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나한테 뭐 “수고했다. 미안하다.”는 말 단 한마디도 안 하셨어요. 그랬어도 “아가, 미안하다.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하는 셈 치고. 셈 치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봉헌할 수 있었던 거예요. 여러분, 어때요? 우리 이제까지 그렇게 살지 않았더라도 우리 그렇게 살도록 합시다. (아멘!) 아멘! 그것이 바로 5대 영성이잖아요. 5대 영성으로 우리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마지막 날 천국입니다.

 


자, 우리 어떤 일을 했어도 정말 우리가 주님과 성모님께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하지 맙시다. 이제까지 성모님께서 눈물 흘리시고 피눈물 흘리시고 온몸을 다 짜내서 향유를 흘려주시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많이 발현하시고 현존하시고 얼마나 수많은 기적을 보여주셨습니까? 그리고 영광의 자비의 예수님께서 또 그렇게 발현하셔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은총을 내려주셨습니까!


 

자, 우리 주님과 성모님께서 주시는 은총! 이제까지 수많은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수많은 은총을 받은 거에 대해서 감사하고 5대 영성을 실천하고 우리가 살아간다면 우리는 마지막 날 천국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마지막 날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립시다. 누가 어쨌니 누가 어쨌니 하지 말고 내가 솔선수범해서 해야 됩니다.


저는 그 수많은 일을 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제 몸을 사린 일 없고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전 제가 다 해요. 그러니까 어디 가서도 어떤 할머니나 어떤 할아버지나 저는 안 예쁜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는 암 걸려서 96세 된 시할머니까지 모시고 그렇게 살았어도 제가 업어주고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습니다. 뭐 곡괭이네, 쇠꼬챙이 그 할아버지한테 갔는데 너무너무 잘해주신 거예요.

누가 나하고 안 좋다면 ‘아, 내가 문제가 있구나.’ 그렇게 한번 생각해 봅시다. 제가 뭐 문제가 없어서 그렇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 해 줬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쇠꼬챙이, 곡괭이라고 찍어버린다고 그렇게 그 집으로 가지 말라고 했어도 그 집 갔는데 너무너무 잘해주시고 이제까지 제가 처음으로 그런 사랑을 받아봤어요.


자. 우리 자신을 다 내려놓고 정말 내가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5대 영성을 실천하면서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한다면 우리는 마지막 날 분명히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바로 어떻게 올라갑니까? 바로 천사들의 옹위를 받으며 천국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면 성모님께서 꽃 관을 씌워주시고, 천사들이 우리가 이제까지 쌓아놓은 그 장미꽃들을 다 가지고 나와서 그 장미꽃으로 다 이렇게 막 환영을 해 주고, 성인 성녀들이 환호해 주고. 천국에 어떤 불미스러움도 없습니다. 행복만 가득한 천국! 그곳에서 우리 마지막 날 영원한 행복을 누리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나 치유받았네 너 치유받았네 우리 치유받았네 ~

나 치유받았네 너 치유받았네 우리 치유받았네 ~

주 말씀 하시길 죄 사슬 끊겼네 우리 치유받았네 ~

알렐루야 나 치유받았네 너 치유받았네 우리 치유받았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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