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423화. 한 오토바이에 여섯 사람이 타고 다니다.

wlsgodqn
2023-05-02
조회수 1056



한 오토바이에 여섯 사람이 타고 다니다.


넷째를 임신 중이던 어느 날이었다. 그런데 옆집 새댁이 갑자기 찾아와 대뜸 “새댁! 새댁은 도회지에서 살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에요. 요즘에는 아이 셋을 낳으면 미개인이고 넷을 낳으면 야만인이라고 해서 방도 얻기 힘들어요. 그러니 여기서 오래오래 우리 함께 살아요.” 하였다.

 


1978년, 그 당시 인구정책 구호가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지금은 더 심하지만, 그 옛날에도 야만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어린 생명을 거리낌 없이 죽이는 낙태가 흔히 자행되었다. 아이를 많이 낳았다고 내가 미개인이나 야만인 소리를 듣는 것은 “아이 많이 낳아 기르느라 고생이 많네요.”

 

하는 사랑의 말을 들은 셈 치고 봉헌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태중에 있는 넷째 아이가 그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얼른 ‘아가야, 미안해. 상처받지 말아라. 우리 사랑의 말을 들은 셈 치자꾸나. 나쁜 말에는 귀를 막고 좋은 말만 가려듣는 착한 아가가 되어라.’하고 속삭이며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하는 불필요한 말을 더는 듣지 않기 위해 바쁘다며 그 자리를 피했다. 나는 건강도 안 좋은 데다가 임신을 해도 계속 먹지를 못해 7개월이 넘었어도 배가 많이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임신한 줄도 모를 정도였다.



그러니 옆집 새댁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넷째까지 임신한 내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넷째까지 낳은 사람들은 야만인이야. 야만인!”하고 비난하였다. 그때는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으로 뉴스나 신문 등에서도 계속 저출산을 장려했다. 그래서 아이 많이 낳은 사람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했고, 몹시 욕을 먹기까지 했다.



당시 사회 풍조가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시내에 나가기 위해 우리 가족 모두 남편이 운전하는 오토바이를 탔다. 맨 앞에 큰아들과 큰딸을 태우고, 셋째를 안은 나는 남편 뒤에 타고 갔다. 그 당시에는 자가용은 물론 도로에 차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탈 수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고 “이야-! 저기 저 오토바이 다섯이나 타고 가네!” 했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은 웃으며, 가만히 “다섯이 아니라 여섯인데…. 하하하.” 하였다.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들 중 한 사람이 “또 모르지, 배 속에 하나 더 들어있는지도?” 하자 옆 사람이 “예끼, 이 사람아! 설마 그럴 리가….” 하였다. 그 말은 어떻게 애를 넷이나 낳을 수 있겠냐는 의미로 들렸다.

 

계속 이런 말을 듣게 되니 배 속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여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얼른 사랑받은 셈 치고 배를 어루만지며 ‘아가야!, 그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너무나 소중한 나의 사랑하는 아가란다.’ 하고 말해주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사람은 모두 존엄성을 갖고 태어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태중의 아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강제 낙태와 터미널에서의 구타 사건, 그로 인해 계속된 유산으로 소중한 아이들을 잃고 내 건강도 많이 잃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배 속의 내 아이가 무참히 죽임당했던 그 일로 인해 내 심장이 그토록 갈가리 찢기는 아픔을 경험했기에, 나는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생명을 경시하는 세태가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사회 풍조가 그러할지라도,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소중한 내 아이들을 더욱 사랑하며 돌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아이들과 더불어 살면서 잠시도 쉬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일들을 해야 했다. 그랬기에 마음껏 아이들과 놀아주지도 못하고, 살림도 늘 빠듯해 좋은 옷은커녕 먹을 것도 잘 사 먹이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볼 때면 늘 마음이 저려왔다. 하지만 비록 내 온몸이 끊임없는 고통으로 부서질지라도 나의 사랑과 희생이 내 아이들에게 자양분이 되어 흘러 들어가기를 늘 염원했다. 그리고 몸도 마음도 늘 건강하게 클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비록 아이들을 많이 키우느라 때로는 힘이 들고, 야만인이라고 손가락질당한다 해도 그 손가락질을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니 결코 부끄럽지 않았다. 내 사랑하는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 서로 사랑하고 우애하는 모습을 꼭 보리라 간절히 염원하며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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